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껍질에서 건져낸 性
인천 국제공항으로 진입하기 직전 영종도 오른쪽 샛길로 빠져 나갔다.
삼목선착장. 신도,장봉도로 떠나는 철부선이 부둣가에서 차량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뭍과의 이별을 알리는듯 물살이 갈른다. 선미 뒤를 좆는 갈매기가 배를 따르고... 섬. 1차 기항인 신도에서 하선했다.
부두를 빠져 나온 뒤 왼쪽 갈림길을 택하여 섬 안을 뚫고 달렸다. 신도와 시도를 연결하는 연도를 지나 달리는 도중에 슬픈연가, 풀하우스 세트장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았다. KBS 수요드라마 드라마의 촬영지. 풀하우스 세트장.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둔덕에 세운 그림같은 양옥집. 바위갯벌이 화폭처럼 펼쳐졌다.
섬그늘. 모래사장. 갯바위, 바위와 돌맹이에 다닥다닥 붙은 굴. 간조대. 갯물이 빠진 갯벌에 들러난 굴... 손바닥만한 해변가에 을씨년스러운 전망대 하나. 통나무, 판목으로 세운 원두막 같은 전망대가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쓸쓸함을 보태고 있었다. 텅 빈 해변가. 빈 듯한 바다에도 외롭고 적막한 느낌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슬픈연가세트장이 있는 숲속 길로 차는 기어 올라갔다.
산꼭대기에 양옥집 하나. 녹 슨 쇠줄이 앞마당 진입을 막았다. 송림 틈새로 앞뒤의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벼랑같은 산길에 새로 조성산 나무계단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섰다. 뿌이연한 바다가 펼쳐졌다. 쓸쓸하다. 해식애(해안절벽)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위에 영화세트장이 올려다 보였다. 풍화로 씻겨나가 절리된 절벽...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바위가 부서져 돌랭이로 되었다가 자갈, 모래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민물이 찰랑거리며 들아오는 시각에 집에서 싸 가지고 간 찬밥을 먹었다. 갯바람, 햇볕, 갯내음이 함께 어우러진 모래사장 굴껍질 위에 철부덕 앉아서 때늦은 점심을 들었다. 적막함. 쓸쓸함, 외로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고해절도(孤海絶島)에서 ...
섬과 섬을 연결한 다리를 또 건넜다.
시도와 모도를 시멘트 다리로 연결한 끈. 모도 배미꾸미선착장으로 향했다. 강돌해수욕장으로 알려졌지만 '사랑해요' 조각공원으로 더 유명한 곳. 이일호 조각가가 세운 인체조각 수십 점이 해안 모래사장 위에 펼쳐졌다.
입장료는 1인당 1,000원. 주차료는 3,000원. 주차는 조각공원에 들어서기 직전 언덕배기에 정차했기에 무료.
성인남녀의 애로틱한 성희를 주제로한 조각.
성인의 성욕이 주는 환희, 쾌락, 성애.... 그런데 조각품을 자세히 보면 환상속에서도 허무를 느끼게 한다. 현실 속의 끈적거리는 배설의 질감, 신음, 교성, 주체못하는 성욕, 욕정, 능욕, 이런 것들이 조각에서는 배제되었다. 오히려 쾌락 뒤의 허무, 공상과 몽상의 감정까지도 느끼게 한다. 살아 꿈틀거리는 본능, 이드가 무의식 속의 꿈길같다. 꿈속에서 또다시 꿈꾸는 듯한 몽환과 환상 속에 성애였다. 인체 조각품 대부분이 내장이 빠져나간, 근육과 살, 심지어는 골수까지 다 빠져나간 껍질(껍데기0들만 남아 있는 듯했다. 껍질 속의 애무가 허무로 상징되는 에로틱. 품, 인골 사체에서 눈알을 빼먹는 독수리, 인간과 동물의 똥구녁에서 내장을 관통하여 입으로 빠져나온 긴 막대(수컷의 상징)는 동물과 인간의 분별이 무의미한, 인간이나 동물이 모두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활 시위를 펭펭히게 당긴 듯한 만(灣)에 위에 올려진 커다란 폐선 한 척.
