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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ipe. 2
누구나 수아의 입에서 나온 이 어이없는 말을 들었으면, 황당한 표정이라도 지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픽-' 하고 코웃음을 친다거나 "뭐라고?" 라고 되묻는다거나- 하지만 그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저 덤덤하고 무표정하게 수아를 바라 볼 뿐이었다. 그리고 곧 그가 입을 열었다.
"저기 가서 마저 울기나 해."
수아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 꼈다. 도대체 왜 이 남자에게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말을 꺼냈을까…. 자기가 말해 놓고, 스스로도 창피해서 어디라도 숨고싶은 심정이었다. 화끈-거리는 볼을 차가운 손으로 겨우 진정시켰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사람을 그냥 보낸다면, 두고두고 후회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나 보다. 수아는 창피한 마음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다 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옆에 있어 주세요."
"싫다면?"
"…같이 있어주세요 아저씨…."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아 보였겠지만, 그녀가 짧은 순간에 떠올린 방법은 '억지'밖에 없었다. 보내기 싫은 사람인데 붙잡을 이유는 딱히 없고…. '그래. 떼라도 쓰자'라는 심보였다.
"집에 가."
거절할거라는 건 느낌으로 알고 있었지만, 고민도 안하고 단번에 거절하는 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같이 있어주면 안되요? 다른 거 부탁 안 할게요. 잠깐만- 아주 잠깐만 제 옆에… 있어주세요."
행여나 그가 갈까- 수아는 얼은 손으로 그의 옷깃을 더욱 꽉- 붙잡았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수아를 바라보더니 등을 돌려 앞을 보고 걸었다. 힘이 쭉빠진 수아는 그를 놓아주는 수 밖에 없었
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 준 사람이다. 어쩌면 수아에겐 사람의 '관심'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어서….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와 준 그에게 억지 아닌 억지를 부렸다. 수아는 한 숨을 푹 쉬며,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으이구…! 최수아.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많은 걸 바란다. 아무리 그래도…. 밥 사달란 말은 너무하잖아….
수아가 자신을 탓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멀어져 가던 그가 멈춰 섰다.
"밥."
"네?"
뜬금없이 그가 내뱉는 한마디에 어리둥절해서 되묻는 수아에게 그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사달라며…."
"네!"
어쩐지 들뜬 기분이 드는 수아였다. 가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 수아에게 말을 걸었다. 간단하고 무뚝뚝한 말이었지만, 수아는 뛸 듯이 기뻤다. 그는 여전히 말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갔지만, 상관없다는듯 마냥 기분이 좋은 수아였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해장국 집. 이 새벽에 문을 문을 연 곳은 이 곳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수아가 그를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풉-"
말쑥한 수트 차림의 그와 초라한 해장국 집은 어쩐지…. 맞지 않는 퍼즐이랄까?
"왜 웃지?"
"아- 아무것도 아니예요!"
너무 티 나게 웃었나-.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건 아닐까- 하며 그의 표정을 살피던 수아는 역시나 변함없는 표정을 보고 아리송했다. 도대체 감정을 읽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반찬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에게 국밥 두 그릇을 시키고, 둘은 한참을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 어색해서인지, 아니면 원래부터가 무뚝뚝한 성격인건지, 의자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며 수아는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금방 후자라는 결론을 내린 수아였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면- 분명 처음보는 자신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으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수아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 입을 열었다.
"저기…. 아저씨?"
수아의 부름에 그가 눈을 뜨고 '왜?'라고 묻는 듯 그녀를 바라 봤다.
"아…. 고맙다구요…. 같이 있어줘서."
수아의 감사 인사에도 답이 없던 그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몇 살이지?"
"이제 스무 살! 어른이예요. 아저씬요?"
역시나 묵묵부답. 자기 할 말만 하고, 다시 눈을 감는 그의 행동에 수아는 뻘쭘해졌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고는 싶은데…. 딱히 할 말도 생각이 안나 괜히 휴지를 만지작 거렸다.
