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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해방1
信天함석헌
진짜로 축하 못한 해방
여기 오래간 만에 와서 말씀하자 해서 첫번에 허락했습니다. 아직은 욕심이 많아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될 대로 잘됐으면 말 각별히 하긴 뭘 하겠어요? 말이 많은 건 아직도 채 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하여간 오늘 하루는 해방을 맞이하면서 말하자니까 해보는 거예요.
해방절을 축하한다면 정말 진짜로 해보면 좋겠다, 그런 생각입니다. 한 십 년 전쯤 될까요? 경찰, 보안사령부, 안기부, 세 곳에 다 담당이 있어요. 그러니까 안기부를 중앙정보부라고 할 때, 나이도 좀 지긋한 분이 오고 말을 서로 잘했기 때문에, “3․1절, 우리 한번 대규모로 기념 안해 볼라우? 관․민․군이 다 일치해서 한번 해보면 어떻소?” 그랬더니, 그저 씩 웃고 말았지 실행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런 날이 와도 다 일체가 돼서 마음껏 기념을 못해 보는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이렇게 자꾸 탄압을 하고 경관, 군대를 출동시켜서 막기만 하려는 사람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사실과는 어긋나게 보도하는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모이는 때 자연히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시간만은 불안한 마음 가지지 마시고 한번 정말 맘껏 축하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 보시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해방됐다는 그후에 나신 분도 많으니까 이런 소리 또 해도 괜찮을 줄 압니다만, 그전에 나신 분들은 다 알듯이 해방이 됐다니까 얼마나 기뻤어요? 그랬는데 불과 며칠이 못 가서 그 기쁨이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런 것을 지금까지의 생애에서 두 번 경험해 봤어요. 한 번은 3․1 운동 땐데, 젊었으니 만큼 한참 마음껏 뛰어 보기는 3․1 운동 때 그랬습니다. 해방이 될 때는 마흔 다섯이었는데 뭐 여러 가지 지낼 대로 지내보기도 했지요. 경찰에도 끌려갔다 오고, 감옥에도 갔다 오고 그랬는데, 절대 겁이 나서는 아니지만, 또 생각이 차차 달라지고, 사실은 속임 없이 말을 하면, 이제는 선생 노릇 해먹기도 틀렸고 정말 시골 사람이 되자, 농사꾼이 될 생각으로 집에 땅은 좀 있었으니까 농사를 시작했어요. 하기는 했어도 어려움은, 나는 농사를 하고 싶은데 농꾼들이 나를 자기네 친구로 알아주지 않아. 그러니까 잘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내 마음은 안 그렇지만 어딘지 그 뭣이 다른 걸, 간격이 있는 걸 느끼나 보지요. 사람이 진정으로 민중 속에 들어가서 하나가 되기란, 말은 하기가 쉬워도 실지는 아마 어려운가 봅니다.
그땐 벌써 두루마기 입고 있던 때고, 수염도 그때 기르기 시작했어요.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오래 있으니까 수염이 자꾸 잘 자라요. 본래 젊어서 학교 선생으로 간 다음에도 면도를 날마다 할 생각에 “아이 그 시중을 왜 내가 날마다 해. 그냥 자라는 대로 둬두지.” 그래서 이따금 가위로 쓱쓱, 잘랐지 면도칼질은 안했습니다.(웃음) 이때까지. 면도칼을 사 본 일도 없었고. 그래 감옥에서 수염이 길다래졌는데, 나오니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고, 아무래도 다른 노릇은 해먹을 수가 없으니까, 농삿집에서 자라났고 농사에 취미도 있고 해서 농사를 시작했던 겁니다. 지금도 길을 가다가 논을 보면 뛰어들어 가서 나도 모 좀 심어 보고 싶은 생각이 나는 사람이에요. 더구나 가을에 탈곡을 해서 탈곡기가 돌아가는 걸 들으면 아주 향수를 느껴요. “나도 한번 그런 살림 좀 해봤으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만, 그러려고 했는데 되지를 않아요.
사람이 글을 배웠다고 하는 죄가 얼마나 크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글 배운 죄로 농민에게서 멀어졌지 다른 것 아니야. 내가 안 그러느라고 해도, 옛날부터의 풍속, 글 배운 다음에는 다른 사람보다 좀 높다든지 뭐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농민도 자연히 가까이 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이제 앞으로는 점점 더 그럴 거예요. 사람과 사람이 접촉을 하지만, 사회적인 제도는 깨졌어도 무슨 취미도 다르고 어딘가 다른 점이 몸으로 발표가 되니까.
나라는 망했어도
내가 열 살 때 나라가 망했어요. 옛날 왕정 때 순종이라는 마지막 임금이 들어섰다 해도 그저 “임금이라는 게 있다더라”지 시골 저 천리나 밖에 있는 우리에겐 임금이 하등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까 “나라가 망했어도 뭐 자기네 나라가 망했지 우리 나라가 망했나?”(웃음) 사실이 그렇지 않나요? 좋다면 좋다고도 할 수 있고 부끄러우면 부끄럽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 나라가 망한다는데 국민이 일어나서 별로 싸움을 안해 봤고, 의병이 다소 일어났다지만 그리 크게 됐다고 할 수도 없어요. 일반 국민이 분(憤)을 느꼈어야 하겠는데, 일반 국민은 도대체 나라가 뭔지 임금이 뭔지, 고맙다는 생각도 없으니까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아요?
옛날에는 좋은 의미에서 그랬다고 그러지요. 요(堯) 임금이 아주 정치를 잘했다고 하잖아요? 요 임금도 자기 생각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성인이라는 사람의 말을 들어서 했어요. 하루는 요 임금이 내가 어느만큼 정치를 했나 돌아보려고 보통 사람의 옷을 입고 나가니까 나이 많은 늙은이들이 일을 하면서 격양가(擊壤歌)를 부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퇴비 치는 것 비슷한 거예요. 그런 걸 가지고 서로 놀면서 노래를 불러요.
일출이작(日出而作)하고, 해뜨면 일어나고
일입이식(日入而息)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서 자고
착정이음(鑿井而飮)하고, 내 손으로 우물 파서 물 마시고
경전이식(耕田而食)하고, 밭 갈아서 내 손으로 먹고 사는데
제력이우아하유재재아(帝力而于我何有在哉)아? 임금이 나하고 무슨 상관있어?
