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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 단, 아셀, 납달리(북쪽) 62,700, 41,500 53,400 (25~3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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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 32,200 에브라임 40,500 베냐민 35,400 (서쪽) (18~24절) |
| 레위 (므라리) |
| 잇사갈 54,400 유다 74,600 스볼론 57,400 (동방) (3~9절) |
레위 | 회막 | 레위 | ||
(게르손) | (제사장) | |||
| 레위 (고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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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시므온, 르우벤(남쪽) 45,650 59,300 46,500 (10~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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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막을 중심으로 한 진영의 구조(3~31절)
1) 동방 해 돋는 쪽에 유다의 진영(3~9절).
(1)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입니다(3절)
“[3] 동방 해 돋는 쪽에 진 칠 자는 그 진영별로 유다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동방 해 돋는 편(케드마 미즈라하) - 직역하면 '해 뜨는 방향인 동쪽'입니다. 이는 성막의 앞 방향 곧 행진 방향이기도 합니다(3:38).
또한 이곳은 성막 주위에 진배치를 시작할 때 제일 처음 언급된 곳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영광되고 아름다은 자리임을 암시합니다.
이곳에 위치한 지파들은 유다의 기(旗)아래 모인 자들로서 행군할 때도 제 일 대로 진행하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유다 지파를 향한 야곱 예언의 성취라 할 수있습니다(창 49:10).
*창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예언은 다윗 때에 꽃을 피워(삼하 2:4-7; 5:1-3),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실로 유다가 해 돋는 동편을 차지한 것은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말 4:2)께서 유다의 가계를 통해나실 것을 예시합니다(히 7:14).
과연 예수께서는 해처럼 찬란한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요 8:12; 9:5;10:3,4).
한편 밧모 섬에서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바라 본 바 그리스도의 얼굴이 해와 같았다는 사실은 위의 내용과 잘 부합됩니다(계1:16).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 즉 동쪽 방향을 대표하는 유다 진(陣) 기에 예속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종속적인 의미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내린 지휘권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을 가리킵니다.
실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단 한 분의 왕으로 족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파 백성들은 각자의 인격과 지위를 인정해야 했으며 서로가 유기체적인 관계를 지닌 자들로서 서로를 섬기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 힘써야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출애굽 여정 중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광야 교회'라 부를 수있는 것입니다(고전 12:4-31).
유다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를 지도할 우두머리 한 명씩을 선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은 지난번 인구 조사 때 모세와 아론을 도와 실무를 담당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즉 1:4-16 에 기록된 지파의 두령들이 2:3-31에서족장으로 재임명 받았던 것입니다.
한편 개역 성경에서 족장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히브리어는 '알루프', '나시', '로쉬', '사르'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창세기에는 '알루프'만이 쓰였고,
민수기에는 대부분 '각시'가 쓰였습니다.
본서에 자주 쓰인 '나시'는 '들어 올리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올리다' 등의 뜻인 '나사'에서 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족장'(나시)이란 말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우두머리(prince, chief)로 높여진 자를 가리킵니다.
즉 각 지파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들어 올려진 자'가 곧 족장입니다.
이는 결국 족장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나타냅니다(롬 13:1).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유다진영은 유다와 잇사갈, 스볼론이 진을 쳤습니다(4~8절).
“[4]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칠만 사천육백 명이며[5] 그 곁에 진 칠 자는 잇사갈 지파라 잇사갈 자손의 지휘관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요[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사천사백 명이라[7] 그리고 스불론 지파라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요[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칠천사백 명이니”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3) 유다 진영에 속한 군대는 186,400명입니다(9절).
“[9] 유다 진영에 속한 군대로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팔만 육천사백 명이라 그들은 제일대로 행진할지니라”
제일대로 행진할지니라. - 즉 '첫번째로 출발해야 한다'(RSV, they shall set outfirst)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첫번째'(리숀)란 말은 '머리'(로쉬)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머리, 곧 행진시 선봉에 서는 영예를 누리게 된 셈입니다(창 49:10).
그러나 그것은 직분상의 머리가 아니라 전투적 사명에 있어서의 머리를 가리킵니다.
실로 유다 진기에 속한 자들은 싸움에서 물러서기를 싫어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80세의 노년에 이르러서도 전투에 앞장섰던 유다 지파 출신의 장군 갈렙의 용맹성에서도 잘 나타납니다(민13:6,30;수14:13,14;15:14). 진정 하나님은 비겁한 자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강하고 담대한 자라야 그의 부르심을 따라 죄악과 싸우는 전투에 앞장 설 수 있는 것입니다.
