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는 용기
예수동행운동을 시작했을 때, 제 관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의 관심은 정말 예수님과 동행하는 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예수동행 목요집회을 준비하는 우리의 관심은 모이는 사람의 숫자보다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모이는 집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8:20)
그러므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찬양팀, 기도자, 설교자, 안내위원들, 참석자들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은 벼랑 끝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예수동행 집회도 그렇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2023년 4월 자원은퇴하였을 때, 은퇴한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 번지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점프대에서 공중에 뛰어내리는 심정이 어떤지 그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번지점프대에서 공중을 향하여 뛰어내릴 때, 처음에는 극심한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곧 하늘을 나는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번지 점프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벼랑 끝에 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다 하여도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아직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아무런 어려움 없는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제자들에게 들판에서 5,000명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풍랑이는 바다 위에서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꼭 이와 같은 느낌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편안한 길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벼랑 끝에 서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께만 순종하게 하신 것입니다.
고후 1:9 ...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러면 반드시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고후 1: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어 모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단지 하루 분의 만나를 받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저장해두면 다음 날이 되기 전에 벌레가 생기고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
하루 먹을 양식만 가지고 광야에서 살아가는 것은 벼랑 끝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런 삶에 훈련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 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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