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거의 두 달의 휴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짐을 싼다. 며칠 째 글렌데일 갤러리아와 아메리카나 몰을 출근하듯 다니더니 제 가족들과 우리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 온다. 조카의 친구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선물을 기대한다 어쩌고 하니 돌아와선 또 나가고를 반복 중이다.
어젠 LA 다저스의 로고가 새겨진 작은 옷을 사왔다. 뉘 집 아기 선물이니? 했더니 자기 집 막내 거라나? 네 집의 막내는 너 아니냐? 하니 막내이자 서열 1 순위인 '콜라'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애집의 까만 푸들 이름이 콜라인 것이 생각났다. 그러더니 "고모 이것 보세요. 우비도 샀어요" 한다. 방수천으로 된 모자달린 옷이다. 어쩐지 그 옷들이 뒷 기장이 길다 했더니 등과 꼬리부분 까지 커버하는 개옷이었다.
털 달린 짐승은 털로 자기 보호도 하고 체온 조절도 한다는데, 그 털이 자연산 피부이며 옷이건만 운동복이 웬말이며 레인코트는 뭔 웃기는 짜장면 같은 이야기인가 말이다. "이런 개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거기다가 모든 선물이 세일 가격인데 비해 이 개 옷들은 할인도 안 된 가격이어서 사람에게 줄 선물보다도 비싸다. 그 집의 서열 1위에 걸맞은 선물일세. 헐.
예로부터 개는 사람과 친한 동물이어서 개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지나던 개도 웃겠다' '풍년 개 팔자' 등 서민적이고도 친근한 개가 등장한다. 이러던 개가 지금은 족보니 애완견 호텔이니, 개 유모차에 애견 카페, 애견 유치원까지 개주인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사람인 나도 '요즘개'가 부럽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된다는 모토의 남편은 모든 개를 집안에 들이는 걸 싫어한다. 자고로 개는 마당 구석의 개집에서, 주인이 먹다 남긴 음식인 개밥을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우리 집엔 애완견이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전망이다. 개를 예뻐하고 사람으로 대우하는 이들에겐 개박살날 이론이긴 하지만, 나도 개에게 쏟는 시간이나 정성을 사람에게 쏟자는 주의여서 개를 극진히 사람처럼 모시는 사람들과는 코드가 맞진 않을 것이다.
나는 개보다 사람을 더 좋아 할 뿐이지 개를 학대하거나, 보신탕을 먹진 않는다. 내 주변엔 좋은 이들이 많다. 신장 주치의인 닥터 송도 개띠이고, 자주 드나드는 옷집 사장님 순실씨도 개띠이다. 베스트 프렌드인 로빈 엄마도 개띠. 그 밖에 친한 이들 중에 개띠가 많다. 개보단 개띠 사람이 좋다. 쓰다 보니 개 소리만 썼다. 멍멍.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8월25일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