H.W. 롱펠로우가 그의 시[인생 예찬]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하여 이기는 영웅이 되라'고 외친 것처럼 지금은 영적 전쟁을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성도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따라서 아이작 왓츠는 '뭇 성도 피를 흘리며 큰 싸움 하는데 나 어찌 편히 누워서 상 받기 바랄까?' 라는 찬송시로 성도들의 분발은 촉진했습니다.
실로 용맹했던 유다 지파처럼 각자에게 부과된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충성스럽게 수행하기 위해 '제일 대'에 편성되어 싸움터로 나가는 성도야말로 오늘날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2) 남쪽 르우벤 군대 진영(10~16절).
(1) 지휘관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입니다(10절)
“[10] 남쪽에는 르우벤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르우벤 자손의 지휘관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남쪽 - 남쪽은 행진하는 방향으로 보면 오른쪽에 해당합니다.
통상 히브리인들은 오른쪽을 권능과 영광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출 15:6,12; 시 118:15,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본래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의 자손들에게 이처럼 특별한 배려를 베푸신 듯합니다.
(2) 르우벤 진영에는 갓, 시므온이 진을 쳤습니다(11~15절)
“[9] 유다 진영에 속한 군대로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팔만 육천사백 명이라 그들은 제일대로 행진할지니라[10] 남쪽에는 르우벤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르우벤 자손의 지휘관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1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육천오백 명이며[12] 그 곁에 진 칠 자는 시므온 지파라 시므온 자손의 지휘관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요[1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구천삼백 명이며[14] 또 갓 지파라 갓 자손의 지휘관은 르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요[15]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오천육백오십 명이니”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3) 르우벤 진영의 속한 군인의 총수는 151,450명입니다(16절).
“[16] 르우벤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오만 천사백오십 명이라 그들은 제이대로 행진할지니라”
제 이대로 - 실제 행군에 있어서 유다 지파를 뒤따랐던 제 2행렬은 성막물품들을 운반하는 레위 지파의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이었다 (10:17-70).
그렇다면 르우벤 지파는 정확히 말해 제 3행렬에서 행진했던 것입니다.
한편 레온 우드(L. Wood)같은 학자는 이들이 성막 물품을 호위하며 행진했을 것으로 봅니다.
3)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서 행진하였습니다(17절).
“[17] 그 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 이는 고핫 자손들이 성막 내의 성물(聖物)을 메고 행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10:21).
이와 같이 성막의 성물은 성막과 분리되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제일 중앙에 위치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네 편대 중 두 편대(유다, 르우벤 진 기에 속한 자)는 회막 앞에 나머지 두 편대(에브라임, 단 진 기에 속한 자)는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거주할 때 뿐 아니라, 행군 시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을 중심하여 생활할 것을 묵시적으로 명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로서, 진정 하나님께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당신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중앙에(베토크) - 즉 '가운데'란 뜻입니다.
이말은 이스라엘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치를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었습니다(왕상 6:13; 겔 37:28; 43:7; 슥 2:5;8:3).
한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종교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단결을 이루는 구심점이요 통치의 중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 해 계실 때, 곧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을, 이스라엘은 승승 장구(乘勝長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
그들은 대적 앞에서 무기력 하기만 했습니다(삼상 4:1-22).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즉 하나님을 그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자들은 그의 능력을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시 118:6,7).
반면에 죄에 의해 주장 받는 삶을 사는 자들은 슬프고 무기력한 나날 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습니다(시 31:10;32:3,4).
그리고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당신의 장막을 치셨다는 점에서 구원사(救援史)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self-revelation)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광야 시대의 성막 위에 머무르는 구름기둥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자신의 열광을 확실히 계시하시게 되었습니다.
요 1:14에 기록된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는 표현중
'우리 가운데 거 하시매'(에스케노센 엔 헤민)를 직역하면
'그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가 됩니다.
이는 성막을 통해 모형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자신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mation)은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마 1:23)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계시 중의 계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마침내 우리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 우리가 우리 가운
데 장막을 치시며 동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영원토록 머물게될 때 그 완연한 실체를 드러낼 것입니다(계 7:15-17; 21:3,4).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 비록 상대할 적이 없고 지루한 광야 행군이라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실히 요구된 것은 '질서(秩序)'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질서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께 대한 경외와 순종을 가르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혼돈과 무질서를 배격하시는 질서의 신(神)이십니다(고전 14 :33).
