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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한의 여류시인, 스물 일곱 송이 꽃이 서리 맞아 시들다
조선 역사상 신사임당과 더불어 조선 중엽 사대부 남성 위주 문단 세계에서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시에 상당한 경지에 오른이가 있었으니 바로 그녀가 허난설헌(許蘭雪軒) 이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이름은 허초희(楚姬), 자는 경범이며 호는 난설헌.
조선조 국문학 사상 여류 시인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는 허난설헌은 우리에게
‘홍길동전’의 저자로 이미 유명한 허균의 손위 친 누이가 됩니다.
부친과 두 오빠 허성, 허봉 그리고 남동생 허균과 난설헌을 비롯한 허씨 집안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집안으로 인정받던 문벌이였고 서애 유성룡도 일찍이 ‘허씨
문중에 어찌 그리 기재가 많은고’라고 탄식했다고 할정도 명성이 대단했죠.
당시 조선 사회의 여성 억압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허난설헌은 친오빠와 그의 친구
손곡 이달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자유롭게 글공부를 하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미 8세 때에 ‘백옥루상량문’ 이라는 시를 지어 세상을 한바닥 크게 놀라게 하였죠.
하지만 허난설헌의 시인으로서의 길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습니다.
14~15세 무렵에 한 살 위인 안동 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혼인하였고 그 이후로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의 박대, 남편과의 불화, 규방이라는 폐쇄된 곳에서 겪
게되는 억압과 자유에 대한 박탈감, 자신의 뛰어난 재주를 내보이지 못하는데에
서 오는 상실감과 좌절...
특히 남편 김성립은 자신보다 똑똑했던 아내에 대한 열등감으로 허난설헌을 외면
하고 박대하였고 오랫동안 글 공부에만 매달리며 벼슬 자리 하나 변변치 못하던
남편에게서 아무런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한 허난설헌은 시인으로서는 물론이요,
한 남자의 여자로서도 고달픔을 겪게됩니다.
게다가 바느질이나 살림보다 독서와 글짓기를 좋아하는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시선은 고울수 없었고 시가에서는 허난설헌을 크게 미워하고 시기합니다.
게다가 친정에도 한바탕 난리가나죠. 허엽,허성,허봉등은 어질고 직언을 잘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정계에 적이 많았고 허균도 경솔하고 경박하
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 후에 그녀가 겨우 18세 때 아버지 허엽이 객관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고 오빠 허봉은 그로 3년뒤 귀양을 갔으며 귀양에서 풀려난 뒤에도
삶을 오래 누리지 못하고 곧 죽습니다. 이어 허균또한 귀양을 가게되죠.
“허난설헌의 가슴에 맺힌 한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이 넓은 세상에 하필 조선에
태어났는가. 또 하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마지막으로 왜 수많은 남자 가운데 김
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녀는 여자에게만 강요되는 심한 굴레를 이렇듯
한탄하였다. 어쨋든 그녀에게 결혼생활은 속박과 장애일 뿐이였다.”
남편과 시댁의 박대와 무관심, 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문인으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가해지는 제약에 대한 허난설헌의 한이 어느정도만큼이였는지를 알 수 있겠죠?
또한 남편을 직접적으로 원망한 시구도 있습니다.
“원컨대 이승에서 김성립을 이별하고/죽어서 길이 두목지(杜牧之)를 따르리라”
안 그래도 결혼 생활은 물론 친정의 일까지... 난설헌의 삶은 고달프고 나날이 힘들어져만
가는데 그보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마지막 의지할 곳이었던 두 남매가 어린나이에 연이
어죽고 뱃속에 품었던 아이까지 세상에 나와 빛 한 줄기 조차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여기가 허난설헌의 묘인데 오른쪽 귀퉁이에 보면 작은 묘가 두개 붙어있죠?
저게 바로 허난설헌의 어린 두 자식의 묘입니다. 가슴이 아프죠...
결국 모든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는 고작 27세(1589)의 젊디 젊은 나이에 그만
꽃다운 생애를 마감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기 전에 유언으로 그동
안 자신이 써두었던 시문을 모조리 태워버리라고 합니다. 따라서 허난설헌이 지
었던 그 주욕같은 시편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허난설헌이 죽기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며 지은 시가 바로 ‘몽유광상산’이라는 다음의 시입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넘노니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와 어울렸구나
아리따운 연꽃, 스물 일곱 송이
붉게 떨어져 달밤 서리에 싸늘하네
‘스물 일곱송이 연꽃 붉게 떨어진다’에서 이미 허난설헌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은 부인이 죽은 바로 그 해에 과거에 급제하고 바로 남양 홍씨
를 부인으로 맞아들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병을 막으러 나섰다가 31세의 나이로
난설헌 못지않게 젊은 나이로 요절합니다.
