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어선 간웅(奸雄) -
이날 밤은 달이 무척이나 밝았다.
두 사람은 밤늦게 한가한 객줏(客主)집에 들었다. 조조(曹操)는 밥과 술을 마시기가 무섭게 자리에 눕더니 이내 골아 떨어졌다.
죄없는 사람을 네댓 이나 죽였건만 아무런 고민(苦悶)도 없이 태연(泰然)히 자고 있었다. 실(實)로 대담무쌍(大膽無雙)한 태도(態度)다.
(지금이라도 나는 무고(無故)한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도 일말(一抹)의 죄책감(罪責感)조차 없는 저 간악(奸惡)한 조조(曹操)를 얼마든지 찔러 죽일 수가 있다. 차라리 저 자를 죽여 없애는 것이 사람의 도리(道理)가 아닐까?)
진궁(陳宮)은 자고 있는 조조를 바라보면서 몇 번이고 칼자루를 잡았다 놨다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조(曹操)란 저 자는 충신(忠臣)이 아니라 간웅(奸雄)임이 분명(分明)하다. 이런 자는 후환(後患)이 없도록 진작 죽여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어지러운 세상에는 조조(曹操) 같은 간웅(奸雄)도 필요(必要)하기에 천지신명(天地神明)께서 저런 자를 일부러 세상(世上)에 내보낸 것이 아니런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
(나는 저자처럼 부질없이 남의 생명(生命)을 빼앗을 생각을 말고 차라리 조조(曹操)와 헤어져서 내 갈 길로 가는 것이 현명(賢明)하리라.)
이렇게 진궁(陳宮)은 스스로를 합리화(合理化) 시키면서 조조(曹操)가 곤하게 잠든 틈에 말을 타고 동군(東郡)을 향하여 미련(未練)없이 길을 떠났다.
새벽이 되어 조조(曹操)가 잠을 깨어 보니 진궁(陳宮)은 말과 함께 보이지 않았다.
(허허허... 진궁(陳宮)이 어제 일로 나를 믿지 못하고 결국(結局)은 떠나 버린 모양이로구나! 할 수 없지 떠날 사람은 떠날 수밖에! 허허허...)
조조는 먼 하늘을 우러러보며 쓴웃음을 웃고 나서 말을 타고 진류(陳留) 땅으로 향하였다.
며칠 후에 조조(曹操)는 고향(故鄕)에도착(到着)하자 부친(父親)을 찾아가 자신(自身)이 처한 곤경(困境)을 말하고 나서,
"상황(狀況)이 이런 만큼 이제는 의병(義兵)을 규합(糾合)하여 동탁(董卓)을 제거(除去)하고 천하대세(天下大勢)를 쥐어 볼 생각입니다." 하고 아버지 조숭(曺嵩)에게 자신(自身)의 심경(心境)을 솔직(率直)하게 털어놓으니 조숭(曺嵩)은 오랫동안 심사숙고(深思熟考)하다가,
조숭(曺嵩)
"네가 실(實)로 어마어마한 꿈을 꾸고 있구나. 그러면 이 아비가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느냐." 하고 물었다.
"제 꿈을 실현(實現)하려면 돈이 필요(必要)합니다. 아버님께서 군비(軍費)를 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아비가 무엇을 아끼겠냐마는 막대(莫大)한 군비(軍費)를 아비가 계속 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님께서 부호(富豪) 몇 사람을 저에게 소개(紹介)해 주십시오. 우리 가문(家門)이 승상(丞相) 조참(曺參)의 후손(後孫)으로서 한 왕실((富豪)漢王室) 대대(代代)로 명문거족(名門巨族)인 것은 세상(世上)이 다 아는 일이니까 친분(親分)있는 부호들에게 말하면 군비(軍費)를 조달(調達)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不可能)한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면 위홍(衛弘)이라는 사람에게 말해 보기로 할까?"
"위홍은 어떤 사람입니까?"
