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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보내 이르되
삿 11:12-22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삿 11:12-22 / [입다가 암몬과 담판을 벌이다] 입다는 암몬 왕에게 심부름꾼들을 보내어 `도대체 그대와 우리가 무슨 원수 진 일이 있기에 우리 땅으로 쳐들어와 싸움을 하려 하는가?' 하고 말을 전하였다. 암몬 왕은 입다가 보낸 심부름꾼들에게 13) `너희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이곳으로 올라올 때 아르논과 얍복 사이에 있는 전지역과 요단강에 이르는 서쪽 땅을 모두 차지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내 땅을 이렇게 차지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되찾으려고 왔다. 이렇게 좋게 말할 때 너희가 순순히 그 땅을 나에게 돌려주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14) 입다는 다시 심부름꾼을 암몬왕에게 보내어 15) 말을 전하였다. `우리 이스라엘은 모압 땅과 너희 암몬 땅을 차지한 적이 없다. 16) 우리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이리로 올라올 때 우리는 빈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홍해를 건너서 가데스에 이르렀다. 17) 그 가데스에서 우리는 에돔 왕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에돔 땅을 지나갈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부탁해 보았지만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압 왕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마찬가지로 모압 땅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사정해 보았으나 에돔 왕처럼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 이스라엘은 가데스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18) 거기서 머물러 있다가 우리 이스라엘은 에돔과 모압 땅을 지내갈 수가 없었으므로 빈들로 돌아갔다. 결국 우리는 모압 동편 지역으로 가서 모압 땅 경계에 있는 아르논 시내 건너편에 진을 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압 땅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19) 거기서 우리는 헤스본에 있는 아모리 왕 시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아모리 땅을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20)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도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말을 믿지 못하고 우리를 자기네 땅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군대를 동원하여 야하스에 진을 치고는 우리 이스라엘을 공격해 들어왔다. 21) 그러자 우리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혼과 그의 군대를 우리에게 넘겨 주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들을 쳐부수고 아모리 사람이 살고 있는 전지역, 22) 곧 아르논강에서 얍복강까지, 그리고 빈들에서부터 요단강까지 이르는 아모리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입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암몬 자손을 공격하기 전에 사신을 보냅니다. 그래서 침략의 이유를 묻고 모든 문제를 먼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입다의 정치적인 성향(12-13)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에 앞서 평화를 선언하도록 하셨습니다(신 20:10-11). 이처럼 입다도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먼저 그들의 침략의 부당성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암몬 왕은 현재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이 소유하고 있는 요단 동편의 땅이 자신들의 땅임을 주장하며 모든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요구는 이 땅을 빼앗기 위한 술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땅은 오래 전 아모리 왕 시혼으로부터 취한 것이기에 굳이 따진다면 원 소유주는 모압 사람들입니다(민 21:21-32).
입다의 반론(14-20)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된 이유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언제나 다른 민족들을 침략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암몬, 모압, 에돔과의 전쟁을 금하였기 때문에(신 2:5, 9, 19), 과거 광야를 통과하던 때에도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멀리 우회하여 평화스럽게 행하였다는 것입니다(민 20:14-22; 신 2: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선제공격했던 시혼 왕의 땅을 취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 땅은 암몬 족속의 소유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시혼은 이미 모압과의 전쟁에서 이겨 아르논에 이르기까지 모든 땅을 소유했고(민 21:26), 모압의 동편에 위치한 암몬 사람의 땅 일부를 정복하고 있었습니다(수 13:15-16).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시혼을 정복할 때 자연히 그 땅도 정복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영토로 합법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입다의 결론(21-22) 입다는 이스라엘이 시혼 왕을 전멸시키고 그 땅을 점령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진행하신 것이라고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암몬 왕은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의 부당성을 지적받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의 영토를 빼앗으려는 침략자의 모습을 드러낼 뿐입니다. 결국 싸움보다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입다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적용: 모든 분쟁의 원인은 대화의 부재입니다. 당신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지병으로 인해 삶을 마무리하게 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에게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아내와 자식은 없었고 친인척도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후 처리에 관해 생각하던 남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를 변호사에게 맡기고 사망했습니다. 변호사는 남자의 친구들에게 부고를 보내고 새벽 일찍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습니다. 수십 명의 친구들이 남자의 부고를 받았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친구는 4명뿐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귀찮았던 것입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변호사는 4명의 친구 앞에서 남자가 남긴 유언장을 꺼내 읽었습니다. '나의 전 재산은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 설 교 >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하나님이 주신 용기
사사기 11:12~28 / 김종호목사
말씀요약: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고 있다. 무슨 이유로 내 땅에 쳐들어와 나와 싸우려고 하는가?라고 입다가 사자를 보내어 물어본다.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을 돌려 달라고 한다. 입다는 다시 역사적 상황을 들어서 그 땅은 암몬의 땅이 아니라 아모리 땅이였고 또 암몬 땅이였다고 해도 지난 300년간 침묵하다가 지금 시비하는 것은 인정할 수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므로 양보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
묵상: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고 있다.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암몬과 싸워 달라고 요청을 했었다. 입다 사사는 힘으로 칼로 무력으로 나가서 무조건 싸움을 하기 보다는 우선은 전쟁보다 대화로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해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참 지혜로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낸다.(12)
무슨 이유로 내 땅에 쳐들어 와서 나와 싸우려고 하는 것이요?(12)
싸움의 이유와 원인등을 분석해 보려고 노력한다.
