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무엇이 지금, 책을 책이게 하는가’
설형문자(楔形文字)에서 전자책(Kindle)까지,
책의 영속성을 환기하는 다채로운 책의 역사
디지털 시대, 새로운 역사 연구
책의 역사에 관한 한 최신 명저
인류의 역사와 지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책의 역사를 총망라한 역작
세계의 일류 학자 16인이 모여,
시대별 문화와 사회에 미친 책의 역사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저자 소개
제임스 레이븐 (James Raven)
영국 학술원 회원FBA. 영국 케임브리지의 매그덜린대학 펠로우이자 ‘케임브리지 도서 프로젝트 기금Cambridge Project for Book Trust’ 총책임자. 에섹스대학 근대사 명예교수. 저서로 『책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the History of the Book?』(2018), 『책의 풍경: 1800년 이전 런던의 인쇄 및 출판 지형Bookscape: Geographies of Printing and Publishing in London before 1800』(2014), 『도서 산업: 1450~1850년 서적상들과 영국 도서 무역The Business of Books: Booksellers and the English Book Trade 1450-1850』(2007, ‘책의 역사’ 부문 들롱상 수상), 『잃어버린 도서관들: 고대 이래 책의 파괴Lost Libraries: The Destruction of Book since Antiquity』(2004), 『런던 서적상과 미국 고객: 1748~1811년 유럽과 미국의 문예 공동체와 찰스턴 도서관협회, 1748~1811London Booksellers and American Customers: Transatlantic Literary Community and the Charleston Library Society, 1748-1811』(2002) 등이 있다.
엘리너 롭슨 (Eleanor Robson)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중동 고대사 교수. 영국 예술 인문 연구위원회AHRC와 글로벌 챌린지 연구기금GCRF으로부터 자 금을 지원받아 나레인 네트워크Nahrein Network를 운영하면서 분쟁 이후 이라크 및 주변국에서의 고대 유물과 유산, 인문학 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설형문자를 사용하는 세계에서 지식인과 학자가 처해 있었던 사회적 · 정치적 맥락, 그리고 지난 두 세기 동안 고대 중동이 해석된 방식에 특히 관 심이 많다. 이 주제에 관한 다수의 저서 중 근간으로는 『옥스 퍼드 핸드북: 설형문자 문화The Oxford Handbook of Cuneiform Culture』(2011, 캐런 래드너Karen Radner와 공동 편집)와 『고대의 지식 네트워크: 기원전 제1천년기 설형문자 학문의 사회적 지 형Ancient Knowledge Networks: A Social Geography of Cuneiform Scholarship in the First Millennium BC』(2019)이 있다.
목차
연표
1장 서문
2장 고대 세계
3장 비잔티움
4장 중세 및 근대 초의 동아시아
5장 중세 서유럽
6장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7장 정보를 관리하다
8장 이슬람 세계
9장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
10장 남아시아
11장 산업화
12장 근대의 중국ㆍ일본ㆍ한국
13장 세계화
14장 변형된 책들
약어와 용어 | 독서안내 | 도판 출처
역자 후기 | 찾아보기
책 속으로
우리는 대개 책이라는 말의 뜻을 안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낱말, 표지, 책등이 있다. 삽화가 실리기도 한다. 참고 도서라면 목차와 색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책이라고 하면 직감적으로 인쇄본을 떠올린다. 그리고 책이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되고 읽힌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잠시 각자의 집에 있는 책이나 어느 유서 깊은 저택의 서가에 빼곡히 꽂힌 책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깨닫는다. 읽히거나, 다시 읽히거나, 어쩌면 한 번도 펼쳐지지 않는 책은 우리 삶에 친숙한 양식이자 우리를 위로하는(또는 나무라는) 양식이 된다. _21쪽
책의 역사는 다채롭고 적어도 5000년을 거슬러올라간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책 형식들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 책의 역사는 단지 종이 코덱스나 인쇄본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책의 역사는 세계 여러 다른 지역의 여러 다른 민족이 여러 다른 이유에서 여러 다른 방식으로 여러 아주 다른 결과를 빚으며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순환시키고 검색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다. 기원전 33세기는 일부 학자들이 책의 정의를 충족시킨다고 주장하는 가장 오래된 대상물의 추정 연대다. _25쪽
