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배우는 소품, 세트와 같은 피사체다. 카메라 앞에서 늘 대상이어야만 하는 그들이 이 관계를 역전시켰다. 김승우, 유지태, 차태현, 엄태웅, 이천희, 다섯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저마다 관심이 있는 피사체에 초점을 맞췄다. '구경꺼리'였던 이들이 구경꾼이 된 것이다. 얼구로가 몸으로 모든 걸 표현하던 그들의 카메라엔 감정을 품은 포즈와 숨 쉬는 정물, 찰나의 인상이 담겨 있다. 연기가 아니라 카메라의 눈에 포착된 사진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감성이 깃든 이들의 작품을 공개한다.
Photographer 김승우
정물, 시간을 정지하다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를 가진 아빠기 때문이다. 아이 얼굴을 직접 찍어주고 싶은 욕심이야 모든 아빠들이 마찬가지. 나 역시 카메라를 사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런데 마침 영화 <배꼽>에서 맡은 배역이 문화센터 사진반 강사라니, 이 참에 제대로 배워보자 싶었다. 달콤한 멘트를 날리며 유부녀인 배우 이미숙을 유혹하는 역할이지만 틈틈이 사진 찍는 기술을 배웠다. 촬영장에서 현장 스틸 찍는 작가가 선생님이 돼주었다. 극중에서 이미숙 선배를 모델로 세우고 사진 찍는 장면이 있어서 연습도 많이 했겠다, 이 참에 정을 더 붙여볼까?
(1)<배꼽>에 등장하는 나의 작업실.
(2)조금 낡은 듯 보이는 선풍기와 타자기.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지만, 시간을 정지시키는 사진에서는 역시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좋다.
(3)사진은 똑같은 것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가진 것 같다. 어떤 느낌을 가지고 찍느냐에 따라 그 작가의 마음이 담긴다. 똑같은 풍경, 똑같은 물건, 똑같은 얼굴이라 하더라도, 모두 다른 뉘앙스가 배어나온다.
(4) 바다. 그리고 하늘. 비록 액자 속에 갇혀 있지만 모든 걸 포용할 것 같은 저 느낌이 좋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Photographer 유지태
사진, 영화의 뿌리난 사진을 찍는 배우라기보다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사진도 특별한 이유로 시작했다기보다 영화의 기본이기 때문에 촬영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손이 갔다. 당연하게 시작했는데, 사진을 찍다보면 영화를 찍는 묘미도 배우게 된다. 영화 <황진이>와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가 끝나고, 배우 유지태가 아닌 감독 유지태의 영화 <나도 모르게> 현장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연극배우이자 여러 영화에 출연한 중견배우 이대연, <므이>의 조안이 주인공인데, 한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옛사랑과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찾아가게 된다는, 25분이 채 안 되는 단편이다. 촬영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얼굴과 내 영화를 찍었던 장소가 사진으로 고스란히 기록됐다.
(1)현장 편집본을 보고 있는 조안.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감정의 집중도가 높은 배우다. 덕분에 작업이 얼마나 수월했는지.
(2)많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알리고 연극 무대에서는 베테랑으로 정평이 난 배우 이대연. 꼭 같이 일해보고 싶은 선배였는데 내 영화에서 같이 하게 될 줄이야. 엄청난 연기만큼이나 인품이 뛰어난 배우다.
(3)<나도 모르게> 후반부에서 남자 주인공이 자신도 모르게 가 서게 되는 골목길. 남양주시에서 발견한 이 작은 골목은 옛것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맘에 쏙 드는 촬영지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이 골목의 발견은 나를 기쁘게 했다.
(1)영화 속 판타지 장면 중 하나. 아이디어는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에서 착안했다. 그 영화에 바치는 오마주다.
(2)한강 고수부지에 있는 이 굴다리는 선배들과 같이 작업하던 대학 시절부터 인연이 깊은 장소다. 언젠가 이곳에서 촬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영화 제목처럼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여기서 영화를 찍었다.
(3)단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는 대부분이 차량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렉카 위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위험 부담도 커, 모든 스탭과 배우들이 보험에 가입하고 촬영에 임했다.
Photographer 차태현
몰카, 고생과 웃음의 기록 <바보>의 촬영현장은 좋은 스탭, 배우들 덕에 너무 즐거웠다. 사진을 즐겨 찍는다고 할 순 없지만, 장난기가 동했다고 할까. 현장 스틸 작가의 카메라를 잠시 빌렸다. NG를 내고 크게 웃던 (하)지원이, 떽떽거리는 내 동생 ‘지인’을 연기한 (박)하선. 그리고 추운 겨울, 현장에서도 장난과 농담이 끊이지 않았던 스탭들의 표정을 몰래 카메라에 담는 재미. 사진 속에 촬영현장 속의 고생과 웃음이 그대로 남았다.
(1)극중 승룡이네 집. 내 동생 ‘지인’이가 잘 안 보여 아쉽지만 이건 스탭들을 위한 컷이다. 바보 오빠를 부끄러워하는 동생 지인이(박하선)와 바보 승룡이의 하나뿐인 친구 상수(박희순)가 대화하는 장면.
