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내 아를 나아도~' '아따~ 거시기허요'. 이 세 문장의 공통점은? 100%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두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인가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했던 것인데 표준어와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를 서로 비교해가며 '민병철 생활영어'의 형식을 패러디해 많은 웃음을 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산이 고향인 아내는 지금은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다. 그렇지만 친정 식구나 어릴 적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역시 내가 듣기엔 완벽한 부산 사투리를 한다. 내 귀에 들려오는 느낌은 외국어에 가깝다.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보면 멋쩍게 웃는 아내가 한마디 덧붙인다. 본인도 토박이 어르신들이 말씀하실 땐 다 못 알아 듣는다고... 사실 옛날 어렸을 적엔 사투리 사용자에 대해 많은 선입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표준어를 사용하면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이 나고, 사투리를 사용하면 왠지 촌스러운 느낌의 대표라고 여겼었다. 초등학교 시절, 사투리를 쓰는 아이가 전학을 오기라도 하면 그 친구 말투나 억양이 모든 아이의 웃음거리가 됐을 정도였으니…. 그래서 그런지 영화나 드라마의 희극적인 배역이나, 조연들의 사투리 사용을 거의 당연시하며 봐왔던 것 같다. 한번도 '왜 주인공은 사투리를 안 쓸까?' 라는 의심 없이…. 그러나 최근 우리의 대중문화에서 사투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져 주인공의 모습을 하고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표준어의 보루였던 방송에서 신세대를 중심으로 사투리가 당당하게(?) 사용되고, 인터넷 도입으로 언어의 탈문법화가 시도되고, 채팅과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드러나면서 청소년들만의 방언이 하나의 언어체계로 구축됨과 동시에 지역 사투리 역시 부상하게 됐다. 지역주민에게는 생활 언어로서의 의미를 갖는 사투리가 젊은이들에게는 표준어로 지배되는 획일적인 서울문화에 대한 반발과 낯섦에서 오는 신선감, 그리고 재미로 작용하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형성하는 새로운 언어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사투리를 사회적 차별의 표지가 아닌, 문화적 역동성과 다양성의 표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문화산업이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사투리가 매력적인 웃음과 개성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사투리를 구사한 영화나 드라마의 성공이 곁들여지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됐다. 사투리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열광은 표준어 사용자로서의 우월감을 맛보고자 함이 아니라 사투리에 내포된 역동성과 다양성을 향유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사투리가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투리의 희화화를 조장해 사투리가 갖는 의미를 왜곡하고, 여전히 특정 지역과 특정 직업을 폄하하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개선하기는커녕 심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또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는 대중매체의 장르나 분야에서조차 무분별하게 사투리를 남용함으로써 장기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바른 언어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언어는 사회와 그 구성원의 역학관계에 따라 새로 생겨나고 성장하며 사멸한다. 이러한 언어의 변화는 철저히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인식이 공감한다는 전제하에 전개돼야 한다. 사투리를 드라마나 영화 혹은 다른 매체에 사용할 사람이라면 이제 사투리의 무늬만 차용할 것이 아니라 그 사투리에 배어 있는 의미와 지역의 정신 복원에 눈을 돌려 좀 더 올바른 사투리 사용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중앙일보 2005년 03월 30일】 - 기고자 ... 김상진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