현대에 책의 역사는 주로 인쇄물의 영향과 특징에 관한 논의, 그리고 정기간행물과 신문 같은 현대의 특정 형식에 대한 논의에 치중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낯설고 전 세계적으로 이질적이며 도전적인 형식을 지니는 초기의 책들, 그리고 문맹 사회와 각기 다른 문해율을 보이는 사회와 세계 도처의 책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필사본과 쓰이고 새겨지고 각인된 책 형식들의 지속적이고 변화무쌍한 의미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_53쪽
흔히 비잔티움이라고 하면 빛나는 황금색을 배경으로 성인의 형상이 등장하는 정교한 종교 예술품을 떠올린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필사본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그리스, 라벤나 지역 비잔티움 교회의 유명한 모자이크화 다음으로 비잔티움 문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창작품이다. 동로마 책의 진화사를 살펴보는 일은 중세 비잔티움 시대의 호화로운 예술품들의 이면에 자리한 정신성mentality의 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비잔티움 시대는 이 예술품들의 특징적인 양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언어와 심상으로 구현했다. _97쪽
동아시아는 전 세계 책 문화에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기술을 공헌했다. 동아시아에 서도 텍스트를 생산ㆍ복제하는 초기 방식은 필사, 즉 손으로 베끼기였다. 중국ㆍ한국ㆍ일본은 인쇄가 성행할 때도 필사본 발행을 적어도 근대 초까지 매우 가치 있는 전통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7세기와 13세기 사이에 그들 역시 목판 인쇄술과 점토ㆍ목재ㆍ금속으로 만든 가동 활자 등의 몇 가지 인쇄 기술을 발명했다. _142쪽
유럽 최초의 활판 인쇄공은 아마도 동아시아의 수백 년 된 목판 및 활판 인쇄술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근래에 독일에서 시험적으로 시도된 동판화에 관해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구텐베르크는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자루의 상표나 제단포祭壇布의 장식 무늬 따위에 사용된 목판 인쇄술(과 다른 장치들)에 익숙했을 것이다. 아울러 인쇄기를 고안할 때는 당시 지방에서 흔하게 사용되었던 포도주 압착기의 목제 나사에서 착안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쇄기의 초기 역사는 이처럼 많은 부분이 추측에 근거해 있다. 심지어 구텐베르크가 혁신적인 활자를 만든 방법조차 분명하지 않다. _217~219쪽
책은 텍스트를 전달하고 텍스트는 의미를 전달한다. 앞서 여러 장에서 설명했듯 고대 이래 여러 다른 유형의 책이 정보를 유포하고 갱신해왔다. 현대에는 쉽게 또 당연한 듯이 책과 문학-특히 찬사를 받는 창작 문학-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기초적이고 유용하며 필수적인 지식의 장려ㆍ이해ㆍ창출에 책이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종종 가려지고 만다. 정보성 장르의 범위는 짧은 일람표에서 시작해 교육학적 텍스트, 전기, 역사, 과학 논문과 같은 확장된 서사까지 아우른다. 정보의 수집은 책의 내용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도서관, 기록보관소, 박물관 등 책이나 다양한 자료를 집적해 접근성을 높인 기관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_263쪽
이슬람은 말言의 문화다. 이슬람교도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적은 서기 7세기 초에 신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아랍어로 내려준 계시다. 이 신성한 계시를 충실히 기록하려는 열망 때문에 문자와 책은 이슬람 문화에서 언제나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슬람 문화는 연대기적으로는 8세기부터 현재까지 1500여 년을 아우르고 지리적으로는 스페인 남부와 북아프리카에서 인도네시아 너머까지 세계 전역에 걸쳐져 있다. 이 장은 이토록 광범한 연대적ㆍ지리적 스펙트럼에서 문자 텍스트로서나 물리적 대상으로서 책이 어떻게 발달ㆍ생산되었는지에 관한 풍부한 역사를 추적한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변화, 문해율, 독자층 파악, 그리고 삽화ㆍ채식ㆍ수집ㆍ보존ㆍ서고의 역할 등 중요한 사회적ㆍ지적 질문에 대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_300쪽
1783년 스위스 제네바시, 어느 19세 청년의 침실에 치안판사, 집행관, 의사가 들이닥쳤다. 청년은 방에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터였다. 천장에서 핏방울이 떨어진다고 진술한 아랫집 주민의 신고 때문에 이곳을 찾은 세 사람은 의자에 걸터앉은 젊은 남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뒤통수는 목제 칸막이에 기대어져 있었고 뇌수가 온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시신 뒤로는 침대 옆 탁자에 작은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제목은 『베르테르: 독일어 원작의 번역 소설Werther, traduit de l’allemand』이었다. 치안판사는 보고서에 “책이 펼쳐져” 있고 “페이지들은 피로 뒤범벅되어” 있었으며 청년의 “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런던의 『젠틀맨스 매거진Gentleman’ Magazine』도 비슷한 사건을 보도했다. 이번 희생자는 젊은 여성이었고 자살한 여자의 베개 아래에는 『베르테르』의 영역판이 있었다._337쪽
