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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도(大學之道)
큰 배움의 길이라는 뜻으로, 유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대학의 요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혹은 대인의 학문으로서 세 가지의 기본 목표를 말하여 대학의 요점이 되고 있는 도리를 일컫는 말이다.
大 : 큰 대(大/0)
學 : 배울 학(子/13)
之 : 갈 지(丿/3)
道 : 길 도(辶/10)
출전 : 대학(大學)
유교(儒敎) 경전(經典)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의 요체(要諦)를 포괄하는 말이다. 혹은 대인(大人)의 학문으로서 세 가지의 기본 목표를 말하여 대학의 요점이 되고 있는 도리를 일컫는 말이다.
'대학'의 수장(首章)에 나오는 말로서, 밝은 덕을 밝힘에 있는 명명덕(明明德), 백성과 친함에 있는 친민(親民),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삼강령(三綱領)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8조목(八條目)을 가리킨다.
유가(儒家)의 학문 방법론과 학문의 목적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어서, 궁극적으로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천리(天理)의 공변됨을 발현(發現)하는 것을 종지(宗旨)로 삼고 있다.
대학(大學)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좋은 것에 머무는 데 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멈출 줄 안 뒤에야 차분해지고, 차분해진 뒤에야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해진 뒤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해진 뒤에야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생각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온갖 것에는 뿌리와 우듬지가 있고, 온갖 일에는 마침과 처음이 있으니, 앞서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잘 알면 길에 가까워진다.'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이하생략)
대학(大學) / 경전
유가의 근본 이념을 명확하고도 일관된 체계로 정립한 유교경전.
중국에서 유교가 국교로 채택된 한(漢)대 이래 오경이 기본 경전으로 전해지다가 송대에 주희(朱熹)가 당시 번성하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는 새로운 유학(性理學)의 체계를 세우면서 '예기'에서 '중용'과 '대학'의 두 편을 독립시켜 사서 중심의 체재를 확립하였다.
49편으로 구성된 '예기' 중 제42편이 '대학'에 해당한다. 주희는 '대학'에 장구(章句)를 짓고 자세한 해설을 붙이는 한편, 착간(錯簡)을 바로 잡았다. 그는 전체를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나누어 '경'은 공자(孔子)의 사상을 제자 증자(曾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생각을 그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하였다.
대학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중용'과 '대학'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송나라에서 급(伋)이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한나라 때 학자인 가규(賈逵)도 공급(孔伋)이 송에서 '대학'을 경(經)으로 삼고 '중용'을 위(緯)로 삼아 지었다고 하며, 정현(鄭玄)도 이 설을 지지하고, 송대의 정호(程顥)· 정이(程頤)는 '공씨가 남긴 책'이라고만 언급하였다.
주희는 전을 '증자의 사상을 그의 문인이 기술한 것이다'라 하였는데, 자사가 바로 증자의 문인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도 '대학'은 자사의 저작이라는 견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청(淸)대에 오면 실증적 고증적으로 검토, 비판하는 학풍이 일어나면서, 종래의 자사 저작설도 비판되어 진(秦) 한(漢) 사이에 또는 전국시대 어느 사상가의 저작이라는 설, 자사가 지은 것이 틀림없다는 설 등이 있으나, 유가의 학자가 지은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대학의 내용은 삼강령 팔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령은 모든 이론의 으뜸이 되는 큰 줄거리라는 뜻을 지니며,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 이에 해당되고, 팔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말한다.
대학은 예기 가운데 한 편의 형태로 우리 나라에 들어왔을 것이라 추측된다. 7세기경의 신라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에는 예기를 '시경' '서경'과 함께 습득할 것을 맹세하는 화랑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72년(소수림왕 2)에 세운 태학(太學)을 관장한 사람이 오경박사(五經博士)였으니, 고구려에서도 일찍부터 '예기'가 교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기에도 국학 3과정과 독서삼품과의 과목으로 '예기'는 중요시된 경전이었다.
고려 유교의 학풍은 경전 중심이어서 예종 때의 국학 칠재와 사학(私學) 등에서도 경연의 주요 과목으로 '예기'가 자주 강론되었다. 조선 태조는 '대학'의 체재를 제왕의 정치귀감으로 편찬한 송대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유창(劉敞; 초명은 敬)으로 하여금 진강(進講)하게 하였다. 그뒤 '대학연의'를 어전에서 강의하는 전통이 마련되었다.