(2)모니터 확인하는 희순이 형과 하선이. 내 유일한 친구 상수는 매사가 진지하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 근데 대체 무슨 장면이지?
(3)승룡이의 생활 터전인 토스트 가게. 예쁘게 만들기 위해 스탭들 손길이 무척 분주하다. 그 보답으로 난 열심히 토스트를 만들어 나눠주었다.
(4)바라만 봐도 너무 좋은 내 첫사랑 지호(하지원). 난 항상 전봇대 뒤에 숨어서 그녀를 바라본다. 지원이 단독 신을 촬영하는 사이, 몰래 찍는 재미!
(5)지호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촬영 중. 지호와 승룡이의 10년 만의 재회가 이뤄지는 중요한 장면이다. 뒤에 감독님 모습도 살짝 보이네.
Photographer 엄태웅
촬영장의 생기를 담다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드라마 <마왕> 촬영을 하면서 매니저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만지작거린 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일까. 찍다보니 재미가 붙었고, 재미가 붙다보니 하나 둘 구색을 갖췄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의 연습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빈 시간 덕분에 재미가 붙었다. 이것저것 장비를 갖춘 뒤부터는 영화 촬영장마다 카메라를 놓지 않는 버릇이 생겼을 정도. 촬영장에서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나 배우들의 자연스런 표정, 생동감 넘치는 현장 분위기를 찍는다. 사진에 대해 뭐라 말할 수준은 못 되지만 취미이자, 재미이다.
(1)<님은 먼 곳에>에서 함께한 이준익 감독님과 배우 정경호. 회식이 끝나고 난 뒤라 개구쟁이 같은 성격이 여과 없이 나왔다.
(2)<우생순>에 출연하는 여자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저들의 이런 노력이 현장을 즐겁게 했다.
(3)영화 촬영 도중 김지영의 생일이 있었다. 가족만큼은 아니어도 위로가 될… 아니, 행복할 거야
(4)영화를 하면서 문소리, 김정은 씨와는 너무 가까워졌다. 아름답다.
(5)<이리> 현장에서 장률 감독님과 여주인공 윤진서. 어려운 신 촬영을 앞두고 한 컷. 감독님과 진서, 차가운 바다를 앞에 둔 두려움, 하지만 설렘.
Photographer 이천희
구식 현상의 맛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해서 카메라도 무진장 샀다. 디지털보다 필름 카메라가 좋고,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리는 것보다 현상해서 보는 게 좋다. 절친한 사이인 강동원과 이민기를 모델로 찍은 작품은 모 패션지에 실어본 적도 있다. 여기서 공개하는 영화 <허밍>의 현장 사진도 다 필름으로 찍은 것. 판타지 로맨스물인 이번 영화에서 의식불명에 빠진 여자친구 미연(한지혜)과 마지막 만날 기회를 갖게 된 남자 준서를 연기한다. 내가 사진을 즐겨 찍는다는 걸 안 제작사가 영화 속 남자의 심경이 돼 사랑하는 여자 미연과 풍경을 찍어달라고 부탁해 작심하고 찍었다.
(1)서천 갈대밭 촬영이 끝났다. 새벽에 현장에 도착해서 해가 질 때까지 그늘 한 점 없는 갈대밭에서 지혜와 내내 감정 신을 연기했다. 이날을 어찌 잊으랴. 툭 하면 구름 뒤로 숨어버리는 햇님 때문에 애를 태웠다. 이 사진을 찍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었던 것 같은데? 사진은 아름답게 남아 있지만 내 햄버거에 달려들던 날파리들. 지금은 저세상에 있을 테니 참자.
(2)설정 아니었는데 진짜 표정 좋다. 지혜는 웃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다. 연기자로선 복 중의 복. 밥차 앞이었던 거 같은데, 밥시간이어서 기분이 좋았나?
(3)준서가 미연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장면을 촬영하는 중. 심각한 장면인데 트럭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저렇게 작은 둘리 트럭에 꽉꽉 들어찬 아저씨들, 트럭 내려 앉을까봐 내심 걱정됐었던 기억이 생생.
(1)인화하고 보니 이 사진, 어서 감독님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찍었지만 베스트 컷이다. 촬영 전 MT 갔을 때 아침 먹고 식후 땡 하는 감독님. 사진만 보면 시 한 수 읊으실 것 같다.
(2)다들 처음엔 옥수수밭이라 했다. 내 키보다 장장 반이 더 크게 자란 갈대밭. 6월 갈대가 이런 색깔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기가 막히게 멋있어 안 찍을 수 없었다. 촬영팀은 그 속에 박혀버렸다. 저 아시바 위에서 나도 해질 때까지 12시간 넘게 서 있었다.
정리 송순진 기자
첫댓글 천희는 정말 느낌있다긔
이거 저두 기사루 읽어가지구 ㅠㅠ 이천희는 정말 정말 훈남이긔
2222 이라오슈 냉큼오슈
이천희 사진 넘 좋다~~ 나도 좀 찍어줘ㅋㅋㅋ
김승우.. 엄태웅..카메라 좋아보이긔...;.. 한지혜씨가 웃는게 이쁘긴 하다규..;..지혜 사진 잘나왔긔...
이천희 사진 정말 느낌좋다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