주요 언어들과 그 서적사는 근대의 여러 지정학적 영역에 다양하게 걸쳐져 있다. 예를 들어 우르두어, 펀자브어, 카슈미르어, 신드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파슈토어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다. 네팔어, 마이틸리어, 보즈푸리어는 인도와 네팔에서, 벵골어와 아삼어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남아시아 책의 역사는-국가적이 아니라-초국가적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_384쪽
유럽과 미국에서 출판은 새로운 기술 발달과 새로이 산업화된 경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인쇄ㆍ제지ㆍ활자 주조ㆍ제본ㆍ삽화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혁신은 생산량을 엄청난 규모로 증대시키고 비용을 절감해줄 광범위한 기술적 진보를 예고했다._425쪽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2012년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코리아 타임스〉의 2013년 3월 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책을 읽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영화관으로 몰려간다”. 일본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2017년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응답자들의 50퍼센트 이상이 책을 읽는 데 ‘0시간’을 쓴다는 예사롭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교육 서적이나 수험서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그리고 ‘쿨 재팬Cool Japan’과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과 한국의 만화가 국내외에서 열렬히 읽히면서 일본의 북오프Book Off와 한국의 알라딘 그리고 인터넷 기반의 아마존 같은 할인 소매점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인쇄 산업이 디지털화와 세계화를 겪고 있는 지금 책의 미래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_515쪽
출판사 서평
“책의 역사에 관한 방대하고 박식하며 철저하게 매력적이고,
풍부한 삽화와 멋지게 제작된 지적인 책이다.”
_〈커커스 리뷰〉
“책의 역사에서 책은 여러 가지 것”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책. 책의 5000년 역사를 집필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 서적사 연구의 석학 제임스 레이븐 교수의 주도로 서지학, 필사, 인쇄, 독서 문화사, 미디어 연구자 등 세계 유수의 학자 16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 세계와 수 세기, 종교와 이념을 아우르는 책의 역사를 한 권에 담는 불가능한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매혹적인 책. 그러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엄격하게 정의된 ‘책의 역사’나 ‘절대적인 책의 역사’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각자 축적된 연구의 토대 위에 나침반을 놓고 저마다 책의 궤적의 여정을 탐험하며 학제 간의 협업으로 탄생한 역작. 『옥스퍼드 책의 역사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the Book』는 출판 환경이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오늘날에 책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원서는 옥스퍼드대학출판부의 야심작으로 교유서가에서 2020년 12월에 출간한 『옥스퍼드 세계사The Oxford Illustrated History of the World』와 같은 시리즈이다. 이 책은 2024년 7월에 출간한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Oxford Handbook of Publishing』와 상보적인 책으로, 책의 역사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 모두 14편의 독창적인 글과 함께 풍부한 삽화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고대 세계부터 디지털 시대인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에 담긴 책들의 역사를 총망라하여 보여준다. 본격적인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배치한 간략한 연표는 지역화된 관점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 서적사를 일목요연하게 압축한다.