녹이 슬었다. 폐선을 묶은 밧줄마저 곰삭이 내렸다. 만선의 꿈을 접고 자궁(포구)에 들어와 숨을 거둔 폐선의 상징성. 자궁 속에서 죽었다. 먼 과거로 길 떠난 이미지.... 바닷가, 부서져내리는 해안바위와 절벽. 무너져내리는 흙을 감싸 쥔 나무뿌리....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질로 남은 굴껍질, 조개껍질이 모래톱 위에 길게 올려져 있었다. 파도가 뒤로 밀려나면서 남겨 놓은 흔적들은 주검의 흔적이었다. 하얗게 탈색한 굴껍질. 구멍이 숭숭 뚫린 조개껍질...
민물로 찰랑거리는 연안바다 위에 솟은 작은 여(갯바위)에 가마우지(바다 조류) 두 마리가 서 있었다. 만조된 해수면을 노리고 있었다.
성욕, 욕정, 성애... 가셔버린 조각품을 뒤로 하고 다시 시도를 빠져 나왔다.
시도와 신도를 연결하는 연도교를 타기 직전에 오른쪽 샛길로 들어섰다. 느지구지해변에 가는 길은 외길, 참으로 좁디좁고 뱀꼬리(蛇形)으로 꼬불거리는 외길을 따라들어섰더니 산속이다. 새로 낸 신작로, 시멘트 가루가 허옇게 남아 있는 작업 중인 새 도로 끝자락에서 정차. 더 갈 수도 없는 끈의 끝. 끝트머리에 펼쳐진 작은 만과 여(바위돌). 해수욕장으로 보아야 되는지. 하도 작고 좁고 옹색하여 손바닥으로 가려도 다 가려질 듯한 해변이다. 새로 개장을 하려는 듯. 텅 빈 바다. 이곳도 적막했다.
차는 연도료를 빠져나온 뒤 좌측으로 틀었다.
연인세트장을 향해서. 외길 꼬불거리는 구봉산 자락을 훓어도 세트장을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염전, 녹이 슨 소금창고가 눈에 띄일 뿐 드라마 속에 나올 법한 서구식 팬션은 끝내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도 모르겠고, 누구한테도 물을 수도 없는 쓸쓸한 해변도로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다. 끝내 눈에 띄이지 않았다. 차가 숨을 멈춘 곳은 신도선착장.
아쉽다. 다음 번을 기약해야겠다.
혹시 염전이 있는 산자락에 숨어 있을 것 같다.
옹진군 북면에는 4개의 섬이 있다. 장봉도, 신도 시도 모도. 신도 시도 모도는 3개의 섬이지만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신삼목선착장과 신도선착장을 왕복하는 승선료는 귀가시에만 받는데 차량은 20,000원, 사람은 1인당 3,600원. 승선시간은 고작 10~15분 거리. 인천국제공항 북편에 있는 신도와 장봉도로 가는 철부선은 매시간마다 운영된다.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섬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철부선 선미에 따르는 갈매기에 새우깡을 던져주면 갈매기들은 환상적인 사진모델이 되어준다. 끼룩 거리면서 해수면 위로 날면서 새우깡를 채가는 그 날렴함은 섬으로 떠나는 여행의 묘미를 살짝 더해 준다.
모도 조각공원에서 이일호 조각가의 작품을 대충 흟어보았는데도 많은 의미를 건져 올렸다.
그 느낌을 다 담기에는 지쳐서 이쯤 끝을 낸다.
소라껍질. 속살이 다 빠져나간 빈 껍질, 구멍 속에서도 인체를 떠올린 조각가의 환상적인 의미도 조금만 건드렸다. 나머지는 섬여행하는 사람들의 몫.
여행기행은 일기형태로 적으면 글맛이 적게 마련인데도 당일치기 여행지 순서대로 기술했습니다. 기행산문의 맛이 전부 배제되어 밋밋...하룻만의 섬여행인데도 여독이 너무 짙습니다.
타자 치는데도 수마(睡瑪)를 이겨내지 못하고 크떡끄덕....
