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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재거(勿忘在莒)
거(莒) 나라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어려웠을 때를 잊지 말고 항상 경계하라는 말로, 출세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지난날을 잊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勿 : 말 물(勹/2)
忘 : 잊을 망(心/3)
在 : 있을 재(土/3)
莒 : 나라이름 거(艹/7)
출전 :
○ 사기(史記) 전단열전(田單列傳)
○ 여씨춘추(呂氏春秋) 직간(直諫)
거(莒) 나라에 있었음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어려웠을 때를 잊지 말고 항상 경계하라는 말이다.
사기(史記)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보이는 말이다.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은 전날 제(齊)나라에 패한 원한을 풀려고 제후들과 손잡고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제나라는 연나라 군사에게 수도를 점령당하고, 민왕(緡王)은 산둥성의 거(莒)로 피했으나, 초나라의 장군 도치(悼齒)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거(莒) 사람들은 아들 법장(法章)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제나라 내부의 결속이 무너져 버려 제나라의 성은 잇달아 함락되고, 오직 거와 즉묵(卽墨) 두 성만이 남게 되었다. 이때 거(莒)로 피한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전단을 사령관으로 삼을 것을 추천하였다.
연나라가 침입할 때 전단은 자기 식구들에게 모든 수레바퀴의 굴대를 가죽으로 씌우게 하였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패퇴의 혼란 속에서 수레가 망가져 낭패를 볼 때 안전하게 식구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의 식견을 높이 산 것이다. 제의 사령관이 된 전단은 먼저 계략으로 연나라 장군 악의(樂毅)를 실각시키고, 무속인을 동원해 자기의 등장이 하늘의 뜻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믿고 따르도록 만들었다.
그런 연후에 사졸들과 노고를 같이하고, 자기 아내와 첩도 대오에 끼워 함께 수고하게 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으로 부하들과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제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한 전단은 연나라 군막에 밀사를 파견하여 거짓으로 항복하였다. 거짓 항복 소식에 속은 연나라 군사가 승리에 취했을 때, 전단은 꼬리에 불을 붙인 소 500마리를 성 밖의 연나라 진영으로 몰아 나갔다.
이른바 화우지계(火牛之計)로, 당황한 연나라 군사는 지리멸렬하여 패퇴하고, 이후 제나라 군사는 도처에서 연나라 군사를 격파하여 순식간에 빼앗겼던 70여 성을 모조리 탈환하였다.
승리한 군사는 거(莒)에 있던 법장을 모셔다가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이후 제나라에서는 국왕이나 지배층이 해이할 때마다 물망재거(勿忘在莒)의 교훈을 거론했다.
물망재거(勿忘在莒)
잊지 말라는 뜻의 물망(勿忘)이라 하면 대뜸 물망초(勿忘草)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봄과 여름에 걸쳐 남색의 작은 꽃이 줄기 끝에 몰려 피는 꽃이다. '나를 잊지 마세요(forget me not)'란 꽃말로 유명하여 노래로, 영화로 자주 만들어졌다.
거(莒)나라는 중국 동부 산동(山東)성에 있었던 주(周)나라의 조그마한 제후국으로 50여년 만에 초(楚)나라에 멸망했다.
거나라에 있을 때(在莒)를 잊지 말라고 한 것은 과거의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며 항상 경계하라는 뜻을 가졌다. 이 성어의 유래에 돈독한 우정을 말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포숙아(鮑叔牙)가 등장한다.
제(齊)나라의 공자 규(糾)를 섬겼던 관중(管仲)과 달리 포숙아는 골육상쟁의 싸움 속에서도 작은 왕자 소백(小白)을 모시고 거나라로 피신했다. 소백이 제환공(齊桓公)에 오르자 포숙아는 친구 관중의 능력을 알고 추천했다.
최고의 재상 관중의 보필로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된 환공은 어느 때 중신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여기에서 변함없는 포숙아에게 축하의 말 한 마디를 청했다.
술잔을 받들고 포숙아가 나서며 말한다. '주공께서는 거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使公毋忘出奔在於莒也).'