주희가 독립시킨 '대학'은 1419년(세종 1) '성리대전' '사서오경대전'이 명나라주16로부터 수입될 때 함께 들어왔다. 주희의 '대학장구'에 대한 최초의 비판은 이언적(李彦迪)에서 비롯된다. 그는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에서 주희의 일경십전(一經十傳)을 일경구전(一經九傳)으로 산정(刪正)하면서 편차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주자학이 관학으로 정립되고 성현의 편언척구(片言隻句)가 신성시되던 조선 중기에는 주희의 체계를 긍정한 바탕에서 나름의 해석을 모색하는 데 그쳤다.
이와 같은 고식적인 풍토에 반발한 윤휴(尹鑴)는 '대학고본별록(大學古本別錄)'과 '대학전편대지안설( 大學全篇大旨按說)'에서 주희의 방법론적 준거였던 '격물'이 지적 탐구가 아니라, 종교적 경건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본래 '예기' 안에 있던 '대학고본'이 아무런 착간도 없는 정본(定本)임을 주장하였다. 박세당(朴世堂)은 대학사변록(大學思辨錄)에서 철저한 고증에 의해 '대학'이 복원되어야 하며, 주희가 가한 해석이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고 고답적이라 비판하면서, 구체적 실천의 관점을 강조하였다.
정약용(丁若鏞)은 정조와의 문답을 정리한 대학강의(大學講義), 그리고 고본대학에 입각해 대학 본래의 정신을 탐색한 대학공의(大學公議)를 저술해 명명덕, 신민만으로도 강령이 될 수 있으며 격물, 치지는 팔조목에 들 수 없다 하여, 격물, 치지에 입각한 성리학적 사유의 재검토를 촉구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에 예기는 이미 유포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그 유입과 전파 경로는 알 수 없다. 1045년(정종 11) 왕이 당나라의 공영달(孔穎達)이 찬한 '신간예기정의' 한 질을 어서각(御書閣)에 두고 나머지는 문신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희의 '대학장구'가 처음 반입된 것은 고려 공민왕 19년(1370) 명나라에서 '대통력', '육경', '통감'과 함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다.
1423년(세종 5) 대학을 포함한 사서오경 10부를 성균관 오부학당에 분급(分給)하였고, 1435년 각 도의 수령에게 명하여 그것을 향교에 비치하라고 하였다. 개인이 자비로 갖추고자 할 때는 종이를 보내면 주자소에서 찍어주게 하였다. 15세기 말 함경도 평안도 제주도에까지 대학이 보급되었다. 선조 때부터 진행된 언해사업은 1576년(선조 9) 이이(李珥)가 왕명을 받아 13년 만에 완성, 간행하여 도산서원에 하사되었으며, 1605년에 재반포되어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대학지도(大學之道)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과 친함에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
예기(禮記) 대학(大學) 편의 첫 구절이다. 대학은 당 중엽부터 따로 읽히기 시작했고 주희에 의해 마침내 사서(四書)의 첫머리에 놓이게 됐다. 밝은 덕을 밝힘은 내 속에 원래 갖춰진 밝은 도덕성을 드러냄을 말한다.
'친민(親民)'은 설이 분분하다. 전통 주석에서는 백성에게 친애를 받는 것으로, 주희는 '친(親)'을 '신(新)'으로 보아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왕양명은 백성을 친애해 자기 몸처럼 여기는 것으로 풀이했다. 모두 일리 있는 해석들이다.
'지(至)'란 마음이 흔들림 없이 한군데 머무는 것이고, 지선(至善)이란 사물의 도리에 따른 최고선을 가리킨다.
명상적 관점으로 풀이해보자.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밝고 순수한 면이 있다. 세파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틈틈이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닦으면 그 밝음을 되찾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거나 그들로부터 친애를 받거나, 그들을 새롭게 하는 일은 먼 목표로 삼으면 되고, 우선은 나의 밝은 마음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자.
또한, 명상을 꾸준히 하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훨씬 명료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다.
대학지도(大學之道)
'대학'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
큰 배움의 길은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가까이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좋은 것에 머무는 데 있다.
'대학'이라는 글이 지향하는 바가 매우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사실 이것이 '대학'의 전부다. 나머지 문장은 모두 이 첫 구절을 부연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짤막한 구절에 담긴 뜻은 과연 무엇이며, 왜 이것을 '대학'의 서두로 삼았는가?
