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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출처 : 여성시대 책귀신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나는 아직도 밤중에 가끔 어떤 내적 충격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는 공포 때문에 숨이 막혀하면서 시시각각 내가 살아 있는 채로 부패되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 어둠 속에 공기가 너무도 가라앉아 있어서 내게는 모든 것들이 균형을 잃고 갈갈이 헤쳐진 듯 보인다. 그것들은 그야말로 중심을 잃고 소리없이 얼마간 떠다니다가 결국은 여기저기서 추락하여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런 악몽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부패해 가는 짐승이 되고 모든 감정이 자유롭게 서로 교감하는 만족감을 소극적으로 맛보는 것과는 달리 수동적이고 객관적인 공포감에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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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를 실망시켰고, 그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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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이 사는 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으며, 소망 없이 사는 걸 모두가 불행하게 생각했다. 다른 삶의 형태와 비교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욕망도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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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분위기가 만연한 이런 시골에서 여자가 독자적 삶을 갖겠다는 생각은 도대체가 시건방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표현되었던 거부의 표정들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진심이 되어버렸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기뻐할 때에도 <여자답게 얼굴을 붉혀야> 했다. 왜냐하면 기쁨도 수치스럽게 여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호기심이 없었고, 그 덕분에 어느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탐색도 없었으며, 당연할 법한 감정의 표현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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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열정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공간에서 누가 가장 고통스러운지를 묻는 것은 분명히 우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답을 알려줄 누군가를 향해 이 우문을 그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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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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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은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있어. 그게 뭔지 몰라. 언제나 그게 거기 멈춰 있어. 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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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끝없이 새어나오는 선혈이 그것을 증거한다고 믿었을 때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 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 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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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녀가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열아홉살에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지 않고 서울생활을 헤쳐나온 자신의 뒷모습을, 지친 그를 통해 그저 비춰보았던 것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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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녀는 이 순간을 수없이 겪은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고통에 찬 확신이 마치 오래 준비된 것처럼,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 앞에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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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근데 나 언제부터가 어른일까
그때가 이때다 불어주는 호루라기
그런 거 어디 없나 그런 게 어디 있어야
돌도 놓고 돈도 놓고 마음도 놓는데
(···)
어른은 어렵고 어른은 어지럽고 어른은 어수선해서
어른은 아무나 하나 그래 아무나 하는구나 씨발
꿈도 희망도 좆도 어지간히 헷갈리게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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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을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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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의 고통이 어떻다는 건 그걸 가져본 여자만이 안다. 모든 질병의 고통은 동정자를 끌어 모으지만 그 고통만은 비난과 조소를 면치 못한다. 사람을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게 인술의 꿈이라면, 여자를 그런 질병 이상의 고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건 나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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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니 같은 효녀 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잘하려고 애써왔어. 이젠 지쳤어. 언니도 곧 지칠 거야. 엄마한테 잘 하는 건 밑 빠진 가마솥에 물 붓기야. 엄마가 우리한테 어쩌다 보이는 관심이 뭔 줄 알아? 저 계집애들 중 하나를 잃었으면 내가 이렇게 원통하진 않았으련만,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볼 때야. 그런 표정 정말 소름 끼쳐. 엄만 우리가 살아 있는 걸 미안해하게 만들어. 우리도 우리에겐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래야 돼? 엄만 정말 해도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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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에게 있어서 자유란 나뭇가지 끝에 걸린 별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딸 수 있을 것 같아 나무를 기어올라가 봤댔자 허사였다. 올라갈수록 별은 멀고 돌아갈 수 있는 땅 역시 멀어져서 얻어 가질 수 있는 것은 위기의식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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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껏 꿋꿋하게 잘 버티기에 그냥저냥 극복한 줄 알았더니 이제 와서 웬 약한 소리냐구요? 형님 보시기에도 제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입디까?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 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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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덤 속에서 다시 한 번 죽어 버리려고 죽으면 그래도 또 한 번은 더 죽어야 하게 되고 하여서 또 죽으면 또 죽어야 되고 또 죽어도 또 죽어야 되고 하여서 그는 힘들여 한 번 몹시 죽어 보아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는 여러 번 여러 번 죽어 보았으나 결국 마찬가지에서 끝나는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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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장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도 싶었다.
