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단상
작년부터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바깥나들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차를 소유하지도 않고, 운전을 하지도 않으니 행선지가 가깝거나 멀거나 전적으로 대중교통에 의존해야만 한다. 웬만해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하기가 꺼림칙해서 길을 나서면 걷기가 일쑤다. 드물게 열차를 타는 경우가 있기도 하나 철도교통 역시 코로나 안전지대는 아니다.
근무지가 거제라 주말이면 창원으로 오가려면 천상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 다녀야 할 처지다. 그런데 다행히 코로나가 발생한 지난해 봄 나에게 굴러온 행운이 생겼다. 교직에 몸담아 얼굴 정도 알고 지내는 이가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사는데 그가 내 근무지 이웃 학교로 부임해 왔다. 그와는 동향이나 동문이 아니고 지난날 같은 학교 근무하지 않아 교류가 없던 사이다.
같은 아파트단지 지기는 내보다 정년이 한 해 더 남았다. 그는 옥포에 원룸을 정해 주중에 머물다 금요일 오후 창원으로 돌아간다. 사실 창원에서 거가대교 건너 거제까지 운전을 해 다니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 아니다. 몇 개 터널과 거가대교를 건너 근무지까지 1시간이면 닿는다. 그렇지만 장거리이고 왕복 2시간 운전해 다니기에는 체력으로도 힘에 부쳐 매일 통근은 무리였다.
거제대교 통행료는 만만하지 않아 1만원이다. 나는 지기가 운전대를 잡은 차의 동반석에 앉아 가면서 통행료를 부담하고 있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 개통된 거가대교는 침매터널 구간과 중죽도와 저도를 교각으로 삼은 연륙교가 거제 장목으로 건넌다. 가덕도 천성에서 침매터널로 들면 최대 수심 48 미터에서 중죽도로 솟아올라 저도를 건너 장목에 닿기까지 차로 불과 5분 남짓이다.
금요일 일과가 끝나면 이웃 학교 지기는 내가 지내는 연사로 차를 몰아온다. 옥포에서 연사까지는 거리가 가까워 차로 5분 남짓이다. 나를 태운 지기는 거가대교 접속도로로 들어 장목에서 거가대교를 건너면 가덕도다. 연대봉 산봉우리를 깎아 바다를 메워 동남권 신공항을 건설하려고 정권 차원에서 표심을 자극했던 곳이다. 나는 가덕도 신공항 경제성이나 안전성에 의문이 든다.
가덕도는 부산 강서구로 눌차대교를 건너면 부산경남경제자유구역청이다. 신항만 용원에서 몇 개 터널을 지나면 창원 시내로 진입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로 겨울을 난 가로수에서 벚꽃이 화사했는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신록은 녹음을 드리워 여름 한복판에 이르렀다. 이번 주말을 넘기고 다음 한 주를 보내면 여름방학을 맞이한다. 여름방학은 짧아 광복절 전 개학해 2학기를 시작한다.
일요일 오후 아파트단지 주차장에서 운전대를 잡는 지기를 만나 진해를 거쳐 거가대교를 건너면 한 군데 먼저 들리는 곳이 있다. 대금산 기슭 명상마을 공 씨 할머니가 농주를 빚어 파는 주막이다. 나와 지기는 주중 반주로 들게 되는 막걸리를 2병씩 마련해 온다. 할머니는 금정산성에서 택배로 부쳐온 누룩으로 고두밥을 쪄 농주를 빚어 팔았다. 2리터 생수병에 담아 6천원을 받았다.
지난 주말부터 연일 장맛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초순이다. 남녘 해안은 강한 강수대가 형성되어 호우경보까지 내리기도 했다. 올해는 유래가 드문 지각 장마라는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야행성에다 게릴라성 폭우를 퍼부어 곳곳에 물난리와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재난 문자는 코로나 감염자 동선과 함께 저지대 침수와 산사태 우려 지역은 안전에 각별히 유념하라는 당부였다.
칠월 첫째 수요일이다. 일과가 끝나면 날이 저물기까지 시간 여유가 제법 되는 편이다. 그런데 코로나에 발길이 묶인 데다가, 장맛비에 길을 나설 수 없다. 간밤에도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는데 날이 밝아온 낮에도 비는 오락가락하고 있다. 누가 불러주는 이가 없고, 어디 찾아갈 곳도 없다. 퇴근하고 연사 와실로 들면 독 안에 든 쥐와 같다. 명태전이라도 한 접시 있었으면… 21.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