대학(大學), 곧 큰 배움이란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위한 밑천을 가리킨다. 흔한 말로 두루 배우고 많이 들어서 안다는 박학다식(博學多識)이나, 갖가지 책을 널리 읽고 잘 외우는 박람강기(博覽强記)는 큰 배움의 시작일 뿐, 이것으로 큰 배움이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두루 배우고 아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을 잡도리하거나 사람들과 어우러지거나 사회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큰일을 알맞게 해내는 데에 이르러야 비로소 큰 배움은 완성된다. 여기에서 큰 배움의 길을 셋으로 나누어서 말한 것도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큰 배움의 길은 '明明德(명명덕)'에서 시작하여 '親民(친민)'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친민이야말로 정치의 궁극이고 정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止於至善(지어지선)'을 덧붙인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학의 道(도), 즉 큰 배움의 '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란 목표나 목적지가 아니다. 사람이 가야만 하거나 할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과정이나 방법을 뜻한다. 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그 가운데에 길게 이어져 있는 것, 그것이 길이다. 그 길이 바로 '지어지선'이라는 말이다. '명명덕'에서 시작되어 '친민'에서 끝나는 정치의 길은 '지어지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지어지선'에서 벗어나면 정치나 통치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학(大學)
Ⅰ. 개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먹이(식량)이며 또 하나는 바로 질서유지이다. 모든 생명은 먹이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으며 또한 어떤 종족도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곤충이나 식물이나 저마다 살아가는데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질서가 무너지면 서로가 서로를 해치기 때문에 그 어떤 종족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학은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데 서로가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 인류의 질서에 적용한 학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을 공부하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지난 천년동안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와 오경(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을 통하여 학교교육을 받아 왔는데, 그것은 바로 사서와 5경이 우리 인류가 서로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를 살아 갈 수 있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이래로 만들어진 향교(鄕校)와 조선시대 각 지방의 현(縣)에 이르기까지 향교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각종 사립학교인 수많은 서원들이 만들어져 유교의 경전을 공부시켰던 것입니다.
본래 향교의 설립은 지방유생들의 교육기능과 향사기능 및 풍속교정 기능을 위해 만들어 졌으나 오늘날에는 교육의 기능과 풍속교정의 기능은 약해지고 향사의 기능을 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유학(儒學)이라고 알고 있으며, 또한 유학(儒學)을 조선시대에 백성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는 유학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니 그러한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정신적인 빈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유학(儒學)은 인(仁)을 근본사상으로 하고 있으며 예(禮)를 실천중심에 두고 있으니, 유학(儒學)의 경전(經典)을 읽기 위한 접근 방법으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대학(大學)의 구성과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Ⅱ. 대학(大學)
주자(朱子)는 자신의 책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할 것이 대학(大學)이며 대학(大學)을 읽고 난 뒤에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읽고 마지막으로 중용(中庸)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기(禮記)라는 책은 공자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중국 고대의 왕조인 하나라(夏)와 은나라(殷)와 주나라(周)의 역사와 예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강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기록물이었는데 올바르게 보존되지 못한 체 전해 내려오다가 중국 한나라(漢) 무제 때 하간헌왕(河間獻王) 유덕(劉德)이 고례(古禮)에 관한 기록 131편을 모아서 한무제(漢武帝)에게 헌납하였으며 선제(宣帝) 때 유향(劉向)이 83편을 더 모아 214편이 되었습니다.
서한시대(西漢時代)에 경학자(經學者)인 고당생(高堂生)이 '사례 17편'을 남겼으며, 이는 소분(蕭奮)과 맹경(孟卿)을 걸쳐 후창(后蒼)에게 전해지고 다시 그의 제자 대덕(戴德)과 대성(戴聖)과 경보(慶普)에게 전해집니다. 대성은 소대례기(小戴禮記) 46편을 편찬하고 여기에 한말(漢末) 때 마융(馬融)이 월령(月令)· 명당위(明堂位)· 악기(樂記) 3편을 더하여 49편으로 전해져 내려온 책이 오늘날 우리들이 읽고 있는 예기 책입니다.
후한(後漢) 때 정현(鄭玄)이 최초로 예기(禮記)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대학(大學)이란 책은 전한(前漢)시대에 대성(戴聖)이란 사람이 지은 예기(禮記) 총 49편중에 제42편에 수록 되어 있던 대학편(大學篇)을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자신의 저서 '대학광의(大學廣義)'에서 대학편(大學篇)을 독자적으로 분리하여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송나라 때 유학자(儒學者)들은 예기(禮記) 제31편에 수록되어 있는 중용(中庸)편을 독자적으로 분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게 됩니다.
