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9-05-20 07:34 조회 : 1884 |
| | | 놓일 자리
임병식
‘누울 자리보고 발 뻗으라’는 속담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상황파악을 하라는 말이지만, 그 ‘자리’라는 말을 생각하면 많은 사념이 스쳐간다. 그것은 내가 공직생활을 하며 미관말직에 머물고 만 아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이나 물건이나 놓일 제자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늘 들기 때문이다. 부피를 지닌 것은 모두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이때의 자리란 사람에게는 물론 ‘있을 자리’이고, 물건은 ‘놓일 자리’를 말한다.
한데, 예외적으로 부피계념이 아닌 상징적인 ‘자리’도 생각해 불 수 있다. 즉, 직위나 직급 같은 것으로, 이런 자리는 아무나 앉아서도 아니 되고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이 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모양새도 좋지 않고 비난을 사게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물건 또한 마땅히 제 놓일 자리에 놓여야지 안정감이 있고 편해 보이지, 그렇지 않으면 눈에 거슬리고 답답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전에 어느 시사대담 프로에서 본 일이다. 제야운동권출신 여당 의원이 나왔는데 반대편 토론자가 “당신은 지금 그 당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닌 줄 압니다만”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상대방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분위기 또한 잠시 어색해 진 건 물론이다.
반대로, 역사상 ‘있을 자리’에 있지 않아 지금도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신숙주의 경우로 친구인 성삼문과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세조의 편에 선 관계로 자신은 영달을 누렸는지 모르지만, 오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시 살아 돌아 온 것을 보고 부인이 크게 낙담했다는 이야기 말고도, 후세 사람들은 지조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여 잘 변질하는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예이다.
사람은 감당할 그릇이 있게 마련이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맡으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건 물론, 일을 그르치고 시간낭비를 초래한다.
최근에 어느 고을을 둘러본 소감이다.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을 보고 지자체장의 역량이 얼마나 지역발전을 좌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정부부처를 발품 팔아 뛰어다니며 예산을 끌어와 추진해 놓은 사업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걸 보면서 새삼, 사람마다 놓일 자리, 역량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수년전부터 이러한 ‘놓일 자리’문제로 고민을 해 오고 있다. 대형수석 세 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를 최종적으로 어디에다 놔 두냐는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돌은 소장한지 30년 가까이 됐다. 하나같이 크고 무거워서 장정 두 사람이 들어야 옮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크기와 무게이니 수석이라기보다는 바윗덩이에 가깝다. 그중 두 점은 각각 양석과 음석이고, 다른 하나는 애무석이다.
이 돌의 최종 기착지 문제로 고민한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내가 얼마나 이 돌을 애착하고 있는지, 나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래야 고뇌의 일단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돌을 단 하루도 마주하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여 견디지를 못한다. 과히 석신(石神)이 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만큼 이 돌들을 아낀다. 그리고 음양석으로 말하면 나를 등단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 바로 양석을 짝맞춰준 사연을 소재로 취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특히 애착을 가진 것은 이 음양석이 출중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오죽 탄복을 했으면 집에 와서 구경을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애무석 주인은 내가 아니겠는가하고 선물을 했을 것인가.
그런 만큼 이 돌들은 그간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언제나 제일 먼저 챙겨서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자주 마주하고, 어쩔 때는 그것도 부족하여 잠을 자며 꿈속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기증할 결심을 한 것은 달리 나변에 있지 않다. 아들들이 혼기가 꽉차다보니 여자 친구라도 초대한다면 무슨 망신이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잖아도 아내로부터 보기 흉하다는 말을 들어온 터가 아닌가.
고심을 거듭한 끝에 나는 마침내 고향 지자체에 기증을 하기로 최종 마음을 굳혔다. 마침 그곳에는 올가을 ‘녹차.소리 박물관’을 개관하는데, 놓아두기에 적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한 자리는 없을 듯하다. 그곳에 놓아두면 사람들이 일부러 이 음양석을 보기 위해 오지는 않을 지라도 다른 자료와 기물을 둘러보면서 덤으로 눈요기를 하고 가는 기쁨은 누리고 가지 않을까.
마음을 굳힌 나는 이즘 이 돌들을 보며 마치 부모가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애틋하게 눈길을 주곤 한다.(2009) |
| 일만성철용 | 09-05-20 11:19 | | 옛날 장위동에 살 때 앞 집 문이 열렸기에 들여다 보았더니 종유석으로 화단 가를 꾸몄는데 어찌 좋던지. 그 중 하나를 수박 두 덩이 주고 얻어와서 지금껏 애지 중지하고 있지요. 수석은 아니지만 요번 여행에 가파도에 갔다가 술 한 잔 사주고구멍이 숭숭 뚫린 무게가 3.5kg 제주 멧돌을 하나 얻어왔는데 여행 중이라 이 놈을 지고 한라산 정상을 오르다가 어찌나 혼이 났는지. 그래서 이 놈을 보면 한라산이 생각 난답니다. . " | |
| | 임병식 | 09-05-20 11:38 | | 일만선생님, 선생님도 아마 돌사랑에 푹 빠진듯 합니다. 돌이란 묘해서 한번 빠져들면 마약처럼 끊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30년전만 해도 돌 반출이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산지에서 가져 나오기가 어려운 것으로 압니다.
