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형님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현재 70대 중반이신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아우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역시나 활력이 넘치는 목소리가 여전하구만. 잘 지내지?"
"그럼요. 광태 형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님의 목소리가 예전같지 않네요.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죠?"
"......"
형님은 말을 바로 잇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셨다.
그리곤 몇 초 후에 입을 여셨다.
"좀 안 좋아...암이래.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3주에 한번씩 병원에 입원하여 2박3일 간 '항암주사'만 맞고 있어"
내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나도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고 형님, 어찌 이런 일이...."
과거에 형님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열심히 근무하셨다.
저축도 많이 하셨다.
원주 부근에 임야와 전답을 구입해 인생 2막을 잘 준비하셨다.
나와는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마라톤 클럽'에서 열정적으로 운동했었다.
각종 대회에도 참전해 형님과 숱한 추억을 주렁주렁 엮었다.
자녀들은 아주 오래 전에 분가했고, 형님도 은퇴 후에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공기 좋은 시골에 정착하셨다.
그랬던 까닭에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얼굴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Out of sight, out of mind'였다.
진리였다.
나는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자주 연락드리지 못했던 점을 후회했다.
가슴이 저릿했고 아렸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형님께 사과드렸다.
"아우야, 3주에 한번씩 서울에 오니까 다음번에 시간되면 얼굴 보자. 보고싶다."
"형님, 죄송합니다. 당근 뵈어야지요. 3주 후에 제가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저도 뵙고 싶습니다. 형님."
인사를 나눈 이후에도 통화는 5분 넘게 이어졌다.
형님은 자신의 병고를 숨길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인생엔 누구에게나 시와 종이 있으니 덤덤하게 받아들인다"고 하셨다.
"다만, 그리운 사람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시간이 되는 대로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 저녁엔 12명의 식사모임이 있는데 마음이 여전히 뒤숭숭하다.
건강할 때 더 사랑하고, 더 배려하는 삶이길 기도할 뿐이다.
소통과 공감을 더 자주, 더 많이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달리 대안이 있는가?
세상은 이미 어둠 속에 잠겼다.
느닷없이 내 마음 속에도 아프고 슬픈 낙조가 드리워 지고 있음을 느낀다.
속절없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