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고운 빛들이 일렬로 퍼지는 오후
송정역 한편에 칸나가 피어 있다
길고 먼 철로를 가슴에 놓으며
낮과 밤 수시로 피어났던 기억
아랫목에 들 때마다 전해지던 차가운 냉기
치과 침대 위에서 충혈거리는 눈을 감고
옹이진 상처에 바람 불어
딱딱한 세상에 홀로 갇힌 나를 본다
한 번 뽑히면 아물기 오래가는데
찬 이별로 사각거리던 치아를 빼고 보니
모친의 삭은 늑골처럼 까맣다
흔들리던 눈꺼풀에 왈칵 눈물로 발화되는 봄에
다음 예약은 시월
퉁퉁 부어오른 입술 위에 보라색 구름꽃이 피었다
꽃의 이름을 작명하고 조그맣게 불러본다
-『김포신문/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023.11.17. 기고 -
〈임영자 시인〉
△ 전남 보성, 2015 '시와 사람' 등단
역사 한편에 핀 칸나와 치과 치료를 위해 의료용 치료대에 대기하는 환자의 입장, 그 상관관계는 ‘홀로’ ‘나’라는 것에 있을 것 같다. 칸나를 보며 한 계절 힐링을 했듯, 썩은 이를 빼고 노친의 삭은 늑골을 생각하고, 세상은 의미 없는 것이 없다. 내가 의미를 부여할 때 의미가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면 모든 일에 의미가 있다.
작고 볼품없는 것에도, 들꽃 한 송이에도, 지나가는 이 계절에도, 의미 부여를 하며 산다는 것이 세상을 부자로 살게 하는 방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듯, 그래서 꽃이 되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