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쳐다보니 걱정부터 드는 대선 주자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읽어주는 칼럼
입력 2021.07.08 00:00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1/07/08/YWLIHJSTKFAMDPTIJRAO2EEK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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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즐비한
선진국 규모 경제국에
대선 주자들 자질은
날로 퇴보하는 느낌
2027년 대선 있다면
젊은 세대가 판 바꾸길
대한민국은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9위다. 캐나다, 러시아보다 크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인 나라 중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은 7국 중 하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57년 역사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 변경이 된 나라는 한국뿐이다.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25~34세 대학 졸업 비율은 70%로 세계 2위다. 일본보다 높다.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를 한 역사는 70년이 넘었고 1987년 6·29 선언 이후로만 쳐도 30년이 넘었다. 내년 3월 대선은 1987년 이후 8번째 대선이다. 그 사이 정권 교체도 몇 번이나 있었다. 민주주의 기초라는 지방자치 제도도 정착 단계에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만은 도무지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을 보며 ‘다음엔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라고 헛된 기대를 한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저 헛된 기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빠지는 듯한 낭패감마저 느낀다. 세계인 중에 한국 대통령 이름을 아는 사람은 0.001%도 안 되겠지만 삼성 현대는 다 안다. 그래도 한국 대통령은 이들 기업 위에서 갑질을 하는데 그런 사람의 자질과 인격마저 날이 갈수록 뒷걸음치면 어떻게 되는가.
2017년 4월 1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전북대학교 앞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이덕훈 기자
투표로 당선되는 사람들은 투표하는 유권자들의 선호와 심리,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 사람들은 뛰어난데 이상하게도 투표장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스토리’ 있고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산 인물들을 유달리 좋아한다. 국정 경험과 노선, 정책 등 정작 중요한 문제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큰 선거에 당선되는데 ‘찢어지게’ 가난했으면 유리하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미담(美談)도 위력을 발휘한다. 어렵게 고시에 합격하거나 굴곡진 인생 끝에 성공했다는 스토리가 TV 드라마가 아니라 정치에도 잘 통한다. 인생 역경과 미담은 사회와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지만 국정 책임자가 마주할 복잡한 현실에선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초음속 전투기와 잠수함을 만드는 나라다. 곧 독자 우주로켓까지 발사하는 나라인데 이런 나라의 선장이 될 사람을 아직도 수십 년 전 정치 문화로 뽑는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런 드라마 같은 인생 역경은 그들의 인격과 태도에 긍정적인 것 못지않게 부정적 영향도 끼쳤다. 선입견, 편견이 강하고 독선적인 사람들을 보았다. 상대방을 적(敵)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원초적 분노를 가진 사람, ‘내가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는 사람도 꽤 많다. 이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이런 사람들이 이번에도 여야에서 대선 주자로 나서 있다. 꽤 지지도 받고 있다.
정치와 국정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보다도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5100만명의 생각과 이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난해한 일을 해야 하는 최고 책임자를 뽑는데 국민들이 유경험자보다 무경험자를 더 선호한다. 정치와 국정을 한꺼번에 치열하게 경험하는 곳이 국회인데 현재 여론 지지도 1·2위가 모두 국회 무경험자다. 보수층 일부에서 바란다는 제3의 후보 역시 무경험자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다. 정치 무경험은 대통령으로서 이점이거나 자랑이 될 수 없다. 우리 국민의 국회 혐오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을 이렇게 뽑아도 되나.
어떤 사람은 나라의 기틀을 흔들지도 모를 중대한 정책을 너무 쉽게 내놓더니 또 너무 쉽게 거둬들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보겠다고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언행을 한다. 한 사람의 출마 선언장엔 이름을 외치는 옛날식 ‘연호 부대’도 나타났다. 출마 선언을 한 같은 당 사람 앞에 대고 거의 막말로 재를 뿌린 사람도 있었다.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본다.
양상훈 주필
대선 초반전에 시중을 달구는 얘기를 들으면 더 한숨이 나온다. 어느 주자의 아내와 장모 얘기가 장안의 화제이더니 다른 주자의 바지 이야기가 이를 덮고 새로운 화제로 올랐다. 필자는 무엇이 진실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진실 여부에 앞서서 대통령 후보들을 둘러싼 통속적 소재들 앞에서 혀를 차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인가. 아니지 않은가.
한국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른다. 그 힘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은 이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제 자체가 수명을 다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이미 치매 상태이고 이제 벽에 Ⅹ 싸 바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희생적인 자세로 국민에게 분권형 개헌을 설득했으면 한다. 문재인이 마지막 대통령이기를 바랐지만 불가능해졌고 다음 대통령이 정말 마지막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그것도 안 된다면 2027년 대선에선 젊은 세대가 대거 치고 나와 정체된 나라와 사회, 정치를 일신시켜 주기를 바란다. 다행히도 요즘 여야 모두에서 그 싹이 보여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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