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탁(董卓)의 악행(惡行)에 따른 응징(膺懲)의 태동(胎動) -
오월 단오(端午)날, 이날은 동탁(董卓)이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해 사두마차(四頭馬車)에 미녀(美女)들을 가득 태우고 낙양성(洛陽城) 교외(郊外)로 봄꽃 나들이를 나가고 있었다. 때마침 농부(農夫)들은 단오 명절(端午名節)을 맞아 옷들을 깨끗이 갈아입고 삼삼오오(三三五五) 놀이를 나와 있었다.
이렇게 단오에 많은 농부들이 나들이하는 이유(理由)는 본격적(本格的)인 농사(農事)철을 앞두고 하인(下人)과 머슴들에게 봄 놀이를 즐기게 함으로서 다가오는 농사철에 대한 위로(慰勞)와 보상(報償)의 의미(意味)가 컸던 것이었다.
동탁(董卓)은 농부(農夫)들의 봄놀이 모습을 보고 까닭 없이 화를 내었다.
"농사꾼들이 농사(農事)는 안 짓고 놀러 나온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저 년놈들을 당장(當場) 모두 붙잡아 오너라 "
동탁(董卓)의 명령(命令)에 따라 호위병(護衛兵)들이 농군(農軍)들을 붙잡으려 하자 젊은 남녀(男女)들은 비명(悲鳴)을 지르며 도망(逃亡)을 쳤다.
호위병(護衛兵)들이 그중에 몇 명을 붙잡아 오자 동탁(董卓)은 무시무시한 명령(命令)을 내렸다.
"사내놈들은 모두 목을 베어 죽여 버리고 계집들은 모조리 끌고 가거라!"
이렇게 동탁(董卓)이 많은 미녀(美女)들을 수레에 싣고 대궐(大闕)로 돌아가려고 할 때 불현듯 괴한(怪漢) 하나가 검(劍)를 휘두르며 동탁(董卓)에게 덤벼든다.
"이 역적(逆賊) 놈아!" 동탁은 비록 비둔(肥鈍)한 몸이지만 기력(氣力)이 대단한 무장(武將) 출신(出身)이 아니던가? 그가 괴한(怪漢)의 칼을 피하며 발길로 정강이를 걷어차자 뒤이어 호위병(護衛兵)들이 달려와 괴한을 제압(制壓)하여 결박結縛) 지었다.
"이놈아! 누가 너를 시켜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라고 하더냐?"
그러나 자객(刺客)은 묻는 말에는 대답(對答)을 하지 않고 탄식(歎息)해 마지않는다.
"아아, 네놈을 못 죽인 것이 철천지한(徹天之恨)이로다!"
"이놈아, 누가 너더러 이런 모반(謀反)을 시켰단 말이냐?"
그러자 자객(刺客)은 시큰둥하게 코웃음을 쳤다.
"뭐? 모반(謀反)? 이놈아, 네가 제왕(帝王)이 아니고 내가 네놈의 신하(臣下)가 아닌데 모반(謀反)이라니 무슨 개 수작(酬酌)이냐? 네놈의 죄(罪)가 하늘에 닿아서 백성(百姓)마다 네놈 고기를 씹어 먹지 못해서 한탄(恨歎)이다. 내 너를 처치(處置)하지 못한 것이 분(憤)할뿐이다!"
동탁(董卓)은 그 소리를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당장(當場) 저놈의 목을 잘라라!"
호위병(護衛兵)들이 즉각(卽刻) 달려들어 괴한(怪漢)을 난도(亂刀)질했다.
동탁(董卓)은 괴한(怪漢)을 처치(處置)하자 다소간 화가 풀렸는지,
"저 자가 어디 사는 놈인지 알아오라!" 하고 명령(命令)하였다.
그리하여 괴한의 신분(身分)은 나중에 월기교위 오부(越騎校尉 伍孚)라는 것이 밝혀졌고, 동탁(董卓)은 그의 가족(家族)을 모두 참살(慘殺) 하라는 잔학(殘虐)한 명령(命令)을 내리고 말았다.
이렇게 동탁(董卓)의 악행(董卓)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내심(內心)으로 분개(憤慨)하는 사람은 크게 늘어났다.
발해(渤海)땅에 태수(太守)로 있는 원소(袁紹)도 동탁(董卓)의 악행(董卓)이 날이 갈수록 심(甚)해지는 소식(消息)을 듣고 크게 분개(憤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낙양(洛陽)에 있는 사도 왕윤(司徒 王允)에게 다음과 같은 밀서(密書)를 보냈다.
<역신(逆臣) 동탁(董卓)은 위력(威力)으로 천자(天子)를 내쫓고 그마저도 시해(弑害) 하고 말았으니 천하(天下)에 둘 도 없는 역신이옵니다. 그런데도 동탁의 악행(惡行)을 가까이에서 보고 계시는 공(公)께서는 마치 그것을 모른 체하고 계시니 그것이 과연(果然)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옵니까? 본인(本人)은 조정(朝廷)을 바로잡아 보려고 지금 군사(軍士)를 기르는 중이오나, 동탁(董卓)을 따르는 군사가 물경(勿驚) 이십만(二十万)이나 됨으로써 감(敢)히 경망(輕妄)되이 동(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대책을 준(準備)하던 중에 우선(于先) 시급時急히 동탁의 악행을 뿌리 뽑기 위한 대책(對策)을 세워 주신다면 본인은 언제든지 공(公)의 명(命)을 받들 각오(覺悟)가 되어 있음을 알리옵니다.>
왕윤(王允)은 원소(袁紹)의 글을 받아 보고 깨닫는 바가 많았다.