*고전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자기의 위치에서 - 이말은 '...다음으로'라는 의미도 지닙니다(느 3:2).
곧 성막 주위에 진을 친 그대로 진행하라는 뜻이 아니고 진을 쳤던 자리에서 차례대로(앞선 지파 다음으로) 출발하여 진행하라는 뜻입니다(10:13-28).
앞으로 행진할지니라(잇사우) - 본장의 '진행 할지니라'(9,16,17,24,31절)는 말은 모두 여기서처럼 '앞으로 전진하라'는 뜻을 지닙니다.
일례로 전진하지 않는 자전거는 곧 쓰러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전진하지 않는 신앙 역시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경고 합니다(잠 1 :32).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군대로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또한 승리의 시온 성에 들어가기 위해
순례자로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앞길에 안개가 자욱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인도에 모든 것은 맡기는 자세로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야 합니다(히 11:8).
4) 서쪽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영(18~24절)
(1) 에브라임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입니다(18절).
“[18] 서쪽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서편에는(얌마) - 원뜻은 '바다쪽에는'입니다.
여기서 바다는 팔레스틴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러한 표현이 팔레스틴에 살았던 자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본서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비록 모세가 팔레스틴에 거주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기거했던 가나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가나안 서편의 지중해를 '서쪽'이라고 지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중해 동쪽 출신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관용어를 그대로 썼을지도 모릅니다(Lange)
(2) 에브라임 진영에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입니다(19~23절)
“[19]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오백 명이며[20] 그 곁에는 므낫세 지파가 있을 것이라 므낫세 자손의 지휘관은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2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삼만 이천이백 명이며[22] 또 베냐민 지파라 베냐민 자손의 지휘관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2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삼만 오천사백 명이니”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주석참조.
(3) 에브라임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수는 108,100명입니다(24절).
“[24] 에브라임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만 팔천백 명이라 그들은 제삼대로 행진할지니라”
그들은 제삼대로 행진할지니라. - 진기(陣旗) 상으로는 이들이 르우벤 진 기를 뒤따랐지만, 실제적으로 행군할 때에는 성막의 성물(聖物)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마 고핫 자손의 성물을 호위하는 임무도 띠었으리라 추정됩니다(16절).
5) 북쪽에 있는 단 군대의 진영(25~31절).
(1) 북쪽의 단 군대 진영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입니다(25절).
“[25] 북쪽에는 단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단 군대 진영의 군기 - 제 4대의 진기를 잡은 지파는 단 지파였습니다.
그 이유는 일찍이 야곱의 예언(창 49:17)에서도 암시된 바 이들은 그 전투적 속성으로 인해 용맹한 군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속성은 극히 타락하여 후일 단지파 지역은 우상 숭배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들은 광야 행진 시의 영예로운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후 약화일로를 걷다가 마침내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지파가 되고 말았습니다(게 7:5-8).
(2) 단지파 진영에는 아셀, 납달리 지파가 있습니다(26~30절)
“[2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육만 이천칠백 명이며[27] 그 곁에 진 칠 자는 아셀 지파라 아셀 자손의 지휘관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2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천오백 명이며[29] 또 납달리 지파라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요[30]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삼천사백 명이니”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참조.
(3) 단의 진영에 속한 군인의 총수는 157,600명입니다(31절).
“[31] 단의 진영에 속하여 계수함을 받은 군인의 총계는 십오만 칠천육백 명이라 그들은 기를 따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 하시니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 - 도합 157,600명으로 구성된 이 진영은 선봉에 선 유다 진영 다음으로 군인 수가 많았을 뿐 아니라, 기질상 용감하고 전투적이었기 때문에 (창49:16-21) 이스라엘 진(陣)의 제일 후미 방어 임무를 맡았던 것입니다.
3. 이스라엘 군대의 순종(32~34절)
1) 모든 진영의 군인 총 수는 603,550명입니다(32,33절)
“[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며[33]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 - 1:46 주석 참조.
레위인은...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 1:47 주석 참조.
2) 이스라엘 자손이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34절).
“[3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1)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음을 보여 줍니다(1:54).
*민1:54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이러한 순종를 통해 실로 인간은 하나님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할 수있습니다(삼상 15:22).
*삼상15:22b“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그러나 초기의 이 같은 아름다운 순종(順從)은
이후에 거듭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반역 및 불순종과 확연히 대조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신앙(信仰)은 결코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 일평생(一平生) 계속(繼續)되어야 할 성도의 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하였습니다.
