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아직 어스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오전 7시 40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 옆 회의실.
이남기 홍보수석과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 백기승 국정홍보비서관,
윤창중 김행 청와대 대변인, 최상화 춘추관장
여기에 이정현 정무수석과 김선동 정무비서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과 홍남기 기획비서관 등 모두 10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조간신문을 살펴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조간신문에는 전날 민생현장 행보의 일환으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하나로클럽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일제히 실렸다.
사진 속 박 대통령은 쇼핑카트를 직접 끌면서 시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시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던 데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던 시기라
언론에 나오는 박 대통령의 표정은 주로 심각하거나 어두웠다.
참모들로선 모처럼 얼굴에 웃음꽃이 핀 박 대통령의 사진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문제는 박 대통령 옆의 경호원들과 수행원들이었다.
외부행사였던 만큼 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박 대통령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대통령과 심각한 주변 사람들은 부조화 그 자체였다.
홍보수석실에 모인 10인은 외부행사라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멀리서 근접경호를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일치를 봤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경호원들을 대통령 주변에 배치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경호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했다.
이들은 곧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외부행사 사진을 살펴봤다.
사진 속에서 경호원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름의 근거를 만든 셈이다.
이들의 의견은 경호실로 전달됐고 경호실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다음날 학교 안전 점검을 위해
서울 종로구 창신동 명신초등학교를 찾았다.
그 다음날 조간신문에 실린 박 대통령의 사진은 어땠을까.
경호원도, 수행원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아이들만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PI(President Identity·대통령 이미지 통합관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
대통령 경호 라인을 바꾼 10인이 주중 매일 오전 7시 40분, 오후 5시에 모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후 오균 국정과제비서관이 합류한 이른바 ‘11인 회의’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회의의 공식 명칭은 없다.
어느 참석자는 홍보대책회의라고 하고,
다른 참석자는 현안대책회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떤 이름을 붙이든 이 회의의 무게감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유민봉 수석은 매일 국무조정실에서 취합한 그날의 현안 5, 6개를 뽑아 가져온다.
그러면 각종 현안에 대해 청와대와 각 부처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논의한다.
그날 각 부처가 발표할 정책이나 현안 브리핑 내용도 사전에 점검한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대통령수석실이 관계된 주요 현안이 있을 때는
해당 수석이 옵서버로 참석하기도 한다.
정부가 4·1부동산정상화 대책을 발표할 때는 조원동 경제수석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폐업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된 진주의료원 사태처럼
사회적 갈등이 큰 사안도 이 회의의 주요 안건이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선제적 대응’을 위해서다.
진주의료원 사태의 경우 ‘공공의료 확대냐, 지방재정 건전성 확보냐’를 놓고
논쟁의 소지가 큰 만큼 일단 모든 수치와 사실 관계를 국민들에게 알려
여론의 향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게 ‘11인 회의’의 결론이었다.
실제 박 대통령은 15일 청와대로 초청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진주의료원 사태에 대해
“경남도민이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판단을 정부는 따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이 ‘11인 회의’의 논의 결과에 따른다기보다
자신의 생각이 이 회의 구성원들에게 전달되고 정부 전체로 퍼져나간다는 보는 게 더 정확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발언할 주제도 ‘11인 회의’에서 논의된다.
이 회의에서 발언 주제를 6, 7개정도 취합해 올리면
박 대통령은 이 중 선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추가한다고 한다.
최근 박 대통령이 과도한 경제민주화에 우려를 표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종합 정리한 것도
이 회의의 논의 결과가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일정도 상당 부분 ‘11인 회의’에서 논의된다.
이 회의에서는 대통령의 행보 자체가 대국민 메시지인 만큼
어느 시점에 어떤 장소를 방문해 무엇을 할 것인지 수시로 의논한다.
박 대통령은 이들의 건의를 대체로 수용한다고 한다.
다만 장소 등은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4월 16일 박 대통령이 찾은
경기 파주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에덴하우스’가 그런 경우다.
고용복지수석실에서 올린 방문지 후보군에 이 장애인시설은 없었지만
박 대통령이 예전 방문한 적이 있는 이곳을 최종 선택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당 대표나 대선후보 시절 방문한 곳의 애로사항을 꼼꼼히 메모하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곳은 꼭 다시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박 대통령의 수첩’이 대통령 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근 ‘11인 회의’에서는 140개 국정과제 중 최종 정리된 것부터
순차적으로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이 모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정책은 없는 정책이나 다름없다”는
박 대통령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정책, 정무, 홍보라는 국정의 삼두마차가 모이는 ‘11인 회의’에서
국정의 시작과 끝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약칭 실수비)를 매일 주재했으나
3월 22일 개정안이 통과된 뒤 이 회의는 매주 두 차례 화, 금요일 오전 8시 반에 열리는 것으로 조정됐다.
매일 열리는 ‘11인 회의’가 사실상 ‘미니 실수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11인 회의’의 키맨은 단연 이정현 정무수석이다.
