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65) / 스페인
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
(Cathedral, Alcazar and Archivo de Indias in Seville; 1987)
안달루시아 자치 지방[Autonomous Community of Andalusia], 세비야 주[Province of Seville]에 속하는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성(城)이라는 뜻], 인디아스 고문서관(古文書館), 이 세 건축물은 세비야 중심부에 웅장한 기념물군(群)을 이룬다. 무어 인들의 영향을 받은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 회복 운동) 시기부터 16세기까지 지어졌으며, 안달루시아 기독교 문명과 알모하드(Almohad) 문명을 동시에 보여 준다. 대성당 옆에 서 있는 히랄다(Giralda) 첨탑은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5랑(廊) 식으로 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건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묘가 있다. 인디아스 고문서관에는 아메리카 식민지 문서 보관소에서 가져온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1248년의 레콘키스타 시기부터 16세기까지의 기독교 안달루시아 문명과 알모하드 문명에 대한 우수한 예를 보여 준다.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의 수많은 탑 건축에 영향을 끼친 히랄다는 알모하드 건축의 걸작이며, 5개의 신랑이 있는 거대한 대성당은 유럽 최대의 고딕 건물이다. 에르난 루이스가 만든 카빌도(Cabildo)의 타원형 돔은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종교적 건물 중 하나인 대성당은 문제가 많았던 당시 역사에서 나온 다양한 양식 범주와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 그라나다 예배실은 712년에 아랍 인들의 정복으로 인해 많이 파괴되었으며, 본래 대성당에 있던 것 중에는 서고트 왕국 시대의 몇몇 기둥만 남아 있다. 이는 알모하드 왕조의 최고 전성기를 보여 주는 주요 자료 중 하나이다. 1147년에 세비야는 마그레브(Maghreb) 전체를 점령한 무슬림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당시 세비야의 장관을 이룬 기념물들은 아라비아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큰 기쁨을 주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언급되었다. 옛 모스크[1172~1198년에 야쿠브 알 만수르(Yaqub al-Mansur) 왕조가 건설함]의 첨탑이었던 히랄다는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으며, 1248년 세비야의 레콘키스타 이후에 종탑으로 바뀌었다. 16세기에 히랄다의 꼭대기에는 풍향계[히랄디요(Giraldillo)] 역할을 하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적인 동상이 얹혔으며, 그 고도는 97.52m이다. 모스크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대성당의 유일한 다른 부분은 북쪽에 있는 나란호스(Naranjos) 파티오(Patio; 안뜰)로 아주 멋진 내부 정원이다. 기독교는 모스크를 대체하려고 했으며, 1401년에 모스크가 파괴되기 시작하면서 천하일품의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 개조되었다. 1420년에 세비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15세기 건축 유적 중 하나가 되었고, 스페인과 플랑드르와 독일의 가장 유명한 건축과 조각상을 보유하게 되었다. 신세계 발견에 이은 세비야의 번영은 대성당의 장식물과 건설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만큼 이미 상당했던 재정적 수단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로써 16세기에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단 뒤편의 조각품, 창살 공예와 사제석 같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장식물들이 확충되었다. 17세기에 대성당은 여전히 풍성한 장식물의 수혜자였고, 세비야의 유명한 화가 무리요(Murillo)와 발데스 레알(Valdes Leal)의 작품인 바로크 양식의 조각과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알카사르와 그 정원은 712년에 아랍 인들이 이곳을 정복하면서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 주변을 통치하기 시작한 시기에 건립된 으리으리한 요새이다. 이곳은 레콘키스타 이전 시대의 몇몇 내부 공간과 알모하드 시기에 나온 총안상으로 장식한 보호 구역을 뽐내고 있다. 1248년 이후 왕실의 거주지가 되었으며, 페드로[Pedro; 일명 ‘잔혹한 왕 페드로’(Peter the Cruel)]의 통치 기간에 보수했다. 1364~1166년에 알카사르의 내부에 건설된 이 궁전은 안달루시아의 아랍 예술에서 장식 표현과 기술을 빌려온 무데하르 양식 특유의 혼합주의를 보여 주고 있다. 돈셀라스(Doncellas) 파티오의 중간에 솟은 분수와 갤러리의 채색 타일, 나무에 조각이나 그림이 그려진 패널 식 천장, 정교하게 작업된 치장 벽토와 함께 기독교화(化)로 살아남은 매혹적인 미학을 연상시킨다. 15~17세기에 착수된 분수대, 파빌리온(pavilion) 또는 아파트[apartments]의 장식 작업은 부분적으로 본래 있던 궁전과 궁전의 일반적인 레이아웃, 안달루시아 궁전의 전통적인 세련미와 원래의 특성을 따랐다. 카사 론하(Casa Lonja)는 필리프 2세가 가장 좋아했던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가 설계한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과 거래를 조절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새로운 ‘무역관’은 1503년 이후 알카사르 별채 안에 있는 유사한 시설물들을 대체한 것이다. 에레라가 설계한 ‘무역 거래소’는 1583~1598년에 건축되었으며, 에스큐리알(Escurial)의 건축가가 선호하는 엄격한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마지막 작업은 1649년에 완성되었지만 그 후에도 무역관은 결정된 부지를 차지하지 못했다. 다목적으로 사용된 카사 론하는 1784년에 인디아스 고문서관으로 바뀌었으며, 1790년부터는 아메리카의 식민지와 관련된 모든 역사와 외교 문서들을 보관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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