"서른다섯."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입이 열리고, 짧은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그녀는 기뻤는지 큰 눈을 예쁘게 휘며 웃었다.
"저는 최 수아예요."
"그래."
상대방이 묻지 않으면 먼저 입을 열지 않는 그와의 대화는 도통 이어지질 않았다. 수아는 숟가락을 들어 얼굴을 비춰보기도 하고, 눈을 맞아 젖어버린 머리카락을 만지기도 하며, 이 어색한 공 기를 피해보려 애를 썼다.
여전히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미동도 없이 의자에 기대있는 그를 수아는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다시 한번 봐도 잘생긴 얼굴이다. 서른 다섯- 나이에 '섹시함'을 풍길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잘 다듬어 진 것 같은 짙은 눈썹도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 저 까만 눈동자 마저도…….
"어!"
어느새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가 또 다시 그녀를 담고 있었다. 그를 멍하게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던 수아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나머지 옆에 있던 컵을 들어 물을 마시다 사레에 걸려버렸다.
"켁켁-"
그는 휴지 한장을 쭉 뽑아 눈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는 수아 앞에 던졌다. 휴지를 받아 들고 겨우 기침을 진정시킨 그녀에게 그가 물었다.
"가출이라도 한 건가?"
"스무 살에 가출이라뇨…."
"그럼 왜 이 추운 날씨에 거기서 울고 있지? 내일 아침 공원에서 얼어죽은 여자로 뉴스에 나오기라도 하고 싶은가보지?"
유머인 건지, 수아를 비꼬는 건지, 그의 변화 없는 표정과 높 낮이가 없는 목소리는 진지하다고 해야되나- 아니면 무뚝뚝하다고 해야되나 아무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참 재미없는사람 이다. 수아는 어쩐지 쓸쓸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아저씨."
"…어."
"아저씬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알아요?"
그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 나이 또래와 같이 '실연'을 당했다던가-의 가벼운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수아의 의외의 질문에 사실 좀 놀란 그였다. 대답없는 그였지만 수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전부'가 사라져버린다면…. 아저씨는 어떨 것 같아요? 혼자 남겨진 다음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요?…아저씨는 알아요?"
잠시 머뭇거리던 수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그걸 모르겠어요. 차라리…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어요. 처음부터 '나'란 사람이 없었다면, 난 이런 고통을 아마 평생 모르고 살았겠죠. 아니… 원래 없던 사람이니까 그냥 모르는거네…. '나의 전부'를 잃은 사람은 어떻게 사는 줄 알아요?……혹시라도 잠에 들면, 꿈에라도 나타날까…해서 잠을 자고 싶지만, 깨고나면 꿈이었단 걸 알고 더 슬퍼질까봐… 자지도 못해요. 머리가 아파서… 더는 못 울겠는데, 내가 울어주지 않으면 울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쉴 틈없이 울어요. 그리고…. 흑… 보고싶어서… 너무너무 보고싶어서 날마다 그 사람을 불러요. 아빠… 아빠…. 대답이 없어서, 내가 부르면 다정하게 웃어주던 사람이… 이제 내 앞에 없어서요…. 그게 너무 끔찍하고 가슴이 아파요…. 미쳐버릴 것 같애…."
말을 마친 수아는 눈물을 뚝 떨어트렸다. 그리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수아에게 어떤 위로의 한마디도, 따뜻한 눈빛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수아의 얘기를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는 곧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건가?"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 나왔습니다. 아가씨- 울지말고 어여 들어."
때 마침, 식사가 나왔고 서럽게 우는 수아에게 아주머니가 등을 토닥여주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번 터진 수아의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음식은- 먹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약으로도 독으로도 변하지."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수아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울면서 먹으면 독이란 소리다. 그니까 울지…마라."
그가 선택한 나름의 위로 방식이었다. 수아는 애상치 못한 그의 위로에 사르르- 녹아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이 남자는 차가워 보이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은 꽤 따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수아는 언제 울었냐는 듯 그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입에 넣었다.