대학(大學)의 구성을 살펴보면 경1장과 전문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자(朱子)는 자신의 저서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 예기(禮記) 원문에 있던 경1장(經一章)과 전문5장(傳文五章)을 전면 수정하여 경1장과 전문10장으로 수정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옛 성현의 글을 자신이 함부로 수정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죽기 이틀 전까지도 손에서 대학(大學)이란 책을 놓지 못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대학의 구성을 살펴보면 경문3장과 경1장 그리고 전문5장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경문3장은 대인이 배워야 할 도리로서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 각각 경문1장(在明明德), 경문2장(在親民), 경문3장(在止於至善)에 해당 되며, 경1장은 경문3개의 장을 각각 설명을 하기 위한 8조목(八條目)이 이에 해당되며, 전문5장은 증자(曾子)께서 대학의 경문3장과 경1장의 풀이를 위해 시경과 서경 등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경문3장의 해석을 살펴보면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친민(在親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자께서는 해석을 "대인이 배워야할 이치와 도리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고, 백성을 사랑하는데 있고, 지극한 선(善)에 머무르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자께서는 경1장의 해석을 대인이 배워야 할 이치와 도리로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다'고 하셨고, 재명명덕(在明明德)에서 주자는 앞에 명(明)은 밝히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명덕(明德)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얻는 것으로서 잡된 생각이 없어 마음이 신령하여 어둡지 아니한 허령불매(虛靈不昧)'라고 하였습니다. 곧 배우는 자는 하늘이 내려준 밝은 덕을(德) 밝혀서 하늘의 뜻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재친민(在親民)의 해석은 여기에 친(親)이란 글자를 정자(程子)께서 새로울 신(新)으로 고쳤는데, 주자께서도 정자(程子)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서 해석을 '새롭게 하다'라고 하여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은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데 있다'고 해석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학자들도 대부분이 주자의 해석을 따르고 있는데 한번 하나씩 살펴보자면, 성인이 학문을 하여 배워야 할 이치와 도리가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데 있다'고 하면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대인이 배워야 할 이치와 도리는 올바른 덕을 바르게 밝혀서, 백성들을 가르쳐 새롭게 하여야 하며, 지극하게 착한 사람으로 머무르는데 있다"가 됩니다.
덕(德)이란 주역과 도덕경에서는 '정성으로 기르다'는 의미로 말씀하시고, 예기 악기편(樂記篇)에서는 '덕자 득야(德者 得也)'라고 하여 '덕(德)이란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곧 덕(德)이란 '정성으로 기르면 곧 얻는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재명명덕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바르게(明) 기르는 이치(德)를 아는데(明) 있다(在)'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뒤에 나오는 8조목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과 상통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명덕(明德)을 '밝은 덕(德)'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밝은 덕(德)'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덕(德)에 '어두운 덕(德)'이 있어서 굳이 '밝은 덕(德)'이라고 구별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덕(德)이란 그 말 자체가 어두운 덕(德)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명덕(明德)은 '밝은 덕'이라기 보다는 '(만물을) 바르게(明) 기르는 이치'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친민(親民)은 '백성들을(民) 가까이하며(親) 아는 것을 가르치'란 의미로 해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친(親)자는 '가까이할 친(親)'자이며 가까이 다가가서 가르치란 의미이므로 한편으로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와도 상통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곧 다스리는 것이니 재친민(在親民)은 8조목의 수신재가치국(修身齊家治國)과 상통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에서 여기 지(止)자를 '머무를지(止)'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지(止)'로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이 말이 전혀 달라지는데, 뒤에 전문1장 7절에 상송 현조편(商頌 玄鳥篇)에서 '邦畿千里 惟民所止(방기천리 유민소지)'의 해석을 '나라의 도읍 천리는 오직 백성이 머무르는 곳이다'로 해석하고 시경 소아 면만편(小雅 綿蠻篇)에서 '綿蠻黃鳥 止於丘隅(면만황조 지어구우)'의 해석을 '꾀꼬리 울면서 언덕 무성한 숲에 머무른다'로 하여 '지(止)'의 해석을 '머무르다'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 이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멈춰 있다' 또는 '쉬다' 또는 '그치다'라는 의미 이기에 '지극하게 착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지(止)'의 해석을 '이르다'로 해석 하여야 하며, '邦畿千里 惟民所止(방기천리 유민소지)'의 해석을 '나라의 도읍 천리는 오직 백성이 이르는 곳이다'로 해석하여야 하고 시경 소아 면만편(小雅 綿蠻篇)에서 '綿蠻黃鳥 止於丘隅(면만황조 지어구우)'의 해석을 '꾀꼬리 울면서 언덕 무성한 숲에 이른다'로 해석하여 '지(止)'의 해석을 '이르다'로 해석하면, '이르다'는 '되게 하다' 또는 '만든다'는 의미가 