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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은봉산
2024년 05월 15일(수요일)
산행코스 : 안국사지(09:00) - 은봉산(09:40) - 황소고개(09:50) - 구은봉산(10:05) - 원당지(10:35) - 봉화대(11:05) - 안국사지(11:35)
산행거리 : 8.5km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보원사지
안국사지 주차장
안국사지
안국사의 창건 연대에 관해서는 확실히 전해오는 기록은 없고 백제 말엽에 창건되었고 한때는 수백 명이 수도하던 큰절이었다고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전설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사찰은 고려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려조 때 쓴 연호인 "대평"이라는 연호가 안국사지내의 배바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종 때 지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안국산이 해미현 북쪽 38리 지점이 있고 안국사는 안국산에 있다"고 되어 있어 이때까지는 사찰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 후 한동안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누락되어 있다가 일제강점기 운광식이라는 사람이 안국사지의 축대를 복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다 실패했다는 기록으로 미뤄 안국사는 고려 때 창건되어 조선후기까지 이어지다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호)
원래 5층일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1층에 1매의 몸돌만 남아 있고 그 위에 4매의 지붕돌이 겹쳐져 있으며 받침부의 구조는 매우 간략합니다.
1층 몸돌의 네 모서리에 기둥 형탱가 표현되어 있고 3면에는 여래좌상, 1면에는 문고리형이 조각되어 있어 4면에 불상을 조각하는 기본형식에서 벗어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돌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 100호)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의 조성시기는 2003년 발굴조사시 출토된 태평(太平: 중국 요나라 성종의 연호) 명문기와로 보아 고려 현종12~21(1021~1030)으로 추정됩니다. 중앙의 본존불은 얼굴과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머리에 네모난 갓 모양의 보개를 쓰고 있습니다. 두 팔과 두 손이 신체에 조각되어 있고,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도 본존불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려 말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 불상으로 5m높이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 보살상이 놓여있습니다.본존불상은 굴곡이 없고 얼굴은 크고 네모지며 목은 짧고 귀는 길고 두팔은 부자연스럽게 신체에 붙여져 있으며 커다란 장방형 돌을 머리 위에이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이 불상의 발이 특히 지난 2004년의 시굴조사에서 땅에 묻혀 있던 국내의 석불 중 이와같이 '발'을 가진 불상은 안국사지 석불이 거의 유일합니다.
석조여래입상
안국사지 매향암각(도지정 기념물 제163호)
불상 후면에 있는 매향암각은 모양이 배같이 생겨서 "배바위", 고려모양이라 하여 '고래바위" 또는 베틀에 딸린 북모양이라 하여 "북바위" 등으로 불립니다.
바위에는 매향의식을 치른 내용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매향은 향나무를 땅에 묻는 민간 불교의식으로 향나무를 통해 소원을 비는 자와 미륵불이 연결되길 바라는 신앙의 한 형태입니다.
이런 매향활동을 통해 고려시대 몽고와 왜구의 침입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지역민들이 불안한 민심을 달래고자 미륵신앙의 안식처로써 안국사를 선택하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좌측 지장전, 우측 산신각
지장보살
산신각 내부
안국사지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곳은 보물 101호 안국사지 석탑에서 서남쪽으로 500여m 떨어진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사지의 크기는 전체가 약2천평 정도이며 사지내에는 폐가1채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축사 1동이 있고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습니다. 서역 가운데 중심 건물은 사역 동편에 축대를 쌓아 조성하였으며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탄면이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곰두머리고개
황소고개 0.98km, 원당지 1.89km
은봉산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안국관찰대
안국관찰대 현판
관찰대에서 바라본 봉화대 방향 파노라마
우측 봉화대
좌측 봉화대와 중안 뒤로 당진시가 보이고 우측으로 아미산, 다불산이 보입니다.
은봉산
은봉산 아래 정자
은봉산이라 표기된 이정표
황소고개 0.51km, 원당지 2.35km
가야할 구은봉산
황소고개
황소고개
원당지 2.3km, 원당지 2.9km, 은봉산 500m, 구은봉산 800m, 수당리, 덕삼리
원당지 1.93km, 황소고개 0.39km
편안한 등로가 이어집니다.
구은봉산 정상
원당지 1.4km, 은봉산 1.3km
원효깨달음길(당진05)
봉화산 2.62km, 구은봉산 0.28km
원당지 0.65km, 황소고개 1.67km
지나온 은봉산이 보입니다.