건달들과 함께 어울렸던 창녀의 아들 치고는 내 편견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협상과 외교 능력의 달인 처럼 느껴진다.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 사자에게 대답한다.(13)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그것을 화평히 돌려달라고 한다.(13)
영토문제는 현재에도 이스라엘의 가장 오랜 외교 분쟁의 문제이다.
아르논강은 사해의 중간 쯤으로 흘러 드는 강이고 얍복강은 요단강의 하류 부근으로 동에서 서로 흘러드는 강인데 현재는 두곳 다 요르단 땅이다.
사사시대에는 암몬 족속이 거했던 지역이다.
아르논강 아래 지역은 모압 땅이고 그 아래는 에돔 땅이다.
입다가 다시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낸다. (14)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않았다.(15)
출애굽 때에 네 땅 가운데로 지나가게 해 달라 요청했지만 허락지 않았다.(17)
그래서 광야를 지나 모압과 에돔 땅을 돌아서 지나 왔다(18)라고 그 이후에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도 당신 땅으로 지나가게 해 달라(19)고 요청했지만 시혼 왕이 이스라엘을 믿지 않으므로(20) 이스라엘이 싸워서 취한 땅이다.(21)
그러므로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강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 까지 온 지경을 취했다.(22)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쫓아 내셨거늘 어째서 암몬 왕 네가 이 땅을 얻고자 하는냐(23)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들어서 설명을 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 땅은 암몬 땅이 아니라 아모리 땅이라는 논리적인 반박이다.
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공부는 참 열심히 했던 인물인가 보다.
입다라는 인물 참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출신 성분의 선입견과는 너무나 다른 인물이다.
역시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신가 보다.
대화를 잘 하려면 이런 배경 지식이 풍부하면 훨씬 잘 대응 할 수가 있다.
이스라엘이 자기네 땅을 점령 했기 때문에 싸우려 왔다는 암몬 왕의 거짓말에도 속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대할 수가 있다.
두번째 논리로 제시하는 또 다른 한가지 이유가 있다.
암몬 땅이라면 왜 지난 300년 동안 너희가 어찌 도로 찾지 않았는냐(26)라고 논리적인 반박을 한다.
논리적으로 너무나 훌륭하고 똑똑한 반격이다.
이런 외교적 협상력으로 암몬은 전쟁을 해야 할 명분을 잃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땅을 지켜야 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적용:
전쟁 이전에 협상과 외교적인 전략을 펴는 입다의 모습을 봅니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논리로 암몬 왕의 전쟁 명분을 무력화 시키는 모습 너무나 감동적인 모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비 현실적인 문제로 시비가 붙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특히 이단들과 소모적인 감정 싸움을 할 때도 있다.
이 때에 정확하게 하나님 말씀을 잘 알아서 말씀으로 반응해야 한다.
내 말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배우고 알아서 말씀에 기초한 신앙 생활하길 원한다.