"너무 맛있어요!"
몇일 동안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수아의 위는 음식을 거부했지만, 수아는 그의 성의를 생각해 꾸역꾸역 맛있다는 표정으로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그런 수아를 계속 응시하던 그는 수아가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했다.
너무 게걸스럽게 먹은건가? 천천히 먹을 걸 그랬나… 그냥 다른 여자들처럼 내숭을 떨어야 됐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수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찬 물을 벌컥 들이키는 수아에게 그가 다가와 말했다.
"가지-."
"네에…."
수아는 힘 없이 대답했다. 서운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이대로 헤어진다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붙잡는건 너무 내 욕심만 부리는 것 같아. 수아는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던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그제야 반대편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 수아였다. 하아-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직도 그칠 줄 모르는 눈은 어느새 소복이 쌓여 밟을 때마다 '뽀드득-'하는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맞춰 길을 걷다 문듯, 자신이 입고 있는 그의 옷이 생각났다.
아! 맞다. 돌려줘야 하는데…….
수아가 급히 뒤를 돌아 봤지만 이미 사라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를 만나 지독한 외로움에서 조금 벗어 날 수 있었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토해내듯 내뱉었을 때, 묵묵히 들어주던… 그리고 서툴지만 위로의 말을 건네던 그의 모습을 수아는 잊을 수가 없었다.
***
몇일 째 연락도 없이 빠져버린 탓에, 수아는 다른 날보다 더 서둘러 데스티노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지배인의 모습에 수아는 잠깐 움찔했지만 곧, 그의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저…지배인님. 죄송해요…."
"연락도 없고, 대체 어떻게 된거야!"
"그게…"
화가 많이 난 듯 수아에게 소리치는 지배인에게 잔뜩 겁을 먹고 웅얼거리는 수아였다.
"형- 그만해요. 무서워서 말을 못하잖아-"
그때 수아의 뒷쪽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배인 옆으로 와 그의 어깨를 잡으며 그를 말렸다. 수아는 고개를 들고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하얀- 얼굴의 그는 목도리로 목을 칭칭 감고 있었고,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리고 있었다. 지배인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건지 씩씩 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말에 조용하게 넘어가는 듯 했다. 지배인이 가고 난 자리에는 마스크를 쓴 남자와 수아만 남아 있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수아가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하자, 그는 씩- 웃으며 데스티노를 나갔다.그의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고 생각한 수아였다. 고마운 그 남자 덕분에 위기를 넘긴 수아는 서둘러 탈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캐비닛을 열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는 홀로 나와 이곳 저곳 청소를 시작했다. 한참-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더니 데스티노의 직원들이 하나 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쏴!"
이곳에서 가장 어린 수아를 다들 '여동생'처럼 생각했다. 그중 수아와 가장 친한 송미가 수아의 이름을 줄여 만든 애칭을 큰소리로 부르더니, 수아에게 다가와 자신의 팔을 수아의 어깨에 둘렀다.
"이놈의시키! 연락도 안되고, 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엉?"
수아를 장난스레 꾸짖던 송미가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 수아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던거야? 그날 사색이 되서 뛰쳐나가더니…."
수아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가….돌아가셨어요."
수아를 빙 둘러 다같이 혼내는 시늉을 하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고 어쩔줄 몰라 안절부절 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수아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송미는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달고는 수아를 꼭 안았다.
"그런줄도 모르고…. 언니가 미안해!"
송미의 진심어린 사과에 수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괜찮아요. 언니! 하도 우울했더니 이제 좀 웃고싶어요. 그니까 언니가 옆에서 저 좀 많이 웃겨주세요."
"응- 알았어. 우리 쏴- 대견하네!"
콧물까지 흘리며 훌쩍이던 송미가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옷 갈아 입고 올게-' 라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하던 홀이 조용해졌다.
수아는 어쩌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명쯤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쏴! 13번 컴플레인 들어왔어. 다시 주문받았으니까 주방에 좀 가봐!"