이 수석은 현안을 논의하다 뭔가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장관이나 해당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관련 내용을 확인한다.
각종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도 이 수석이 전한다.
그만큼 박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한다.
‘11인 회의’의 또 다른 키맨인 유민봉 수석은 매주 금요일 ‘선비회의’를 주재한다.
선비회의는 각 수석실 선임비서관들이 모이는 회의의 약칭이다.
이때 각 수석실의 모든 현안이 논의된다.
대통령 일정에 반영해야 할 사안도 수석실별로 건의한다.
실수비와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약칭 대수비)의 회의 자료도 여기서 최종 취합한다.
대수비는 격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박 대통령이 가장 많은 지시를 쏟아내는 회의다.
대수비는 유 수석부터 돌아가며 9명의 수석이 보고를 하면
박 대통령이 종합적으로 코멘트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박 대통령은 사전에 대수비 회의 자료를 읽고 코멘트할 내용을 꼼꼼히 메모해 온다.
이 회의에서 토론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수비 회의 자료에 포함된 안건들은 이미 허 실장은 물론 박 대통령과도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을 마친 사안이기 때문이다.
허 실장과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은 한 마디도 안 할 때가 더 많다고 한다.
‘11인 회의’가 내치(內治)용 회의라면, 국방 외교 등 외치(外治)용 회의는
매일 오전 8시 김 실장이 주재한다.
청와대에서는 이 회의를 ‘상황평가회의’라고 부른다.
이 회의에는 주철기 외교수석과 외교수석실 비서관들이 참석한다.
통일부가 4월 25일 북한에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을 제의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남북문제와 관련한 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 간 역할 분담 및 대응수위는
모두 이 회의에서 조율된다.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는 이 회의를 거쳐 거의 다 마련돼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북한의 동향이 시시각각 변함에 따라 상황평가회의는
정기회의 외에 긴급회의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주 수석이 이례적으로 일요일인 4월 14일 오후 9시 35분
북한의 대화 제의 거부에 유감을 표명하는 긴급 성명을 낸 것도
직전 열린 긴급회의의 논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거의 퇴근한 탓에
이정현 수석과 윤창중,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긴급 성명의 취지를 각 언론에 전하느라 밤늦게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내치용 ‘11인 회의’에도, 외치용 ‘상황평가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 이가
허태열 비서실장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허 실장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내부 평가다.
박 대통령은 수시로 각 수석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리고
결과보고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과 수석들 사이에 오간 내용을
모두 허 실장에게 보고토록 하고 있다고 한다.
허 실장이 모든 현안을 알고 있어야
청와대 수석실 간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자연히 웬만한 수석들보다 박 대통령과 허 실장의 통화 횟수가 3, 4배 많다고 한다.
더욱이 인사위원회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인사위원장인 허 실장에게
힘의 무게추가 더 쏠리고 있다.
장·차관 등 고위직 인사는 대부분 박 대통령이 오랫동안 염두에 둔 인사가 낙점되면서
인사위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뤄지는 공공기관장이나 감사 등의 인선에는
인사위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공공기관 인선을 앞두고 대선 공신들 사이에
파워 게임이 시작됐다는 말도 들린다.
특히 지금까지 인선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호남과 강원, TK(대구·경북) 지역 인사들 사이에
줄 대기가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각 수석들과 장관, 새누리당 핵심 인사 등을 통해 쏟아지는 인사 민원을
얼마나 잡음 없이 조율하느냐가 허 실장의 ‘롱런 포인트’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과 통화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허 실장이라면
박 대통령을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다.
정 비서관은 곳곳에서 올라오는 모든 보고서를 취합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대통령의 일정과 메시지도 최종 조율한다.
대통령에게로 가는 일종의 ‘관문’인 셈이다.
수석들도 주로 정, 안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의 의중을 살핀다.
24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오찬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을 모두 공개할지를 두고
홍보수석실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졌으나
“공개해도 좋다”는 박 대통령의 의사가 정 비서관을 통해 전달되면서 일단락됐다.
박 대통령은 통상 오전 8시 반경 청와대 본관으로 출근한다.
이 때 항상 동행하는 이는 안 비서관이다.
안 비서관은 아예 대통령 관저로 출근했다가 박 대통령과 함께 집무실로 이동한다.
청와대 내에서 박 대통령의 사적 생활을 아는 이도 안 비서관이 거의 유일하다.
박 대통령은 안 비서관에게 핸드백을 맡길 정도로 안 비서관을 편하게 대한다.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수석보좌관이었던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안살림을 도맡고 있다.
청와대 비서관실 중에서 총무비서관실의 인원은 72명으로 가장 많다.
총무비서관실은 인사팀 재정팀 행정팀 구매팀 시설팀 위민팀 등 6개 팀으로 구성돼 있다.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등 ‘비서관 3인방’은 명실상부한 ‘문고리 권력’이다.
하지만 이들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본인들에게 맡겨진 임무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 내부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