그리고 당부의 말을 잇는다. 관중에게는 노(魯)나라에서 묶여있던 때는 잊지 말며, 짐수레를 밀던 마부 출신의 현신 영척(甯戚)에게는 소 먹이 줄 때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여불위(呂不韋)가 최고의 식자를 모아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직간(直諫)편에 실린 내용이다.
조금 후세의 이야기도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제나라는 거(莒) 지역으로 피했지만 왕이 피살되고 70여개의 성이 함락됐다.
전단(田單)이란 장군의 고군분투로 왕자를 찾아 나라를 다시 세웠다. 이후 제나라에서는 곤경에 처할 때마다 거 땅에 있을 때의 교훈을 새겼다고 했다.
무망재거(毋忘在莒)라고도 하는 이 성어는 대만과 본토 사이의 작은 섬 금문도(金門島)의 곳곳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륙에서 쫓겨난 장개석(蔣介石)의 친필이라는데 중국군의 포격을 물리친 기개를 살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옛날 제나라 때의 환공과 같이 고생을 잊지 말자는 교훈이 더 크다.
조금만 형편이 펴지면 올챙이 적 생각을 까맣게 잊고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못마땅하겠지만 말이다.
물망재거(勿忘在莒)
거(莒) 땅에 있었음을 잊지 말라는 말로, 지난 날 어려웠을 때를 잊지 말고 항상 경계하라는 뜻이다. 사기(史記) 전단열전(田單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은 지난날 제(齊)나라에 패한 원한을 풀려고 제후들과 손잡고 제나라를 공격하였다.
제(齊)나라는 연(燕)나라 군대에게 수도를 빼앗긴 민왕(緡王)은 산동성(山東省)의 거월 땅으로 피했지만 초나라의 장군 도치(悼齒)에게 죽음을 당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거(筥) 땅 사람들은 민왕(緡王)의 아들 법장(法章)을 왕으로 앉혔다.
그러나 제나라는 내부의 결속이 무너져버려 제나라의 70여 성(城)은 잇달아 함락되고 오직 거(莒)와 즉묵(卽墨) 두 성만 남게 되었다. 이때 거(筥)로 피난을 간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전단(田單)을 사령관으로 삼을 것을 추천하였다.
전단은 연나라가 침입했을 때 자기 가족들에게 모든 수레바퀴의 굴대를 가죽으로 씌우게 했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수레가 망가져 낭패를 보았는데 그는 안전하게 가족들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전단(田單)의 식견을 높이 산 것이다.
제나라의 사령관이 된 전단(田單)은 먼저 계략을 써서 연나라 장군 악의(樂毅)를 실각시키고, 무당(巫堂)들을 동원해 자신의 등장이 하늘의 뜻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믿고 따르도록 만들었다. 그런 다음 병사들과 온갖 노고를 같이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자기 아내와 첩(妾)도 군대와 함께 생활하면서 고생하게 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부하들과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이렇게 하여 싸워 볼 만하다고 판단한 전단은 연(燕)나라 진영(陣營)에 사람을 보내 거짓으로 항복하였다. 이 소식에 속은 연나라 군대가 승리에 취해 심신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 틈을 노려 전단은 소(牛)5백 마리의 꼬리에 불을 붙여 성 밖 연나라 진영으로 몰아 나갔다. 이른바 화우지계(火牛之計)의 전법을 펼쳤다. 화우지계에 당황한 연나라 군사는 지리멸렬하여 패퇴하였다.
이후 제나라 군대는 전투마다 연나라 군대를 격파하여 빼앗겼던 70여 성(城)을 순식간에 모조리 탈환하였다.
승리를 거둔 전단(田單)은 거(莒) 땅에 있던 왕자 법장(法章)을 모셔다가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이후 제나라에서는 국왕이나 지배층이 해이해질 때마다 물망재거(勿忘在莒)의 교훈을 강조하였다.
근세에 와서도 중국의 장개석은 광동성에서 대만으로 탈출하는 비극적인 상황으로 이어지자 본토를 탈출하면서 분한 나머지 물망재거(勿忘在居)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잘살 때 지난날의 고생을 있지 말라는 경계이기도 한 말이다.