"네!"
"막내야! 예약 취소 됐으니까. 9번 테이블 치워줘-"
"네네!"
매번 식사 때가 되면 홀 직원이든, 주방 직원이든 정신 없이 바빠진다. 모두들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수아는 막내라 선배들의 잔심부름까지 해야되서 더 바쁘게 움직였다.
겨우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손님이 줄어 들어 이제야 한숨을 돌리려 직원실 쇼파에 기대 앉은 수아였다. 서빙하느라 힘들었던 팔과 어깨를 주무르고, 높은 힐이 익숙하지 않아- 까져버린 발 뒷꿈치에 밴드를 붙이던 수아가 중얼거렸다.
"아- 힘들다."
그 때, 직원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송미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쏴! 대박 대박."
"무슨일이예요?"
"아- 글쎄. 사장님 1년만에 한국 돌아오셨댔잖아. 지금 사장님 온다나봐! 지배인님이 직원들 모이래. 아- 떨려 어떻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데스티노의 '사장'에 대해서 수아에게 늘어놓았다. 송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그는 영화배우보다 잘 생겼고, 미친 기럭지에 모델 뺨치는 포스, 그리고 성격은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그때문에 더욱 신비롭다고 했으며, 유명 요리학교 CIA를 수석으로 졸업해 젊은 나이에 최고의 요리사가 된 그는 그 후 미국등 유명한 호텔에 총주방장등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요리사 이자, KW그룹의 첫째 아들이라고했다. 즉 , 줄여서 말하면 '완벽한 남자이자, 자기의 이상형'이라나 뭐라나. 수아는 송미가 호들갑을 떨며 말하자 '와- 진짜요?' '진짜 멋있나봐요-' 등의 말로 맞춰주고 있었다.
사실 조금 궁금하기는 했었다. 송미의 말대로라면 정말 완벽한 사람이긴 할 것이다.
아저씨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 아저씨도 진짜 완벽했는데….
수아는 문득 어제 그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른 고개를 저으며 송미를 따라 직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불만인 표정이었고, 여자들은 송미처럼 들떠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왔다. 수아도 궁금했는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그를 쳐다봤다.
"어!아…저씨…?"
큰소리로 외치는 수아에게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수아의 눈이 잘못된게 아니라면, 저 앞에 서있는 사람은 분명 어제 공원에서 마주친, 그리고 다시는 못만날것 같아 아쉬웠던 그 남자였던 것이다. 송미가 수아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뭐야… 수아 너 사장님 알아?"
"네?아니요 …그게…"
안으로 들어온 그도 수아의 목소리를 들은건지 어느새 수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아를 보고 놀란다거나 반갑다거나- 하는 표정을 짓진 않았지만, 분명 그도 놀라긴 한 모양이다. 한참이나 뚫어지게 수아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자자- 조용히들 하고, 승우- 아니 사장님? 인사 하시죠-"
어수선한 분위기를 지배인이 정리하며 그에게 말했다. 수아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그가 말했다.
"데스티노 사장이자- 메인 쉐프 김승우 입니다. 익숙한 분들도 있지만, 일년간 자리를 비워서 그런지, 낯선 얼굴들도 있군요. 어쨌든 잘부탁 드립니다."
승우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송미가 기쁜듯 박수를 쳤다. 그러자 한 두명씩 송미를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아만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될줄 몰랐다. 승우는 직원들을 향해 입꼬리를 들어 웃어 보였다.
두근-
그의 웃는 모습을 본 수아의 가슴에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숨 멎을듯 멋있는 모습이었다.
승우는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수아의 고개는 저절로 승우를 따라갔고, 곧 승우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가 있기라도 한것 마냥 멍하니 문쪽만 바라보는 수아였다.
"쑤?"
"쑤아!!"
"네..네?"
자신을 부르는 언니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다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승우에 대한 소감 한마디씩을 내뱉고 있었다.