"위홍(衛弘)은 하남(河南)에서는 첫째 가는 거부(巨富)인데 그 사람은 충의(忠義)를 중(重)히 여기고 재물(財物)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라 그 사람이 응(應)해 주면 군비(軍費)는 염려(念慮) 없을 것 같구나."
"그럼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너는 모든 일을 너무 간단(簡單)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구나."
"큰일은 오히려 간단(簡單)하게 해치우는 것이 대사(大事)를 성공(成功)하는 비결(祕訣)이기도 합니다."
"허허허, 그 말에도 일리(一理)가 있는걸!" 조숭(曺嵩)은 웃으면서 아들의 말에 응낙(應諾)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두 사람은 거부(巨富) 위홍(衛弘)을 자신(自身)의 집으로 초대(招待)하여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술이 몇 순배(巡杯) 돌았을 때, 조조(曹操)는 위홍(衛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동탁(董卓)이 황제(皇帝)를 맘대로 갈아내고 권세(權勢)를 휘두르며 백성(百姓)들을 도탄(塗炭)에 몰아넣고 있으니 한(漢)나라에는 지금 주인(主人)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救)해 볼까 하는데 힘이 부족(不足)하니 대인(大人)께서 저를 많이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조조(曹操)는 위홍(衛弘)이 필연(必然)코 자신(自身)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어조(語調)로 당당(堂堂)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의외(意外)로 위홍(衛弘)은 지극至極히 간단(簡單)하게 대답(對答)한다.
"나도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으나 다만 천하(天下)를 구(救)할 영웅(英雄)을 만나지 못했던 것뿐이라네 그런데 맹덕(孟德 자네가 그런 뜻을 실행(實行)에 옮기겠다니 내 어찌 도움을 마다하리."
조조(曹操)는 위홍(衛弘)의 이 같은 태도(態度)에 크게 기뻐하면서,
"옛? 저의 부탁(付託)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무렴, 군비(軍費)는 내가 담당(擔當)할 테니 승산(勝算)이 서거든 대사(大事) 를 도모(圖謀)해 보도록 하게."
"군비(軍費)만 조달(調達)해 주신다면 하남(河南) 천지(天地)를 의병(義兵)으로 뒤덮을 자신(自信)이 있습니다."
조조(曹操)는 그날부터 의병을(義兵) 대대적(大大的)으로 모집(募集)하기 시작(始作)하였다. 그리고 커다란 백기(白旗) 하나를 만들어 높이 세웠는데, 그 깃발에는 충의(忠義)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 놓고 각지(各地)의 장군(將軍)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문을(檄文) 띄웠다.
[격문(檄文)]
대의(大義)로서 천하(天下)에 고하노니 동탁(董卓)은 하늘과 땅을 속이고, 천자(天子)를 죽이고, 나라를 망쳤다. 이로 인하여 황궁(皇宮)은 피폐(疲弊)해지고 매사(每事)에 음모(陰謀)와 죄악(罪惡)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에 나는 천자(天子)의 은밀(隱密)한 뜻을 받들어 의병(義兵)을 모아 동탁(董卓)의 무리를 몰아내려 한다. 원컨대 충의(忠義)의 용사(勇士)들은 나와 함께 위로는 황실(皇室)을 살리고 아래로는 백성(百姓)을 구(救)하자. 격문(檄文)이 당도(當到)하는 즉시(卽時)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아끼는 분연(奮然)한 마음을 한테모아 역적(逆賊)의 무리를 쳐 없애는데 힘을 보태기 바란다. - 교위(校尉) 조조(曹操) -
사람이 비록 영웅(英雄)의 자질(資質)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하늘의 때와 땅의 이로움을 비롯하여 사람과의 화합(和合)을 얻지 못하면 영웅(英雄)의 기세(氣勢)를 떨쳐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人間) 조조(曹操)는 격문(檄文)을 돌림으로서 이때 <하늘의 때>를 잡았던 것이다.
