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이라는 엄청난 점수차에 눌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졌던 것일까?
5월 1일, SK와 LG의 문학경기에서는 타자주자의 1루 주루플레이 과정(오버런)을 놓고 세이프와 아웃이 교차하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 하나가 일어났는데, 어느 쪽으로 판단을 하던 그럴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프로야구를 떠나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좋은 공부거리라고 하겠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8회초 1사 후 박용택(LG)은 2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땅볼을 치고 1루를 향해 달려나갔다. 2루수 정근우는 앞으로 달려나오며 타구를 잡아 1루로 송구했지만 원바운드. SK 1루수였던 모창민은 바운드 송구를 잡아내려 했지만 공이 미트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박용택은 세이프(실책 성 내야안타로 기록됨).
한편 1루를 밟고 지날 때 공이 자신보다 먼저 1루에 도달한 것을 직감하고 아웃된 것으로 지레 생각했던 박용택은 1루를 지나던 여세(오버런)로 그대로 돌아 3루측 덕아웃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때 1루 옆을 지나치려 하는 박용택을 주루코치 송구홍이 다급히 불러 1루로 돌아올 것을 지시했고 뒤늦게 1루에서 세이프된 사실을 눈치 챈 박용택은 그제서야 1루로 다가서려 했다. 순간 1루수 모창민은 접근하는 박용택을 태그, 1루심으로부터 아웃을 인정받았는데….
졸지에 아웃 신세가 된 박용택은 송구홍코치와 함께 자신은 2루로 뛰려던 것이 아니라며 이의를 제기했고, 일부 심판진이 모여 이 상황을 두고 다시 논의한 끝에 박용택의 주루를 단순한 ‘1루 오버런’으로 간주해 아웃을 무효로 하고 박용택을 다시 1루에 살리는 쪽으로 최종 결정을 내린 것이 벌어진 상황의 전말이다.
이제부터 공부할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타자주자의 1루 오버런 문제다. 야구에서는 타자주자가 1루를 밟고 지나치더라도 곧바로 1루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타자주자의 오버런(루를 밟고 지나치는 주루행위) 주루행위를 정규의 주루행위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말은 1루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설령 야수에게 태그를 당한다 하더라도 루에서 떨어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1루로 돌아오려는 행위가 아닐 경우는 오버런 후 ‘안전귀루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말로써 실제로 타자주자가 1루를 지나 어떠한 이유로든 2루로 뛰려는 의사가 몸짓에 조금이라도 나타났을 경우에는 1루로의 안전귀루권은 사라지게 되며, 1루 귀루 중 야수에게 태그 당하면 아웃이 된다.
간혹 주자가 2루로 뛰려는 시도를 페어지역에서 했는지 아니면 파울지역에서 했는지에 따라 아웃과 세이프가 나뉜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주자의 추가 주루시도 행위지역은 아웃, 세이프 결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날 박용택의 주루행위에 있어 1루를 지나 2루로 뛰려는 시도는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본인이 아웃인 줄 알고 1루를 지난 상태라 더더욱 2루로 뛰려는 생각은 할 수 없는 정황이었다.
그렇다면 앞서 설명한 대로 규칙에 의해 안전귀루권을 갖고 있는 타자주자 박용택이 1루로 돌아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TV로 상황을 본 필자 역시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고 현장의 심판진도 이 부분을 헤아려 박용택의 아웃을 무효로 선언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용택의 귀루 정황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문제였다. 박용택의 2루진루 의사표시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용어상 ‘주루포기’에 해당하는 박용택의 아웃착각이다.
야구에서는 주자가 어떠한 이유로든지 권리나 의무를 포기하면 주자가 갖고 있는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쪽으로의 정서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1루주자가 후속타자의 땅볼타구로 2루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이후 1루주자가 타구가 직접 야수에게 잡힌 것으로 착각해 다시 1루쪽으로 귀루하려 했다면 그 주자의 2루진루는 무효가 되어 다시 포스상태에 놓인 주자가 되는 규칙정신이 그렇다.
또 한가지의 추가 예를 들면 몇 년 전(2005년 8월)에 일어났던 김태균(당시 한화)의 도루시도 건에서도 그러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김태균은 당시 2루로 도루를 감행해 성공한 다음, 포수의 송구가 없자 타자가 파울볼을 친 것으로 상황을 오판, 다시 1루로 귀루하려다 태그 아웃된 적이 있었다. 이 역시도 주자가 비록 2루도루를 성공한 이후에 부수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주자가 자신의 권리를 어떠한 이유로든지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도루기록을 인정해 주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바 있다.
이처럼 주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 일종의 본 헤드 주루플레이를 저지른 경우에는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박용택의 1루로의 안전귀루권인 생환권리는 아웃착각 순간에 이미 사라진 것으로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와 관련해 야구규칙 7.08 주자아웃 조항 (j)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주자가 1루를 오버런, 오버슬라이딩 하고 곧바로 1루로 귀루하지 않았을 경우, 주자가 덕아웃이나 자신의 수비위치로 가려고 하다가 야수에게 태그(주자 또는 루)되면 아웃(어필)이 된다.’
문구상 주자가 귀루하지 않고 덕아웃이나 자신의 수비위치로 가려고 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는 박용택처럼 자신이 아웃된 것으로 착각해야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오랜 세월 야구를 보아왔지만 이번과 같은 그림은 또 처음이다. 벗겨도 벗겨도 계속 나오는 양파 껍질처럼 야구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 속은 더욱 복잡다단한 난해함 투성이다.
규칙을 알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규칙을 정황에 맞게 해석해 실전에 적용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