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우(關羽)의 출전(出戰) -
손견(孫堅)의 군사(軍士)들이 적(敵)에게 크게 패(敗)했다는 기별(奇別)이 오자 본진(本陣)에 있던 원소(袁紹)와 조조(曹操) 등이 크게 놀랐다. 더구나 군율(軍律)을 어기고 앞서 적진(敵陣)으로 달려간 제북상(濟北相) 포신(鮑信)의 동생 포충(鮑忠) 장군이 비참(悲慘)하게 죽은 데다가 이번에는 손견(孫堅)까지 대패(大敗)하고 보니 모두들 사기(士氣)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십칠 명의 제후(諸侯)들이 그날 중으로 한자리에 모여 대세(大勢) 만회(挽回)를 위한 작전 회의(作戰會議)를 열었다. 그러나 정장(敵將) 화웅(華雄)의 기세가 등등하더란 소문을 듣고 회의에 참(參席)석한 제후(諸侯)와 태수(太守)들은 용기(勇氣)가 위축(萎縮)된 듯이 보였다. 총대장(總大將)인 원소(袁紹)가 눈을 들어 좌중(座中)을 바라보다가 문득 북평 태수(北平 太守) 공손찬(公孫瓚) 등 뒤에서 시선(視線)을 멈췄다. 공손찬(公孫瓚)의 등 뒤에는 낮 모를 위장부 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공손(公孫) 태수(太守)의 등 뒤에 있는 세 사람의 위장부(偉丈夫) 누구요?" 원소(袁紹)가 공손찬(公孫瓚)에게 물었다.
공손찬은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유비를 앞으로 불러내었다.
"이 사람은 나와 동문수학(同門修學)한 평원령(平原令) 유비(劉備)올시다."
조조(曹操)가 그 소리를 듣자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예전에 황건적(黃巾賊) 토벌(討伐)의 공로(功勞)가 많았던 현덕(玄德) 유공(劉公) 말씀이오? 그러고 보니 나도 황건적(黃巾賊)과 싸우다가 한 번 만난 일이 있었소."
"바로 그 사람이오."
유비(劉備)는 공손찬(公孫瓚)의 소개말과 함께 조조(曹操)와 눈과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目禮)를 해 보였다.
그러자 조조(曹操) 역시도 유비(劉備)에게 가벼운 목례(目禮)를 해 보이는 것이었다. 공손찬(公孫瓚)은 유비(劉備)를 제후(諸侯)들에게 소개(紹介)하고 나서 그의 옛 전공(戰功)을 나열하면서 크게 칭찬((稱讚)을 하였다.
원소(袁紹)는 유비(劉備)가 한실(閑室)의 종친(宗親)의 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러면 저 사람에게도 앉을 자리를 드리도록 하시오!" 하고 말했다.
유비(劉備)는 그제서야 말한다.
"아니올시다. 저 같은 미관이(微官)이 어찌 이 자리에...." 하고 다른 제후(諸侯) 태수(太守)들과의 동석(同席)을 사양했다.
"사양(辭讓) 말고 어서 앉으시오. 나는 귀공에게 직위(職位)로서 앉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귀공(貴公)이 한실(閑室) 종친(宗親)인데다가 황건적(黃巾賊) 토벌(討伐)에 전공(戰功)이 컸다기에 앉으라는 것이오."
유비(劉備)는 사양(辭讓)하다 말고 시종이 가져온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관우(關羽)와 장비(張飛) 두 사람은 공손찬(公孫瓚)의 뒤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기더니 이번에는 유비(劉備)의 등 뒤에 엄숙히 시립(侍立) 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 바깥이 떠들썩하더니 경계병(警戒兵) 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 들어온다.
"무슨 일이냐?"
"장군님들 큰일 났습니다. 적장(敵將) 화웅(華雄)이 손견(孫堅) 장군(將軍)이 쓰시던 붉은 두건을 창 끝에 꿰어들고 진문(陳門) 앞에까지 몰려와서 싸움을 총(請)하고 있습니다."
원소가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구 나가서 싸울 사람이 있소?"
효장 유섭(驍將 兪涉)이 투구 끈을 졸라매며 말한다.
"소장이 나가 싸우겠습니다."
원소(袁紹)는 크게 기뻐하며 곧 나가 싸우라고 하였다.
그런데 유섭이 싸우러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적장 화웅(袁紹)에게 목이 잘렸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기주 지사(冀州 刺史) 한복(韓馥)이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분개(憤慨)하였다.
"나의 상장군(上將軍) 반봉(上將軍 潘鳳)을 보내어 화웅(華雄) 머리를 가져오게 하겠소." 원소(袁紹)는 곧 그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亦是)도 적장(敵將) 화웅(袁紹)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목이 달아났다는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원소(袁紹)는 좌중(座中)을 둘러보며 탄식(歎息하였다.
"내 상장군(上將軍) 안량(顔良)이나 문추(文醜)를 데려왔다면 화웅(華雄) 따위는 문제(問題)가 아니었는데! 화웅(華雄) 하나를 거꾸러뜨릴 장수가 없다니 그야말로 천하의 웃음거리요!"
제후(諸侯)들은 말이 없고 좌중(座中)은 침통(沈痛)한 침묵(沈默)에 잠겼다.
