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인맥이 꽤 넓은 편이다.
그런 내가 환갑까지 살면서 최고의 효자로 꼽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그 중 한 명은 내 중학교 & 고등학교 동창, H다.
H는 타고난 효자였다.
견줄 사람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투신해 고위직까지 올랐다.
정말로 용광로 같이 일했다.
열정맨이었다.
자녀들도 잘 키웠고 부모님께도 최선을 다 했다.
재테크도 잘 해서 큰 부를 쌓았다.
1년 전에 딸의 혼사를 결정했고, 강남에 예식장도 잡아두었다.
결혼식이 바로 내일이다.
많은 친구들이 내일 예식장으로 올 예정이었고 한마음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줄 요량이었다.
오늘 아침에 H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폐암이셨다.
지난 2년여 동안 서울시내 메이저 병원에서 꾸준하게 '항암치료'를 받으셨는데 최근 들어 병세가 악화되셨다.
병원에선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H도, 가까운 친구들도 어머니의 위중한 병세를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실'에 들어가시면서 나도 H와 여러번 통화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늘나라에 가시더라도 제발 손녀의 혼사와 겹치지 않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찌 인간의 바람대로 된다던가.
H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아, 혼사 하루 전에 떠나셨구나."
'호스피스 병원'에서 '세브란스'로 어머님을 모셨다.
부고는 순식간에 전파를 타고 멀리 멀리 퍼졌다.
H는 오늘 '상복'을 입었다.
그리고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내일 아침엔 '예복'을 입고 딸의 혼사를 치러야 한다.
하객들에게 일일이 감사인사를 드리고 난 뒤, 다시 빈소로 달려가 '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가문의 장자로서 '혼주' 역할도, '상주' 역할도 잘 소화해야만 한다.
이래저래 할 일도 많고 마음도 무척 무거울 것이다.
H는 타고난 효자였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저릿하다.
H의 본가는 시골에 있었다.
집 뒷편엔 낮고 울창한 산이 있었고 앞쪽엔 넓은 들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H와 함께 친한 친구들 3명이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어머니는 채전에서 막 따오신 여러가지 채소들과 토마토를, 우리가 들기에도 무거울 만큼 엄청나게 담아 주셨다.
부모님의 인정과 정성은 언제나 그랬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환한 미소가 어찌나 맑고 푸근하시던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 눈 앞에 선하다.
살다보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래서 나도 오늘의 조사와 내일의 경사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유구무언'이다.
어찌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님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예쁘고 순수한 딸의 행복한 새출발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래저래 내 발걸음도 무겁다.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하는 사이라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
내일은 예식장으로 가서 딸의 새출발을 뜨겁게 축하해 주고 친구들과 함께 빈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정말로 안타깝고 저릿하다.
사랑하는 친구 H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부디 가족들 모두 힘내시기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