각지(各地)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있던 지역(地域)의 영웅(英雄)들은 이 격문(檄文)을 보고 속속(續續) 하남(河南)으로 모여 들었다. 모여든 사람 중에는 수병(水兵)을 거느리고 있던 지방의 토호(土豪)도 있었는데 양평(陽平) 출신(出身)인 악진(樂進)과 산양(山陽) 출신인 이전(李典) 같은 사람들은 병사(兵士)를 삼천여 명 씩이나 데리고 왔다. 그리하여 조조(曹操)는 악진(樂進)과 이전(李典) 두 사람을 좌우 군(左右 軍) 장전리(帳前吏 : 군기장)을 삼았다.
다음날에는 예주(豫州) 패국(沛國) 초현(譙縣) 출신의 하후돈(夏侯惇)이 그의 동생 하후연(夏侯淵)과 함께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찾아왔고, 다시 며칠 후에는 조조(曹操)의 족제(族弟 : 성과 본이 같은 항렬의 아우뻘인 사람)인 조인(曺仁)과 조홍(曺洪) 형제가 각각 군사 천여 명을 데리고 달려왔는데, 그들은 모두가 병마(兵馬)와 싸움에 능숙(能熟)한 무장(武將)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찍이 동탁(董卓)의 횡포(橫暴)에 분개(憤慨)하여 고향(故鄕)으로 낙향(落鄕)했던 발해(渤海) 태수(太守) 원소(袁紹)가 동탁(董卓)을 토벌(討伐)한다는 소식(消息)을 듣고 기꺼이 힘을 보태겠다고 군사(軍士) 만여 명을 이끌고 조조(曹操)에게로 달려온 것이었다.
형편(形便)이 이렇다 보니 각(各) 지역(地域)에서는 군비(軍費)를 조달(調達)해 주겠다는 부호(富豪)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많아져서 위세(威勢)는 나날이 등등해졌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모여온 영웅(英雄)들은 아래의 규모(規模)에 이르게 되었다.
제(第) 일진(一陣), 남양 태수 원술 (南陽 太守 袁術)
제(第) 일진(二陣), 기주 지사 한복 (冀州 刺史 韓馥)
제(第) 삼진(三陣), 예주 자사 공주 (豫州 刺史 孔紬)
제(第) 사진(四陣), 연주 자사 유대 (兗州 刺史 劉岱)
제(第) 오진(五陣), 하내군 태수 왕광 (河內郡 太守 王匡)
제(第) 육진(六陣), 진류 태수 장막 (陳留 太守 張邈)
제(第) 칠진(七陣), 동군 태수 교모 (東郡 太守 喬瑁)
제(第) 팔진(八陣), 산양 태수 원유 (山陽 太守 袁遺)
제(第) 구진(九陣), 제북상 포신 (濟北相 鮑信)
제(第) 십진(十陣), 북해 태수 공융 (北海 太守 孔融)
제(第) 십일진(十一陣), 광릉 태수 장초 (廣陵 太守 張超)
제(第) 십이진(十二陣), 서주 자사 도겸 (徐州 刺史 陶謙)
제(第) 십삼진(十三陣), 서량 태수 마등 (西凉 太守 馬騰)
제(第) 십사진(十四陣), 북평 태수 공손찬 (北平 太守 公孫瓚)
제(第) 십오진(十五陣), 상당 태수 장양 (上黨 太守 張楊)
제(第) 십육진(十六陣), 오정후 장사 태수 손견 (烏程侯 長沙 太守 孫堅)
제(第) 십칠진(十七陣), 기향후 발해 태수 원소 (祁鄕侯 渤海 太守 袁紹)
이상과 같은 무장(武將)들은 모두가 일만 이상의 병사들을 이끌고 모여든 영웅(英雄)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제 십육 진의 대장(大將)인 손견(孫堅) 같은 장래 (將來)의 대지(大志)를 품고 있는 영웅(英雄)도 있었다.
삼국지 - 39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