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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넉 달 만에 총에 맞아 쓰러져 두 달 뒤 숨을 거둔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그래서 쉽게 잊힌 20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다. 진보와 개혁을 약속했지만 허망하게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넷플릭스에 얼마 전 올라온 리미티드 시리즈 '죽음은 섬광처럼'(Death by Lightning)은 그의 삶과 유산을 탐구하는데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망상 환자 찰스 기토를 나란히 조명한다. 무엇보다 '왕좌의 게임' 제작진이 내놓은 새 시리즈란 점에 눈길이 간다. 최근 영국 BBC의 리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어쩔 수 없이 우리에게는 노무현, 윤석열과 내란 옹호 세력, 김건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1880년, 미국은 기로에 서 있었다. 노예였던 이들이 마침내 시민으로서 완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마땅한 자격을 갖춘 후보자 대신 당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연방 정부 일자리를 분배하는 후원 제도가 개혁될 수 있을까? 6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제임스 가필드는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인들에게 했던) 약속을 이행할 것을 간청했다. 4분 30초에 불과했던 그의 웅변을 들은 수백 명의 대의원들이 일어나 환호하고, 오하이오주 농장주인 하원의원을 당 후보로 내세울 것을 요구했다.
가필드는 후보 지명을 한사코 수락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직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링컨처럼 가난에서 벗어나 국가 공직에 오르고 남북전쟁에서 연방 측 사령관으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가필드에 대한 지지 물결을 막을 수 없었고, 1880년 11월 그는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 뒤 일어난 일은 대통령 역사에 가장 비극적인 장 중 하나다: 가필드는 뭔가를 해볼 새도 없이 총에 맞아 끝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가필드에 관한 베스트셀러 작품인 'Destiny of the Republic: A Tale of Madness, Medicine, and the Murder of a President'에서 작가 캔디스 밀러드는 이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설명한다. 수상 경력에 빛나는 이 책은 2016년 PBS를 통해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The Murder of a President'의 기초가 됐다.
미국 역사상 큰 '만약'에 직면
넷플릭스는 밀러드의 작품을 야심차고 호화롭게 각색했다. 마이클 마코프스키가 각본을 쓰고 마이클 섀넌이 제임스 가필드 역을, 매튜 맥파딘이 그를 쏜 남자 찰스 기토 역을 맡았다. 시청자는 이 드라마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밀러드는 BBC 인터뷰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큰 사건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면서 "(가필드 저격은) 한 사람의 광기와 다른 사람의 무지와 사소한 야망이 결합돼 국가 전체가 황폐화된 일"이라고 단언했다.
대통령에 대한 경호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19세기 백악관은 그저 여염집에 불과했다.
가필드를 쏘기 오래 전부터 기토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초보적인 정신의학 시대에는 치료를 받거나 감금된 적이 없었다. 총에 맞은 대통령을 치료하겠다고 나선 오만하고 고집만 센 의사 윌프레드 블리스 박사는 상처 치료를 위한 최신 소독 방법을 비웃었고, 멸균되지 않은 기구와 맨손가락으로 가필드의 척추 근처를 들쑤신다.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밀러드가 고통스럽게 세 부 사항을 설명했듯 블리스 박사에게 물어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 마코프스키는 밀러드의 원작을 구입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는 즉시 텔레비전 드라마를 구상했다. 그는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BBC에 털어놓으며 "그녀가 나를 믿도록 설득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마코프스키는 실제 사건을 극화한 이전 경험을 들려줄 수 있다. 그가 HBO를 위해 각본을 쓴 실화 범죄 영화 'Bad Education'은 고향인 뉴욕 로슬린 출신의 절도범 교육감 프랭크 타소네에 관한 이야기로 2019년 에미상을 수상했다.
유망한 대통령이 암살자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마코프스키는 이런 답을 들려준다. "그는 우리의 가장 뛰어난 대통령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그는 훌륭한 지성을 갖고 있었다. 그가 모호한 각주로 강등됐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마코프스키의 중요한 임무는 암살의 역사에 대한 밀러드의 상세한 탐구를 선별하고 TV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원작 '공화국의 운명'에는 공화당의 파벌주의, 영국 외과의사 조셉 리스터가 선호하는 방부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발명한 초기 금속 탐지기에 대한 섹션이 포함돼 있으며, 결국 가필드의 몸에서 총알을 찾는 데 사용됐다.