그랬다는 거예요. 요 임금쯤이니까 흐뭇하게 생각을 하고 돌아갔을는지 몰라요. 시작에선 그렇게 한 것이 소위 정치란 것인데, 후에 오면 안 그렇게 됐단 말이야. 이런 얘기를 하려면 절간에라도 들어가 앉았어야 합니다만, 그러니까 이천 년 전에 장자(莊子)라는 사람이 나와서, 순(舜) 임금이요 요 임금이요 하는 사람들이 성인으로 정치했다 그러지만, 도대체 정치라는 걸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됐다 그랬어. 그전 전국(戰國) 시절에 임금이란 건 백성 알기를 개나 닭처럼 알고 마음대로 잡아다가 전쟁시키려면 시키고 잡아다 먹으려면 잡아먹는 사람들이라, 그래서 장자가 정치는 큰 도둑이라 그러잖았어요? 밤에 담 구멍을 뚫고 그러는 건 작은 도둑이고. 작은 도둑은 주머니를 당장 내주든지 금고에다 쇠를 단단히 채워 두든지 하면 상관이 없지만, 힘쓰는 놈이 와서 금고째 들고 갈 때에는 도리어 쇠 안 채웠을까 봐 걱정이에요.
그까짓 정도가 아니고, 지금 이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 어떤고 하니, 요 임금, 순 임금, 예수, 석가까지 도둑질을 해. 평상시에는 그런 이의 가르침을 자기네가 상관할 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기독교도 내가 봐 준다, 유교도 내가 관장한다, 이 대통령도 그래, 박정희도 그래, 여기 전 대통령도 그러고. 다 나라에서 장려한다는데, 사실은 자기가 정권을 도둑질하고 들어온 거지 국민이 준 일 없어요. 언제 줬어요? 옛적에도 그렇지만, 지금은 더구나 민주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국민의 의사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고 자기네가 마음대로 한 거지. 또 사람만 안 죽였어도 좋겠는데,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아무리 둔한 마음이라도 고맙단 생각을 할 놈이 어디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데모하는 학생 편에 선다, 아주 공공하게 내놓고 언제든지 그래. 난 절대 학생 편에 서지. 그럼 젊은 놈들이 그런 걸 보고 분개할 줄도 몰라 되겠냐, 그런 사람이오. 허나 문제는 글쎄 어떡하냐가 문제요. 젊은이들도 왔으니 이왕이면 내가 좋은 소리를 해 드려야 할 터이니까. 나는 제발 그런 정부가 있지 않기를 바라고, 정권을 쥐더라도 그렇게 안하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싸워서 저것들을 없애야지, 그렇게는 생각을 마세요. 그러면 내가 작은 사람이 돼. 내가 세상에 날 때는 누구 죽이러 나온 사람은 아니거든. 아무리 못생겼어도 말이야. 박정희가 죽었다는데 누가 거리에 나와서 춤췄다고 하지만, 난 그런 따위로 나진 않았오.(웃음) 그보다는 조금 크게 생겼지.(폭소)
사람으로 생각하면 그 사람은 불쌍한 이, 누구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오. 그렇지 않아요? 왜 당신은 이 어려운 시대에 그 자리를 맡았소? 자기는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했는데 성공이란 말이야” 그럴지 모르지만 생각이 다 바른 건 아니오.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만큼 생각할 줄 알고, 낮은 사람은 그렇게밖에 생각 못하는 거예요. 지위는 높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낮은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왜 우리가 좀 일찌감치 가르쳐 주지 못했나?
군인들한테 군인이라는 건 뭘 하는 거다, 나라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다 그래야겠는데, 나라를 위하는 것이 자기네 위에 있는 대대장, 연대장, 별짜리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만인가 보다 생각해요. 물론 가르치는 사람은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겠지요. 쌀 가마니라도 하나 나오면 우리 집으로 우선 가져가거라, 그러기도 하고. 요새는 아마 못 그럴는지 몰라요. 그래도 한창 저 전쟁 나고 그럴 땐 내 눈으로 봤소. 새벽 한시, 두시에 와서 젊은이는 모조리 끌어다가 십만이 됐는지 이십만이 됐는지 국민군(국민방위군―편집자)이라는 걸 만들어서, 나도 눈으로 봤는데, 굶겨 죽였단 말이야. 누가 죽인 거요? 장군이라는 사람이 우선 우리 집으로 가져가라 가져가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당초에 아무리 가난한 나라기로서니 예산할 때 군인한테 적게 했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어리석은 사람이지. 조금 알았다면 그렇게까진 안할 건데 가르쳐 주지 못한 우리가 잘못이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 좀 생각이 달라져.
내 정적(政敵)이면 용감하게 가서 칼로 토막을 쳐서라도 죽이는 것이 장하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젠 지나갔어요. 그런 정치 때문에 우리가 이 꼴이 됐는데, 내가 이 정치를 고치겠다면서, 안 나가겠다면 어떻게 끌어서라도 내보낸다든지 그런 생각을 가져서야 되겠소? 이런 말을 하면 나더러 욕을 할 사람도 있는지 몰라. 그렇지만 그래도 내 말이 옳은 말이오.(웃음)
나이 많은데 내가 거짓말을 해서 뭘 하겠어요. 해먹을 것 아무것도 없지 않아? 그런 생각 있을래두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죽게 되면 마음이 착해진다는 게 그거예요. 새란 놈이 죽을 때 짹짹 하는 건 누가 들어도 불쌍하게 생각돼요. 죽을 때는 나도 이제 죽게 됐소 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자기의 잘못도 좀 회개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저렇게 하는 사람들도 이제 늙어서 차차 나이 많아지면 착해질 거요. 그러니까 괜히 남의 사람을 보고 “저건 없어지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작은 사람이 돼. 그러면 큰 생각이 안 나요. 내가 지내보고 하는 소리예요.
크다는 게 뭐요? 다른 사람보고 위엄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잘하는 것이 큰 것이 아니라, 될수록은 착한 생각을 하고 그 품안에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다 들어올 수 있고, 그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풀, 버러지까지도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인격이 돼야 자연히 그 속에서 힘이 납니다. 힘을 내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오는 힘이 있어서, 내가 욕을 하든지 그러지 않아도 스스로 와서 물을 것도 묻고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돼야 그것이 큰 인격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이 차차 많아져야 나라가 바로 되지 않겠어요?