나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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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생에서의 영이별이라는 결론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 전을 딱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장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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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과연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이겠나, 사람들은 얼마나 그 죽음을 무서워하며 얼마나 어렵게 알고 있나, 그러나 그 무서운 죽음. 그 어려운 죽음이라는 것이 마침내는 그렇게도 우습고 그렇게도 하잘것 없이 쉬운 것이더란 말인가. 나는 이제 그 일상에 두려워하고 여렵게 여기던 죽임이라는 것이 사람이 나기보다도 사람이 살아가기보다도 그 어느 것보다 가장 하잘것없고 가장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것을 잘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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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운명 가운데서 난 사람은 끝끝내 불행한 운명 가운데에서 울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 약간의 변화쯤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그것은 다만 그 '불행한 운명'의 굴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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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치욕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로서는,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을, 가늠을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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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은 남의 불행에도 민감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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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진 행복에 대한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어긋나 있는 것 같은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뒤척이고, 신음하다가, 미치기 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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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괴상한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 기억 속 상처를 그 주둥이로 쪼아 찢어놓습니다. 금세 과거의 수치와 죄에 대한 기억이, 뚜렷이 눈앞에 펼쳐지고, 악 하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공포가 엄습하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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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온 아비규환의 '인간' 세상에서, 오직 하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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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공포로 항상 떨었으며, 또한 인간으로서 제 자신의 언동에 조금도 자신감을 갖지 못해서, 저 혼자만의 고민은 가슴속 작은 상자 안에 감추고, 그 우울감과 긴장감은 그저 숨겨놓고, 오로지 천진난만한 척 낙천성으로 장식하며, 점차 저는 우스갯짓을 하는 괴짜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내가 죽어 음산한 종소리가,
내가 이 저열한 세상을 떠나
가장 저열한 벌레와 살러 간 것을 알리거든.
그대 더 오래 슬퍼 말라.
그리고 이 시구를 읽더라도 그 필자는 생각지도 말라.
내 그대를 극진히 사랑하기에, 그대가
나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그대의
고운 생각 속에서 잊어지기를 바라노라.
내 말하노니, 아마도 내가 흙이 되었을 때
그대가 이 시구를 읽더라도
나의 대수롭지 않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고,
그대의 사랑도 나의 목숨과 함께 소멸하게 하라,
영리한 세상이 그대가 애탄하는 것을 보고
나 죽은 후 그대를 조롱하지 않도록.
SONNET 71
절망적이었다. 나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는데 거기는 수영장도 바다도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익사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런 하찮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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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근면하고 쾌활한 워킹클래스였다. 그건 그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나 가치에 아무런 회의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은 인생을 바쳐 죽도록 일했고 그리하여 살아남은 자신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그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책만 읽었다. 그들은 쾌활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했다. 그들은 아주 잘 잤다. 그리고 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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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책을 너무 많이 읽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당황했고, 상처를 받았고,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든 갈 견디기에 나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난 도망쳤고,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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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웠던 건 내 두려움의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아마도 그걸 찾는 데 난 젊음을 통째로 소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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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나는 여전히 누군가, 아니 무언가가 날 구해주길 바라며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어떤, 그러니까 신 같은 존재가 날 여기서 꺼내어줄 거라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분명히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난 그렇게 기적을 기다리며 바보 같은 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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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이 왔다. 겨우내 굳어 있던 도시가 깨어났다. 북쪽에서 날아온 흙먼지들이 깨어난 도시를 가득 채웠다. 햇살 아래 드러난 모든 것이 추했다. 도시 어디에도 아름다움은 없었다. 봄은 서울에 어울리는 계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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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삶은 이어졌다.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걸, 우리는 마침내 깨달아버렸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더이상 어떤 기쁨도 놀라움도 설렘도 없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끝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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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바보같이 살면 좀 안 돼? 꼭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해? 그냥 꿈속에서 살면 좀 안 돼? 어떤 건 그냥 아름답다고 하면 안 돼? 아름다운 거 맞잖아? 느껴지잖아? 거짓말이 아니잖아? 그런 삶이 정말 그렇게 나쁜 거야? 그렇게 살면, 사람들 말대로 정말 비참하게 살다가 고통 속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거야? 무서워.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죽을 용기로 살았어야 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죽을 용기와 살 용기, 그것은 과연 같은 종류의 용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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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니까 검정 비닐봉투에 머리를 집어넣고 죽은 나의 여동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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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게 되거나 죽게 되는 것, 매 순간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미래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결정을 유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게 결국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걸 의미하니까요. 나는 떠오르는 말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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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언제인지, 가장 아름다운 꽃이 어떤 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꽃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꽃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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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녀에게 안전한 길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위험을 피해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심결에 모두의 조언대로 움직이면서도, 이제는 그런 모두를 비웃는다. 방향을 틀면,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살고 싶어서
