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김 휼
허락 없이 내 안에서 지는 것들 앞에
두 눈을 감는 것 외엔 달리 무얼 할 수 없었던
나 때는 말이지,
한잔의 구름은 상상 카페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지
목숨보다 질긴 청바지가 낭만의 상징이었던
나 때는 말이야,
두근대는 심장을 이리 가볍게 나눠 마실 줄 정말 몰랐어
당신의 그때와 나의 지금이 뒤섞인 라떼는,
뜨거움을 혓바닥을 데고도 끌리는 라떼는 말이지
쓰디쓴 고독에 부드러운 낭만을 곁들인 블랙홀
그것은 내 부름에 대한 너의 몸짓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들으면 들을수록 괜스레 가슴 시린 말
라, 떼, 는, 라떼는 말이야,
살아온 거리와 살아갈 거리의 간극이 만들어 낸
환절기의 꿈같은 한때의 이 시간은
열두 색의 옷을 입고 째깍이며 달려가는 봄밤의 이니스프리
그곳에서 회전하는 문
부푼 불안을 조절하는 밀보릿빛 조명 아래
접힌 시간의 페이지를 가진 사람들이
어제의 화사와 오늘의 이해를 음미하는,
라떼는, 라떼는 말이야,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2021. 한국문연
호주머니 속의 하늘
김 휼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한 줌 생각을 끌어올리는 호두나무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근심이 매달리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달을 굴렸다 빈손의 어머니는 윗목에 물을 떠 놓고 두 손을 비벼댔다 달은 주기적으로 돌아갔다 주머니 속을 돌아서 나간 월급의 주기 따라,
월식이 있어 흑암이 온 집안을 뒤덮을 때에도 달은 돌아 허공에 새길을 내었고 아이들은 태어났다 그것은 황금비율의 법칙, 치우침 없이 호르륵 돌아가는 얽은 달 소리에 우리들은 단단하게 여물어갔다 계절은 그늘을 거두어 가고 주머니 속 하늘도 저물어갔지만 지금도 가만히 손을 쥐면 호르륵 돌아가는 달
속수무책 내 눈 속에서 환희 돋는,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2021. 한국문연
김휼 시인(본명: 김형미)
전남 장성 출생.
기독공보 신춘문예와 열린시학으로 등단.
백교문학상, 여수해양문학상,
윤동주 문학상(문학시선),
목포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현대시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