"자꾸 멍때리면 멍청해진다 너! 그나저나 사장님 진짜 멋지지?"
"네에… 멋있네요…."
"아직 결혼도 안했데, 저 얼굴에 저 정도 스펙이면 진짜 완벽한 신랑감인데… 나도 한번 확 꼬셔봐?"
송미의 농담 섞인 말에 수아는 어색하게 웃어주고는, 아쉬운 듯 자꾸만 그가 나간 문을 돌아보는 수아였다.
***
검은색 스포츠카가 도로 위를 달린다. 운전을 하던 사람은 전화가 오자 틀고 있던 라디오를 끄고, 전화를 받았다.
"어-"
"승우씨, 어디야?"
전화기 너머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공항 거의 다 와가."
"헤에- 마중나오고 있었구나! 나 방금 도착했어- 안쪽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승우의 차가 곧 공항에 도착했고, 주차를 마친 승우는 차에서 내려 공항안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둘러 누군가를 찾는 듯 했다.
"승우씨! 여기!"
승우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목소리의 주인인 여자에게 다가갔다. 170cm가 훌쩍 넘어보이는 키에 그녀의 늘씬한 몸매는 몸에 딱 맞게 달라 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어서인지 더욱 돋보였다. 어깨 너머까지 내려오는, 윤기나는 머리카락은 살짝 웨이브 져 자연스러웠으며, 승우를 보며 활짝 미소 짓는 그녀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승우에게 다가가 가볍게 포옹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얼마만이야?"
"그러게."
"승우씬 나 안반가워? 우리 꽤 오랫동안 못본거 잖아-"
"반가워."
"말이라도 고마워. 아 맞다 이거- 선물."
그녀는 가방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승우에게 내밀었고, 그걸 받아든 승우는 피식- 하며 짧은 실소를 터트렸다.
"뭐냐- 이건."
"선물이랬잖아."
그녀는 베시시 웃었다. 선물이라고 들고 온 그것은 승우를 캐릭터 화한 인형이었다. 큰 머리에 짧은 다리, 그리고 미간의 주름을 잡고 무서운 얼굴을 하는 등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단번에 승우라는 걸 알 수 있을정도로 비슷했다. 승우는 인형의 팔을 잡고 빙빙 돌려 보기도 하고 머리를 꾹 눌러보기도 했다.
'사랑해-승우씨'
장난처럼 누른 인형의 머리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우는 또 한번 실소를 터트리고는 그녀를 바라봤다. 부끄러운지 빨대를 입에 물고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하는 그녀였다.
"네가 만든거야?"
"그럼- 그렇게 솜씨 좋은 디자이너가 나 말고 또 있을까봐?"
"한채이 답다-"
채이는 패션 디자이너란 직업에 걸맞게 감각적인 여자였다. 또한, 승우의 정장과 넥타이는 채이가 직접 만들어 챙겨 줄 만큼 승우에게 헌신 적이기도 했다. 승우는 채이가 미리 시켜둔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진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에스프레소는- 쓰디 쓰면서도 뒷 맛은 항상 깔끔했다. 어떤 시럽도 첨가물도 넣지 않는 원액 그대로의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승우의 취향대로, 역시나 채이가 딱 맞게 주문 해 놓은 것이다.
승우는 잠시 생각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채이는 항상 승우에게 맞춰주었다. 승우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고, 10년 넘게, 승우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화 한번 내지 않고 언제나 그의 곁에 있어 주며,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승우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다음 주부턴 승우씨 회사다 가게다- 또 바빠진다며, 그 때까진 나랑 같이 시간 좀 보내주면 안돼?"
밉지 않게 입을 내밀고, 부탁하는 채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승우였다.
"왠일이래- 귀찮은 거 딱 질색인 우리 김승우씨가 나를 위해 시간도 다 내준다니-"
귀엽게 비꼬는 듯 했지만,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 채이였다.