남들이 일하는 화요일, 백수가 되어 집안의 PC에 접근한 것이 또 부끄러워서 중학교 친구한테 전화 걸어서 만날까 했더니만 그는 운동약속이 되었다며 다음에 미루데요.
그가 말하는 운동이란 내가 해 보지 않은 골프. 직장다닐 때 나도 배워둘 걸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염가로 배우거나 염가로 골프장 투어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했던 나...
오늘도 PC 앞에서 타자 치는 게 부끄럽습니다.... 어제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
내일(수요일)에는 강화도나 화성바닷가 방면으로 나갈까 궁리 중. 낮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직장에서 벗어난지도 10개월째인데도 아직.... 일 중독자는 아닌데... 억지로 팔을 뒤로 꺾인 채 묶인 노예처럼... 또 상상여행이라도 떠날랍니다. 오전에라도..
안내 : 삼목선착장 032- 884- 4155
2009. 4. 7. 화요일.
첫댓글 10년전의 글이군요.
하루의 여행에서
많은 걸 보시고 느끼셨군요.
지금도 마음먹기에 달린 거 같은데요.
여행을 떠나는 거나 글쓰는 일이나.
훗날 십년의 세월이 더 흐른 후에 돌아보면
지금이 가장 청춘일텐데요.
혼자 가시기 심심하면
어느 날 좋은 날
저와 함께 어떠세요.
예전에는 그냥 다 글감이었지요.
싸돌아다니기에.
시골 내려가 아흔 살 넘은 늙은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여행을 잊었지요.
치매기 진행 중인 엄니를 돌보는 게 최우선이었기에 ... 자연히 도보여행은 끝나고요..
그 엄니를 땅속에 묻은 뒤의 내 삶이란... 올해 해동이 되면 여행하는 병이 도졌으면 하네요.
이제는 욕심 내지 않고는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나 쳐다보고, 부는 바람을 쐬고, 웅얼거리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어야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이런 잡글이야 ... 그냥 다다닥...
이젠 은퇴하신 나이이니 부끄러울거
없읍니다.
대학시절 인천에서 배를타고 갔던 신도.
시도.같은 작은섬들엔 게딱지 만한 초가들이
옹기종기 평화롭게 살고있었지요.
그랬나요?
그래도 여엉.... 독특한 예술작품에 혀를 내둘렀지요.
그분 독특한 조각예술... 환상적이어서... 다시 한번 그 섬에 가서 이제는 좀더 성숙한 눈길로 작품을 보아야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바다냄새 옹진군 10년된
글 장문~ㅎ
가볍게 가까운 곳 산책
하시면서도 이렇게
인사겸 삶속에서도
소재가 생각되어 지시길()
저한테는 그냥 하루의 일기...
그냥 다다닥하는 산문일기...
요즘 아파트 방 구석에만 쑤셔박혔으니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더군요.
김준희 선생님의 자서전인 산문 잘 읽고 있습니다.
많이 꺼내서 기록하면 좋은 가족유산이 되겠더군요.
시대상을 엿볼 수 있기에...
저도 2019년에는 바람을 쐬야겠습니다.
이 나이면 컴 앞에 자주 앉게 됩니다
밖에 나가서 태산을 떠 안고 올일도 없고 소소한 일거리 잡으려니
신경질 나고 그냥 읽고 쓰고 그러고 걷습니다
일만 하던 사람들은 몸을 쉬게 하는 일에
어떤 죄의식을 느낍니다 초조해 하고 ... 벗어 나야 건강합니다
할 수없으면 즐기세요 오늘을 ...
서울에서 ... 방안에 갇혀서 ... 컴퓨터 속에만 들어왔더니만 등허리뼈, 목뼈가 굳어져 은근히 아파옵니다.
오늘은 머리 깎으러 바깥에라도 나가야겠습니다.
운선 작가님
댓글 고맙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 덕적도,연평도, 영흥도 근무해봤구요. 승봉도도 담당리라 많이 출장갔던곳인데 북도쪽은 아직도 못가봤네요.
경기도 연안 바닷가를 잘 아시겠군요.
저도 올해에는, 더 늙기 전에,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는 외지의 바람을 쐬야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최윤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