민중을 향한 데모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저 사람을 보고 미워서 싸우는 것이 아니오. 여기 말도 할 줄 모르고 있는 이 씨들을 위해 싸우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데모를 할 때는 저기다 대고 하지 마시고 민중을 향해 데모를 하세요. 그래서 “나라라는 건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곤 민주주의가 안 됩니다. 여러분도 내 말할 것을 말할 줄 알아야 하고 부인할 건 부인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는 것을 본보기를 해주면, 그래서 일이 어떻게 되면 나머지 사람은 저절로 나가게 마련이야. 그러니까 내가 조그맣게, 남을 못 되기를 바라고 미워하고 할 것 있어요? 다행히 예수니 석가니 그런 분들이 오셔서 그걸 가르쳐 줘서 “이래야 된다”고 했으니까, 아 참 옳긴 옳다, 옳은 일을 하면 수천 년이 지나가도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속에서 나가는 것이 참 힘이지 겉에서 들어오는 것이 힘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기억하세요. 페퍼 포그인가 뭔가를 주니까 나가서 이러지만, 그게 없었다 그러면 학생이 무서워서 다 도망 갔을 거야.(웃음) 그러니 그까짓 힘이 무슨 힘이에요? 내 얼굴만 보더라도 부끄러워서 수그러질 만큼 내 속에서 빛이 나간다 그런다면, 왜 바로 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데 옛날부터 오는 잘못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날 이렇게 된 거니까, 그 사람들 까닭도 있긴 있겠지만 보통 말로 하면 이 어려운 세상에 났다가 어떻게 불행하게 나쁜 짐을 졌단 말이야. 이 나라에 있는 죄악의 짐을 그 사람이 맡아 졌어. 그러니까 도리어 가만 말을 하지 마세요. 그래도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무슨 까닭으로 이 어려운 때 나서 그런 불행한 짐을 졌소? 참 불쌍하구나. 나도 어떻게 같이 좀 질 수가 있으면 좋겠는데”(웃음) 그래 보시오. 강아지도 먹을 걸 주면 다 따라온단 말이야. 꼬리를 치며 오는데 사람이라고 그 사람들이 안 오겠어요?
그러니 세상 바로잡는 것이 이런 데 있지, 결코 “이 자식!” 소리라도 한번 크게 지르고 이왕이면 좀더 악독하게 말하고 그래야 될 것처럼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 늘 하는 소리지만, 데모하는 건 장한 일이지만 그건 바라지 않아요. 왜 그런고 하니, 내쫓고 나서 그렇게 지독하게 한 사람이 들어가면 더할는지도 몰라. 뭘 하려고 내가 그 사람 잘한다고 그럴 수 있어요? “안 그런다, 우리 이거 내쫓고는 안 그런다”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요. “우리는 평화를 위해 싸운단 말이야.” 그거 다 거짓말쟁이이지 참말하는 사람이오?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말부터 평화스럽게 하는 것이 평화 운동 하는 거지. “그거 하다 죽을는지 몰라.” 그건 ‘죽으면 다’라는 건데, 인종이 달라요.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죽어도 산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죽어도 이 껍데기가 죽었지 내 속에 있는 사람이 죽었나 하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오늘 문제의 내 중심점도 거기 있어요.
‘이게 다’라는 생각, 그러지 말고 정신이야말로 정말 사람이라는 그 점이 있는데─하려는 소리는 안하고 딴 얘기만 했어. 그래도 아마 그 소리가 정작 와 앉으니까 급한 소리가 돼 그런가 봐요.
오려다 못 온 참 해방
해방된 걸 한번 본때 있게 기념을 했어야 돼. 그 기쁨보다도 그 정신을 후대 사람들에게 가르쳐 줘야겠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단 말이야. 정치를 주장해서 한다고 하면서, 아무리 우리가 원해서 모셔 온 분은 아니고 자기 발로 들어온 분이라 하더라도 이왕 그 자리에 왔으면 자리 값으로라도 마음을 좀 크게 써야겠는데, 저 자식들 또 나더러 나가라 그러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경찰을 동원해 “학생 놈들 예배도 못 드리게 해라” 그러는 건 너무도 섭섭한 일인데, 그런 것이 어떡하면 없어질까?
우리가 이날을 본때 있게 지킨다는 건 욕설을 많이 하자는 게 아니야. 욕설은 한 마디도 안하고, 이 속의 정신을 따라서 내 마음에 참 진리가 들어오면 그게 이 얼굴에서 표시가 되는 거요. 그러게 반드시 무기를 들지 않아도 불안을 느끼지 않아요. 무기라는 건 부득이한 경우에 부득이해 쓰자는 거지 그렇게 쓰라는 거요? 그건 군대 교육이 잘못돼서 그래. 이 시대가 나쁜 시대요.
옛날에는 적하고 싸우다가도 적들이 소금이 떨어져서 야단났다 그러면, “소금, 그래 우리가 사 줄게” 해서 보내 주고 싸우자, 살려 놓고 싸워서 이기는 게 그게 실력이지. “야, 마침 저놈들 소금 없다. 이때다!” 그런 걸 가지고 천하 맡을 자격 어디 있어요? 우리 이 역사가 잘못돼 그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저 사람들은 그랬더라도 제발 그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정치 맡은 사람들은 그보다는 실력 있고 그래야겠는데, 그 사람을 길러야 할 줄을 먼저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 해방도 참 해방이 오려다가 채 못 오고 말았어. 해방이라고 참 기뻤는데, 며칠이 못 간 거요. 그럼 그 해방이 왜 그렇게 됐나? 그걸 이제 조금 말을 합시다.
해방이라고 그럴 때, 나는 오늘 세 가지로 갈라서 얘기를 하렵니다. 첫째는 무슨 해방인고 하니 제도에서 해방되는 거예요. 이 정부라는 제도, 군대라고 하는 제도, 무슨 국가라든지 그런 제도를 만들어 놓고 넌 조용히 가만있어, 우리가 맡아 할 테니까 가만있으라 그럽니다. 법을 악용하는 거지요. 법을 악용해서, 그 제도를 악용해서 일이 그렇게 됐어. 심해지면 제도를 짤 때부터 아주 악하게 짜요. 박정희 시대에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걸 만들었잖아요. 대통령이 전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전국민이 투표해서 해야겠는데, 요렇게 신통히 사람 같지 않은 것만 골라서(웃음), 그저 말을 인형처럼 들을 만한 사람만 골라서 모아 놓고 투표해라, 그거야 물으나마나지. 자기네끼리 하는 건데.