감정에 충만하지 않고 말씀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문제 해결을 위하여 물리적인 힘 폭력과 무력을 사용하기 이전에 협상과 외교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모습을 봅니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능력을 더하여 주옵소서. 특히 자녀들에게도 힘과 권위보다는 논리적인 설명을 하는 아버지 되게 하옵시고 입다가 역사적인 사실을 논리적인 근거로 제시하듯이 말씀을 논리적인 근거로 잘 사용 할 수 있는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부지런히 말씀을 배우고 알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심판하시는 여호와, 그분은 진정한 사사
사사기 11장 12~28절 / 생명의 삶 (큐티)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점령한 그들의 땅을 이제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합니다. 입다가 그 땅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당시 아모리 족속이 점령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셔서 이스라엘이 300년간 거주했다고 반론합니다. 그러나 암몬 왕은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1. 땅 소유의 역사적 정당성 (12~22절)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를 잘 아는 인물입니다. 길르앗의 장로들과 흥정했던 입다가 이제 암몬 왕과 협상을 벌입니다. 길르앗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암몬 왕에게 입다는 과거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입다는 역사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암몬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으로부터 길르앗 땅을 차지했습니다(15, 21절). 그 당시 요단 동쪽은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선제 공격하는 아모리 왕을 물리치고 길르앗 땅을 점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단 동쪽은 두 지파 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22절; 신 3:12~13). 입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땅 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기억하는 것이 분쟁 해결의 열쇠입니다.
* 암몬 왕의 주장은 어떤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나요?(16~22절) 무력이나 위협이 아닌 정당성을 갖춘 대화로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2. 땅 소유의 신학적 정당성 (23~28절)
모든 주장에는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입다는 땅 소유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이어 신학적 정당성 면에서 암몬 왕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그는 온 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길르앗 땅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3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땅 소유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함을 항변합니다. 역사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에서 길르앗 땅의 소유권을 논증한 입다는 최종 판결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두 나라 사이의 영토 문제에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한 것입니다. '심판하시는(히, 하쇼페트) 여호와'(27절)는 '사사(재판관)이신 여호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사이시며 온 세상의 재판관이십니다.
* 입다가 하나님께 판결을 요청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27절) 역사를 바라보는 입다의 시각에서 내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기업을 빼앗기 위해 거짓 주장으로 위협하는 원수의 전략을 깨뜨리는 지혜를 말씀 속에서 배웁니다. 심판주 하나님께 판결을 맡기며 간구합니다. 세상이 주장하는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세상을 압도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시면 우리가 그것을 차지하리라
삿 11:12-28 / 우인택 목사
오늘 본문은 사사 입다가 암몬 왕과 담판을 짓는 장면입니다.
1. 먼저, 12절에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하기에 앞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들이 침략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13절에 암몬 왕은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이 소유하고 있는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에 이르는 요단 동편의 땅이 본래 자신들의 땅이기 때문에 그것을 되돌려 받기 위해 쳐들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적으로 그 땅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그 땅을 암몬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14절 이하의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결코 암몬 땅을 침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동할 당시에 “에돔과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의 형제 국가이므로 절대 침입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그리고 길르앗 지역은 당시 아모리 왕 시혼이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일으켜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이 정복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길르앗 지역을 차지한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으며 암몬 왕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시 암몬 왕이 이스라엘을 침입한 직접적인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의 땅을 찾는다는 명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힘의 논리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암몬 왕은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떠나시고 그로 인해 하여 힘이 약해지자 그것을 기회로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암몬 왕의 이러한 생각은 세상의 논리로 보면 특별히 악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 다른 나라들도 자신의 국력이 강해지면 주변의 약한 나라를 침공하여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시저, 칭기즈칸 등 세상에서 영웅이라 칭함을 받는 그들 모두가 그러한 형태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순리나 정의보다는 힘의 논리가 앞섭니다.
힘만 있으면 불의도 정의로 둔갑하고, 악이 선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를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러한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의가 정의가 될 수 없고, 악이 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불의는 불의이고 정의는 정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한 자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33절에 보시면, 오늘 본문의 암몬 왕도 결국 그 죗값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논리를 따라 힘을 따를 것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를 따라야 합니다.
비록 힘의 논리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를 반드시 도우시고 높여주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깊이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14절에 입다는 암몬 왕에게 두 번째 사자를 보냈습니다.
이는 입다가 암몬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입다는 큰 용사이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전쟁을 하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자를 두 번이나 보내며 화친을 요구한 것은 되도록이면 전쟁을 피하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입다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비록 입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에 대한 분명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분쟁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재산이나 지위, 이권, 명예 등 수많은 문제들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의 대결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성도 간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에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세상의 법정에 호소하여 시비를 가리는 것이 보편화가 되고 말았습니다(고전 6:1).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든 세상의 법에 호소하기 이전에 먼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타협은 아름다운 미덕의 하나입니다.
불의와의 타협은 나쁜 것이지만, 이해 당사자 간의 타협은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계는 이 타협의 미덕이 결핍되어 늘 정파 간에 분열과 반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마치 원수진 사람들 사이의 싸움터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싸움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타협을 시도도 해 보지 않고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싸우기 전에 먼저 화평을 청하라고 가르칩니다(신 20:10).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는 하나님과 화평하고, 또한 사람들과 화평하는 피스메이커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를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음을 늘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24절에 입다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라고 확신있게 선언합니다.