결국, 책의 역사의 새로운 의제들은 현대의 세계화된 디지털 세계, 하지만 지적으로나 이념적으로 파편화되어 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계에 말을 건다. 특히 서양과 비서양 비교는 차이와 중첩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즉 상업 출판, 비상업 출판, 기관 출판, 민간 출판 사이의 차이와 중첩, 활판 인쇄, 목판 인쇄, 인그레이빙 인쇄를 비롯한 여러 인쇄 기법을 활용한 책과 책이 아닌 인쇄물의 역할 사이의 차이와 중첩, 각기 다른 생산ㆍ유통ㆍ독서 행위의 상대적인 효율성의 차이와 중첩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점검한다. _「서문」에서
새로운 연구, 다양한 문화권의 시각, 새로운 질문
책의 역사는 집필되고, 인쇄되고, 삽화가 담긴 수백만 부의 텍스트, 그리고 그것의 제작과 배포, 수용의 역사이다. 점토판부터 두루마리, 손으로 쓴 코덱스부터 인쇄본ㆍ팸플릿ㆍ잡지ㆍ신문, 그리고 양피지 서적에서 디지털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책이 있다. 책의 역사는 유통과 전파의 다양한 방법에 관한 역사이며, 이는 연안과 대양 횡단 수송부터 도로ㆍ철도ㆍ항공 그리고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온갖 운송의 혁신에 의존한다. 아울러 책의 역사는 학술 토론과 개개인의 학습부터 공공 교육과 오락에 이르기까지 읽기와 수용의 다양한 방식에 관한 역사이다. 또한 그것은 제작, 장인의 기술, 전파, 읽기, 토론의 역사다. 그러나 책의 역사는 단순히 물질적 형식에 관한 질문이 아니며, 읽기와 수용의 역사인 것만도 아니다. 더 큰 질문은 텍스트의 생산과 배포, 그리고 수용이 가져오는 효과, 그러니까 책들이 스스로 역사를 만든 방식에 관한 것이다. 시대와 지리에 따라 뚜렷하게 나뉘는 이 책의 각 장은 이러한 목적에서 책이 그것이 속한 시대의 이야기와 맺는 관계에 관해 예리하고 고무적인 통찰을 내놓는다.
필연적으로, 책의 역사는 우리의 급변하는 미디어 세계에 접속한다. 디지털 인문학의 변혁적인 연구 잠재력과 결합한 새로운 기술들은 책이 현재에는 무엇이고 과거에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우리의 가정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전한다. _「서문」에서
무엇이 책을 책이게 하는가? 문자 체계나 인쇄술 같은 기술은 그동안 책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규정해왔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더는 책이 물질적 형식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코덱스라는 개념, 파피루스나 양피지나 종이를 접어 만든 물건이 책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은 무너지고 있다. 데이비드 미첼과 필립 풀먼 같은 작가들이 트위터에 소설을 쓰고, ‘구글 북스’가 저작권의 혼란을 야기하는 상황은 출판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전과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변혁에 대응할 수 없다. 그러나 기존 질서가 무너진 상황은 오히려 창의적인 가치를 창출할 기반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책은 책이 죽은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옥스퍼드 책의 역사』는 책의 역사가 한 유형이 아니라 여러 유형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문학, 저널리즘, 기술 연구 등 책의 역사는 세계의 폭넓은 학문과 관계하며 발전해왔다. 출판이 위기에 빠진 시대에 오히려 책의 영속성을 환기하는 이 책은 디지털 시대의 변혁에 대응할 방법을 서적사로 짐작해본다.
“‘책이란 무릇 이러해야 한다’라는 우리의 관념은 어디에서 기원하며 어떻게 변천해왔을까.