해방을 난 이북에서 지내봤는데, 사실 국민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해방되고 삼사 일 후예요. 첫날에만 좋아서 세상을 모르고 그저 날뛰고 그랬지. 그랬는데 러시아 군대가 들어온다는 거요. 내가 그때에 평안북도의 임시 정부 교육 담당으로 있었는데 정무 회의를 한단 말이야. 정무 회의에 무슨 부, 무슨 부가 있는데, “소련군 들어온답니다” 그러니까 앉아서 회의하던 사람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뿔뿔이 말도 없이 나가는 거요. 나하고 위원장하고 둘이 마주 앉아서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었어. 그런 사람들 가지고 어떻게 해?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정치하겠다는 사람이야. 그래서 잘못된 겁니다. 이날까지 정치 배운 게 없는데 뭘 가지고 하겠다고. 뭘 대략이라도 공부를 한다든지 물어 가지고 해야겠는데, 나서서 연설깨나 하고 무슨 운동이나 하면 되는 걸로 아니까 서로 파가 달라져요. 거기다가 민족주의자 있지, 공산주의자 있지. 민족주의자 편에서 공산주의자를 뭐 그리 미워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공산주의자 편에서는 민족주의자 참 지독히 미워해. 어떡하든지 저걸 부숴 버려야지. 그 사람이 구습으로 한다면 그건 보수적이 되어서 안 된다 그러지만, 공산주의 되게 진보적이더라. 그 얘기는 오늘 하자는 것 아닙니다만, 하여간 그랬으니까.
해방이 된 때는 내 아까 하던 말대로 나이도 들고 그래서 흥분해 가지고 춤추고 뛴다든지 하진 않았어요. 집의 일로 농사하려고 한 사람이니까 그랬단다고 딴 노릇을 하겠어요? 그런데 용암포에서 소식이 들어왔어. 날 나오라고 그래. “나 안 나간다, 나는 내식대로 축하할 테니까 당신들은 당신들대로 축하를 해라” 그랬어. 그래도 두 번 세 번 자꾸 나오라 그래요. 그래서 내 생각에 ‘이건 나를 이용하자고 그런다’ 했어요. 그때 형편을 말하면 용암포에서 기독교인이 먼저 중심이 돼서 일어났는데, 기독교인 주최로 해방 축하식을 행하면 천도교가 상당수 있는데 천도교에서 반대를 할 건 뻔하단 말이야. 나라 일인 줄, 민족의 일인 줄 알면 누가 주최를 했든지 “우린 하나요!”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교파가 다르다고 서로 싫어하고 싸우니까, 천도교서 일어나서 뭘 하자 그러면 또 기독교 사람이 말 안 들을 거야.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치우치지 않은 사람을 골라야겠다, 그래서 내게 온 거야. 나 나쁘게 말하면 박쥐 같아서 이켠도 아니고 저켠도 아니에요. 본래 공자님한테 배운 것이 중(中), 중을 지켜야 한다는 건데 중립하는 게 옳은 일이지 어느 편이 되겠어요? 그래서 내 생각에 ‘어, 이거 날 이용해 먹자고 그러는 건데, 이럴 때는 이용을 당하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 안 나갈 수 없다. 나 할 것 해준 다음에는 들어온다” 그러고 나갔던 거요.
그러니 그 말 다 길게 할 수 없지만, 해방이 이름만 해방이지 해방이 뭐 됐어요? 불발탄이라고 할까 오발탄이라고 할까, 채 터지지 못하고 만 거요. 정말 참 옳게 터졌더라면 일이 되는 건데 그렇게 못 됐지요. 옛날부터 봉건 제도로 왔고, 민족주의 시대는 제대로 옳게 치르지도 못했고, 세계의 물결에 따라서 해방이 됐다지만 우리 실력대로 된 것이 아니에요. 그게 첫째 주의할 점이오.
만일 민중이 나가서 민중 운동으로 자기의 해방을 위해서 실력으로 싸운 결과로 됐다면 이렇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는 본 일도 없는 루즈벨트하고 처칠하고 장개석이하고 모여서 우리를 도마 위에 고기처럼 놓고 “요만치 자를까, 요만치 자를까?” 했던 게 소위 얄타협정이니 뭐니 하는 건데, 그때 벌써 일 다 틀린 거요. 만일 그렇게 돼 오는 해방이라도 우리가 평상시에 공부를 하고 민중으로서의 훈련을 했더라면 그렇게는 아마 안 됐을 건데, 그럴 새가 없었지요.
오늘 아침도 요새 장준하 씨 문집 낸다고 해서, 쓸 겨를이 없다고 해도 서문 쓰라고 해서 그 소리 하긴 했습니다만, 장준하 선생 간 지가 꼭 십 년이 됐거든요. 8․15 삼십 주년이 올 때에 나보고 “요번에는 여러 사람 할 것 없이 몇이서 중심이 돼 삼십 주년을 어디 본때 있게 지내 봅시다. 되겠습니까? 내가 모금을 마련하고 그럴 터이니 찬동만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럽시다” 약속한 거예요. 정작 8월 15일에는 떠들썩해서 어려울 거니까 한 닷새 있다가 20일에 하자고 약속했는데, 17일에 산에 올라갔다가 그렇게 됐어요. 타살인지 실족사인지 상기도 의문의 죽음이지만 그렇게 세상 떠난 사람이오.
장준하는 행동의 사람이오. 일을 하러 가선 당초 겁이 없어. 키는 크지 못하지만 아주 담대한 사람이야. 무서운 것 없어. 그리고 생각을 탁 내면 곧 실행에 옮기는 사람인데, 내 성격으로 하면 아주 달라서, 나는 어느 편이야 하면 생각하는 편입니다. '사상계'에 글 썼던 것이 인연이 되어서 서로 차차 알게 되고 자연히 왔다갔다했어요.
그런데 장준하가 갇힌 다음, 내가 정당에 든 건 아니지만 정치 운동하는 데 나서서 연설을 해주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시비도 많이 해.(1967년 장준하가 옥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 선거를 도운 사실을 가리킴―편집자) 날 잘 이해를 하는 사람도. 날 아껴 하는 줄 알아요. 그래도 나는 장준하에 대해서 본 것이 있어. 장준하가 다 좋다는 건 아니에요. 장준하도 결점이 있지요. 결점 없는 사람 있겠소? 결점 되는 거야 여기서 말할 것 없고. 본래는 정치하겠다고 안 그랬어. 자기는 일생 동안 잡지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잡지를 정말 하겠거든 나라를 위해 사람을 기르시오. 지금 다 때가 묻은 정치인들은 못 쓰고 아주 새로, 그렇지 않은 것대로 모아서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몇 해 후에라도” 그랬더니, 그대로 하려고 해서, 도청당하기 시작했고 그랬댔어요. 그랬는데 일이 안 됐지요.
