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적 애착단계에 머무는 한국교회 낯가림을 하는 성도들
입력 : 2011년 02월 27일 (일) 06:23:36 / 최종편집 : 2011년 02월 27일 (일)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 동안 영양을 공급받아 이 세상의 한 인간으로 살아갈 모든 육적조건을 갖추어 세상에 태어 납니다.
태어난 이후에도 수유기동안 엄마의 젖은 아이의 생명원입니다.
엄마의 가장 아름다운 젖무덤에 달린 젖꼭지 유두에서 뿜어내는 젖을 먹고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먹고 아이는 그렇게 자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의 순진무구한 모습일 것이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성애적인 모습이 바로 생태적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강한 것 같지만 인간만큼 나약한 동물은 없습니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지 마자 저 앞가림은 다 하는데 유독 인간만은 저 하나 앞가림하기까지는 십 수 년이 걸린다는 것이지요. 그동안 먹이고 잠재우고 공부시키는데 부모는 온 정성을 다 붓습니다.
인간발달의 단계에서 보면 학자들의 따라 차이가 있으며 그리고 개인의 유전자적 특성과 성장환경에 따라 독특하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만 일반적으로 연령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발달단계를 구강기(0~1세) 항문기(1~3세) 남근기(3~6세) 잠복기(6~12세) 생식기(12세 이후) 으로 나누고 에릭슨은 더 세분하여 출생에서 즉음에 이르기 까지 8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피아제는 인지발달단계 감각운동기(0~2세) 전조작기(2~7세) 구체적 조작기(7~11세) 형식적 조작기(12세 이후) 등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전문적인 인간의 발달단계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에 여기서 그만하고 우리가 처해 있는 교회란 공간으로 되돌아 가보기로 합니다.
역시 우리의 신앙 발달에도 이런 육체적 발달단계가 있는 것처럼 신앙적인 발달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이런 신앙적 발달단계를 평소 생각하고 있던 차 필자와 생각을 같이하고 있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신앙적 발달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분은 미국 신학자 제임스 파울러가 확립한 신앙의 6단계가 있습니다.
그분의 신앙발달의 여섯 단계란 1 직관·투사신앙 2 신비·문자신앙 3 합성·관례신앙 4 개별화·성찰신앙 5 통합신앙 6 우주적 신앙의 단계입니다. 신앙발달 단계 이론은 피아제의 인지발달, 콜버그의 도덕발달, 에릭슨의 사회심리 발달을 기초로 해 신앙발달이론을 확립했습니다. 이를 기초로 해서 학문적인 차원의 접근 보다는 교회생활 가운데 피부적으로 느끼는 현장을 말해 볼까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아이가 최초로 접촉하는 대상은 엄마의 얼굴이고 엄마의 젖무덤이 있는 품입니다. 본능적인 생명의 유지능력을 갖춘 구강기 인 셈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영아라고 정의 합니다.영아는 엄마의 젖을 본능적으로 빨면서(빨기 반사) 엄마와 애착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애착이란 영아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강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뜻하며 이는 사회성 발달의 기초가 되는 심리적 정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애착의 정도는 엄마를 기준점으로 점점 상대화 되어 가는 것이지요. 영아가 성장하면서 엄마이외의 사람에게 가장 먼저 애착관계의 유무인 낯가림을 시작합니다.
엄마주위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시작해 애착의 깊이와 거리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아가 엄마와 애착을 형성하게 되면 엄마의 품 외부에서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고개를 돌리거나 우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을 낯가림 반응이라고 합니다.
이 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예수그리스도의 머리가 되는 유기체적 공동체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자기를 인도해준 사람과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의 영향력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남을 받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영적이 영아입니다.
이때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자신을 인도 해준 사람과 성도들 그리고 가장 많이 애착을 형성하는 부분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입니다.
문제는 그런 교회와 목사가 바른 교회, 목사이냐 아니면 사이비 집단이냐, 삯군 목사이냐에 있습니다.목사는 영아인 성도의 영적인 엄마기능을 하게 됩니다.