원당지 0.12km, 황소고개 2.20km
원당지
원당지 뒤로 좌측 은봉산, 우측 봉화대
원당지
안국사 0.5km, 안국사지 0.6km, 황소고개 2.3km, 영랑사 14.34km
봉화대 1.3km, 원당지 150m, 수당리 400m
봉화대 갈림길
원당지 0.67km, 황소고개 2.19km, 안국사 800m, 원당지 600m, 봉화대 900m
황소고개 1.99km, 원당지 0.88km
봉화대 갈림길
황소고개 1.45km, 원당지 1.41km, 은봉산 900m, 봉화대 100m
봉화대가 보입니다.
봉화대가 있는 봉화산
정미 봉화산 봉화(봉수)는 조선시대에 봉(햇불)과 수(연기)로 변방의 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던 통신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봉화대 주변에는 봉화(수)군을 두어 주변을 정찰하며 적의 침공시 낮에는 연리고 밤에는 불빛을 통신수단으로 활용하였고 봉화의 재료로는 말똥, 소똥 및 갈대잎을 사용하였으며 봉수군은 2~3명으로 교대근무를 실시하고 인근마을에 주거하셨습니다.
정미 봉화산 봉화대는 서로는 지금의 서산시 옥녀봉(북산)의 봉화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으로 당진시 고산 봉화대로 전달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서울 남산(목멱산)의 봉화대로 전달되었습니다.
봉화대
봉화대에서 바라본 당진시 정미면 방향 파노라마
당진시 방향
봉화대에서 바라본 가야산 방향 파노라마
아미산 방향
가야산 방향
구은봉산, 은봉산
은봉산과 좌측으로 구은봉산이 보입니다.
곰두머리고개
안국사
마애여래삼존상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이문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곳이 보입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국보 제84호)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볼 때,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제화갈라보살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 백제 후기의 마애불입니다.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선을 새겨 넣거나 도톰하게 솟아오르도록 다듬어 만든 불상을 말합니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마애여래삼존상은 웃는 미소가 포인트인데 이 미소는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표현이 됩니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은 물론 과학적 치밀함도 우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화하고 다정한 미소가 절로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백제의 미소입니다.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900~975)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습니다.
이 절터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입니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양식 기반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보물 제104호),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보물 제102호), 975년(고려 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승보탑(보물 제105호),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승보탑비(보물 제106호),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보물 제103호)가 있습니다.
가까이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백암사지 등 불교유적이 집중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입니다.
보원사지 당간지주(普願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높이 4.2m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입니다. 당간(幢竿) 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幢) 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입니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突帶)가 돋을 새김되어 있습니다. 기단부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당(幢, 깃발)을 매다는 당간(幢竿)을 지지하는 당간지주(幢竿支柱) 사이로 저 멀리 5층석탑이 보입니다.
보원사지 석조 (普願寺址 石槽) (보물 제102호)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입니다. 안쪽과 뒷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내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구멍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입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978년(고려 경종 3년)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을 비롯한 다른석조물과 관련시켜볼 때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야산에서 발원한 용현계곡을 걸어갑니다.
중문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옛 보원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입니다.
현재 보원사터 가운데 서쪽 사찰 구역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이 탑은 상하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 장식이 있는 구조입니다.
현재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고, 그 위에 머리 장식을 고정하기 위한 철제 찰주(擦柱-탑의 중심 기둥)가 꽂혀 있습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석탑입니다.
기단의 이중 구조, 상하층 기단 양옆에 돋을 새김한 팔부중(八部衆-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배치나 조각 수법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모습이지만 조각이나 돌을 다듬는 기술 등이 다소 섬세하지 못한 점은 고려 석탑의 특징입니다.
또한 지붕돌이 얇고 넓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네 모서리 끝이 살짝 들린 것은 옛 백제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탑의 특색입니다.
1968년과 2003년에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1968년 해체할 때 사리구(舍利具-사리 용기)와 함께 납석제 소탑(小塔-작은 모형탑) 등이 나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입니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오층석탑 팔부중상 배치도
부처의 법을 지키는 8명의 선신
인도 각지에 있던 토착신들이 불교가 발전하면서 부처의 법을 수호하는 선선으로 수용
동(앞면)
용(龍)
원래의 인도의 나가라고 불리는 코브라신인데 중국에서 용으로 번역, 용을 두른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왼손에 금강저를 들고 오른손은 용꼬리를 잡고 있습니다.
남(좌면)
건달바(乾達婆)
음식을 먹지 않고 대신 향을 즐기며 음악을 들려주며 천신들을 공양하는 신으로, 머리에 사자관을 쓰고 공후고대 현악기를 켜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르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 말입니다.