또 하나는, 신문은 날마다 날마다 오니까 그렇고, 또 책을 보려면 너무 길어서 안 됐고, 잡지라는 건 긴 글을 싣는데 지금 사람은 긴 글 좋아 안하고 자그막자그막한 걸 좋아하니까 주간지를 하시오, 내가 처음으로 권했어요. “그러잖아도 그 생각을 해서 김준엽 씨―나중에 고대 총장 했던―를 보냈는데 전수(專修)히 그걸 공부하라고 보낸 겁니다.” 그랬는데 그대로 되지를 않았어요.
그는 무서운 게 없어요. 그리고 내가 보는 바로는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데 늘 비교적 옳게 판단하는 걸로 보였고, 또 어떻게 감옥엘 들어가서 감옥에서 희망하는데 내가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나를 아끼는 가까운 친구들은 섭섭하게 생각하는 줄 알고도 내가 한 거요. 그건 내가 정치 욕심이 있어 그런 것 아니야. 그랬는데 그나마도 또 잘 되지가 않았어.
두고봐야지 알 수는 없지만, 뭐 사람 종자가 따로 있겠어요? 그때 생각으로는 뒤에서 후원할 수 있는 데까지는 후원을 해서, 정계에 이왕 나간 거니까 한번 힘을 써 보도록 하자고, 나 혼자는 그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 드렸는데, 그만 십 년 전에 산에 올라갔다가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그래 좌절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소만.
그런 때는 설혹 부족함이 있어도 괜찮아요. 완전한 사람은 없는데, 그 사람 쓸 만한 데를 봐서 그 사람을 쓰도록 해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모르는 것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왔으면 그만이지.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완전히 악한 사람도 어디 있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사람 쓸데없다고 내버려도 못쓰고, 또 저 사람밖에 없다고 숭배를 해도 못쓰지요. 그런 게 민주주의인데, 그렇게 해 가노라면 일이 되지 않겠어요?
심장의 육비에 새긴 말
민주주의라면 제도적인 데서 해방된다는 것이 우선 하나 있어요. 그렇지만 그 해방이 되려면 내가 해방이 되어야 돼. 내가 나 자신에서 해방이 되어야 돼.
나를 못 되게 구속하는 것이 내 속에 있어. 그건 기독교 교리뿐만 아니라 불교도 인정을 하지요. 그런데 요새 말하는 유물론만은 그것과 달라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물론 철학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의 속에 본래부터 있는 천성이라는 걸 부정을 해요. “천성이라야 하나의 동물적인 인간으로서 이것뿐이지”, 사람 속에 있는 영성(靈性)을 긍정을 안해. “형이상학적인 건 괜한 소리다. 무식할 때 하는 소리다”라는 겁니다. 이 얘기는 학생을 만나서는 여러 번 한 얘기입니다만, 오늘 여기도 다른 것 새로 말할 재주도 없어요. 재주도 없거니와 그런 건 우리가 알아둬야 하니까. 나는 확신이 거기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해방은 속에서부터 나오는 거지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미국이나 소련이나 서로 자기에게 손해가 안 나도록 얄타협정을 했어도 그때에 우리 나라 사람이 똑똑해서 아무에게도 끌리지 않는다, 차라리 이대로 있다가 나라가 없어지면 없어졌지 남한테 끌려가겠냐, 소련의 위성 국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미국의 위성 국가 될 마음도 없다, 우리는 흥하든지 망하든지 하나로 하지 갈라질 수 없다, 그럴 만한 힘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그 말이야.
이제라도 어서 그놈을 반성해서 고치는 것이 어서 급한 거지, 여러 사람을 권하고 권해서 군중 심리를 이용해 혁명─군중 심리 가지고 하는 혁명은 몹쓸 혁명이야. 뭘 하겠어요? 껍데기 혁명이나 됐지. 그건 정권에 욕심 있는 놈들이 다른 사람을 몰아 가지고 자기 먹을 걸 먹으려고 하는 거니까 이 다음에라도 절대 그런 데 속아 넘어가지 마세요.
입으로는 강한 소리를 하는데 실지 사는 건 그것과 다른 사람, 그들이 살기를 그렇게 한다면 몰라도 그런 때는 속지 마세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악을 악으로 바꿔 놓는데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우리는 이제 신물이 날 만큼 다 지내봤으니까. 사천, 오천 년 역사에 왔던 놈도 다 도둑이람! 우리 선조입니다마는, 물론 나라를 유지해 온 그 점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수천 년 역사를 가지면서 제삼세계에 들어 지금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잘못한 데가 있어 그러잖아요. 더구나 소위 임금이라는 사람들, 소위 글 배웠다는 사람들, 소위 정권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사람들, 이게 다 위에 있어 가지고, “나는 높고 너는 낮고 너는 내 지도대로 하란 말이야”, 또 지도나 받으면 좋겠는데 그걸 이용을 해서 돈벌이를 한다든지 하니까 안 된 거지.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에 이렇게 온 건 그 잎에서 그 열매가 열린 거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이건 우연하게 온 것 아니오. 일본 잘못했다고 그러진 마세요. 병 안에 공기가 있는데 물이 들어가나? 공기가 나오니까 물이 들어가지. 공기가 만일 안 나오고 버티고 있다면 물은 물론이지만 금덩이를 넣는대도 들어갈 리가 없지 않아요? 아낙(안)에 진공이 되어서 빠져 나오니까 들어가는 거지. 그러니까 내 속이 꽉 들어찬다면 어디 위아래라든지 그런 게 있겠어요?
그런 게 사실 중요한데, 정치 운동 하면서도 그런 것을 가르쳐서 자기 당원 모아 놓고 “너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회개하라”, 그렇게 한 달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정치 강연하고, 시국 문제가 나왔으면 시국 문제를 해설하고 하면, 그거야 백주에 내놓고 해도 경찰이 말도 못할 거요. 그렇게 해서 실력을 길러 놓으면 어디 나쁜 문제가 났을 때 으레 사람들이 다 하나로 찬성해 일어나게 되지 않겠어요? 그건 안하고 어느 때 선언문을 굉장하게 명문으로 써서 감동을 시킬까―그것도 감동 안 시키는 것보다야 낫겠지요―그거 얼마 못 가. 내 속에, 바울의 말대로 하면 “내 심장의 육비에다 새긴 거야”, 심장에다 새겨 놓은 것이어야지. 책 위에다가 이름 쓴 것이 무슨 오래 갈 것이 있냐?