되므로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의 해석은 '지극히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데 있다'로 해석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착하면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평안한 대동의 사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은 8조목에서 평천하(平天下)와 같은 의미라는 것인데 평천하(平天下)에서 평(平)이란 '평안하다'란 의미로 곧 평안하다는 것은 '편안하고 안전하다'란 의미를 말하고 있으며 천하(天下)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학의 경문3장은 곧 대동의 사회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문3장(經文三章)을 요약하자면, 대인(大人)으로서 배워야 할 이치와 도리는 '먼저 만물의 올바른 이치를 바르게 알고서 백성들에게 가르쳐 백성들이 매우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곧 모든 사람이 착하게 예의 범절을 바르게 지킨다면 상대를 괴롭히거나 상해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8조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8조목은 격물(格物) 하나, 치지(致知) 하나, 성의(誠意) 하나, 정심(正心) 하나, 수신(修身) 하나, 제가(齊家) 하나, 치국(治國) 하나, 평천하(平天下) 하나, 모두 해서 8개의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닦고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면 온 세상이 평안해진다'라고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을 닦고, 가정은 질서 정연히 했는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던 이분들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모든 사람들이 왜 평안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바로 우리가 학교교육에서 앞에 있는 격물치지 성의정심 4조목을 빼놓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격(格)'자는 '궁구할 격(格)'자입니다. 궁구한다는 말은 '깊이 연구한다'는 의미이니 '만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해서 앎에 이르는 것'을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의정심(誠意正心)의 '성(誠)'자는 '참된 마음'이란 의미입니다. 즉 성(誠)자를 해석할 때 '우리는 정성스럽다' 또는 '진실'이라 해석하면 않됩니다. 반드시 이 '정성 성(誠)'자는 '참됨'으로 해석을 해야 하며, 참됨이란 '하늘이 주는 마음대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여기 의(意)자는 생각 의(意)자인 것입니다. '참된 생각과 바른 마음으로 자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만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앎에 이르러야 하는데, 곧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의정심(誠意正心)은 참된 생각과 바른 마음으로 자신을 닦아야 가정도 바르게 가지런히 하는 것이고, 나라도 올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며, 그래야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대학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 출세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수신을 하면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출세를 위해서 고생을 해야 하고, 그 사람의 출세를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은 가장 먼저 자연의 이치를 알고 하늘의 이치대로 생각을 하면서 바른 마음으로 자신을 닦아야 가정도 올바르게 이끌고 나라도 바르게 다스리니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인 대동의 사회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대학은 공자님께서 말하고자 한 것은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대학(大學)의 경1장의 첫 번째 내용을 원문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候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지지이후유정, 정이후능정, 정이후능안, 안이후능려, 려이후능득. 물유본말, 사유종시, 지소선후, 즉근도의.
앎에 이르고 난 뒤에 (마음이) 변하지 않음이 있고, (명확하게 알면 내 마음이 이럴까 저럴까 하고 우왕좌왕하지 않는다는 의미),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후에 (마음이) 침착할 수 있고, 침착한 이후에 (마음이) 편안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한 이후에 (바르게) 생각 할 수 있고, (바르게) 생각 한 이후에 (바른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만물은 시작과 끝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사리(事理=일의 이치)에 앞과 뒤를 아는 것은, 곧 (대학의) 도리를 아는 것이다.
※ 物有本末(물유본말)에서 物(물)을 사물로 보는 것이 모든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정이천 선생이나 주자, 왕수인 등 모든 학자들이 物(물)을 事(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物(물)의 대상을 事(사)와 구별하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앞에 물유본말(物有本末)과 사유종시(事有終始)로 하여 물(物)과 사(事)를 구별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物(물)은 생명을 가지는 만물을 의미하고 事(사)는 사물 또는 일(事)로 보아야 한다. 物(물)과 事(사)의 구별은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하여서 보아야 하는데, 생명이 있는 모든 만물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것이고,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기에 끝이 있는 것이 됩니다.
다음은 경1장의 두 번째 문장과 세 번째 문장을 원문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 선치기국, 욕치기국자 선제기가, 욕제기가자 선수기자, 욕수기신자 선정기심, 욕정기심자 선성기의, 욕성기의자 선치기지, 치지재격물.