입다가 전쟁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땅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지켜야 한다는 거룩한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차지하게 된 땅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으로 물려받을 천국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성도의 거룩한 기업입니다.
타협의 대상이 될 수도,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적인 가나안 땅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천국과 동시에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격과 권리, 의무와 권세를 모두 받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거룩한 유업들을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버리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세상의 유혹이나 위협에 겁을 먹고 포기해 버립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유업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최고의 보물입니다.
오늘, 이러한 것들을 가장 소중히 여기기를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있었지만, 전쟁을 하기 전에 두 번이나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를 바르게 알아 암몬 왕이 자신의 요구가 악한 것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했습니다. 또한 암몬 왕이 화친을 거절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전쟁에 나섰습니다. 저희들도 화평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되 하나님께 허락하신 것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용사로 우뚝 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화평과 선을 행하라
삿 11:12-28 / 김광석목사
오늘 본문에 보면 입다는 큰 용사이지만 외교적인 방법으로 암몬과의 문제를 풀려고 합니다.
그래서 12절에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고 합니다.
그러니까 암손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부터 이 땅을 점령했기 때문에 내 땅을 평화롭게 돌려달라고 고 합니다.
이에 입다가 암손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15절에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가데스에 이르러 에돔 왕과 모압 왕에게 이 땅을 그냥 지나가게만 해달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돔 왕과 모압 왕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냥 가데스에 머물렀다고 합니다(17)
또 18절에 그 후에도 에돔과 모압 땅을 돌아서 진을 쳤고, 모압 땅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9절에도 또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의 왕에게도 사자를 보내어 우리를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했지만 아모리 족속의 왕이 그냥 지나가겠다는 이스라엘의 말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20).
그래서 21과 2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모리 족속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셔서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 “2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은 원래부터 우리가 차지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공격해 와서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차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차지하게 한 땅을 너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24절에 만일 너희가 믿는 신 그모스가 네게 차지하게 한 땅을 너희가 차지하였다면 우리가 믿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차지하게 한 땅을 우리가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27절에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부터 당신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데, 왜 당신들이 우리를 쳐서 악을 행하고자 합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암손 자손사이에 판결을 해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입다가 기생의 아들이었고, 고향에서 쫓겨나서 잡류들과 함께 하여 전쟁만을 치룬 사람이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꿰뚤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하셨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400년이 지나서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족속의 죄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인 아모리 족속의 죄가 완전히 찰 때 그때 너희 자손들을 이 가나안땅에 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하는 것은 단순히 땅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의 죄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이 땅을 차지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냥 지나가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모리 족속의 왕이 도리어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 악을 징벌하시기 위해서 이 땅을 차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 싸우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28절에 암몬자손의 왕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입다와 함께 하셔서 암몬자손을 치고,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완전히 항복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먼전 화평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입다는 큰 용사였습니다. 그는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처음부터 전쟁을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대화를 통해서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이 세상에 화평의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화평의 하나님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도 그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도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 나가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어떤 존재입니까? 김정은과 같이 자꾸 전쟁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오늘본문에 나오는 암몬 왕처럼 전쟁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탄으로 말미암은 모든 전쟁을 역사를 물리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의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화평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죄와 악조차도 용납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나안을 치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있는 죄악들 때문입니다.