옛날 술 먹다가 겨울에 눈에 빠져서 죽을 뻔을 두 번 세 번 한 사람, 팔에다 여기에다 ‘영 금주’라, 술은 영 안 먹겠다 그랬지만 그후에도 또 먹고 또 먹는 놈들 봤다고 어른들이 하는 얘기 들었습니다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고약한 거요. 그러니까 사람 제 속에 악이 들어 있어. 선이 물론 있지요. 선이 물론 있지만 악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선의 부정이니까. 악은 적극적인 것이 아니에요. 실재가 아니에요. 참이 아니에요. 선을 부인하면 그것이 악이니까, 악을 무서워할 게 없다는 것, 그거예요. 선은, 선천적으로 자식을 낳아 놓으면 어머니는 가르치지 않아도 안아 주고 싶고 젖 먹이고 싶고 내 사랑, 그러고 싶어하잖아요? 얼마나 좋은지 기찻간에서 보면 쪽쪽 빨고, 남이 보면 해괴할 만큼 그럽디다.(웃음) 그걸 뭐 선천적으로 하는데 대통령이면 금할 수가 있어? “나 내 자식 곱다는데 왜 그래?” 그러면 할말이 없지. 그러니 그게 뭐겠어요? 하늘이 준 거지. 그게 무서운 거요. 하늘이 준 걸 어서 여기서 발견을 하라 그 말이야. 그러면 그건 막아 낼 놈이 없어. 하나 둘은 죽일는지 몰라도 깨 일어나는 민중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아요?
나는 하지 못하고 말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또 사람이 타고난 게 좀 다른 것도 있어. 나도 행동하는 뭐를 했으면 했을는지 몰라. 그건 또 불행하게 내가 뭐 잘못해서 피질 못하니까 그러지 않았겠어요? 그러니까 나는 내 아는 걸 증거할 자신은 있어요.
해방이 들어왔지만 참 해방 노릇 못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해방 고쳐 해야 돼. 첫째가 제도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거요. 제도에서 해방이 되려면 힘이 속에서 나야지, 무기를 가지고 한다든지 무기가 없으면 화염병으로 해보자, 돌로 해보자 그런 생각은 마시라 그 말이야. 그건 해야 저 사람들한테 이유만 자꾸 줘. 치안 때문에 학생을 가만둘 수가 없어. 요새는 기회가 좋다구나 하고 자꾸 학원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그럽디다.
그러니 학생들은 어떻게 나오겠는지 모르겠어. 허나 학생들 속에는 군인들이 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그 용기보다는 하나님이 준 용기가 상당분 있으니깐 수그러지지 않을 거야. 난 수그러지지 않을 줄을 믿는 사람이야.(웃음) 다만 어떻게 하나 하는 그 점에 조금 생각을 해서, 어떻게 하면 이 속에 있는 그 힘이 방해를 받지 않고 충분히 나올 수가 있겠나? 그건 시작을 해야 알지 하루 이틀에는 안 돼. 그러니까 피차에 모여서 일이 있을 때만 “너는 내 동지다. 너 꼭 나올래? 너 다 믿는다” 그러지 말고, 평상시에, 믿는다는 말 하지 않고도 틀림없이 그 사람 오긴 올 거다, 그렇게 되어야 동지지. 갑자기 해서 싸인받았다고 될 리가 있어요? 왜 그것 하겠다는 열심은 있고 그 속을 파지를 못하나? 그건 우리 역사가 잘못돼서 오랫동안 이 속의 공부를 못해 온 지가 오래라서 그래요. 선비라고 하는 사람들 선비면 배운 것이 공자요 맹자의 도리고 노자요 장자의 도리인데, 한줌의 벼슬 하기만 하면 짜 먹을 생각만 했지 백성을 정말 기를 생각은 하지 않지 않았어요.
그러니 유교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 나라 소위 양반들이 잘못된 거예요. 그런 건 우리 자신의 일이지만 참 아프게, 쓰라리게 여러분이 반성하셔야 돼요. 그렇게 한 다음에야 무슨 해방이 온다면 아주 해방이오. 내 속에서 용기가 나지 않는데 해방이 오면 일어설 용기가 있나요?
제도로 자유 되기 전에 주민이 스스로 악에서부터 자유가 되어야 돼. 제도의 적은 다른 나쁜 제도겠지만, 내 속에 있는 악이라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이 나의 대적이란 말이야. 그래서 옛날 중국에 유명한 왕양명(王陽明)이라는 사람 말이 있잖아요?
“역파산중적(易破山中敵), 산중에 있는 강도는 가서 깨칠 능력이 있지만, 난파심중적(難破心中敵), 내 마음속에 있는 도둑은 이것 참 어렵다.”
그건 다 지내봤으니까 알지요? 좋은 물건이 있는 걸 보면 유혹이 나, “아이, 나도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정도라면 괜찮은데, 언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하나 나왔다 들어갔다든지(웃음) 그러면 벌써 일이 틀린 거야.
참 나를 찾아라
옛날에 어떤 선비가─한가하게 이런 얘기만 합니다.(웃음) 어딜 가다가 길이 늦어져서 어디 잘 데가 없는데 길가에 빈집이 하나 있어. 거길 들어가 턱 앉아 있는데 조금 있으니 인기척이 있어. 가만 보니까 여자야. ‘여자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그 다음부터 마음이 달라진단 말이야.(웃음)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하지? 선비가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벽에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아니 불(不)자를 쓰고 나 자신을 이기려니까, 조금 있더니 또 생각이 나. 또 쓰고. 그래서 밤새 이 사람이 이걸 얼마나 썼는지 새벽에 일어나니까 손가락이 닳아서 피가 나요. 그런 사람도 있단 말이야. 그런 다음에 사람이 되는 줄 알아야 돼.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이 되는 줄 아시오? 그까짓 정부로서야 우리를 제도적으로 누르는 것 혼자나 그러지 그 사람이 구십을 살겠소, 백을 살겠소? 딱 그치기까지. 다른 놈 또 들어온다, 다른 놈도 다 몇십 년 있으면 죽겠지.