옛날에 천하에 명덕(바르게 기르는 이치)을 명료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바로잡고, 그 나라를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의 질서를 정연히 하고, 그 집안의 질서를 정연히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자신을 수양하여 닦고, 그 자신을 수양하여 닦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생각을 참되게 하고, 그 생각을 참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앎에 이르러야 한다. 앎에 이른다는 것은 만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데 있다.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未治者否矣. 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물격이후지지 지지이후의성 의성이후심정 심정이후신수 신수이후가제 가제이후국치 국치이후천하평. 자천자이지어서인 일시개이수신위본 기본난이미치자부의. 기소후자박이기소박자후 미지유야. 차위지본 차위지지지야.
만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한 이후에 앎에 이르고, 앎에 이르고 난 이후에 생각이 참되며, 생각이 참되고 난 이후에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르고 난 이후에 자신을 닦아야 하며, 자신을 닦은 이후에 집안의 질서를 정연히 하고, 집안의 질서가 정연한 이후에 나라를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잡은 이후에 천하가 평안하다. 천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 까지 하나같이 이 모든 것을 자신을 닦는 수양의 근본으로 삼고, 그 근본을 어지럽히고서 끝이 바로잡히는 것은 없다. 정성스럽게 대할 것을 업신여기고 업신여겨도 되는 것을 정성스럽게 대하면 아직 (수신이) 있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일컬으며, 이것을 앎이 지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팔조목의 구성을 보면 앞에 경문3장을 그대로 해석 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대학(大學)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먼저 바르게 알아서 백성들을 가르쳐 교화하여 모두가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도록 하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한 대동의 사회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학(大學)은 바로 공자의 인(仁)의 사상이 그대로 밝혀져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大(클 대/큰 대, 클 대, 클 다)는 ❶상형문자로 亣(대)는 동자(同字)이다. 大(대)는 서 있는 사람을 정면으로 본 모양으로, 처음에는 옆에서 본 모양인 人(인)과 匕(비) 따위와 같이, 다만 인간을 나타내는 글자였으나 나중에 구분하여 훌륭한 사람, 훌륭하다, 크다의 뜻으로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大자는 '크다'나 '높다', '많다', '심하다'와 같은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大자를 보면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크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大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정도가 과하다는 의미에서 '심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러니 大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大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크다'와는 관계없이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大자가 본래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대)는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어 큰, 으뜸가는, 뛰어난, 위대한, 광대한, 대단한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존경(尊敬) 또는 찬미(讚美)의 뜻도 나타냄 (3)큼. 큰 것 (4)큰 달. 양력으로 31일, 음력으로 30일인 달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대) ②높다, 존귀하다(대) ③훌륭하다, 뛰어나다(대) ④자랑하다, 뽐내다, 교만하다(대) ⑤많다, 수효(數爻)가 많다(대) ⑥중(重)히 여기다, 중요시하다(대) ⑦지나다, 일정한 정도를 넘다(대) ⑧거칠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대) ⑨낫다(대) ⑩늙다, 나이를 먹다(대) ⑪대강(大綱), 대략(大略)(대) ⑫크게, 성(盛)하게(대) ⑬하늘(대) ⑭존경하거나 찬미(讚美)할 때 쓰는 말(대) 그리고 클 태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태) ⓑ지나치게(태) 그리고 클 다의 경우는 ㉠크다, 심하다(다) ㉡극치(極致), 극도(極度)(다) ㉢지나치게(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위(偉), 클 굉(宏), 클 거(巨),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작을 소(小), 가늘 세(細)이다. 용례로는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큰 일을 대사(大事), 크게 구분함을 대구분(大區分), 일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형세를 대세(大勢), 크게 길함을 대길(大吉), 조금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체로 같음을 대동(大同),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큰 규격이나 규모를 대형(大型), 크게 어지러움을 대란(大亂), 사물의 큼과 작음을 대소(大小), 크게 이루어짐을 대성(大成), 크게 웃음을 대소(大笑), 넓고 큰 땅을 대지(大地), 넓혀서 크게 함을 확대(廓大), 가장 큼을 최대(最大),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뛰어나고 훌륭함을 위대(偉大),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마음이 너그럽고 큼을 관대(寬大), 엄청나게 큼을 거대(巨大), 형상이나 부피가 엄청나게 많고도 큼을 방대(厖大), 더 보태어 크게 