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의 차이
로마 가톨릭은 종교개혁이전의 교회인 구교이고,
성공회는 중용적 종교개혁인 영국 종교개혁으로 태어난 개신교입니다.
성공회는 교단 규모가 작아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이단이라느니,
천주교라느니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히 개신교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정치적인 이유로
(표면적인 이유는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를 새긴 성상사용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분열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성공회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국 종교개혁으로 발생했습니다.
영국 종교개혁의 발단은 헨리 8세의 이혼문제로, 로마 가톨릭 첫 왕비 캐서린 사이에서
아들이 없던 헨리 8세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교황에게 혼인성사를 무효로
해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하지만, 에스파냐 왕실의 압력으로 이를 거부하자, 헨리 8세는 1533년 수장령을 발표하여
자신이 교회의 수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로서 영국교회는 로마 가톨릭에서 탈퇴 후, 독자적인 교회인 성공회가 되었으나,
이때까지는 가톨릭과 교리적으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헨리 8세는 주교의 서에서 마리아 숭배등 가톨릭의 교리를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자, 성공회는 온건한 개신교 교파인
루터파의 교리(하나님의 은혜 강조, 성서의 권위 강조 등)를 받아들였고,
1549년 존 낙스 등 칼뱅주의자들에 의해 성공회는
가톨릭의 교리를 거부하고, 개신교의 교리를 따르는 42개조 신조를 발표합니다.
주요 내용은, 믿음을 통한 구원인정, 화체설 거부, 마리아 숭배거부, 연옥 거부 등입니다.
메리 여왕의 가톨릭 복귀정책으로 성공회는 청교도와 더불어 탄압당하다가,
1566년 엘리자베스 1세 때 의식은 가톨릭의 7성사를, 교리는 칼뱅주의와 루터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리를 따르는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즉, 성공회는 교리적으로 개신교이며,
개신교와 가톨릭의 장점을 포용한 중용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현재 성공회는 19세기 영국의 세력이 빅토리아 여왕이 인디아와 영국의 왕권을 모두 갖는 등,
'대영제국'으로 커지면서. 웨일스 성공회와 잉글랜드 성공회를 중심으로 널리 선교활동을
합니다. 중국 내지 선교회로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가 대표적인 성공회 선교사입니다.
그래서 1890년 한국에도 들어오는데, 성공회 강화성당을 기와집으로 지어 개신교의 토착화를
시도했고요, 전 세계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 켄터베리 대주교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교파적으로는 형식을 중요시하며, 로마 가톨릭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앵글로 가톨릭파,
(고교회파), 성서의 권위와 믿음을 통한 구원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적인 저교회파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존 스토트 신부는 성공회 신부입니다.),
진보적인 광교회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