하지만 내 속에 있는 그것, 여자만 보면 견딜 수가 없고 먹을 것만 본다면 침이 나오는 건 군자가 아니라 세상없는 사람도 처음에는 다 안 그럴 수가 없다 그 말이야. 그런데 내 마음속에서 아니라고, 몹쓸 것이라고 하니까 그걸 이기느라고 얼마나 했으면 피가 나고 손가락 끝이 없어지겠어요? 어렸을 때 우리 집안에 훌륭한 선비님이 계셔서 내게 얘기해 줬기 때문에 오늘날도 잊지 못하는 거예요.
이제 그 사람도 용한 사람이지만, 유혹이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속에서 오는 거야. 그 사람이 왔기 때문이지만, 내 속에 그런 것이 들어 있지 않으면 세상없는 사람이 들어왔다기로서 그러겠어요? 그런데 내 속에 본래 그런 것이 있어. 이걸 근(根)이라, 뿌리라 그래요. 흔히 말하기를 사람의 살림이란 것은 도전과 반응이라고 하지만, 도전해 오는데 반응을 한다 하지만 그건 잘못이야. 저기서 도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전하는 거요. 사실 생명이라는 것이야말로 도전하는 거야.
세상의 물질은 죄도 선도 악도 없어요. 그건 그저 물질이지. 꽃에 무슨 죄가 있어요? 돈에 무슨 죄가 있어? 하지만 내 속에 있는 것이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러기 때문에 속에 이걸 잘 다스려 갈 줄 알아야 돼. 그래 극기(克己)라고 그러잖아요. 자기를 이긴다고.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자기에서 해방이 되는 거요.
내 속에 두 ‘나’가 있어요. ‘참 나’가 있고 ‘거짓 나’가 있어. ‘참 나’라는 건 예수의 말, 공자의 말, 석가의 말과 마찬가지요. 우주를 지으신 어느 분, 보통 우리말로 하느님이라 하는데, 기독교 오기 전부터 하느님이에요. 기독교 사람이 만들어 낸 줄 알지 마시오. 본래 하늘이 저기 보이니까 세상에서 제일 큰 걸로 형용해서 그야 하느님이 만드신 거다, 대대로 가르쳐 왔단 말이야.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은 있는 분도 아니고 안 있는 분도 아니야. 산 분도 아니고 죽은 분도 아니에요. 초월, 모든 걸 초월한 절대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있는 걸 증거해 주시오. 그럼 나도 믿겠소” 그러는 건 철모르는 소리야. 이 상대계에 있고 없고가 있지, 거길 올라가면 어디 있고 없고가 있나? 죽었다 살았다도 없고, 길다 짧다도 없고, 어둡다도 없어요. 거기 밝다면 그건 어두움을 느끼는 그런 밝음이 아니고.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고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선생을 기다릴 것도 없이, 무슨 매개물을 기다릴 것 없이 알 수 있는 거야. 직관으로 아는 거야. 그게 참 지식 아니오? 그것이 사람을 이 우주에서 지도자 노릇을 해 오게 한 거예요. 사람은 가치관에 살고 보람에 살아요. 무슨 보람이 있다면 죽어도 해요. 그것이 곧 내 산 거니까 육체야 있든지 없든지 문제가 아니잖아? 그런데 평상시 그 육체라는 것은 제가 주인이라고 해. 제가 조금 아프기만 하면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죽겠다” 자꾸 나보고 경고를 해. 가만있으면 되냐? 어떻게 하라고 조처하라고 그러지만, 병에 못 견뎌서 죽는 생명은 그까짓 것 뭘 하겠어? 병에도 안 죽는 생명이 있어야 그것이 정말 생명이지, 있다가 없어지면 그걸로 끝나는데 오래 살면 뭘 하겠어요?
그러게 지금 이 시대에 나쁜 것은, 물질밖에 없다, 사람의 이성밖에 없다고 하는 거예요. 나는 말의 요점이 거기 있어.
동양에서는 그래도 정신면을 퍽 강조해 왔지요. 그 대신에 현실의 물질면을 너무 알아보려고 않았기 때문에, 그만 저쪽에서 기계가 발달된 것을 가지고 오니까 우리가 식민지로 다 몰락을 했다 그 말이야. 그건 우리 잘못이야. 동양 사람의 잘못이에요. 그런데 이제 서양 사람들이 문제점에 도달을 하지 않았소? 이 기계 문명을 가지고 기계를 발달시켜 가면 결국 우린 모두 다 해피 해피 해피, 아주 행복스런 살림을 한다 그러는데 해피가 어디 있어요?
모르긴 하지만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요.(웃음) 밤잠을 아예 편안히 못 잘 거야. 사람 같으면 그렇잖아요? 문제가 이렇게 됐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학생들이 또 그러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 끝에 그만뒀으면 좋겠지만 그래서도 안 되고, 옆에서 또 그러지 말라 하고, 88년 올림픽 때까지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것 다 쓸데없는 욕심인데. 필시 내 모르지만 사람이 다 그런 거니깐, 내 속에 있으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그러니 자연히 그만 쓸데없는 데로 기울어지기 쉽지 않느냐, 그런 것이 모여서 모여서 우리 나라 역사가 이룩된 거니까.
잊지 말아요. 나 자신에서 완전히는 해방이 못 됐더라도 어지간히 된 사람은 그래도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그렇거든 같이 의논도 하고 그러지만 뭘 술 먹으면 오금을 못 써, 그런 사람 아예 말도 마시오.(웃음) 그건 나도 많이 지내보고 그래. “너는 별 것 있나?” 그러겠지만 나도 술 먹으라면 마실 수 있어요. 마셔도 봤어요. 그렇지만 안 마셔요. 왜 안 마시나? 술 마시면 딴사람이 돼. 이놈들 다 정신 잃어버려요. 똑똑하던 놈들. 그런데 글을 쓰려면 술을 마셔야 된다, 그까짓 술 마시다 쓰는 글 같으면 안 써도 좋아.(폭소) 술을 마셔서 나는 용기라면 그까짓 용기 안 나도 좋아요.(웃음) 그까짓 용기래야 광주처럼 될 것밖에 없겠지.