그러자 문득 어디선가 통분(痛憤)한 어조(語調)로,
"만약(萬若) 허락(許諾)하신다면 소장이 나가서 화웅(華雄)의 머리를 베어다가 장하(將下)에 바치오리다."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시선(視線)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집중(集中)되었다. 소리의 주인공(主人公)은 키가 구 척에 수염이 두 자가 넘고, 봉의 눈에 눈썹이 짙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 같고 목소리는 쇠북을 울리는 듯이 웅장(雄壯)한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누군고?" 원소(袁紹가 물었다.
"유현덕(劉玄德)의 의제(義弟) 관우(關羽)요." 공손찬(公孫瓚)이 대답(對答)을 가로맡았다.
"벼슬이 뭐요?"
"유비 공(劉備公) 밑에서 마궁 수(馬弓 手 : 요즘 말로 소대장)로 있는 사람이오."
원소(袁紹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격양(激昻)되어 관우(關羽)를 꾸짖는다.
"우리에게 나설만한 장수(將帥)가 없다고 네가 누구를 업신여기는 거냐? 한낱 궁수에 지나지 않는 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고.... 여봐라! 저 자를 밖으로 내쫓아라!"
그러자 조조(曹操)가 손을 들어 멈춘다.
"총수(總帥)는 너무 노여워 마시오. 저 사람도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 테니 한번 싸워 보게 합시다. 꾸짖는 일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 아니오?"
"일개 궁수(弓手)를 내보냈다면 적(敵)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이 아니오?"
"저 사람은 본디 호걸풍(豪傑風)의 풍채(風采)를 가지고 있으니 적장(敵將)이 설마 궁수인 줄은 모르리다."
조조(曹操)는 곧 따듯한 술을 가져오라 하여 관우(關羽)에게 친(親)히 한 잔 따라 주었다.
관우(關羽)는 술을 받아 들고 이렇게 말한다.
"고맙소이다. 이 술잔은 그냥 두었다가 술이 식기 전에 곧 화웅(華雄)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돌아와서 마시겠습니다.
관우(關羽)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차고 말에 올라 밖으로 달려나갔는데 잠시 후에 성(城) 밖에서는 한바탕 아우성과 함께 아군(我軍) 쪽에서는 북소리와 함성(喊聲) 소리가 요란(搖亂)스럽게 나는 것이 아닌가?
제후(諸侯)들이 깜짝 놀라 사람을 보내어 영문을 알아보려는데 문득 문간(門間)이 소란스럽더니 관우(關羽)가 화웅(華雄)의 머리를 들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과연(果然 )저것이 화웅(華雄)의 머리냐?" 제후(諸侯)들이 눈을 크게 뜨며 의심(疑心)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자 화웅을 알아 본 몇 사람이,
"오오! 화웅(華雄)의 머리가 분명(分明)하오!"
"세상에 틀림없는 화웅(華雄)의 머리요!" 하고 놀란 소리를 지르자 제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관우(關羽)는 그제서야 조조(曹操) 앞으로 걸어나가 아까 따라 받았던 술잔을 경건(敬虔)히 집어 들며 말했다.
"술이 아직 따듯합니다. 그럼, 주신 술을 잘 마시겠습니다." 하며 그 자리에서 마셔 버리는 것이었다.
"수고하셨소. 한 잔 더 드시오."
조조(曹操)가 술 한 잔을 더 따르려고 하자,
"아니올시다. 오늘의 명예(名譽)를 어찌 저 혼자서 받사오리까!"
관우(關羽)가 사양의 말을 하자 유비(劉備)의 등 뒤에 서있던 장비(張飛)가,
"아직 승리에 도취하기엔 때가 이르오. 관우(關羽) 형님이 화웅(華雄)의 머리를 베어 오셨으니 다음에는 내가 동탁(董卓)이란 놈을 생(生)으로 붙잡아다가 만장(滿場)하신 제후(諸侯)님들 앞에 바치리다." 하고 익살맞은 소리를 외쳐대었다.
모두들 돌아보니 그 사람은 열여덟 자나 되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손에 움켜잡고 유현덕(劉玄德) 등 뒤에 서있는 장비(張飛)였다.
원소(袁紹)의 아우 원술(袁術) 은 장비(張飛)의 큰소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일갈 (一喝)했다.
"일개(一介) 현령(縣令)의 수하(手下) 졸병(卒兵)들이 방자(放恣)스럽게 여러 제후(諸侯)와 태수(太守)들 앞에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니 이게 무슨 짓인가?"
그러자 조조(曹操)가 즉각(卽刻) 대답(對答)한다.
"공(功)이 있는 사람에게 상(賞)을 주는데 어찌 귀천(貴賤)을 가리겠소. 공(公)은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공들이 일개 현령의 소졸들을 그처럼 소중히 여긴다면 나는 자리를 같이 못하겠소!"
원술(袁術)은 발끈 성을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조조가 말한다.
"원술(袁術) 장군(將軍)은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저 사람들이 비위에 거슬리면 이 자리에서 내보내기로 합시다."
공손찬(公孫瓚)은 조조(曹操)의 눈치를 알아채고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세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날 밤 조조(曹操)는 세 사람에게 많은 술과 안주를 보내 주면서 오늘의 일을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기를 잊지 않았다.
삼국지 - 42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