어떤 죄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죄악입니다. 또 끊임없이 이웃들과 싸우고 다투기를 일삼는 죄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징벌한다고 하는 것이 절대 나의 기준을 가지고, 내가 스스로 악의 징벌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27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입다는 절대 자기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서 암손 자손을 판결하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를 판결해 달라고 합니다. 우리의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한 분뿐이십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화평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화평의 사람이 되지만 그렇다고 죄는 용납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희가 스스로 죄의 심판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한 모든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선을 행하시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화평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권위를 입다
사사기 11:12~28 / 조약돌묵상 조약돌 묵상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과 암몬이 싸우기 전 입다가 과거 역사적 사실 등을 열거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평화로 해결하려고 애쓰지만 결렬되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입다는 사신을 보내 암몬이 침략한 이유를 묻습니다. 암몬 왕은 출애굽 때 암몬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빼앗았기 때문에 돌려달라고 합니다. 이에 입다는 그것은 암몬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한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어 300년간 거주한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그러나 암몬 왕은 그말을 듣지 않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입다의 질문에 대한 암몬 왕의 답변, 역사적 사실로 논박하는 입다, 신학적인 면을 주장하는 입다, 외교협상의 결렬과 개시되는 전쟁 등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 입다가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보낸 사자에게 암몬 왕이 답한 내용입니다. 그것의 골자는 현재 이스라엘이 자치하고 있는 땅은 옛날 그들의 땅이니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땅은 출애굽 시 이스라엘이 통과하려는 것을 싫어해서 먼저 공격한 아모리 왕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의 손에 부쳐주셔서 차지한 땅입니다. 입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응합니다. ‘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 그 땅이 어떻게 암몬의 땅이냐는 힐문으로, 만의 하나라도 그 땅이 정말 암몬의 땅이라면 어찌 이스라엘이 300년 동안 그 땅에 살았는데 그 동안 한번이라도 반환청구를 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반 만년 이상이나 독도가 한국 땅이었는데 갑자기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암몬은 막무가내로 억지를 피며 입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치 이웃나라 같습니다.
입다는 암몬의 신을 그모스라고 했습니다. 실은 잘 못 말한 것입니다. 암몬의 신은 밀곰(또는 몰록)이고 모압의 신이 그모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입다가 일부러 그렇게 말해 암몬 왕과 그 신을 비하했다고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는 여호와를 섬기는 입다의 입장에서 밀곰이나 그모스나 한 낱 우상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의견은 그 때의 암몬 왕이 실은 모압인이었기 때문에 그 정보를 들은 입다가 그것을 근거로 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째건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신 땅을 어떻게 너희 땅이라고 주장하느냐는 책망입니다.
입다는 암몬 왕에게 먼저 사신을 보냅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사사보다도 매우 지혜 있게 행동한 것 같습니다. 그가 뛰어난 지략가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로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그는 가급적 전쟁보다는 외교적 협상으로 나라간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정말 위대한 장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라고 하지요. 싸우기 전에 사신을 보낸 것은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숨김없이 적 왕에게 설명을 합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그 쪽의 일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최고 지도자가 된 이후 제일 먼저 한 일입니다. 무엇인가 실력을 보여줄 상황에서 그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두 번째, 그는 국민들의 호응과 주변국가들의 이해까지 얻을 수 있는 합법적인 전쟁의 대의 명분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암몬 왕은 일언 지하 평화제안을 거절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각각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점을 통하여 입다가 얻은 것이 있으니, 다름아닌 이스라엘의 결속입니다. 입다를 지지한 세력들은 길르앗의 장로들입니다. 그 사회에서는 창녀 자식이라고 아직 입다를 리더로 인정해 주지 않은 사람들이 만만치 않게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들이 그렇게 호전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왕지사 입다가 총사령관이 되었으니 그를 중심으로 먼저 조국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명분은 이제 섰습니다. 백성들도 뭉쳤습니다. 그 전쟁은 이미 이긴 싸움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지만 백성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이긴 싸움을 하는 격이 됩니다.
그가 탁월한 전략가라는 세 번째 증거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리더답습니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 전쟁을 하기 전 공개적으로 한 말로서,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이제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서 판결해 달라는 주문입니다. 만약 전쟁에서 이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여호와께서 주신 승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입다는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여호와의 권위를 입게 됩니다. 즉, 신적 권위를 입는 입다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입다에 대한 지지를 극적으로 높여 줄 것입니다. 신학이 있는 지략입니다.
그는 한 때 불운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의한 시간을 지내기도 했으며 썩 좋은 행실도 하지 않는 시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건달들의 리더로서 성품도 그리 좋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향 이스라엘 사람들도 다른 이방 신들을 섬겼것만 그는 여호와를 잊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한 낱 비루한 인간에게서 해박한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학이 있는 설득이 거침 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사기 독자가 가질 만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트려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사사로 부르십니다. 비록 과거엔 자기 성질대로 살았을지 몰라도, 앞 뒤 가리지 않고 살았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분을 빼고 전쟁할 수 없다고 선언한 사람을 쓰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과거 어떤 삶을 살았을지 몰라도, 이제 자기 좋을 대로 살을 수는 없습니다. 자기 성질대로 살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격은 천차만별입니다. 개성은 각각이지만 추구하는 것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선택하는 것 역시 그리스도인다워야 할 것입니다. 전쟁보다는 평화입니다. 갈등보다는 화해입니다. 미움보다는 사랑입니다. 피스메이커로, 화해자로 사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전도사로 사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