신앙이 성장하는 시작단계에서 목사의 역할은 육적인 엄마의 중요한 역할처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어떤 목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영아인 성도의 신앙 발달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발달단계에 있어서 대부분 장애는 유전적인 차원에서 장애를 보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신앙 발달단계에서 장애를 보이고 있는 것은 대부분 후천적인 원인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유전적인 발달장애는 잘 알다시피 언어장애, 자폐증, 근육 질환, 지적 장애 등이 있습니다.육적 발달장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뇌가 고르게 발달하지 못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염색체 이상이나, 미숙아 등의 생물학적 요인과 임신 시의 음주, 약물복용, 부모와 격리된 환경, 등의 환경적 요인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역시 신앙 발달장애도 그렇습니다. 영적 발달장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의 가치를, 복음의 가치가 제대로 고르게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의 신학적, 성경적 의식수준입니다.
이는 목사들이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가치 기준인 돈에 너무 함몰되어 있어 성도들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하나님의 공의와 복음이 주는 메시지를 간과하도록 메시지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성도들은 발달장애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대다수의 신자들의 발달단계를 분석하노라면 99%가 구강기의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애착관계를 형성함에 있어 자기 교회목사와 성도들 그것도 자기 구역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애착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그이외의 사람들에게는 낯가림 반응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다른 교회, 다른 목사와 성도들에게는 영적 낯가림을 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낯가림이 발달단계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고착되어 죽을 때 까지 머무른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 해 보십시요. 영아가 자라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고, 점점 대소변도 가리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다음 사회생활하면서 결혼을 해 독립을 시켜 주어야 정상적인 발달단계입니다. 육적인 발달단계는 유전적원인과 특별한 가정환경의 원인이 되지 않으면 거의가 이런 정상적인 발달단계를 거칩니다.
허지만 교회 신앙발달단계는 이런 정상적인 발달단계를 육적인 발달단계와는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 목사들은 성도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싫어합니다 즉 영적 발달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이지요.
성도들이 너무 똑똑하면 목회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 그 원인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육적 아이는 똑똑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면서
영적인 아이는 왜 바보로만 자라기를 원하는지 말입니다.
이게 안타깝습니다.
히브리서 5장12, 13절의 이 말씀은 신앙의 햇수는 오래되어 장로 권사가 되었지만 그 신앙연륜에 걸맞지 않게 영적으로 미성숙한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교회란 조직 집단생활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만 성경과 복음을 아는 것에는 영아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아처럼 우유나 먹지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영아일 때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합니다. 본능적 반응으로 생때를 지기고 젖을 달라고 울기도 합니다. 돐이 지나고 나면 침도 흘리고 손가락을 빨기도 합니다. 엄마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들이 부모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이와 같은 일들을 반복한다면 발달자체아가 분명하므로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역시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믿은 지가 오래 되었지만 초보적인 신앙단계메 머물며 목사의 품에만 안기기를 좋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빨리 젖을 떼어야 하는데 목사들이 오히려 젖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말 잘 듣는 모범 성도로 칭찬합니다.
만약 자식이 장성하여서도 부모 말에 무조건 순종하고 말잘 듣는다면 그건 좀 이상합니다. 자신의 주관이 없다는 말이지요. 정신지체가 아니고서는 무조건 부모의 말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와의 의견충돌로 때로는 논리적으로 대들기도 하고 반박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자신의 주체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들은 믿은지 오래되었으므로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저 목사의 설교나 가르침을 받는 젖이나 먹는 영아수준 어린이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하는 것은 목사의 책임이 큽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한다 함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의 신앙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목사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칭찬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복음의 실천은 단단한 식물입니다. 목사가
가공한 설교는 먹기 좋은 젖의 수준입니다.
영아가 자라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는 발달단계를 거쳐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성도들 역시 신앙의 발달단계에 따라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세상의 징조를 분별할 줄 알고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평화와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어지는 일에 고민하게 되고 기도하게 되어 지는 것이 영적 발달의 연속성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교회와 성도들에게 낯가림 현상을 보이고 목사에게만 , 친한 성도들에게만 유아적 애착관계에만 머물고 있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으면 합니다.
................................................
세상의 육적인 지도자도 자기 제자에게 멋진 선수가 되도록 지도 하는데.........
(사 5: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사 5:24)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사 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