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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사안이 있은 뒤 어떤 교육이나 활동을 하고자 할 때는
아이들을 더 많이 관찰하고 나서 하는 게 좋다.
아이들은 어느 한 날만 그러지 않는다. 이미지 관리를 한다.
그런데 이미지 관리를 한다고 해도 한 번이지, 몇 번 보게 되면 아이들의 본모습이 보인다. 사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평소에 일어나던 일이 좀 더 세게 일어났을 뿐이다. 아마 그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 이 수업은 아이들 수업 들어가기 전에 만나는 수업이다. 아이들 만나고 다시 부모를 뵐 것이다. 아이들이 이미지메이킹을 할 수 있어서 어느 하루 아이들 만나고는 모를 것이다.
아이들은 참 다르다. 3, 4, 5학년이 되어도 저마다 성숙도는 다르다. 한 아이 안에서 속도도 다르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왜 그랬지? 뭐에 씐 거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섞여 있다 보니까 그럴 수 있다.
저마다 집에서 스킨십
이 부분을 부모끼리 잘 나눌 필요가 있다.
대부분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에 문화가 다를 때 불편해하는 부분이 있다. 스킨십.
어떤 집은 치대는 문화 - 서로 치근덕거리고, 아빠가 항상 엄마를 치근덕거리는 집이 있고, 좀 귀찮아도 애정표현이라 여기고 지나갈 때도 있는 집. 그런 아이는 가정 안에서 친한 사이에서는 비비적거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다.
아~ 엄마 아빠끼리 하는 게 친밀함의 표현이구나.
어린 시절부터 강력하게 보아 오고 봐 오니까 스킨십이 당연하다. 저 아이는 자꾸 건드려요. 나쁜 의도 아니지만 불편해요.
예를 들어 그냥 말로 ‘하지 마!’ 하면 되는데 손으로 툭 치면서 한다거나, 같이 가자고 할 때에도 꼭 점프해서 뒷덜미를 잡고 ‘가자!’ 하는 것. 그런 것을 그 친구에게 말을 해도 모른다. 뼛속까지 문화로 자리 잡혀 있기 때문에 사실 많이*많이 연습해야 되는 부분이다. 사회화 훈련이 공동체 안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1, 2학년은 그래도 어른들 있을 때 잘 듣는다. 한 번, 두 번은 안 듣다가 대부분 세 번째는 듣는다. 아직은.
3학년부터는 세 번 이상 이야기해도 안 듣고 계속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3학년 때부터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2학년 때가 매우 중요한 거 같다. 3학년 때부터는 선을 넘는 경우도 많다.
가정에서 구성원 간 경계
두 번째, 집에서는 어떤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 때 어떻게 하나,
우리 집은 엄마를 무서워하나 아빠를 무서워하나?
선을 지키는 건 무엇인가?
어른들도 아이가 불편하다고 하면 바로 안 하는 편인가?
중요한 것!
‘학교에서 보인 아이의 지금 이 모습은 집에서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이에요.’가 아니다.
그런 뜻은 아니다.
놀이할 때 아이들 진짜 모습이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사거리, 삼팔선 놀이 하다 보면 아이들 성향이 나타난다.
걱정을 끼치던 아이들이 놀이 상황에서는 멋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모습에서 보이는 모습이 그 아이의 전부는 아니다.
그때 잠깐 불편한 행동을 한 거지 그게 그 아이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아이들은 몰라서 하는 경우가 제일 많다. 그냥 알려주면 된다.
금 밟았어? 아웃이야.
왜요? 규칙이야. 왜요?
왜요? 규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놀아야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엄격한 규칙은 자유를 침해한다?
규칙 안에서 그 규칙을 지킬 때 안전하고,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배운다.
규칙 없어야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울타리가 없을 때에 더 위험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세워놓고 그건 안 되는 거야’ 하는 게
‘내가 너무 강압적인가’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규칙 같은 것은 아이들을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자유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 시기는 배우는 시기다. 규칙을 배우는 시기.
이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어떤 행동을 했다면 나쁜 의도를 갖고 알면서 한 거다.
그러나 초등학교 1, 2학년 때 했다면 ‘재밌고 싶다, 같이 놀고 싶다’가 크다.
겪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부모들은 마음이 안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안 되는 걸 하나 배웠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한번 안되는 걸 배웠을 때 다음번에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또 할 것이다.