함을 증대(增大),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인물은 오랜 공적을 쌓아 늦게 이루어짐 또는 만년이 되어 성공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대기만성(大器晩成), 넓고 큰 바다에 물방울 하나라는 뜻으로 많은 것 가운데 아주 작은 것이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대해일적(大海一滴), 넓고 넓은 바다에 떨어뜨린 한 알의 좁쌀이란 뜻으로 매우 작음 또는 보잘것없는 존재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대해일속(大海一粟), 거의 같고 조금 다름이나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대동소이(大同小異),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 또는 국가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도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라는 뜻으로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 함을 이르는 말을 대서특필(大書特筆),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중대한 의리와 명분을 이르는 말을 대의명분(大義名分), 큰 집과 높은 누각이라는 뜻으로 웅장하고 큰 건물을 이르는 말을 대하고루(大廈高樓), 크게 깨달아서 번뇌와 의혹이 다 없어짐을 이르는 말을 대오각성(大悟覺醒), 장군의 별칭으로 매사에 겸손하고 말 없이 수고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대수장군(大樹將軍), 큰 재목이 작게 쓰이고 있다는 뜻으로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됨을 이르는 말을 대재소용(大材小用),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슬피 욺을 일컫는 말을 대성통곡(大聲痛哭), 몹시 놀라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대경실색(大驚失色), 크게 간사한 사람은 그 아첨하는 수단이 매우 교묘하므로 흡사 크게 충성된 사람과 같이 보임을 이르는 말을 대간사충(大姦似忠), 바라던 것이 아주 허사가 되어 크게 실망함을 일컫는 말을 대실소망(大失所望), 매우 밝은 세상을 이르는 말을 대명천지(大明天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말을 대도무문(大道無門), 덕이 높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에 초연함 곧 도량이 넓어서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대인대이(大人大耳), 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공명정대하여 잔재주를 부리지 않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인다는 말을 대지여우(大智如愚) 등에 쓰인다.
▶️ 學(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은 ❶회의문자로 아이들이 양손에 책을 들고 가르침을 본받아 깨우치니 배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學자는 '배우다'나 '공부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學자는 臼(절구 구)자와 宀(집 면)자, 爻(효 효)자,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學자를 보면 집을 뜻하는 宀자 위로 爻자를 감싼 양손이 그려져 있었다. 한자에서는 爻자가 무늬나 배움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고 있으니 이것은 '배움을 가져가는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의 學자는 집이나 서당에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子자가 더해지면서 '아이가 배움을 얻는 집'이라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學(학, 교, 할)은 (1)철학 또는 전문적인 여러 과학을 포함하는 지식의 조직체. 곧 현실의 전체 또는 그 특수한 영역 및 측면에 관하여 체계화된 지식의 계통적 인식 (2)학문(學問) 등의 뜻으로 ①배우다 ②공부하다 ③흉내내다 ④모방하다 ⑤가르침 ⑥학교(學校) ⑦학문(學問) ⑧학자(學者) ⑨학통(學統) ⑩학파(學派) 그리고 ⓐ가르치다(교) 그리고 ㉠고지새(되샛과의 새)(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닦을 수(修), 익힐 련(練), 익힐 습(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르칠 교(敎), 가르칠 훈(訓), 가르칠 회(誨)이다. 용례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학교(學校),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문(學問), 사물을 배워서 익히는 일을 학습(學習), 학문에 능통한 사람이나 연구하는 사람을 학자(學者), 학문의 실력이나 역량을 학력(學力), 공부하여 학문을 닦는 일을 학업(學業), 학문의 사회나 학자의 사회를 학계(學界), 한 학년 동안을 규정에 따라 나눈 수업 기간을 학기(學期), 출신 학교에 따른 연고 관계를 학연(學緣), 학문의 기술 또는 학문의 방법이나 이론을 학술(學術), 공부한 이력을 학력(學歷), 공부하는 데 드는 돈을 학비(學費), 배워서 얻은 지식을 학식(學識),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 학생의 무리 또는 학문을 닦는 사람을 학도(學徒), 학업을 닦음을 수학(修學),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배우지 못함이나 학문이 없음을 불학(不學), 일정한 목적과 방법으로 그 원리를 연구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학문을 과학(科學), 인간이나 인생이나 세계의 지혜와 궁극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철학(哲學),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어학(語學), 학교에 들어감을 입학(入學),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 또는 개인이 설립한 교육 기관을 사학(私學), 외국에 가서 공부함을 유학(留學),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한동안 수업을 쉬는 일을 방학(放學), 방학을 마치고 다시 수업을 시작함을 개학(開學), 다니던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겨가서 배움을 전학(轉學), 학문에 힘써 공부함을 면학(勉學),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항상 