그런데 재혼한 탓에 남양 홍씨와 함께 합장되고 허난설헌은 죽어서도 홀로 묻히게 되죠.
바로 왼 쪽 등지에 어릴 때 죽은 가엾은 자신의 두 자식을 초라하게 거느린채로...
또 허난설헌의 시 세계를 잠시 엿보자면 ‘보허사’라는 시가 있는데 아래 시는
보허사의 일부입니다.
난새를 타고 한밤중 봉래도(蓬萊島: 신선의 세계를 의미)엘 내려서
기린 수레 천천히 올라타고 향기론 풀잎을 밟는다
바닷바람이 불어 벽도화 가지를 꺾었으니
구슬 쟁반엔 가득 신선의 과일을 따다 담았네
무지개 치마 위에 가벼운 옷 얹어 입고
학의 등에 올라타 찬 바람 내며 자부로 돌아오네
바다엔 달빛이 밝고 은하수도 스러졌는데
옥퉁소 소리 속에 색구름 피어오르누나
허난설헌의 한시 작품을 보면 두드러지는 것이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며 현실을
초월하려는 염원이 강하게 드러나는것인데 주로 가정적인 불운을 현실적으로 도피
하고 싶어하는 강한 열망이 선계(仙界)라는 상징적 공간에 담겨 나타나죠.
허난설헌이 자신에게 모질었던 세상에 얼마나 한을 품고 서러워했을지는 알만도 하죠?
또한 이런 시도 있습니다.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예쁜 배를 매었네.
물 건너 임을 만나 연꽃 따 던지고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 반나절 부끄러워했네
채련곡 이라는 시인데 여기서 연꽃이란 허난설헌이 간절히 바라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남편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했던 허난설헌의 간절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도드라
지는 작품이죠. 지봉유설을 지은 이수광이 이 시를 보고 ‘음탕한 까닭에 문집에 실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 시를 통해 허난설헌도 결국 순수한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던 여린 소녀
이자 여자였음을 알수있죠. 너무너무 안타까운 허난설헌의 삶...
왜 하필 조선에서,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났으며 왜 하필 남편은 김성립이였는가...
스물 일곱의 젊은 나이에 자신이 그토록 선망하던 신선들의 세계로 떠나버린 허난설헌의
기구했던 삶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의미로 오늘 밤 허난설헌의 한시를 찾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출처: 시구 및 참조 자료-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고독과 한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편 中, 저자 이지영 정병헌
NAVER 지식 in 및 백과사전, 사진자료 출처 네이버 포토 및 블로그
이런 글은 자주 써보지 않았을뿐더러 저도 막 방금 책 읽고 감명받아서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이라 글 흐름이 엉뚱하거나 시편 원작 등에 살짝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규 ㅠㅠ
허난설헌을 처음 접해보시는 분들을 위한 글이니 그래도 그냥 재밌게 술술 읽어주셨으면 하긔!
첫댓글 진짜..고전문학공부할때마다..같은여자로써마음이좀아파요ㅠㅠ
진짜 시대를 잘못타고난... 지금 이라면 알파걸 소리들을텐데 여기서도 남자의 열등감은 씨밤
한국사 전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ㅠㅠㅠㅠㅠㅠ
진짜 안타깝죠 지폐에 신사임당보다 더 어울린다고 생가하는데
허난설헌 진짜 대단한 분 같은데 ㅠㅠ 문학 선생님한테 얘기들을때 마다 항상 안타까웠어요 실력으로 보면 최고인 것 같은데
담아갈게요 고마워요
허난설헌이 자식들 죽고나서 지은 시보고 울었떤 기억이 나네요. 두 넋은 서로 놀고 있으려나, 이런구가 들어간 거였는데 진짜 너무 슬펐음.
문학시간때 친구랑 맨날 남편이 개차반이라고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뭐든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야 하는 것 같음..
27살에 왜 돌아가신거에요? 젊은나이에 ㅠㅠㅠㅠ
악재가 겹치고 평소에 마음에 한도 쌓이고... 이것저것 마음병으로 죽은거같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