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총 금관의 특징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은 신라 금관의 표준형이다. ‘나뭇가지 모양’의 맞가지(出자형 3단) 3개와 엇가지(사슴뿔형 2단) 2개 등 모두 5개 장식을 관테(臺輪)에 붙인 세움(立飾)장식을 기본으로 한다. 관테 지름은 18.4㎝이며, 세움장식 높이는 30.7㎝이다. 특히 서봉총 금관은 다른 금관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세움장식이 별도로 있다. 세 마리 봉황(새)이 나뭇가지에 붙여 있는 십(十)자형의 입체 반구상(半球狀) 장식이다.
서봉총의 머리장식은 금관외에 남성의 경우에서만 존재하는 관모(冠帽)와 관식(冠飾)이 없다. 이로 미뤄 보건대 주인공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특히 서봉총 금관은 인접한 금관총(128호분)에서 출토된 금관총 금관과 동일한 형태와 형식을 띠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금관이다. 대략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은합(銀盒)’은 뚜껑이 있는 은그릇이다. 서봉총 은합(보물 제339호)은 뚜껑 꼭지가 십(十)자형이다. 십자형 꼭지는 길림성 집안의 고구려 무덤인 칠성산96호분에서 출토된 합(盒)과 같은 형태로 ‘고구려적 요소’가 매우 강하다. 은합의 몸체 바닥의 바깥면과 뚜껑 안쪽의 윗면에 각각 명문이 새겨 있다. ‘延壽元年太歲在辛(연수원년태세재신)’과 ‘延壽元年太歲在卯(연수원년태세재묘)’이다. 재신(在辛)과 재묘(在卯)는 간지 신묘(辛卯)년을 말한다. 즉 원수원년은 신묘년이다. 그래서 ‘연수원년신묘명 은합’이라 칭한다.
연수(延壽)는 누구의 연호일까? 고구려 장수왕의 연호이다. 장수왕은 재위 80년간(412~491년) 4개의 연호를 사용한다. 대략 20년 간격으로 ‘건흥(建興)→장수(長壽)→연수(延壽)→연가(延嘉)’ 순으로 연호를 바꾼다. 연수는 장수왕이 451~472년까지 22년간 사용한 세 번째 연호이다. ‘수명을 더욱 늘려간다’는 뜻으로 두 번째 연호 장수(長壽)의 연장선이다. 장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장수(長壽)는 장수왕의 시호인 동시에 연호이다. 불교의 무량수불(無量壽佛)을 가리킨다. ‘고구려사략’ <장수대제기> 기록에 따르면 장수왕의 어머니 평양(平陽)왕후는 꿈에 무량수불을 보고 장수왕을 394년 낳았다. 또한 장수왕은 장수 연호로 바꿀 때인 433년에도 꿈에 무량수불을 본다. 무량수불은 부처 가운데서도 가장 신봉되는 아미타불(阿弥陀佛)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명이 끝이 없는 부처이다. 무량수불은 말 그대로 장수의 상징이다. 장수왕은 어머니의 태몽과 자신의 현몽을 통해 본 무량수불과 자신을 일체화한다. 스스로 장수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정신적 믿음이다. 장수왕은 무량수불의 화신(化神)이다.
연수원년인 신묘년(서기 451년)은 광개토왕의 즉위 60주년(391년 신묘년 즉위)이 되는 해이다. 연수원년명 은합은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지낸 주기제(週期祭)에 특별히 제작해 사용한 제사용 그릇(祭器)이다. 이로 보아 서봉총 무덤주인은 고구려 광개토왕의 즉위 60주년 주기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주인은 광개토왕 여동생의 딸 효진
‘서봉총 금관’과 ‘연수원년신묘명 은합’의 특징적 요소를 고려하면 서봉총 무덤주인은 5세기 후반에 사망한 고구려 계통의 신라왕족 여성이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효진(曉辰) 한 사람뿐이다. 효진(392년 출생)은 실성왕이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을 때 광개토왕의 여동생 천성(天星)공주과 혼인해 낳은 딸이다.
‘고구려사략’ <영락대제기>이다. ‘12년(402년) 임인 2월, 춘태자를 금성에 보내 내밀(내물왕)을 조상하고 보금(실성)을 신라 왕으로, 천성을 신라 왕비로 삼았다. 천성의 장녀 효진을 내밀의 친아들 눌지의 처로 삼았다. 11살이다(十二年 壬寅 二月 遣春太子于金城吊奈密 冊宝金羅主天星爲羅妃 以天星之長女曉辰爲奈密子訥祇之妻 時年 十一).’ 효진은 402년 아버지 실성왕이 즉위하면서 정식으로 신라공주가 되며, 11살 나이에 눌지(태자)의 처가 됐다.
다만 아쉽게도 ‘신라사초’는 효진의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고 있다. 아마도 자비왕의 출생 비밀과 연관돼 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듯 보인다. ‘고구려사략’은 자비왕의 생모를 눌지왕의 왕후 아로(阿老)가 아닌 효진으로 적었다. <장수대제기>이다. ‘장수26년(서기 458년) 무술 8월, 눌지가 죽어 아들 자비가 섰다. 효진이 낳았다(長壽二十六年 戊戌 八月 訥祇殂 子慈悲立 曉辰之出也).’
효진의 사망시기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서봉총이 옛 노동리, 노서리 고분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점과 자비왕의 무덤 갈천릉(봉황대/150호분)의 조성된 479년과의 시간적 연관성 등을 고려하면 효진의 사망시기는 대략 자비왕 말기인 475년 전후로 추정된다. 효진의 나이 85세 전후이다.
특히 서봉총은 봉분지름이 46.7m로 대릉원의 중형급 무덤 중에서도 비교적 큰 규모이다. 또한 무덤주인의 착장유물은 금관 뿐 아니라 금제 허리띠꾸미개(銙帶)와 허리띠드리개(腰佩)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모두 무덤주인을 최상으로 배려한 증거이다. 혹여 자비왕은 생전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생모에 대해 무덤의 유물을 통해서나마 최고로 예우한 것은 아닐까? 서봉총의 무덤주인은 고구려 천성공주가 낳은 실성왕의 딸 효진이다.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7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