복습하고 연습하면 그 참 뜻을 알게 됨을 이르는 말을 학이시습(學而時習), 학문은 미치지 못함과 같으니 쉬지 말고 노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학여불급(學如不及),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일컫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을 학여역수(學如逆水), 외고 읽을 뿐으로 이해하려고 힘쓰지 않고 또 실천하지 못하는 학문을 일컫는 말을 기송지학(記誦之學), 배우지도 못하고 아는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불학무식(不學無識), 널리 공부하여 덕을 닦으려고 뜻을 굳건히 함을 이르는 말을 박학독지(博學篤志)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道(길 도)는 ❶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首(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首(수)는 사람 머리와 같이 사물의 끝에 있는 것, 처음, 근거란 뜻을 나타낸다. 道(도)는 한 줄로 통하는 큰 길이다. 사람을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도 길이지만 또 도덕적인 근거도 길이다. ❷회의문자로 道자는 '길'이나 '도리', '이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道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首(머리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首자는 '머리'라는 뜻이 있다. 道자는 길을 뜻하는 辶자에 首자를 결합한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인도하다'나 '이끌다'였다. 그러나 후에 '사람이 가야 할 올바른 바른길'이라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도리'나 '이치'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寸(마디 촌)자를 더한 導(이끌 도)자가 '인도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道(도)는 (1)우리나라의 지방 행정 구역의 하나. 예전에 8도이던 것을 고종(高宗) 33(1896)년에 13도로 고쳤고, 다시 대한민국 수립 후에 14도로 정함 (2)우리나라의 최고 지방자치단체 (3)도청 (4)중국 당(唐) 대의 최고 행정 단위. 당초에는 10도로 나누어 각 도마다 안찰사(按察使)를 두었으며 734년에 15도로 늘려 관찰사(觀察使)를 장관(長官)으로 두었음 (5)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6)종교 상으로, 교의에 깊이 통하여 알게 되는 이치,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 (7)기예(技藝)나 방술(方術), 무술(武術) 등에서의 방법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 ②도리(道理), 이치(理致) ③재주 ④방법(方法), 술책(術策) ⑤근원(根源), 바탕 ⑥기능(機能), 작용(作用) ⑦주의(主義), 사상(思想) ⑧제도(制度) ⑨기예(技藝) ⑩불교(佛敎) ⑪승려(僧侶) ⑫도교(道敎) ⑬도사(道士) ⑭교설(敎說) ⑮~에서, ~부터 ⑯가다 ⑰가르치다 ⑱깨닫다 ⑲다스리다 ⑳따르다 ㉑말하다 ㉒완벽한 글 ㉓의존하다 ㉔이끌다, 인도하다 ㉕정통하다 ㉖통하다, 다니다 ㉗행정구역 단위 ㉘행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길 도(塗), 거리 항(巷), 거리 가(街), 네거리 구(衢), 길 로/노(路), 길 도(途), 길거리 규(逵), 모퉁이 우(隅)이다. 용례로는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도로(道路),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일에 쓰이는 여러 가지 연장을 도구(道具), 도를 닦는 사람을 도사(道士),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일반에게 알리는 새로운 소식을 보도(報道), 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궤도(軌道), 부모를 잘 섬기는 도리를 효도(孝道),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길을 정도(正道), 차가 다니도록 마련한 길을 차도(車道), 도를 닦음을 수도(修道),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을 왕도(王道), 바르지 못한 도리를 사도(邪道), 사람이 다니는 길을 보도(步道), 일에 대한 방법과 도리를 방도(方道),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뜻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져 백성의 풍속이 돈후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불습유(道不拾遺),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곧 그 길에서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뜻으로 거리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함 또는 깊이 생각 않고 예사로 듣고 말함을 일컫는 말을 도청도설(道聽塗說),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라는 뜻으로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도방고리(道傍苦李), 먼 길을 달린 후에야 천리마의 재능을 안다는 뜻으로 난세를 당해서야 비로소 그 인물의 진가를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도원지기(道遠知驥),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는 뜻으로 천도에는 크게 융성함과 쇠망함의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을 도유승강(道有升降),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감을 일컫는 말을 안빈낙도(安貧樂道), 시장과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라는 뜻으로 이익이 있으면 서로 합하고 이익이 없으면 헤어지는 시정의 장사꾼과 같은 교제를 일컫는 말을 시도지교(市道之交),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김을 일컫는 말을 청빈낙도(淸貧樂道),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너무나 엄청나거나 기가 막혀서 말로써 나타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언어도단(言語道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