『옥스퍼드 책의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매우 성실한 답변이다.” _「역자 후기」에서
책이라는 의사소통의 세계사로
오늘날의 범세계적 문화를 아우르다
1982년, 로버트 단턴은 에세이 「책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책의 역사를 “인쇄물을 통한 의사소통의 사회 문화사”로 규정했다. 21세기에 들어서 중세 연구가와 고문서학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책의 역사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서적사를 주제로 국가적 차원의 협력 사업들을 기획해 시행했다. 최근에 서적사의 비교 연구는 비유럽의 관점, 북미 외 지역의 관점, 탈식민주의 시대의 관점으로 확장된다. 지금까지 책의 역사에서 당연시되어온 명제들은 이제 비교 연구의 관점에서 유용한 탐구 대상이다. 이후 다양한 분과의 학자들은 책이 지닌 의미와 기능을 세계적인 관점으로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책의 역사와 관련한 전 세계적 활동에 주목한다. 르네상스, 종교 개혁,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산업화 등 유럽과 북미에 관련한 사건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슬람 세계 속 아랍 문자의 원리와 쿠란 필사본, 19세기 중후반에 베트남과 라오스 등 남아시아에서 인쇄업이 발달한 양상(가령 1870년대부터 수십 년에 걸쳐 봄베이가 이슬람교 텍스트와 통속적인 발라드 작품의 일차 공급처가 되었는데 이곳에서 나온 서적에는 말레이어가 아랍 문자의 자위[Jawi] 변이형으로 표기되었다)을 살펴본다. 이 책의 12장에서는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에서 책이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이야기한다. 목판 인쇄본과 활자 인쇄술을 지나온 세 나라의 출판 산업은 1990년대 이래 인터넷과 전자책의 도전에 격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책 판매량이 감소하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코리아 타임스〉의 2013년 3월 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책을 읽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영화관으로 몰려”가고 있다. 이 책은 동아시아 나라들의 출판 산업이 디지털화와 세계화를 겪는 상황을 분석하며 책의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이다.
‘책의 역사는 셀 수 있는 책들의 역사를 넘어설 것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세계에 책의 시간을 재확인하기
제록스 복사기가 불티나게 팔리던 1966년, 마셜 매클루언은 제록스의 기술인 제로그래피(xerography)가 “역사상 가장 놀랍고 전복적인 전기적 혁신”이라고 말했다. 매클루언은 이 기술이 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저자와 독자를 불안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사기 혁명은 누구나 책을 분해해 새 책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을 상징했다. 1992년에 서지학자 D.F. 매켄지는 〈서지학 협회Bibliographical Society〉 기념사를 마치며 “‘책(the book)’의 역사는 셀 수 있는 책들(books)의 역사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변형된 책들’의 새로운 물결이 미래의 해안에 밀려듦에 따라 “축음 스테레오테크”와 “주머니에도 들어가는 작은 축음-오페라 장치”가 그것들의 선조인 “인쇄하고 제본하고 그 작품의 제목을 선언하는 표지와 함께 장정한 종이 묶음들”과 점점 뒤엉켜 온 것처럼, 코덱스의 부호들은 앞으로도 유연하게 남아 변이를 거듭할 것이다._580쪽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책이 들어선 상황에서 우리는 책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상황과 뒤얽힌 수많은 산업을 이해해야 한다. 책과 관련한 변화들은 디지털 혁신이 시작하면서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출판계를 뒤바꿀 많은 변수가 아직도 그림자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많은 책이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인쇄된 현재 상황에서 인쇄물의 장기적 성장세는 멈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성장세는 전자책이 폭발적으로 팔린 상황에 영향받은 것이다. 전통적인 코덱스 개념에서 비롯한 디지털 가공품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독자들은 굿리즈닷컴(Goodreads.com)과 같은 인터넷 도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모여 책을 이야기한다. 이 사이트에서 구매자가 책에 매긴 평점은 한때 비평가와 베스트셀러 목록이 수행한 역할을 대신한다. 이제 독자는 “긴 글은 전자책으로, 뉴스나 메시지는 스마트폰으로, 잡지는 태블릿으로 읽는다”. 기술 발전과 연동하는 전략적인 읽기가 가능해진 시대에 이 책은 책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을 모색한다. 언제나 책 생산에는 새로운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출판 형식 사이에 수렴하고 발산하는 잠재성을 탐색했다. 역사적으로 책은 새롭고 논쟁적이고 혼종인 것을 추구해왔다. 책의 역사를 탐구하는 행위는 책이 새로운 가치와 관련해온 시간을 지켜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