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과 바른 번역의 차이와 오해>>
직역은 “그대로” 바로 번역했다는 말이다.
형식까지 일치시키는 formal equivalence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올바른 번역과 직역을 혼동한다.
언어상의 차이가 큰 헬/히와 우리말의 경우
그대로 번역하면 곤란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직역 성경이 예배용 성경으로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직역 성경이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는 것은
어느 정도 원어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경우에 참고, 연구할 경우이다.
모든 관사를 “그”로 빠지지 않고 집어넣는다고 직역 성경이 아니며,
자기가 아는 몇 단어를 헬/히의 기본 의미로 바꿨다고 직역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교회의 일반적인 신학에 맞추어 의역한 것을
직역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많으며,
하나님/예수님께 예의(?)를 갖추려다가
원문과 거꾸로 번역한 경우도 꽤 많다.
그리고 대체로는 최신으로 번역한 중역하지 않는 성경들이
원어의 뜻을 바로 살리는 경우가 많다.
하나를 지나치게 앞세우지 말고
두루두루 참고하며,
헬/히를 조금씩 공부하며,
무엇에 근거하여 그 번역이 나올 수 있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면 최상이다.
영역본을 비롯 자기가 할 줄 아는 언어의 번역도 참고하면서...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 바르다는 교만함을 버리고,
다른 가능성에 대해 들어볼 줄 아는 겸손이다.
많은 오해처럼
나와 다른 견해와 번역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릴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있거나
말씀을 변개(?)하기 위해 눈이 벌개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말 말씀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바른 의미를 쉽게 전하려는
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
자 아래 예시만 잘 번역했다고 좋은 번역은 아닌데,
가장 쉽게 원어를 직역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샘플이 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인지 물어보는 부분이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헬라어 : σὺ λέγεις.
문자적인 직역: 네가 말한다. (혹은 네가 말하고 있다)
로스(1887): 말하였도다(표기 현대화)
신약(1904): 말하였도다
신약(1911): 네 말이 올토다
개역: 네 말이 옳도다
개역개정: 네 말이 옳도다
바른: 네 말이 옳다
새번역: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공동번역 개정: 그것은 네 말이다
200주년 기념 성경: 당신이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가톨릭):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말: 네가 그렇게 말했다.
쉬운성경: 지금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현대인의: 그렇다
현대어: 네 말대로다
새한글: 바로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부분에 한해서 개역 계열이 가장 큰 의역이고 풀이역이며, 거의 “현대인의 성경” 수준이다. 난해한 부분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아마도 1911년 구역 성경의 출간 과정에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이 부분은 바른성경도 고민하지 않고 개역을 따라갔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직역에 가까운 것은 천주교 200주년 기념 성경이다. 이 성경은 전체적으로도 직역에 가까우면서도 90년대에 나온 성경이기에 성경 연구에 참고하도록 추천할 만하다. 비교적 현대의 번역이고, 단어의 의미도 BAGD(BDAG가 3판, 이 사전이 2판)를 매우 충실히 따랐다.
직역과 의역은 의외로 단순한 문제인데, 무엇이 바른 성경인가? 또는 좋은 성경 번역인가? 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매우 안타깝게도 보수적인 개신교의 번역일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신학에 따른 의역이 자주 나타난다. 오직 성경이라면, 함부로 자기 생각을 번역에 집어넣어서는 안되는데, 경우에 따라 의미를 거꾸로 번역한 경우도 간혹 생긴다. 성경보다 더 성경적이 되는 오류는 피해야 할 것이다.
“오직 성경”으로 개혁한 개신교, 개혁교회가 가톨릭보다 성경 번역에 정성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이율배반 아닐까?
그래서 우리말로 어색하더라도 원문의 구조와 용어를 살린 YLT같은 연구용 직역 성경이 필요할 것 같다. 새한글도 “젊은 세대”의 가독성이 우선이기에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렸지만, 문장의 구조나 표현은 잘 알아보기 쉽도록 다듬은 곳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