카페를 나와, 채이를 옆 좌석에 태우고 서울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채이는 시차적응이 안돼 피곤했는지 창문에 기대 스르륵- 잠에 들었다. 빨간 불이 켜지고, 차가 멈췄다. 승우는 조용한 옆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려 채이를 봤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채이는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 승우는 안전벨트를 풀러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채이의 좌석을 뒤로 젖혀주었다.
"으음-"
감은 눈을 찡긋하더니, 곧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뜬 채이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승우를 바라보았다. 점심이 좀 넘은 시간에 출발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벌써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다. 채이는 잠이 든 자신을 깨우지 않고 기다리다 잠이 든 승우를 '귀여워 죽겠네' 하는 표정으로 바라 보고있었다. 승우의 긴 속눈썹이 너무 예뻐 보였고, 쌕쌕- 거리는 숨소리 마저 그녀에겐 듣기 좋은 음악 소리 같았다.
그를 바라보던 채이의 입가엔 예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스무 살, 갓 소녀티를 벗은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고, 사랑에 빠진 나이였다. 항상 진지한 모습의 그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채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승우에게 다가갔었다. 그리고 12년 째, 그녀는 묵묵히 변함없는 사랑을 승우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승우는 단 한번도 그녀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 그것에 채이의 여린 마음이 많이 다치고, 상처를 입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그녀의 사랑이었다. 그렇게- 십년을 넘게 해바라기처럼 승우만 바라보고 살아왔고, 그녀에겐 승우가 햇빛이고, 물이었다. '그녀의 전부'라고 표현해도 무색할 만큼 채이는 승우를 사랑했다.
승우는 채이에게도 그랬지만, 다른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채이'란 여자는 분명 승우에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였다. 그걸 알고 있는 채이는 그를 보채지 않았다. 자신이 그의 '특별한 존재' 인걸로 만족하자며, 스스로를 위로 하면서 지금껏 버텨왔다.
채이는, 그의 예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곧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생각을 접고, 그에게 물었다.
"승우씨- 나 깨우지."
"…피곤해 보여서."
자고 일어나 잠긴 목소리지만 귓가에 울리는 낮은 톤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벌써 일곱시네- 배고프다."
채이는 차 안의 시계를 들여다 보고 승우에게 말했다.
"뭐 먹을래?"
"음- 승우씨가 해주는 요리-"
"귀찮아."
"아 왜!"
"뭐…먹고 싶은데."
"음, 그냥 와인 한잔에 느끼하지 않은 봉골레면 딱 좋겠는데-"
"내려-"
승우는 차에서 먼저 내렸고, 채이는 귀찮아 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려는 듯 보이는 승우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는 차에서 내렸다.
깔끔하면서도 심플한- 딱, 승우의 닮은 집이었다. 채이는 불편했던 구두를 벗고, 편해 보이는 검은색 쇼파에 몸을 뉘었다.
"아 편하다. 승우씨 나 좀 씻는다? 짐이랑 다 집으로 보내놔서 옷 없는데… 승우씨꺼 옷 좀 빌려줘."
"아무거나 꺼내 입어."
승우는 자신의 드레스룸을 가리켰다. 채이는 편해 보이는 티셔츠와, 허리에 끈이 달린 그나마 작아보이는 바지를 고르고 욕실로 들어갔다. 채이의 씻는 소리가 들리자, 승우는 물을 끓여 면을 삶기 시작했다. 재료를 오일에 볶기 시작하더니 해감 시켜둔 조개와 화이트 와인을 넣자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금새 요리를 만들어 낸 승우는 식탁위에 올려놓고, 와인을 꺼냈다.
"다 만들었네- 냄새 좋다."
그 사이 샤워를 마친 채이가 욕실에서 나와 승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승우의 티셔츠와 바지는 채이에게 너무 커- 그 모습이 마치 아빠 옷을 입은 딸 같았다. 채이는 젖은 머리를 넘기고 포크를 들어 봉골레를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시원한 조개향과 담백한 스파게티면이 어울어져 고소한 맛을 냈다. 역시 그의 요리는 언제 어디서든 최고였다. 채이는 배가 고팠는지 후룩- 소리까지 내면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맛있다. 승우씨도 얼른 먹어."