국가를 잃어버리는 상황도 참담하지만 개인도 한 순간의 잘못된 생각과 허욕 때문에 자기 한사람의 명예뿐만 아니라 한 가정이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선거철이 가까워지면 목청을 돋우어 온갖 화려한 경력으로 선출직에 나서려고 한다. 그러나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고위공직이나 권력기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물망재거(勿忘在居)의 교훈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무망재거(毋忘在莒)
거(莒) 땅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잘 된 후에도 과거에 어려웠던 때를 잊지 말라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포숙아(鮑叔牙)가 건배사로 한 말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齊)나라 희공(僖公)에게는 태자인 제아(諸兒), 그리고 규(糾)와 소백(小白) 등 아들이 셋 있었다. 희공이 죽자 태자 제아가 그 뒤를 이었는데, 이이가 양공(襄公)이다.
양공은 흉악무도하기 짝이 없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공자 규는 관중(管中)과 함께 노(魯)나라로 피했고, 공자 소백은 포숙(鮑叔)과 더불어 거(莒)나라로 망명했다.
그 후, 양공을 원망하는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양공을 살해하자 제나라에는 권력의 공백 상태가 찾아왔다. 이에 제나라 대부들은 제나라에 먼저 들어온 공자를 주공으로 세운다 했다.
이로부터 제나라 주인의 자리를 놓고 규와 소백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이 시작되었는데, 최후의 승자는 소백으로, 이이가 바로 춘추 오패의 한 사람인 제환공(齊桓公)이다.
환공은 포숙아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중을 재상으로 삼고, 관중의 보필에 힘입어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언젠가 환공이 관중, 포숙, 영척(甯戚)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술이 한 순배 돌자 환공이 포숙에게 말했다. '축하의 말을 해 주시지요.'
齊桓公, 管仲, 鮑叔, 甯戚相與飮, 酒酣, 桓公謂鮑叔曰: 何不起爲壽.
포숙이 잔을 받잡고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주군께서는 거 땅에서 나올 때를 잊지 마시고, 관중은 노나라에 묶여 있을 때를 잊지 말며, 영척은 소를 먹이며 수레 밑에서 지내던 때를 잊지 않기 바랍니다.'
鮑叔奉杯而進曰: 使公毋忘出奔於莒也. 使管仲毋忘束縛而在於魯也. 使甯戚毋忘其飯牛而居於車下.
환공이 자리에서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나(避席) 재배하며 말했다. '과인과 여러 대부들이 포숙의 말을 잊지 않으면 제나라의 사직은 결코 위태롭지 않을 것이오.'
桓公避席再拜曰, 寡人與大夫能皆毋忘夫子之言, 則齊國之社稷幸於不殆矣.
포숙이 환공에게 '거 땅에서 나올 때를 잊지 말라'고 부탁한 말에서 '무망재거(毋忘在莒)'가 유래했다. '물망재거(勿忘在莒)'라고도 한다.
'피석(避席)'이란 상대방이 술잔을 권했을 때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술좌석에서의 예의였다.
중국에서 북방 이민족들의 생활 풍습이었던 침상과 의자 생활이 보편화된 것은 송(宋)나라 시대였고, 그 이전에는 바닥에서 생활을 했었다.
(參考)
영척(甯戚)은 위(衛)나라 사람으로 일찍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품고 있었지만 처지가 너무 궁곤하여 남의 천거를 받을 수가 없었다.
영척(甯戚)은 제환공에게 발탁되기 위해 상인의 짐수레를 모는 하인으로 들어가 짐수레를 몰고 제나라로 들어갔다.
영척(甯戚)은 밤에 성문 밖에서 노숙을 하다가 마침 손님을 영접하러 교외에 나온 환공을 보게 되었다. 영척(甯戚)은 수레 밑에서 소를 먹이다가 환공을 보고 소뿔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환공은 영척을 기이한 사람으로 여기고 수레에 태워 돌아왔다. 영척은 환공에게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는 방책을 진언했고, 환공은 영척을 중용했다.
무망재거(毋忘在莒)
무망재거(毋忘在莒), 대만에 가면 곳곳에 이 넉자의 구호가 붙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79여 성을 모두 잃고 마지막 거(莒城)와 즉묵(卽墨)만 남았다.
