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저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세 살 터울 남동생과 같이 살았습니다.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셨고 몇 년 후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막연히 새엄마가 좋으신 분일 거라고 기대했지만 새엄마는 아버지 몰래 저희 남매를 구박하며 하루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던 저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괴로웠습니다. 새엄마가 동생을 낳은 후로 구박과 차별이 점점 심해져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저는 열아홉 살 때 집을 떠나 남동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마포에 방을 얻어 살면서 직장을 구하러 다녔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생각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지면서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파 몹시 힘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감리교회에 다녔던 저는 ‘혹시 교회에 나가면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 하며 가까운 감리교회를 수소문해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새벽예배에 몇 번 나가 보니 교인이 거의 없었고 예배실에서 거지들이 자고 있는 때도 있어서 여기는 못 다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엄마의 구박으로 집을 나온 후로 잠 못 잘 정도로 늘 불안하고 힘들어 이만제단 나간 후 불면증 사라지고 마음의 기쁨과 평안이 생겨
그 후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포목점 아주머니가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 다니는 교회는 새벽예배에 사람이 많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그럼! 사람이 많아서 아주 일찍 가지 않으면 앞자리에 못 앉아요.” 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마포 산언덕에 짓고 있는 서울중앙전도관(이만제단)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새벽예배를 나가고 싶은 마음에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아주머니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만제단은 공사가 한창인 건물에 가마니를 깔고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본 건물 중에 제일 큰 데다 새벽예배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주일 낮예배 같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키가 크신 분이 등단하셨는데 그분이 전도관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이라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자 그 많은 사람들이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손을 드세요.” 하시니 사람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었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며 “죄를 벗어야 천국에 가지요.”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예배당에 나와서 믿기만 하면 천국 가는 줄 알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감리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저는 어릴 적부터 믿었으니 당연히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소용없고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야 천국에 간다는 말씀은 새롭고 놀라웠습니다. 말씀을 계속 들어 보고 싶어서 그때부터 이만제단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감리교회 다니면서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 줄 알았는데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야 천국에 간다는 박 장로님 말씀은 새롭고 놀라워
이만제단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꿈 중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저에게 앉으라 하시더니 머리에 손을 짚으시며 한참 동안 안수해 주셨습니다. 꿈이 얼마나 생생한지 깨고 난 후에도 박 장로님께서 직접 다녀가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앞날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는데, 꿈에 안수를 받은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편안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밤마다 단잠을 자게 되었고 불안했던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어 갔습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면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1957년 4월에는 이만제단에서 개관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열흘 동안 제단에는 밤새워 찬송하거나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집회 기간 내내 철야했는데 은혜 체험담을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향취가 진하게 맡아지고 안개처럼 뽀얗게 은혜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참 놀라웠습니다.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온몸에 소나기를 맞는 느낌이 생생해 그런데 빗줄기는 하나도 안 보이고 옷을 만져 봐도 보송보송할 뿐 전혀 젖지 않아서 너무 신기해 ‘하나님 은혜는 이렇게 확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번은 철야하며 기도드릴 때 아주 좋은 향기가 ‘확-’ 하고 맡아졌습니다. 주위에 화장하거나 향수 뿌린 사람이 없는데도 그 향기는 순간순간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그때 어른 분들이 향취 은혜를 받았다고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나도 은혜를 받은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를 때는 갑자기 소나기를 맞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온몸에 비가 내리는 느낌이 생생할 뿐 아니라 세차게 퍼붓는 빗줄기 때문에 몸이 가만있지 못하고 뒤로 밀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빗줄기는 하나도 안 보이고 옷을 만져 봐도 보송보송할 뿐 전혀 젖지 않아서 어떻게 된 일인지 너무 신기했습니다. 옆자리에 계시는 어른 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예배실 안에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봤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른들은 그것이 성신의 단비라고 했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보니 ‘하나님 은혜는 이렇게 확실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만제단에 다니면서 구원 받으려면 자유율법 지켜야 한다는 것 알게 돼 가르쳐주신 대로 죄를 멀리하고 맑게 살아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 생겨
저는 이만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구원을 받으려면 ‘자유율법’을 지켜서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않는 것이 어렵지만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죄를 멀리하며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가르쳐 주시는 대로 죄에서 벗어나 맑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한 은혜 주시는 길을 열심히 따라서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1957년 가을부터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은혜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신앙촌에 꼭 들어가고 싶었는데, 전도사님이 건설대로 추천해 주셔서 1958년 1월 1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택과 공장이 한창 건설 중인 신앙촌에서 건설대원들이 추운 날씨도 아랑곳없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첫댓글 따뜻한 내용이네요
신앙체험기는 늘 좋아요~~
잘보고 갑니다
잘보고가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