이 나라에 난 사람들은 광주 사건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다음에 역사에서 그거 제낀다 그런다면, 내가 그때 있다면 나 죽고 말겠어! 그걸 보고 있어요? 어떻게든지 역사에서 “광주 사람들 내란 일으켰다” 그걸 지우지 못하면 여러분이 사람 아니오! 나도 사람 아니고 누구도 사람 아니고, 정치를 했거나 민중으로 있었거나 간에. 모년 모월 모일에 광주 사람들은 내란 일으켰다, 김대중이가 아무개를 시켜서 돈 나누어 줬다, 그따위 소리, 그런 게 어디 있는 소리예요? 그래 가지고 사람을 죽이고 이제 수나 줄이면 뭘 해? 하나 죽였어도 죽인 건 마찬가지야. 수가 적으면 조금 나을까?(웃음)
나 같으면 “많이 죽였어. 내가 잘못했어. 너무 죽였어”, 한번 그 말만 하면 그걸 듣던 사람 다 눈물 흘릴 거요. 아이고, 그렇다, 내 마음 풀린다, 네가 했다니까 내 마음에 죽이고 싶은 생각 없어진다, 그럴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노자가 자꾸 하는 말이 “부드러운 것이 강한 거지, 강한 게 결코 이기는 것 아니다.” 그게 평화의 길이오, 내가 내 자신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
시간 몇시까지지요? 시간이 다 됐지요.(웃음)
내가 정치 모르는 거 다행이야, 정치 알았다면 큰일 날 거야.(웃음)
존재에서 해방되는 것
셋째는 존재에서 해방이 돼야 돼. 이 존재가 물질계의 존재니까 영원한 것이 못 된단 말이야. 맥이 없는 거란 말이야. 참 의미의 존재란, 하나님이란 이가 계시면 그게 참 계심이고, 그로 인해서 여기 비치는 것이 산이요 인류요 뭐요 이런 건데, 이건 그림자처럼 있다가 없어지는 거니까 참이 아니야. 실재(實在, reality)가 아니에요. 실재에서 나온 어느 형상이지. 그건 왜 그렇습니까? 물어도 그건 얘기 못해요. 설명 다 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니야. 못 하는 것도 있어야지.
어거스틴보고 누가 말하기를 “선생님” “왜?” “하나님은 천지 창조하기 전에 뭘 하고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너 같은 놈 잡아넣으려고 지옥 만들고 있었다!”(폭소) 그게 아주 명답이에요.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그런단 말이야.(웃음)
하나님이 천지 창조했다면 “그래요. 참 고맙습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내 인생을 이제 알겠습니다” 그래야겠는데 “하나님 천지 창조 전엔 뭘 했지?” 그건 호기심은 호기심이지만, 호기심이 반드시 진리를 찾아 주는 것은 아니에요. 혼동하지 마세요. 공자님은 그런 걸 아주 경계해. 그러니까 올바르게, 점잖게 본이 되고 그러지 않았소? 그러기 때문에 이 존재가 헛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종교 신앙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나는 종교 믿는 사람이니까 그러지만, 알지도 못하고 남들이 그러니까 덮어놓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나도 의심도 많이 하고 해볼 대로 해보고 한참 그럴 때, 과학에서 정말 증명이 돼서 쓸데없는 거라고 한다면 나도 그만둬야지 생각을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건 문제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세계는, 정말 참의 세계는 논리도 안 들어갑니다. 그런 걸 착각해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뭘 했습니까?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웃음) 말이 말 같지 않으면 자체 모순이 되잖아요? 사람은 이 세계를 알지만, 이 세계를 알기 때문에 그 뒤는 뭐냐, 반드시 의심이 나. 누가 가르친 것 아니야. 인류의 선조가 이런 모양을 가지고 나오기 전에 속에 씨가 있어. 그것을 하나님이 넣어 줬다는 거야.
당초 이 우주, 보이는 이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어. 지금 우주론자들이 탐색을 하는데, 갈수록 갈수록 무한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만유인력 찾아낸 뉴튼이 말 잘했지. 누가 칭찬하니까 “내가 바닷가에 나가서 모래 한 알 두 알 얻어 든 거나 마찬가진데 뭘 그걸 용하다 그러세요?” 큰 과학자답게 옳은 말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이게 확실한 세계인 줄로 알고 있으니까 이것에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이 있으니까 꽃을 보면 한없이 가지고 싶고, 먹을 것을 보면 자꾸 먹고 싶고, 남이 하면 나도 해야지, 이렇게 겉 살림만 해 가지고는 내게 자유가 없어요.
해방이 못 된 겁니다. 허상에서 살기 때문에 내 자아에서 해방이 못 되는 것이고, 내 자아에서 해방이 못 됐기 때문에 이 세상의 제도를 못 이기는 것이고. 여기서 분명해져. 하나님을 바로 안 사람은 안 그런단 말이야.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산다 죽는다의 간격이 달라져요. 이건 물질적으로 나타난 그림자일 뿐이지 참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형상대로라고 그러지 않아요? 정신의 세계니까.
내가 오늘 저녁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어디까지든지 정신적인 존재다, 우리가 알기 전에 나기를 정신적으로 난 것이고, 정신적인 ‘나’가 있어서 여기 물질적인 ‘나’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럼 어머니가 낳기 전엔 내가 어디 있었습니까? 그거야 알 수 없지 않아요? 아버지 속에 있었다 해도 거짓말이 돼요. 아버지한테서 유전된 것도 있지만, 그건 생물적인 유전이지 정신적으로는 유전 인자를 타고 오는 것이 거의 없어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나왔겠는데, 그 세계가 뭐냐가 문제입니다. 그건 어지간히 아는 사람의 생각이에요. 서울 와서 어느 구석만 조금 본 사람이 내려가면 서울 가니 이런 것 저런 것 있더라 그러지, 많이 본 사람은 “서울 크던데, 말도 못하겠던데” 할 것 아니오? 그런 모양으로 정신계에 대한 체험이 도무지 없어서 그렇지 그 세계가 없다는 법은 없습니다. 여기 앞줄에 상기도 결혼 안한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결혼이라도 하고 이제 애기를 낳아 보세요. 그러면 사람을 자기가 만든 것 같은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난 어디서 생겨났어?” 물으면 요새 성교육은 그걸 다 말하게 할지 모르지만, 옛말은 한 마디로 “돌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웃음) 그거 무엇보다도 훌륭한 예술이야. 잘 가르쳐 주는 거요. 하나님이라는 이가 있다는 것을 무언리에 잘 말하지 않아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