이를 반공기지(反攻基地)로 삼아 연을 물리치고 국토를 회복하게 된 고사를 거울삼아 중국본토를 회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거에 있을 때를 잊지 말자는 뜻의 반공반공(反共反攻) 구호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환공이 거(莒)에서 고생한 뒤 왕이 되었으니 그 때의 비참했던 때를 회상하여 교만하지 말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자유당 시절에 반일방공(反日防共)이라는 구호가 곳곳에 나붙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도 이 시점에서 반공방북(反共防北)의 구호라도 내세우며 마음을 다져야하지 않을까 싶다.
반공 개념이 허물어지고 친공화 무드가 조성되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스럽다. 하기야 단순 순박한 논리로 생각하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렇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가 없고, 경제체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조차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역사적 추세를 세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勿(말 물, 털 몰)은 ❶상형문자로 장대 끝에 세 개의 기(旗)가 달려 있는 모양으로, 음(音)을 빌어 부정, 금지의 뜻의 어조사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勿자는 '말다'나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말다'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라'라는 뜻이다. 勿자는 勹(쌀 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싸다'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勿자를 보면 刀(칼 도)자 주위로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칼로 무언가를 내려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勿자는 이렇게 칼을 내리치는 모습에서 '~하지 말아라'와 같은 금지를 뜻을 나타내고 있다. 파편이 주변으로 튀는 것을 나무라던 것이다. 그래서 勿(물, 몰)은 ①말다, 말라, 말아라 ②아니다, 없다 ③아니하다 ④근심하는 모양 ⑤창황(惝怳)한 모양, 부지런히 힘쓰는 모양 ⑥분주(奔走)한 모양, 그리고 ⓐ먼지를 털다(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말할 것도 없음을 물론(勿論), 하려던 일을 그만 둠을 물시(勿施), 생각하지 말음을 물념(勿念), 개개거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함을 물침(勿侵), 내버려 두고 다시 묻지 아니함을 물문(勿問), 적용하지 아니함을 물용(勿用), 들어가거나 들어오지 마시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을 물입(勿入), 조심성이나 삼감이 없음을 물렴(勿廉), 가리지 아니함을 물간(勿揀), 받아들이지 아니함을 물봉(勿捧), 새어 나가지 않게 함을 물설(勿洩),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물실호기(勿失好機), 조그만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으로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말을 물경소사(勿輕小事), 은사를 입지 못할 무거운 죄를 일컫는 말을 물간사전(勿揀赦前), 작은 일에 정성을 드리지 않는 일을 이르는 말을 물성소사(勿誠小事), 약을 쓰지 아니하여도 병이 저절로 나음을 일컫는 말을 물약자효(勿藥自效), 비밀한 일이나 또는 상스러운 일이어서 들어 말할 것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물위거론(勿爲擧論), 증인으로서 물어 볼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물위증질(勿爲證質), 기밀한 일을 공포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물출조보(勿出朝報) 등에 쓰인다.
▶️ 忘(잊을 망)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亡(망; 숨다, 없어지다)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忘자는 '잊다'나 '상실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忘자는 亡(망할 망)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亡자는 날이 부러진 칼을 그린 것으로 '망하다'나 '잃다', '없어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없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亡자에 心(마음 심)자를 결합한 忘자는 '마음을 없애다' 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잊으라는 뜻이다. 忘자를 보니 '미망인'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하지만 미망인은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未忘人(미망인)이 아니라 '아직 따라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의 未亡人(미망인)이다. 그래서 忘(망)은 주의하는 마음이 없어지다, 잊다는 뜻으로 ①잊다, 기억(記憶)하지 못하다 ②버리다, 돌보지 않다 ③끝나다, 단절되다 ④소홀(疏忽)히 하다 ⑤망령되다 ⑥상실하다, 잃어버리다 ⑦없다 ⑧건망증(健忘症)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사실을 잊어 버림을 망각(忘却) 또는 망실(忘失), 집안을 망치는 못된 언동을 망덕(忘德), 은혜를 잊음을 망은(忘恩), 잊어 버림을 망기(忘棄), 나이를 잊음을 망년(忘年), 근심을 잊는 일을 망우(忘憂), 보고 듣는 것을 자꾸만 잊어 버림을 건망(健忘),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잊지 아니함을 불망(不忘), 잊지 않게 하려는 준비를 비망(備忘), 기억에서 사라짐을 소망(消忘), 잊을 수가 없음을 미망(未忘), 정신이 흐려 잘 보이지 않음을 혼망(昏忘), 노인이 서로 가까이 교제하는 젊은 벗을 일컫는 말을 망년우(忘年友),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 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함을 일컫는 말을 망은배의(忘恩背義), 자신과 집안의 일을 잊는다는 뜻으로 사私를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와 공을 위해 헌신함을 이르는 말을 망신망가(忘身忘家),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 또는 술의 딴이름으로 술을 마시면 근심 걱정을 잊게 된다는 데서 온 말을 망우지물(忘憂之物), 나이 차이를 잊고 허물없이 서로 사귐을 일컫는 말을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교제하는 벗 특히 연소자의 재덕을 인정하여 연장자가 하는 말을 망년지우(忘年之友) 등에 쓰인다.
