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을 때,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왜 그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계가 고장났다. 이 때, 내가 만약 기계치라면,
당췌 어떻게 해야 할 지 감도 안 올 겁니다.
이리저리 건드려보다가 결국, 기계를 방치하거나, 버리거나,
전문가를 불러서 고치거나 하겠죠. 근데 만약, 내가 엔지니어다?
기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이러면, 간단해지죠.
뚝딱뚝딱 내가 고치면 되잖아요.
이와 비슷하게,
내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내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전문가라면, 그 상황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임은 명약관화할 겁니다.
자,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이렇게 흘러가야 되는 사람인데, >> 자기이해
지금 상황은 저렇게 저렇게 돼 가고 있어서 내가 미치겠는거구나. >> 문제이해
그러니까, 난 요렇게 요렇게 해야겠다. >> 문제해결
결국, 나를 잘 이해하고, 나와 맞는 것들은 가까이,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은 멀리,
최대한 나라는 인간의 핏fit에 맞춰 사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일 수록,
인생에서 웰빙을 경험할 확률은 커질 겁니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로,
나를 잘 모를 수록 나와 맞는 핏을 모르니 걍 되는대로 살 수 밖에 없고,
그 인생이 사실은 나랑은 정말로 맞지 않는 unfit이었다라는 비극적 스토리로 가게 되면,
인생이 너무나도 고달프고 힘이 들게 되는 거죠.
나는 나 개인의 영역이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인데,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감정노동이 필요한 일을 너무 오래 했다.
( cf. 독립적/개인주의적 자아. https://blog.naver.com/ahsune/221734476082)
나는 각종 자극에 매우 민감한 사람인데,
도시생활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과한 자극이었다.
나에 대해, 그리고 나와 맞는 fit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면,
이제는 나를 위해, 내 행복을 위해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픈 소망이 들겠죠.
심지어는,
장소마저도 fit에 따라 내 행복을 좌우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자연핏 or 도시핏

George McKechnie 란 사람이,
인간의 환경 기질을 평가하는 환경반응검사 ERI 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는 쉽게 말해, 한 개인이 지니는 환경에 대한 각종 선호도라고 보면 됩니다.
① 목가성 : 자연감성이 높을 수록
② 도시성 : 도시감성이 높을 수록
③ 환경 변형 : 내 편의를 위해 환경에 인공적 변형을 가하는 것을 찬성할 수록
④ 환경 신뢰 : 환경과 나를 구분짓지 않고, 열린 태도로 어느 환경에서든지 편안함을 느낄 수록
⑤ 자극 추구 : 각종 자극적인 것을 추구할 수록
⑥ 기계 선호 : 기계와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을 수록 (디지탈 감성이 높을 수록)
⑦ 빈티지 애호 : 오래된 것, 전통적인 것을 좋아할 수록 (아날로그 감성이 높을 수록)
⑧ 사생활 보호 욕구 : 자극을 멀리하며 고독을 즐기며 내 영역에 대한 보호가 최우선일 수록
저는, ①⑦⑧ 기질이 높은데,
한마디로 자연핏 이죠. 근데, 도시에서 벌써 수십년을 살고 있거든요?
도시사람으로 이미 적응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unfit에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하며,
fit에 대한 로망, 욕망 또한 존재하기에,
살 수 있다면, 아파트보다는 조그만 정원 딸린 주택이 좋겠다는 생각.
여행을 간다면 백이면백, 시티보다는 시골 감성나는 쪽을 선택.
짬이 나면, 교외나, 공원, 강이나 산에 가길 즐기고,
티비를 틀면, 나는 자연인이다 재방송 하는데를 찾을 때까지 채널을 돌려요.
그리고 행복해하는 그 분들을 보며 그들의 행복에 고개를 끄덕이죠.
'자연인들은 왜 행복할까?'
불행했던 과거는 뒤로 한채,
이제는 내 fit에 맞는 환경에서 살고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unfit이 초래했던 불만족과는 극명하게 대비됨으로써 그 행복이 한층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결국,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핏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수렴하게 됩니다.
첫째. 내가 날 잘 모르니, 나와 맞는 fit 역시 알 수 없어서. (자기이해의 부재)
둘째. 이게 unfit이란 걸 알아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어서. (문제에 대한 통제 불가능)
자기이해와 문제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도,
문제해결 자체가 녹록치 않다면, 방법은 뭐다? 결국엔 관점과 해석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난 자연핏인데,
배우자는 도시핏이야, 애들도 도시에서 키워야 하고, 직장도 도시에 있어.
난 도시가 싫지만, 이 도시에서 살아야만 해.
아 싫다. 이 삶이 싫어. 벗어나고 싶다.
이것보다는,
내가 희생함으로써, 내 가족들의 핏을 맞춰줄 수 있잖아. 그들이 행복하니 됐다.
이렇게 충분히 나의 책임을 다하고, 대신 나중에는 꼭 나를 위한 삶을 살자.
등과 같은 긍정적 관점으로 unfit 상태에 있는 나 자신을 달래는 겁니다.
내적갈등을 완화시키는데는 이와같은 긍정적 의미부여가 특효약 이에요.
네가 지금 고통을 받는 것은, 신께서 널 단련시켜서 추후에 크게 쓰시기 위함이다
와 같은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신도들의 고통을 신심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겠죠,

와 행복해 보인다. 나도 자연에 가면 행복해질까?
산에만 들어가면 내 병도 다 나을까?
자문해 봅시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나에게 맞는 환경은 어떤 핏일지.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껴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서,
unfit된 인생에 염증을 느끼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결국, 자신의 핏과 맞는 자연을 찾았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한 것일 테죠.
반면, 차가운 도시남자들은 아마 unfit 인 자연인의 삶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자극적이고, 문명화된, 기계적이며 디지털스러운 시티에서 그들만의 행복을 좇겠죠.
행복하려면,
나와 가장 핏이 잘 맞는 모든 부분을 다 고려하라.
사람도.
사랑도.
일도.
장소와 환경까지도.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잘사는구나~ 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저 1~8까지를 처음 보고 저는 어떤지 생각해봤는데 4,5는 확실히 아닌데 123,678이 헷갈립니다. 자연적인것도,도시적인것도 좋고 기계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능숙하진 않지만) 빈티지나 아날로그 느낌도 좋아해서 뭐가 더 저한테 맞는 핏인지를 모르겠네요. 그걸 몰라서 저한테 맞는 핏을 못찾아서 인생이 행복한적이 많지 않았던건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욕심이 너무 많은건지..
다시 한번 내적자아를 달래며 잠듭니다. 고맙습니다
힘든일이 생겨도 긍정적인 부분을 생각해서 그러려니~~하는게 중요하더라고요
요새 글 자주 올려주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