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면 들녘을 걸어
지각 장마가 뒤늦게 도착한다는 칠월 첫째 토요일이다. 전날 금요일은 퇴근길 가덕도 작은형님 댁에 잠시 들렸다. 형님이 텃밭에서 가꾼 호박잎을 비롯한 몇몇 푸성귀를 챙겨주어 잘 건네받았다. 카풀로 동행하는 지기에게도 같은 내용물이 담긴 박스였다. 나는 물물 교환 격으로 지난 수요일 오후 국사봉에 올라 딴 곰취를 몇 줌 보냈다. 창원으로 돌아와 친구와 짧은 자리를 가졌다.
초등 친구와 수 년 전 퇴직한 교직 선배는 같은 아파트단지 산다. 셋은 가끔 아파트단지 건너편 상가에서 곡차를 비웠다. 근래 내가 연사 와실에서 비우는 대금산 주막 막걸리를 맛보고는 입맛을 다셔 세 병 마련해 왔다. 내가 손수 채집한 곰취를 몇 장 챙겨 상가 옷 수선 가게 테이블에 앉았다. 셋은 모두 막걸리 마니아들로 족발을 시켜 안주로 환담을 나누며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나는 초등 친구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그가 가꾸는 우리 아파트단지 꽃밭을 둘러봤다. 여름에도 여러 가지 꽃들이 피고 지길 거듭했다. 남향 언덕에는 가을까지 꽃을 피울 모종을 키우는 포장이 있었다. 올여름 거제 학교까지 옮겨가 심고 싶은 맨드라미 모종도 봐두었다. 새날이 밝아온 토요일 새벽 베란다 바깥을 먼저 살폈다. 비는 오지 않고 하늘엔 짙은 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오후부터 강수가 예상 되어 아침나절 산책은 가능할 듯했다. 이른 아침밥을 해결하고 빈 배낭을 메고 나섰다. 친구가 꽃밭에 둔 울금막걸리를 챙겨 담아 동정동으로 나갔다. 북면으로 가는 녹색버스를 타고 천주암을 지난 굴현고개에서 내렸다. 구룡산 등산로 기점이 되는 고갯마루인데 등산로로 들지 않고 북향 비탈로 내려서니 인가 몇 채와 오리탕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이 나왔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니 북쪽으로 산봉우리들이 겹겹 이어진 가운데 멀리 백월산이 엷은 안개에 쌓여 희미했다. 근래 굴현고개 일대는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산천의 지형이 많이 달라지는 데다. 북면 감계 신도시 주민들을 위해 지개리에서 동읍 남산리로 통하는 구룡산 터널이 뚫렸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는 도로는 곧 개통을 앞두어 차선이 그어지고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있었다.
단감과수원과 텃밭을 거쳐 신설 도로와 기존 고속도로가 걸쳐 지나는 굴다리를 지났다. 주인은 보이질 않고 사납게 생긴 개가 쇠사슬이 풀린 채 으르렁거려 놀랐다. 시멘트 포장길이라 집어들 돌멩이도 없고 손에 쥔 스틱도 없었던지라 냅다 달렸더니 더 이상 따라 오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지개리 앞 논밭을 지나니 대한마을었다. 당국에서 주말 농장 텃밭을 분양한 곳을 지났다.
아스팔트포장길을 따라 한수마을과 고암마을 앞을 지나 승산 들녘을 걸었다.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논에는 백로들이 먹이 활동을 했다. 내가 녀석들을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데도 백로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고 나한테서 멀어져 갔다. 승산마을에서 교직에서 은퇴한 지인이 농사를 짓는 두우실 골짜기로 들었다. 지난 오월 초순 들렸으니 두 달 만에 찾아가는 걸음이었다.
아침 일찍 농장으로 출근한 지인은 텃밭의 김을 매고 있었다. 나는 뽑아둔 풀을 닭장 안으로 던져 쪼아 먹도록 했다. 제초 작업을 마친 지인은 산딸기 묵은 가지를 자른 뒤 내가 배낭에 넣어간 곡차를 꺼내 새참 격으로 잔을 비우며 안부를 나누었다. 지인 농장엔 올봄 은퇴한 지기가 일손을 거들려고 찾아왔다. 일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그에게 임무를 인계하고 농장을 빠져나왔다.
갈전마을 앞 들녘을 지났다. 최윤덕 장상 무덤이 위치한 사리실 근처에서 둑길을 걸어 신천 냇물을 건넜다. 천주산 꼭뒤 달천계곡에서 흘러온 신천은 마금산 온천 들녘을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했다. 들녘 한복판을 걸으니 시야에 감계 아파트단지가 들어왔다. 화천리 앞으로 가니 참았던 빗방울이 성글게 흩날렸다. 외감까지 걸어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21.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