또 다른 다양한 선을 넘는 행동을 시도할 것이다.
아이들은 이때 많이 선을 넘어본다.
사람도 파악하고, 선도 밟아보면서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계속 실험할 것이다.
어른들은 그 과정 안에서 힘든 것이다. 이야기를 했는데도 왜 이러지 한다.
결과적으로는 어른이 된 후에는 잘 지킬 것이다.
아이의 순수함이 걱정될 때
하나의 행동에는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2학년 여자아이인데 남자 어른들에게도 안아달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부모가 보면서 걱정된다고 했다.
한 번은 그 아이와 수업 시간에 ‘가습기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나(교사)도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뜯지 않고 버렸던 일이 있다고 하니까 수업을 듣다가 벌떡 일어나서 갑자기 나를 향해 걸어왔다. ‘선생님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안아주는데 그냥 다 좋아 보였다.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이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이 나쁘지 그게 뭐가 나쁠까? 상대도 좋고 자신도 좋아하니까 안는데 위험하니까 우리가 그걸 못하게 막는 것이 맞나 싶었다. 세상이 이렇게 따뜻해지는데…
내 딸이 아닌 다른 여자아이가 나를 안아주면서 고맙다고 하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정말 옳은 걸까?
옳고 그름을 떠나 그래도 알려줄 필요는 있고, 상대의 경계를 지키는 부분은 이야기해야 할 거 같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 안의 진짜 모습을 못 보는 게 아닌가 생각할 부분이다.
상대의 경계 지켜주기
그림 수업을 할 때
‘되게 못 그렸네, 너 닮았네.’ 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뀌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ㄱㄴㄷ…’로 찾는 수업에 이어서, 세상에서 내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또 찾았다. 그 뒤에 그건 나의 생각일 뿐임을 이야기해 주었다. 심지어 바퀴벌레 키우는 사람도 있다.
그 남자아이는 못생기고 징그러운 것들을 ‘ㅎ’으로 찾는 차례에서 ‘한희 선생님’하고 놀렸다.
그때 화내거나 정색하지 않고, ‘나 상처받았어.’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뭐 그런 걸로 상처받아요?’ 했다.
그러나 다음 수업에서는 교사를 보며 이번에는 ‘아! 한희 선생님은 빼야겠다.’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며 ‘또오 시작이다!’하며 화내지 않아도 바뀐다. 단지 어른은 반복이 지치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어리면 어릴수록 빨리 배운다.
동의를 얻은 것인가, 조종한 것인가?
얼음 땡 놀이를 변형해서 고추 땡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 놀이에서는 고추를 보여줘야 얼음이 된다. 바로바로 친구 고추가 궁금해서 만든 놀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른들은 쉽게 ‘주동자를 찾고, 너는 왜 그랬어, 왜 그랬어?’하며 가기 바쁘다.
그때는 이런 과정을 거쳤다.
아이들이 바지를 벗고 얼음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본 선생님이
“바지 올려!” 하니까
학생들이
“우리 다 동의했어요.” 했다.
그때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백 번 동의했어도 이곳은 공공장소야(교실이야.)”
그러고 나서
“동의라고 했지, 근데 그게 ‘진짜 동의’는 맞니?”
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니?
- 내가 안 한다고 하면 나랑 안 놀아줄까 봐
- 내가 분위기를 깰까 봐
-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 앞으로도 놀이에 끼고 싶어서
- 이 친밀한 놀이가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해서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게 결국 진짜 동의인가 물었다.
그 아래 깔린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자기도 한다고 했으니, 혹은 자기도 뭔가를 원해서 한 거니까 동의 아닌가요?’라고 말할 수 없다.
먹을 거나 돈으로 사람 마음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동의가 아니다.
그건 동의에 대해 어설프게 배운 것이다.
그건 조종이다.
아이들은 알아듣는다.
- 아, 내가 친한 친구들을 조종했구나.
- 아, 나는 동의한 게 아니었구나.
- 나도 조종당한 거구나.
- ‘싫어’ 알아차리고 말할 수 있었는데 내가 못했구나.
그걸 배운 뒤로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있지 않았다.
이렇게 조종하는 일은 흔한 방법이다. 어른에게도
아이들은 ‘백 번’을 들어야 안다.
그렇게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생활 안에 배운 거기 때문에 오래가고 적용하기 쉽다.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스스로 ‘그건 동의가 아니지.’ 할 수 있다.