마코프스키는 기토와 가필드의 대조적인 여정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두 사람 모두 이름을 알리는 데 매우 관심이 있었다"면서 "한 사람은 이 땅에서 가장 높은 직책에 오르는 반면, 다른 사람은 위대함을 추구하지만 결코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살인범의 동기
기토는 변호사, 언론인, 복음주의 설교자로서 차례로 실패했다. 심지어 자신이 가입한 자유 연애 공동체에서도 실패했다. 어떤 여자도 그를 섹스 상대로 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대한 목적으로 의도하신다고 믿었다. 하원의원이 예상치 못한 지명을 받은 뒤 가필드에 집착하게 됐고 1880년 여름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 대선 승리를 돕기로 마음 먹었다. 기토는 뉴욕 선거 사무실 직원을 괴롭혔고, 후보를 지지하는 장황한 거리 유세를 했다.
가필드는 지지자들에게 수익성 있는 직책을 나눠주는 엽관제에 목소리를 높여 반대했지만, 기토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프랑스 주재 대사가 그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렇게 미혹된 남자는 워싱턴으로 여행을 떠났고, 다른 끈질긴 구직자 무리와 함께 매일 백악관에 나타났다. 기토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자신의 영웅과 한 차례 대면했는데, 그는 가필드에게 "파리 영사직"이라고 낙서된 선거 연설 사본을 건넸다.
한편 가필드는 해군 업그레이드, 라틴 아메리카와의 무역 확대, 시민권 옹호 등 임기 내 달성할 의제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때 노예였던 사회 개혁가 프레드릭 더글러스를 컬럼비아 특별구의 기록관으로 임명했는데, 이름 난 연방 공직을 맡은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동시에 가필드는 뉴욕항으로 유입되는 알짜배기(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아름다운 단어'라고 했던) 관세 수입을 간접적으로 통제한 덕분에 당시 힘있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공화당 상원의원 로스코 콘클링(쉐어 위햄)과 맞서야 했다. 콘클링은 가필드의 진보적 본능이나 전리품 제도에 대한 반대를 경멸했다. 그는 수족이나 다름 없는 체스터 A, 아서(닉 오퍼맨)를 부통령으로 붙여 놓아 가필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다. 이제 콘클링은 가필드의 내각 구성에 어깃장을 놓으려 한다.
이상한 태도와 변덕스러운 발작 탓에 백악관에 들어가는 것이 막히자 기토는 제임스 블레인 국무장관 사무실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블레인으로부터 가필드 행정부에서는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모멸차게 듣는다.
돈도 전망도 없었기 때문에 기토는 허름한 하숙집을 전전했다. 그곳에서 그는 침대에 누워 나중에 신성한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얻었다: 가필드는 그의 부통령과 달리 "진정한" 공화당원이 아니라고 화긴했다. 기토는 미혹에 빠진 상태에서 가필드를 죽이고 아서를 국가 지도자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결론지었다.
불행히도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그는 존 윌크스 부스가 불과 16년 전에 링컨 대통령을 암살했는데도 무방비 상태로 모든 곳을 걸어 다녔다. 가필드는 편지에서 "암살은 섬광(번개)에 맞아 죽는 일보다 더 막을 수 없으며 둘 중 어느 쪽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썼다. 며칠 동안 가필드를 스토킹한 후 기토는 1881년 7월 2일 워싱턴 DC의 볼티모어와 포토맥 기차역에서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가필드의 "죽음은 섬광처럼" 문구는 마코프스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제목으로 선택하게 했다. 그는 매트 로스 감독과 힘을 합쳐 배우들을 선택했는데 가필드 배역의 섀넌과 '석세션'에 서 불운한 음모가 Tom Wambsgans 역을 맡았던 기토 배역에 맥파든을 영입한 것을 행운이라고 느꼈다.