그러잖아도 내심(內心)으로 고민(苦悶)이 많던 차에 그와 같은 질책(叱責)과 경각(警覺)의 글을 받고 나니 가슴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宮中)에서 여러 고관(高官)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데 우연(偶然)히 그 자리에는 동탁(董卓)의 심복(心腹)은 한 사람도 없었고 옛날부터 뜻을 같이해 오던 고관들만이 자리에 있었다.
왕윤(王允)은 그 자리에서 동료(同僚) 고관(高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事實) 오늘이 나의 생일(生日)이라오. 차린 것은 없지만 여기 계시는 대감(大監)들은 오늘 저녁에 내 집으로 오셔서 식사(食事)나 같이 나누면 좋겠소."
"오늘이 대감(大監) 생신(生辰)이라면 어찌 우리가 흠례(欠例)를 하겠습니까. 모두들 함께 가오리다." 여러 고관(高官)들이 일제(一齊)히 대답(對答)하였다.
왕윤(王允)은 곧 집으로 돌아와 후원(後園) 별당(別堂)에 연석(宴席)을 갖추고 저녁이 되어 고관(高官)들이 속속 모여들자 일일이 문밖에서 그들을 영접(迎接)하였다.
주연(酒宴)이 시작(始作)되었다. 평소(平素)에 동탁(董卓)에 대한 울분(鬱憤)을 한결같이 품고 있던 그들인지라 연락(宴樂)의 분위기(雰圍氣)는 처음부터 침통(沈痛)하였다. 술이 몇 순배(巡杯) 돌았을 무렵에 왕윤(王允)은 손에 든 술잔을 들여다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본 손님들이 의아(疑訝)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 경사(慶事)스러운 날에 어쩐 일로 눈물을 흘리시오?"
왕윤(王允)은 고개를 들며 장탄식(長歎息)을 하였다.
"실상(實狀), 오늘은 이 사람의 생일(生日)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모시고 조용히 얘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동탁(董卓)의 일파(一派)의 이목(耳目)을 속이려고 그런 핑계를 댔던 것이오. 이제 동탁이 천자(天子)를 속이고 권세(權勢)를 희롱(戲弄)하여 사직(社稷)을 보존(保存)하기가 어렵게 되었소.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단 말이오?" 왕윤(王允)이 말을 마치자 자리에 있던 고관(高官)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쉰다.
이러는 가운데 문득 말석(末席)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 별안간(瞥眼間) 손뼉을 치면서,
"아~ 하하 하하...." 하고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관(高官)들은 일제히 깜짝 놀라며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視線)을 모았다.
이 침통(沈痛)한 분위기 속에서 무엄(無嚴)하게도 손뼉을 치며 간드러지게 웃고 있는 사람은 교위(校尉 : 무관의 품계) 조조(曺操)였다.
왕윤(王允)은 노기(怒氣)를 띠며 그를 꾸짖었다.
"나라가 망(亡)해 가는 심각(深刻)한 이야기를 하는 이 자리에서 그대는 뭐가 좋다고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하는가?"
그러자 조조(曹操)는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죄송(罪悚)합니다. 그러나 여러 대신(大臣)님들의 거동(擧動)을 보옵고 소관(小官)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려. 나라의 운명(運命)을 두 어깨에 짊어진 대신(大臣)들께서 한자리에 모이셔서 고작 하신다는 말씀이 탄식(歎息)과 눈물뿐이니 이것이 나라의 흥망(興亡)에 무슨 영향(影響)을 주오리까? 동탁(董卓)을 탄식과 눈물로 거꾸러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바로잡으려면 동탁을 거꾸러뜨릴 계책(計策)을 논의(論議)하여야 할 것인데 그럼 말씀은 하나도 없이 눈물만 흘리시니 이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사오리까?"
조조(曹操)의 말에 왕윤(王允)이 자세(姿勢)를 바로잡으며 정색(正色)을 하며 묻는다.
"그렇다면 맹덕(孟德 : 조조의 字)이 좋은 계책(計策)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불초(不肖) 소관(小官)에게 맡겨 주시면 소관이 동탁(董卓)의 목을 베어 도문(都門)에 높이 걸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게 정말 자신(自信)있는 대답(對答)이오?"
"소관(小官)이 근자(近者)에 머리를 숙여 동탁(董卓)을 섬기는 듯이 보이기는 하오나 실상(實相)은 그를 죽여 없앨 기회(機會)를 가지려는 것에 불과(不過)합니다. 저에게 그런 뜻이 없다면 어찌 대역죄인(大逆罪人) 동탁(董卓)에게 머리를 굽히겠습니까?"
삼국지 - 36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