괴로운 경험을 계속 곱씹는 이유
사과했다 해도 어머니들의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아이들은 비언어를 정말 빠르게 알아차린다.
‘표정 관리해야지’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잘 안된다.
어머니들에게 제일 힘든 일은 계속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곱씹기를 한다.
생각의 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하면 확대된다.
- 예전에도 그런 일 있었던 거 아니야?
부모가 계속 생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에게는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매우 크다.
누군가를 통제하고 싶다, 상황을 통제하고 싶다는 게 기본 욕구다. 안전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고, 이미 상황이 끝났다.
생각해 봐야 속상한 걸 다 안다. 이성적으로는 안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계속하면서 통제감을 느낀다.
- 내가 그때 이렇게 했어야
- 내가 통제할 수 있었어.
납득하고 이해되는 그 기분이 안심하는 마음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이랬어야 해, 저랬어야 해 하면서 통제력을 회복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즉,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나를 회복하는 데는 실질적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그때 그 일에서 속상함을 계속 이야기하면
‘언제까지 하는 거야?’
가 아니라
계속 다시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으면 좋겠다.
작은 학교는 힘이 잘 모이는 거 같다.
다른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까짓 걸로 그래?’
‘애들이 그럴 수 있지’ 해서 오히려 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는 아이를 같이 키우고 있어.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모두가 행복해야 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잘 클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알려줄 것
애들 수업에서는 감수성 훈련을 할 거다.
- 불편한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당한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물어볼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거
- 분위기 깰 거 걱정하지 않고 ‘난 불편해’라고 알려줄 수 있게 가르쳐 주는 거다.
그래야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 선을 지켜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분노 조절 장애’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분위기상 이야기하기 뭐해서 참고 참다가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다.
불편함이 느껴질 때 그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말하게 하는 것.
혹은 누군가가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생각할 때 불편할 거 같으면 물어봐 주는 것.
괜찮아?
한번 수업했다고 되지 않는다.
집에서도 아이가 불편하다고 했을 때 바로 그만하는 게 중요하다.
집단에는
“그렇게 하면 불편할 거 같아.”
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그런 사람 딱 한 명만 있으면 선을 크게 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어느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학교가 좋은 건 중요하지 않다. 교실 문화가 중요하다.
괜찮아? 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으면 막 선을 넘기 시작한다.
그 반에 한 명이라도 돌아가면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괜찮다.
그만하자. 얘 아플 거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아이가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늘 한 명만 하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까?
다른 아이들도 넌 왜 그래?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돌아가면서 다른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해줄 수 있으면 매우 좋겠다.
그게 감수성 훈련이다.
너무 재미있고 즐거우면 이성의 끈을 잃는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너무 오버하기도, 안 하던 짓 하기도 한다.
그러면 같이 있는 친구 한 명이 옆구리만 한번 쿡 찔러줄 수 있으면 된다.
뒤통수를 세게 치는 게 아니라
그냥 ‘쿡’
그때 왜 찌르냐고 화내고, 너만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상 아이들은 확실히 달라진다.
그 방법을 잘못 알고 있었으니 배우면 된다.
아이 자체를 미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분명히 다른 곳에서는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그때 잠깐 잘못된 일만 했을 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아이가 저녁 때 일기 쓰기를 계속 미뤄서 아이를 앉히고 이야기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정말 어려운 거야. 너는 하나의 생명체잖아. 설거지와 빨래는 내가 열심히 하면 되는데 너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그랬더니 아이가
“그렇긴 하지~. 엄마 내가 숙제해줄게.”
했다.
내(한희 선생님)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냥 존중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서 하면 그 말이 외계어라 할지라도 다 알아듣는다.
아이들은 다 안다. 반성도 많이 하고 엄마들 속상한 것도 많이 알 것이다.
그러니 벌 주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많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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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6/15 부모 교육
첫댓글 아이를 키우며 꼭 새길 말들이네요^^ 함께 공부하고 배워서 나눠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잘 새기겠습니다^^-전정일
오.. 좋네요. 여기저기 밑줄 긋기가 하고 싶어집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혁준어머니 정리해주셔서 많은분들과 공유할수 있어 넘 감사해요. 정리도 정말 넘 잘 되어있어
읽다가 이런내용들이 있었지 다시 생각도 나고 넘 좋네요..!
달빛… ❤️ 그 빛이 은은히 밝고 영롱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