서(뒷면)
가루라(迦樓羅)
광명의 신 비슈누의 상징이자 상상의 새를 신격화한 것으로 새 중의 왕이며 뱀과 용을 잡아먹는 신으로 새의 부리가 표현되었습니다.
황금빛 새라고 하여 금시조라고도 합니다. 오른손에 금강저를 들고 왼손에는 불꽃무늬 보주를 쥐고 있습니다.
북(우면)
마후라가(摩睺羅伽)
원음악을 담당하는 신으로 머리 위에 뱀을 올려 놓은 모습입니다. 오른손은 금강저를 잡고 왼손은 뱀꼬리를 잡고 있습니다.
금당지
금당지의 중앙에는 철조불상을 모셨던 연화좌대가 남아 있습니다.
금당터 뒤쪽의 법인국사 승탑(보물 제105호)와 탑비(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습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옛 보원사 터에 세워진 탄문(坦文, 900~975)의 승탑(僧塔)입니다.
탄문은 고려 초의 대표적인 화엄종 승려로서 광종(光宗) 때 승려 최고 직위인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며, 말년인 975년(광종 26)에 보원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3개월 만에 입적하였습니다.
고려 왕실은 탄문에게 '법인(法印)'이라는 시호(諡號-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를, 그의 승탑에 '보승(寶乘)'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국가의 최고 장인(匠人)을 보내 승탑과 탑비(塔碑-승려의 행적을 기록한 비)를 제작하도록 하였습니다.
승탑은 탄문이 입적한 975년에서 탑비의 비문이 완성된 978년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사리탑(舍利塔), 부도(浮屠), 묘탑(妙塔)이라고도 하며, 사리를 넣어두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레에는 기단을 쌓아 받치고, 위에는 머리 장식을 얹습니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통일신라 승탑 양식에 따라 머리 장식을 제외한 모든 석재가 팔각형으로 제작된 고려 초기의 승탑입니다.
이 승탑은 몸돌의 사천왕상과 보관을 쓴 인물상, 지붕돌의 귀꽃(지붕돌 모서리에 새긴 꽃모양의 장식) 등의 조각이 매우 뛰어납니다.
기단부는 아래받침돌(下臺石)을 8각으로 된 2개의 돌로 쌓았습니다.
밑돌에는 각 면마다 움푹하게 새긴 안상(眼象) 안에 사자 한 마리씩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고, 윗돌에는 구름속을 거니는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모서리마다 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8각이며 각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인 우주(隅柱)를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을 새겨두었습니다.
뒷면에도 문비(門扉)를 새기고 양쪽에 사천왕상을 조각하였습니다.
양쪽 옆에서 보면 가운데 면에는 높은 관을 쓴 인물상을, 양쪽에는 불교의 법을 지켜주는 사천왕(四天王)을 배치하였습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
총높이 4.25m, 폭 1.15m/화강암
법인국사의 탑비로 978(고려 경종 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습니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 수 5,000여 자나 되는 거비이며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습니다.
이분은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입니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계(戒)를 받고 968년(고려 광종 19)에 왕사(王師),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습니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禪), 교승(敎僧) 천여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습니다.
귀부(龜趺) 앞면
부리부리한 눈매에 뿔이 달려있고 코에는 수염이 날리고 입에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습니다.
이수(螭首)
이수(螭首)라고 부르는 옥개석(屋蓋石)을 얹었습니다.
비머리의 가운데에는 편액처럼 면을 다듬어서 부도비의 주인 이름을 새기는 제액(題額)을 만들고 네 모서리에는 용을 조각하고 운룡문(雲龍紋)을 새겼습니다.
귀부 뒷면
비신 받침은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문(龜甲文)을 새기고 네모난 비석 받침구멍을 파서 비좌(碑座)를 올렸습니다.
거북 등의 중앙에는 등뼈 모습을 새겼고 꼬리는 한바퀴 감아 돌렸습니다.
귀부 측면
옆에서 보면 거북의 몸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 모습을 하고 목을 곧추 세우고 앞발은 땅을 힘차게 밟고 있습니다.
보원사지는 까마득한 옛날에 거대한 사찰이었던 축구장 2배 가량의 넓이에 백제 시대의 보원사(普願寺) 절터로 10 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지(寺址)입니다. 거기에 당시의 화려했던 불교 유적이 모습이 석물과 그 잔해인 사찰 지붕의 개와, 탑의 파편들의 석재도 그렇지만 보물로 지정된 석물들이 완벽하게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보원사
철조여래좌상
2014년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첫댓글 서산 안국사지ㆍ보현사지 ㆍ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멋진사진과 설명 감사하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산책하기좋은 은봉산 안국사지 함게하여 즐거운하루되었네요 남긴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