"그래."
승우는 채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포크를 들어 맛을 본 뒤, 와인 마개를 열어 두개의 잔에 따랐다. 향긋한 와인향이 둘의 코를 자극했다. 와인을 들어 한 모금 넘긴 채이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승우에게 물었다.
"승우씨? 나 뭐 묻었어?"
승우가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 승우씨가 그렇게 쳐다보면 나 무지 떨린다니까?"
베시시- 웃으며 채이는 다시 와인잔을 들었다.
"채이야."
채이는 '왜?' 라는 표정으로 승우를 바라보며 와인을 목으로 넘겼다.
"결혼하자."
채이는 자기가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아, 눈을 크게 뜬채 그를 바라 보았다.
"다…시, 다시 한번만… 말해봐. 뭐…라고 했어 방금?"
"결혼하자."
흔들리던 채이의 눈에 곧 투명한 눈물이 맺히더니, 한방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담담히, 그리고 진지하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채이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승우였다. 남들처럼 화려하지도, 준비되지도 않은 왠지 무미건조한 한마디였지만 채이는 그날- 세상을 다 가진 것 보다도 더하게 벅찬 기분을 느꼈다.
이제야 올리네요~ 2화엔 등장인물이 다 나왔어요. 채이와 민우까지! 다음편 연재는 아마 2~3일 정도 걸릴것 같아요ㅎㅎ 전편에 댓글달아주신 - 루프리텔감님 오즐님 다봄님 JEs민님 eun-young님 꽃유화님! 너무 감사드리구요~ 덕분에 힘내서 글쓸 수 있을것 같네요!
첫댓글 재미있어요!!!채이승우결혼?다음편도어서보고싶어져요ㅎ
감사합니다!!♡ 소모임님 ㅎㅎ 업쪽보내드릴게요!
헐.... 그럼 수아는....????ㅠㅠㅠㅠㅠㅠㅠ
곧 나올거예요! ㅎㅎㅎ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채이랑 결혼하는건가요? 프로포즈라니 ㅜㅜ 이런이런
ㅠ_ㅠ그러게요! 알쏭달쏭ㅋㅋㅋㅋ업쪽 보내드릴게요~♡
가캐랑 인물들이랑 되게 잘어울려요ㅎㅎ민우는 그럼 승우 동생인가요?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제가 막 상상하는..ㅋㅋㅋㅋㅋ 재밌어요!!
오왕! ㅎㅎ 가캐할때 고민 엄청 많이했는데! 은영님 말들으니까 뿌듯하네요 ㅋㅋ! 으흣*.* 빨리 다음편써서올릴게요! 업쪽 접수~
잼있어요~ 난 수아랑 잘될줄 알았는데 벌써 프로포즈라니 완전 궁금해요
으앙♡*^_^* 추야님 완전 감사해요 ㅎㅎㅎ 업쪽 보내드릴게요!
ㅠ.ㅠ가캐 꽃혔어용..좌르륵 읽었는데 오 1편달려야겟다능ㅎ건필하시구요! :)
♡립셔틀님 감사해요!! ㅎㅎㅎㅎ
쪽지 보구 바로 달려왔습니닷!!ㅎㅎ
채이랑 승우랑 결혼하는 건가요..ㅠㅠ
담편 기대하겠습니닷!!ㅎㅎ
♡오즐님 ㅎㅎㅎㅎㅎ매번 쪽지 감사해요
ㅎㅎ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추천이요~!ㅎㅎ
♡우왕 다봄님 짱!
업쪽보고바로날아왔어요! +_+
어 채이 승우 결혼?! ㅠㅠ
수아랑 잘 될 줄 알았더니 ㅜ
아무튼 담편기대할께요~ㅎㅎ
추천하고 가요~
ㅠㅠ담편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