▶️ 在(있을 재)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재(자; 才의 변형; 풀의 싹 모양)의 뜻이 합(合)하여 있다를 뜻한다. 흙으로 막아서 그치게 하다, 멈추어 있다, 살아 있다, 존재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在자는 '있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在자는 土(흙 토)자와 才(재주 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才(재주 재)자는 새싹이 새로 돋아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才자가 '존재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후에 才자가 '재주'와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금문에서는 여기에 土자를 더한 '존재하다'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在(재)는 (1)돈이나 물건 따위의 쓰고 난 나머지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있다, 존재하다 ②찾다 ③보다, 살피다 ④안부를 묻다 ⑤제멋대로 하다 ⑥곳, 장소(場所) ⑦겨우, 가까스로 ⑧~에, 처소(處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있을 존(存), 있을 유(有)이다. 용례로는 학적이나 호적이나 병적 등에 적혀 있음을 재적(在籍), 창고에 쌓아둔 물건을 재고(在庫), 전부터 있어 내려옴을 재래(在來), 임금의 자리에 있음 또는 그 동안을 재위(在位), 직무에 있음 또는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을 재임(在任), 직장에 근무하고 있음을 재직(在職), 학교에 다니는 중임을 재학(在學), 외국에 있음을 재외(在外), 집에 있음 또는 집에 있으면서 중처럼 도를 닦음을 재가(在家), 초야에 파묻혀 있음을 재야(在野), 고향에 있음을 재향(在鄕), 어떤 자리에 있는 물건을 재물(在物), 어느 직장에 근무하는 일을 재근(在勤), 한동안 머물러 있음을 재류(在留), 세상에 살아 있음을 재세(在世), 지금 이때를 현재(現在), 현존하여 있음 또는 있는 그것을 존재(存在), 속에 숨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을 잠재(潛在),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있는 곳 또는 있는 바를 소재(所在), 현실에 존재함 또는 그것을 실재(實在),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 또는 직무 상으로 파견되어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주재(駐在), 어떤 사물이나 범위의 안에 있음을 내재(內在), 여기저기 흩어져 있음을 산재(散在), 남아 있음을 잔재(殘在), 건강하게 잘 있음을 건재(健在), 이것과 저것의 사이에 끼어 있음을 개재(介在), 나타나 있음을 현재(顯在), 이 한번으로 담판을 짓는다는 뜻으로 단 한 번의 거사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끝장을 냄을 일컫는 말을 재차일거(在此一擧), 집에 있으면서 독서함을 이르는 말을 재가독서(在家讀書), 바삐 돌아 다니느라고 집에 있는 날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재가무일(在家無日), 어떠한 일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재소난면(在所難免), 자기가 소속된 바에 따라 처신을 하게 마련이라는 말을 재소자처(在所自處),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을 일컫는 말을 인명재각(人命在刻), 새가 높이 날 때는 바람은 그 밑에 있다는 뜻으로 높은 곳에 오름을 이르는 말을 풍사재하(風斯在下), 뜻이 천리에 있다는 뜻으로 뜻이 웅대함을 이르는 말을 지재천리(志在千里) 등에 쓰인다.
▶️ 莒(감자 거/나라이름 거)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呂(려, 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莒(거)는 ①감자(가짓과의 여러해살이풀) ②나라의 이름 ③성(姓)의 하나 등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거나라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어려웠던 때를 항상 기억하라는 말을 물망재거(勿忘在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