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무살 ...그리고
'비오는 날의 플라타너스'...
이 말을 듣고서 묻혀있던 어릴 적 감성이 되살아났습니다.
어릴 적에 학교 운동장에 있던 플라타너스..그리고 비오는 날을 비정상적으로 좋아했던 나...어릴 적 경험들을 통해.아련하게..그리고 막연히 동경해왔던 지난 날 내 속의 파스텔톤의 풋풋한 감성이
촉촉한 단비를 맞게 되었습니다.
강력추천합니다...(제가 남자이지만..소녀적 감성을 갖구 있어시리..^^;)
[책마을] 내 사랑은 비오는 날의 플라타너스 같아요 (2002.01.04)
■루주
유미리 장편 , 김난주 옮김/ 열림원 / 8000원
장편소설의 첫 문장은 때로 시(詩)의 첫 줄보다 인상적이어야 한다.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柳美里·34)의 ‘루주(rouge)’는 ‘도시를 날고 있는 배추흰나비를 보면 불안해진다’(7쪽)로 시작한다. ‘크리스티나’라는 일본 굴지의 화장품 회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연애소설은 무척 도회적이다. 그 속에서 불안한 자태로 날갯짓을 배워나갈 20살 주인공 처녀 ‘리사’는 여리면서 위태한 배추흰나비를 닮아 있을 것이다. ‘20살’이란 소녀기를 벗어 던지는 성년의 연도이면서 동시에 기성세대가 볼 때는 아직 솜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신입의 나이다.
그 무렵은 ‘터져나갈 것 같은 에너지가 몸 구석구석에서 소다수의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12쪽)을 느끼는 때다. 디자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크리스티나 사(社)의 홍보부에 근무하게 되는 ‘리사’는 단순히 ‘5월인걸 뭐…’라고만 읊조려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녀는 미인도 아니고 개성 있는 마스크도 아니지만, 왠지 길거리를 지나다가 마주치게 되면 돌아볼지도 모를 얼굴을 가졌다(17쪽). 화장품 회사 직원이면서 화장을 싫어하는 ‘리사’는 신제품 포스터의 촬영현장에 갔다가 약속돼 있던 스타 모델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우연히 모델로 발탁된다.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모델은 싫다는 ‘리사’에게 홍보부 간부는 1년 동안이라도 모델이 될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묻는다. “기뻐? 슬퍼? 어떤 기분이야?”
대답은, “비오는 날의 플라타너스 같아요.”
이 소설은 한없이 가볍다. 풋사과를 닮았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잘못 베어 물었다는 잇몸에 핏물이 번진다. 작가는 곳곳에서 디자인의 채색용어 등을 과감하게 영어로 사용함으로써 이국풍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를 간접 충족시키는 한편, 소설에서 한번 더 관념적 무게를 빼낸다. ‘호라이즌 블루의 하늘은 투명한 공기를 헤치고…’(95쪽), ‘파도가 일 때마다 코발트 블루, 리프 그린, 실루리안 블루로 색이 변화한다’(〃). 모델 일을 시작한 ‘리사’는 24살 연상인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아키바’와 사랑에 빠진다. ‘아키바’는 ‘리사’의 여자 선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아토미야’의 옛 남편이다. 신제품 슈퍼 립스틱 ‘시네레르’의 광고에 붙인 캐치 카피 ‘여름 입술, 먹이고 싶다’는 ‘아키바’의 작품이다. ‘여름 입술’의 관능은 유미리의 가벼운 잽이다.
유미리의 독자들이 잘 알고 있듯, 가벼움의 갈피에 날카롭게 숨은 사랑 잠언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여자들은 참 좋군, 필사적일 수 있으니’(38쪽), ‘현대 사회에서 해피엔드가 허락되는 연애란 없다’(109쪽), ‘사랑이란 스토리다.…스토리가 다하면 두 사람의 만남도 끝이다’(111쪽).
결국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적극성이 결여된 여자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 바꿔 말하면 “자기가 아닌 인간으로 만들어지는(※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빚어지는 화장의) 불안과 혐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그저, 화랑이나 미술관(영화관까지도)은 혼자 가야 제격이라고 말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