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제 마음을 정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앞에 정직하게 하옵소서.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더러운 세상의 것들과 구별되고 온전해져서
오직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존재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오니
평강과 기쁨을 주시옵소서.
성령님,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 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25.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26.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바위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서 하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28. 그가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그의 장비를 두고
29. 산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는 도망하도다
30.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31. 맛메나는 피난하며 게빔 주민은 도망하도다
32. 아직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33.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34.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본문 주해)
20~23절 : 하나님께서 남겨 두시는 자
유다를 심판을 하신 후, 이전에 징표로 주셨던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의 이름처럼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하신다.
남은 자는 어떤 자인가?
남은 자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않는 자이다. 앗수르 같은 세상 힘을 의지하지 않는 자이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다가 심판을 받았기에 다시는 그런 것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남겨진 자이다.
아들은 소수이다.
하나님이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만 진실히 의지하는 소수의 사람, 남은 자들이다.
24~27절 : 앗수르를 치시다.
유다의 교만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곧 그의 분노를 앗수르로 옮기신다.
그것은 기드온과 300명이 미디안 군대의 물리친 것과(사9:4)와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가 몰살된 것(출14:26~28)처럼 이루어질 것이다.
앗수르로부터의 이스라엘 해방은, 황소의 목이 비대해짐에 따라 멍에가 찢어져 자유하게 됨과 같이 그렇게 확실하게 올 것이다.
28~34절 : 승승장구하다가 꼬꾸라지다.
자기 힘을 의지하고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던 앗수르가 유다를 쳐들어오는 모습이다.
앗수르는 북쪽에서 유다 쪽으로 내려오면서 다 정복을 하면서 내려온다.
아얏, 미그론, 믹마스, 게바, 라마, 기브아, 갈림, 라이사, 아나돗, 맛메나, 게빔을 정복하며 빠른 속도로 진군한다.
그리고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놉에서 휴식을 취하며 전열을 재정비한다.
‘예루살렘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위협적인 제스처이다. 예루살렘이 정복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교만은 레바논의 숲처럼 하나님께 작벌을 당할 것이다.
(나의 묵상)
유다와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비록 유다와 앗수르의 교만을 공히 심판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25절)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바로 ‘남은 자’를 남기시는 것이었다.
이 ‘남은 자’의 특징은 무엇일까?
더 이상 애굽에게, 앗수르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경험한 자들이다.
자신이 힘이라고 믿었던 세상의 힘이 오히려 자기를 심판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힘을 의지했다가 낭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힘이 대단해 보이지만 다 헛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힘과 함께,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는 어떠한 가능성도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남은 자의 이 지식은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남은 자’에 대해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며 오직 약속의 자녀라야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하였다.(롬9:6~8)
그러므로 남은 자는 약속의 자녀이며, 약속의 자녀는 주님께서 이루신 새 언약의 백성이다.
즉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에 연합된 삶을 사는 자이다.
십자가에 연합되지 않으면 거대한 세상 물결이 또 다시 위력적이며 매혹적으로 보인다.
또 다시 나의 힘과 능력과 의지가 발동되기 시작한다.
참으로 믿음의 삶은 ‘하루하루 살아요’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내가 성령충만하여 남은 자로서의 삶을 넉넉하게 살았어도, 내일 또 어떠할지 장담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십자가에 연합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직 입술을 꼭 깨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결심과 결단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잠잠히, 묵묵히 매일의 말씀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일주일을 걱정하지 말고, 한 달을 생각하지 말고, 일 년 동안 어떻게 지속적으로 할 것인가 미리 당겨서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루의 말씀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된다.
매일 말씀 앞에서 머리 조아려 기도하며 십자가의 주님을 발견하고 만나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얼마 전 초교파 연합집회 때 본 문구가 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천 명이 넘는 자들이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모두가 남은 자처럼 가슴이 벅차서, 거룩하고 비장하게 외쳤다.
그러나 이 구호만을 백 번 천 번을 큰 소리로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삶으로 살아내야 할 일이다.
매일 주님을 만나는 삶, 그것이 남은 자의 삶이다.
(묵상기도)
주님,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 자, 흔적도 없이 멸망당할 자를
살려 남겨 두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항상 기억함으로
세상 힘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주인의 손에 꼭 맞게 들린 도구가 되어
남은 생을 충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가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오늘, 1박 2일이지만 꽤 먼 길을 갑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지체들과의 만남과 교제가
서로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강건하게 세워주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함께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