종유석은 소장하기가 어려운데 좋은 걸 가지고 계십니다. 3.5키로그램짜리를 메고 한라산 정상을 오르셨다니 삼손이 울고갔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하번 보성에 관한 기행문을 올려주신데 대하여 심심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 | 이희순 | 09-05-20 11:53 | | 사람은 스스로 있어야 할 자리를 찾되, 때로는 오직 대의명분을 위하여 그때 그 자리를 지켜 목숨마저 버리는 경우를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머문 자리에는 만세에 아름다운 이름이 새겨질 것입니다. 한 점 수석도 주인의 마음을 따라 있어야 할 자리에서 세세토록 그 주인의 이름에 향기를 더하리라 믿습니다. | |
| | 임병식 | 09-05-20 13:12 | | 이희순선생님, 돌은 '놓일 자리'를 잘 찾은듯 합니다. 떠나보내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 둬야겠는데 언제 부탁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근 30년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놓아줄 때가 된것 같습니다. | |
| | 윤행원 | 09-05-20 13:57 | | 임병식 선생님,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음양석 돌을 기증하시겠다니 대단한 결심입니다. 제가 댁을 방문했을 때 그런 긍지높은 자랑을 바짝 정신을 차리고 감상을 못했던 게 아직도 미련이 남습니다. 이다음 기회가 되면 새로 놓인 자리에 가서 찬찬히 감상을 해야겠습니다...하하... | |
| | 임병식 | 09-05-20 17:40 | | 석계선생님, 기증의사는 구두로 표했습니다. 잘 볼수 있는 장소로 물색해서 놓아두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집에 오셔서 보셨겠지만, 좀 진기한 것은 분명합니다. 음석 낙월도 돌은 구입을 했는데, 그놈을 사들이고는 한동안 용돈이 부족하여 절절맸답니다. 태어난 고향에 이것이라도 남기게 되니 마음이 좀 가볐습니다. | |
| | 임재문 | 09-05-20 15:15 | | 임병식회장님 저도 돌 즉 수석이라하면 거의 미치다 싶이 했답니다. 강원도 춘천교도소 근무할때는 우리 춘천교도소 봉의 수석회 발기인이자 또 고문을 삼년동안 했었고요. 거기 춘천교도소 근무할때 호피석에 완전이 미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 민들레 마음으로 호피석에 전념을 해서 거의 정원석에 가까운 호피석들을 수집해서 현재 저는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전원주택에 사는 직원집에 맡겨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언젠가는 이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원주택으로 옮기는 그날 돌잔치를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 |
| | 임병식 | 09-05-20 17:42 | | 호피석이라면 남원이 유명했는데, 춘천에도 산지가 있었군요. 저도 몇덩어리 가지고 있다가 다 선물하고, 지금은 손바닥 만 한것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돌을 좋아하시니 만나면 나눌 이야기가 참 많지 싶습니다. | |
| | 박원명화 | 09-05-21 11:11 | | 돌이든 나무이든 마음에 애정이 가는 것이 있는가 봐요. 회장님께서 특별히 귀히 여기며 갖고 계신 수석을 보고 싶네요. 저는 화초를 좋아하고 있지요. 누울 자리도 부족한 좁은 아파트 공간에 화초를 수십그릇을 키우고 있지요. 그런데 거기에 자연의 경관을 흉내내느라 수석아닌 돌까지....몇 년 전 울릉도에 갔다가 화석2개를 얻어와 거기에 풍란을 붙여는데, 화석에 매달려 사는 그 풍란이 지금 꽃을 활짝 피워 온 집안을 향기로 채워주고 있답니다. | |
| | 임병식 | 09-05-22 06:24 | | 박선생님, 전에 집에서 화초키우시는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다. 화초는 잔손이 많이 가지만, 수석은 그렇지 않으니 게을러서 돌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난을 붙이는데는 제주도 현무암이 제격이 아닐까 싶군요. 화초는 돌과 함께 있어서 어울리지요. 이 돌들은 다음 보성에 오시면 보시게 될 겁니다. | |
| | 최복희 | 09-05-21 22:48 | | 임병식 회장님! 그리 애지중지 하시던 귀한 돌 정말 보고 싶네요. 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음도 넉넉하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제 자리에 놓여있을 때 빛이 나지요. 그 돌이 아주 돋보이는 곳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글 잘 감상했습니다. | |
| | 임병식 | 09-05-22 06:27 | | 수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좀 뻥이 심한 편입니다. 그렇다더라도 제가 소장하는 음양석은 탐내는 사람들이 많으니 공개 전시하면 눈길을 끌겁니다. 나중에라고 한번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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