(2)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단순한 행동 속에 이스라엘 백성의 나머지 38년간의 광야 생활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행동의 규범을 따라,
기나긴 광야 여정을 진행해 갈수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주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제공합니다(시 119:105).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전체 진 규모 면적은 12평방 마일(약19.308㎢) 정도였다고 합니다(Palestinian Targums).
그리고 아래 도표는 이스라엘이 정주할 때와 진행할 때의 진 배치도입니다.
납달리아셀 단 북(北)53,400 41,50062,700
서(西) 동남 에브라임 유다 40,500 74,600
므낫세 잇사갈 32,200 54,400
베냐민 스불론 35,400 57,400
갓 시므온 르우벤 선임지파 45,650 59,300 46,500
정주시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 진행 방향 --->단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아셀 므낫세 성막 시므온 성막 잇사갈 법궤 기구 부품 납달리 베냐민 고핫 갓 게르손 스불론 므라리 행진시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 위와 같이 정주할 때의 진영 모습과 행진할 때의 진영 모습이 다른 이유는 광야의 좁은 길을 무리없이 지나가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학자들 중에는 정주 시에도 만일 넓은 장소가 없을 경우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 이상적인 진영 배치를 할수 없었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Pulpit Commentary).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성막이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큰 의미를 지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스라엘의 행군 시에 언약궤가 3일 길을 앞서간 것은
특이합니다(10:33).
*민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이때, 평소 성막 위에 덮여있던 구름(출 40:34-38)은 언약궤 위에 머물렀습니다(10:34).
*민10:34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언약궤의 덮개, 즉 속죄소에 조각된 그룹 위에 뒤덮인 구름의 진행 방향이 곧 이스라엘의 진로로 결정되었습니다.
시 80:1은 바로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시80: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한편 언약과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신10:4).
그러므로 언약궤가 이스라엘을 앞서 간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살아야할 것을 교훈해 줍니다.
개혁(改革) 신앙(信仰)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고 하는 말씀 추종의 삶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 여정에서 우리 발걸음을 비추는 등(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시 119:105)이 우리를 안내(案內)하는 대로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시 119:32).
*시119: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그리할 때 그 길의 결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말씀(법궤)의 인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무섭고 두려운 광야에서 헤메고,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죽음의 광야를 벗어나 생명의 길로 향하게 만드는 생의 나침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애굽에서 나올 때 오합지졸의 노예 집단에 불과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이겨 낼만한 질서정연(秩序整然)한 군대(軍隊)로 진용을 갖춥니다.
성막(聖幕)을 중심(中心)으로 진영(陣營)이 사방에 편성되고,
대표 지파와 지도자를 세워 따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잘 하달될 수 있는 구조로 머물거나 나아간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무너진 삶을 일으키고 곁길로 간 인생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말씀에 따른 질서가 내 일상과 공동체 안에 보입니까?
2)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진영은 ‘성막을 향해’배치됩니다(1,2,17절).
진이 머물거나 나아갈 때 그 중심에 하나님의 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뒤에서 도우신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 앞에서 나아가 광야에서 행진”하십니다(시68:7).
*시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이스라엘의 출정이기 전에 하나님의 출정이었습니다.
험한 광야의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상황이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주님께 나아가 물어보십시오.
그럼 주께서 친히 어디로 가야하고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일러 주실 것입니다.
머물고 떠나는 내 기준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까? 소명입니까, 소득입니까?
3) 성막을 한가운데 두고 그 사방을 열두 지파가 ‘동, 남, 서, 북’순서로 위치합니다(3~31절).
장자 르우벤 대신 유다 지파가 성막 동쪽에 위치하여 행군의 선두에 서고, 단 지파가 후미를 맡습니다.
열두 지파의 진영은 태어난 순서를 따른 것도, 강자가 결정한 것도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 명령(1절)에 순복하여 정한 것입니다.
광야 여정이 성패는 ‘세력 키우기’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느냐에 좌우됩니다.
4) 순종 없이 약속의 땅은 없습니다(32~34절).
완벽해 보이는 진영 배치도 백성의 순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명령대로 자리를 지키고 이동합니다.
후미에서 행진하는 단 진영의 군인들도,
계수에 포함되지 못한 레위인도 불평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위대한 업적이 아닌, 내게 주신 자리를 지키는 작은 순종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