대나무는 어떻게 사나
거센 비바람이 두 쪽 열 쪽을 내도 꺾이지 않았다
마디마디 꼬장꼬장하다
몰아친 비바람 흔적 위에
또 철없는 바람이 한 수 아래 지문을 찍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빈방이 가슴에서 생겨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물결에 쓸려
음악의 표정을 이은 그리움 빈속을 울린다
보이는 것은 다
만져지는 것은 다
자신 아닌 헛것
별빛으로 속을 채우면 하루치 숙제가 끝니는 거야
가만히 귀 대면 그런 엄마의 혼잣말이 쓸려 나온다
태생의 하늘 올려다보며
틈새도 구부러질 수 없는 엄마
*이 시는 시집을 이끌어가는 엄마에 대한 근본적인 속성을 짚어내어
뒤에 나올 시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암시하고 있다.
"보이는 것은 다/ 만져지는 것은 다/ 자신 아닌 헛것"으로 살아온 사람이 엄마다.
그런 엄마의 삶과 죽음을 양수덕은 특이하게 점강구조로 출발하여 어린 시절의 엄마와
젊고 예쁜 엄마의 일생을 추적하다가 점층구조로 돌아오는 것으로 회귀하고 있다.
그러다 4부에서부터 다시 어른이 된 화자와
엄마를 대두시키면서 엄마에 대한 육친의 안타까움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잘 들춰내고 있다.
이 시는 시집에 나오는 작품을 대신할 프롤로그인 셈이다.
유품 5
- 은 숟가락
그날 마지막 점심 식사 후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엄마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해
밥때만 되면 허전한 은 숟가락
바가 오나 눈이 오나 수십 년 함께 엮인 강 돌아본다
김 나는 밥 밀고 당기던 소리 찰랑거린다
실금이라도 갔으면 모를까 아프도록 멀쩡한데
어디로 퇴장해야 할지
하얀 밥을 눈의 정서로 나르는 걸 잊지 않았던 은 숟가락
밥맛이 소담한 눈맛이라는 걸 아는 사람 간 곳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잊힌다는 말을 건너야 하는
저녁이 철렁
허공의 끝은 어딘지
어디로 은빛 머리를 두어야 하는지
우주인 소식
폐렴 뒤끝 몇 달 동안 엄마의 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물이 나와 매일 호스로 빼내야만 했다
남은 물 한 방울의 무게로
지구의 끄트머리까지 말려간 엄마
아름다운 근육들은 어디 갔을까
물과 헤어지느라 뿌리가 타들어갔고
지구는 너무 가벼운 엄마를 자꾸만 놓치려 했다
물가 수를 넣어 지어진 엄마의 이름을 걸고 나는 두 손을 모았다
물가에 누운 엄마
가는 실뿌리 하나라도 기어서 기어서 물속으로 뻗기를
덜 상한 뿌리를 물의 입에 겨우 물리며 엄마가 퇴원했다
집이 입원실이었다
다시 땅을 디디기까지 우주복 입고 산소 줄로 목숨을 이어가는 우주인은
처음으로 점자를 짚어가듯 물의 기척을 더듬었다
그 후 오 년, 가는 숨뿌리 이어갔다
끝내 지구로 귀환하지 못한 엄마
엄마가 왔다
하얀 함박꽃 계절 벌어진 원피스를 입고 머리단장을
곱게 한 중년의 엄마가 놀러 왔다
산소 줄을 안 한 건강한 엄마가 꽃술의 감성으로 향기를 밀어 올렸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늘 말끔히 지워진 엄마의 얼굴이 나비들을 초대했고
나는 노랑나비 한 마리를 따라 죽음의 줄넘기를 할 것도 같았다
평생 속내를 감추고 산 엄마를 욕되게 했을까 봐 야단맞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려고 꿈에 나타났나
엄마라는 시집을 출간해서 받은 날 밤이었다.
* "대나무는 어떻게 사나" 작품으로부터 시작한 엄마를 대하는 화자의 절실한
마음의 경지와 비애가 서서히 비등점에 닿으면서 시집을 닫고 있다.
양수덕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신발 신은 물고기>> <<가벼운 집>> <<유리 동물원>>
<<새, 블랙박스>> <<엄마>> <<왜 빨간 사과를 버렸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