가만히 울어본 사람은 안다
목을 꺾으며
흔적없이 사라진 바람의 행로
그렇게 바람이 혼잣말로 불어오던 이유
이쯤에서 그만
죽고 싶어 환장했던 나에게
끝없이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쓰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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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아름다운 문장도
살고 싶지 않다로만 읽히던 때
그래 있었지
오전과 오후의 거리란 게
딱 이승과 저승의 거리와 같다고
중얼중얼
폐인처럼
저녁이 오기도 전에
그날도 오후 두시는 딱 죽기 좋은 시간이었고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울어 보았다
내 삶을 내 손으로 그만 중단시켜 버리고 싶은 열망에 얼마나 자주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수년 동안이나 머릿속에는 오직 단 한 가지, 자살에 대한 끔찍하고도 메마른 상상이 가득했고 내가 도피처로 기꺼이 받아들인 그런 상상은 삶을 더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가장 견딜 수 없어진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일상의 무의미함에 저항하며 발버둥 쳤지만 아마도 나 자신의 나약한 기질 때문에, 그중에서도 특히 나약한 성격 때문에 나는 도리어 그 무의미함 속으로 더욱더 깊이 침몰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끝까지 살 수도 있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은, 이미 한참 전부터 나에게는 악몽이 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조차도 혐오스러웠다. 나는 더 이상 삶의 목적이란 것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자동적으로 반복되는 자살에 대한 강박관념에 무력하게 나를 맡겨 버렸고 하루 종일 거기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나 스스로 그들 모두를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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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사람들은 머리를 움츠린다.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과는 더 이상 교류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파울은 그렇게 머리를 움츠리고, 스스로 타인들의 세상과 결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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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이 마지막에 가서는 점점 더 무분별하게 광기를 다룬 것처럼, 우리는 병에 대해서 점점 더 무분별해지면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도 점점 더 무분별하게 대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나중에는 당연한 결과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거꾸로 우리를 점점 더 무분별하게 대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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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어떤 오페라라도 성공작으로 만들 수 있어.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리고 그럴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만 하면 말이지. 그런데 그 조건이란 건 원래 항상 갖추어져 있거든.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오페라라도 완전히 실패하게 만들 수 있어. 그럴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만 하면 말이지. 그런데 그 조건이란 건 원래 항상 갖추어져 있거든.
카프카는 지워지지 않는 꿈들을 소설에, 편지에, 일기에 기록했다. 그 기록을 발췌해 모은 이 책은, 꿈들에 홀린 자들이 잠 없는 밤 벌인 투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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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무렵, 최후의 잠 한 조각까지도 모두 소진되어 버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직 꿈을 꿈 뿐이다. 그것은 깨어 있는 것보다 더욱 힘들다. 나는 밤새도록, 건강한 사람이라면 잠들기 직전에 잠시 느끼는 그런 혼몽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꿈들이 내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꿈들을 기억해내지 않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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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꿈을 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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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같은 내면의 삶을 묘사하는 일이 운명이자 의미이고, 나머지는 전부 주변적인 사건이 되었다. 삶은 무서울 정도로 위축되었고, 점점 더 계속해서 위축되어간다.
사랑은 아직도 죽고 싶을 만큼 열렬했고, 그것은 이젠 위로할 길 없는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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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 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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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낮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햇빛이 모든 색깔을 퇴색시키며 짓누른다. 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한다. 밤의 푸른빛은 하늘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늘은 세상의 본질을 덮고 있는 모든 불투명함의 저편에, 그 너머에 있다. 나에게 하늘은 밤의 푸른빛을 가로지르는 순수한 광채와 모든 색깔을 초월한, 차갑게 녹아드는 빛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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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나는 그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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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들 스스로가 초래한 결핍감은 내가 보기에는 항상 일종의 실수라고 생각되었다.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댓글 나는 세상을 잃었다. 내 영혼의 밑바닥에는 이 순간 내 유일한 현실인 보이지 않는 깊은 음울이 가라앉는다. 어두운 방안에서 누군가 울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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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불안한 상태인 나는 극히 작은 몸짓을 하는데도 부들부들 떨었다. 이성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광기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 상황 자체였다. 내 몸은 전체가 소리 없는 비명이었다. 심장이 마치 스스로 말을 하는 것처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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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를 위해 썼을 뿐인 이 일기를 사람들은 몹시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움이 바로 나의 자연스러움이다. 정신의 생애를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외에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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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곧 내 꿈인지, 혹은 내 꿈이 곧 삶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에게 삶과 꿈은, 서로에게 교차하고 뒤섞이며 서로가 서로의 내부로 침투하여 내 의식의 성분을 형성하는 두 요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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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그것은 하나의 소음으로, 사물의 텅 빈 어둠 속에서 새로운 소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희미한 울부짖음이 되고, 도로 표지판들이 흔들리며 덜컹거리는 소리를 동반한다. 그러다 갑자기, 공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미친 듯이 울부짖다가, 모든 것이 몸을 떨면서 흔들림을 멈춘다.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 침묵이 자리 잡는다. 이미 휘발되어버린 또 다른 공포를 알아차린 둔중한 공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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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누군가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이미지를 사랑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상, 즉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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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뭐야? 나도 읽어볼래!
너무 좋았어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나는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 하지만 내 삶에 관해서라면 다르다. 그러므로 매 순간 존재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 스스로 멈출 때까지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 속에서 살면 된다.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아아.. 이런 곳에는, 이런 곳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아.
수도사가 수도원 바라보면서 하는말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