마코프스키는 "우리는 캐스팅에 관해서는 우리의 무게를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헝가리에서 촬영하는 동안 세트장을 방문한 작가 밀러드는 이에 동의해 "섀넌은 가필드의 탁월함과 위엄, 특히 내가 정말 신경 썼던 그의 품위를 포착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면서 "그리고 내가 많은 역할에서 보고 존경했던 맥파딘은 모든 기이함, 망상, 가슴 아픈 광기를 충실히 살려냈다"고 칭찬했다.
마코프스키의 대본 일부는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른 지점에서 그는 예술 면허를 갖고 있다. 백악관에서 기토가 대통령과 마주친 일은 실제로는 형식적이고 짧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마코프스키의 재해석을 통해 미친 남자는 가필드에 대한 모든 절박한 갈망을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맥파딘은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나는 당신의 남자입니다. 당신처럼 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문을 여세요... 나는 당신에게 구걸하고 있습니다. 나도 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는지 말해줘요."
마코프스키는 1882년 6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진 그의 끔찍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기토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를 기대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를 무시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서 경험한 극도의 소외감, 끊임없는 거부는 분명히 그에게 상처를 줬고, 그를 도울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는 결국 그 대가를 치렀다."
가필드의 유산
블리스 박사의 어처구니 없는 치료 때문에 오히려 통증과 열, 끊임없는 불편함을 겪던 불쌍한 가필드는 죽음이 가까워짐을 예감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한다. 밀러드는 그가 친구에게 "내 이름이 인류 역사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가필드는 변화를 가져왔다. 고작 마흔아홉 살에 스러진 그에 대한 전국적인 슬픔은 공무원 개혁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켰다. 대중은 기토의 분노가 망상 때문에 촉발됐지만 그가 빚졌다고 믿는 직업을 거부당했을 때 시작됐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통령 직을 승계한 아서는 유능하고 호감 가는 전임자를 애도하면서 엽관제를 철폐하게 만들었다. 1883년 의회가 연방 정부 고용에 대한 능력 기반 기준을 만드는 펜들턴법을 통과시키자 아서는 서명했다.
'가필드 대통령: 급진주의자에서 통합자로'의 저자인 전기 작가 CW 굿이어는 "이로 인해 연방 관료주의의 전문화가 시작돼 미국인과 정부의 거래가 개인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장했다"면서 . "그 이후 여러 세대에 걸친 수확량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이 비극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떤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는데 충분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 만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4부작을 선택한 과감함도 칭찬할 만했다. 짜임새 있는 각색 때문이리라. 현명하고 기백 넘치는 영부인(베티 길핀)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딸도 왜 이렇게 의연한가?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잃어버린 품위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매관매직이란 단어가 21세기가 4분의 1이 흐른 대한민국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현실도 이 시리즈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
국내의 한 블로거는 이 시리즈가 은근 웃긴다고 적었다. '대통령의 위트'를 쓴 밥 돌 전 상원의원은 "명연설가였을 뿐 아니라 유머리스트로도 괜찮았다"며 역대 대통령 유머 순위 11위로 뽑았다. 남북전쟁 상처를 치유하던 재건기(1865~1877)에 이런 말을 남겼다. "두 가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급진적이면서도 바보가 되지 않는 것(be a radical and not be a fool)입니다. 이게 내 주변에 펼쳐져 있는 사례들을 통해 판단해보자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공직 희망자들의 끊임없는 압력에 분개했던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의원이란 어느 공공장소에서도 들끓고 귀퉁이 귀퉁이마다 여러분들을 만나고 노상강도가 총을 들이대듯이 당신 얼굴에 이력서들을 던지는 그런 해충들의 표적에 불과하다." "공직 희망자들은 말 한 마리를 달라고 입을 엽니다. 하지만 파리 한 마리에 기꺼이 완벽하게 타협합니다."
임종 병상에서도 "공화국을 위해 고문 당하다"라고 적었고, 커스터 장군의 제7 기병대를 전멸시켰던 위대한 인디언 부족장 앉아 있는 소가 포로가 돼 굶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굶게 내버려두세요"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오, 아니지, 제 오트밀을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석회수와 오트밀만 먹을 수 있었다.
여느 중년 남자들처럼 시간의 무게를 느끼는 농담을 남겼다. "태어난 날은 한때 인생의 이정표(milestone)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오로지 묘비(tombstone)를 닮았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