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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민화위, 평화나눔연구소 학술 세미나
우크라이나전, 장기적 평화 종식 알린 시대 징표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다. 종전협정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한 지금, 한반도는 70년째 전쟁을 겪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한과 미국, 일본, 북한과 중국, 러시아 간 견제와 패권 장악을 위한 움직임도 여전하고, 한반도 인근에서는 한미일 군사 훈련이 진행된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한미일 3국 동맹을 이용하려는 상황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이전 정부의 적정 거리두기 방침을 깨트렸을 뿐 아니라 미국의 의도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북한 도발의 빌미를 주기에 충분하며, 이후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관계에 따라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다. 여기에 중국의 타이완 침공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미국은 타이완에서 중국과 대리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와 한반도 인근 지역에서 끊임없이 전쟁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만약 전쟁이 가시화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말 막을 수 없었을까.
3월 30일 서울대교구 평화나눔연구소 8주년 기념으로 민족화해위원회와 함께 진행한 세미나, '정전 70년의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을 통해 본 한반도 평화 구축 방향을 논의했다.
현재 13개월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긴장감 높아지는 한반도에 어떤 의미일까. 세미나 참석자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을 깨뜨린 것으로, 언제 어디에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전쟁이 가능해진, 장기적 평화가 종식됐다”고 짚었다.
정세호 연구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과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 시작 후 다섯 차례 걸쳐 평화 협상을 했고, 협상 조건인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중립화와 비핵화,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통제권, 우크라이나 EU 가입 양해” 등에 가까워졌으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거부하면서 결렬됐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그럼에도 “역사상 영원한 전쟁은 없고, 장기 소모전도 어느 시점에는 임계점에 다다를 것이며, 결국 대화와 타협으로 종식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많은 징후들이 올해(2023년)를 종식점으로 가리키고 있다. 어느 시점에 평화 협상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토론자 강윤희 교수(국민대)는 그동안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법이 옳았는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정권 교체가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생각은 곧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상황을 만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푸틴과 러시아가 붕괴된다면 러시아는 과연 좋은 나라가 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3월 30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8주년을 맞는 평화나눔연구소가 '정전 70년의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쟁'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이어진 발표에서 차태서 교수(성균관대 정치외교학)는 우크라이나전 이후 세계 질서는 어떻게 전환될 것이며, 이는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들여다봤다.
차 교수는 지난 탈냉전 30년은 자유(승리)주의 프로젝트 파산과 그로 인한 전 지구적 시대 전환 시기였다고 말했다. 2020년대 일어난 아프간전과 우크라이나전은 자유주의 패권 프로젝트에 대한 반격 또는 반작용이며, 나토와 시장주의 확산과 러시아 패권주의가 맞부딪힌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모순이 보여 준 결과이자, (미국적) 자유주의라는 비전으로 세계를 통일하려는 시도가 보여 준 한계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2020년대는 탈전쟁이라는 시대 논리에서 벗어나게 됐으며, 제국주의적 영토 정복 전쟁이 재림하고, 전 지구적 군비경쟁 심화, 새로운 핵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자유주의라는 비전에서 벗어난 세계는 불명확과 다질서의 시대로 들어갔다.
차 교수는 이러한 시대에서 미국 주도의 서구에 맞선 중국, 러시아 간 파트너십이 부상했고, 이는 반미, 다극화 추구를 위한 편의적 유사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견국들의 비동맹적 흐름이 이어지는데, 정치, 이념적으로 어느 진영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안보, 경제 등 다각적 측면에서 어느 진영에도 완전하게 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각주구검 함정에 빠진 한국 외교
이같이 오늘의 동맹이 내일 대립국이 될 수 있는 시대에, 한반도는 어떠한 외교적 입장을 갖고 있는가.
차태서 교수는 건국 이후 한국 외교의 기본 전제는 “미국의 압도적 현존과 패권 질서”를 따르는 것이었지만, 다질서 시대에 한국, 특히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조하면서 한미일 삼각구도에 확실히 편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보면서,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물었다.
토론 참가자들은 오늘의 시대는 미국이라는 1극 체제의 승리로 귀결한 냉전 종식 직후부터 시작된 셈이라며, 지난 35년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추구할 평가가 힘에 의한 평화인지, 협력과 공존에 따른 평화인지, 보편적 평화(신의 평화)인지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또 불완전한 세상에서 완벽을 추구하고 선과 악으로 나누는 순간 더 큰 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명확하다면서, 평화를 위해서는 미, 중, 러 사이의 타협이 필요하고, 한국 역시 최종적으로 한미일 동맹이 필요할 수 있지만 이념적 동맹이 아니라 현실적 위험을 막기 위한 동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한반도 정전체제 극복을 위한 평화의 길'을 모색했다.
'2023년 남북한 관계 전망: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70년의 변환'을 발표한 황지환 교수(서울시립대)는 먼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으로 북한의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그동안 북한 외교부 발표 등에 따르면,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의 근본 원인을 미국과 서방의 패권주의로 보고 있고, 이들의 일방적 이중 기준 정책이 평화를 해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북한은 “기존의 핵 전략을 유지하는 한편, 강대국의 위협이 있을 때 핵무기를 포기하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또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보면,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경제, 군사, 외교적 부상으로 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신냉전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동북아에서만은 최강대국으로 존재하려는 전략인데,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하고,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등 동맹 전략이 동북아 전략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 문제를 통해 미국을 견제할 가능성이 있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미중 간 갈등이 반영된다.
황 교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전략이 “북한이 스스로 변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는 미중 간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전, 미국 내 문제로 북한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부족하다면서도, “바이든의 대북 전략 기조를 보면, 비핵화 문제 등을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 등을 강조해 북한과 상당한 갈등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3월 30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8주년을 맞는 평화나눔연구소가 '정전 70년의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쟁'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정전체제 70년의 사회학적 유산과 평화문화'를 발표한 김병로 교수(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는 “70년 정전체제를 돌아보면 평화 방편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쟁점이 계속 생겨나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정전체제는 국제 질서와 남북한 정치사회 구조라는 거대 체제로 발전했고, 적대적이고 대립적 국제 구조 속에서 실행되며, (이념적) 상대 체제를 적으로 규정하는 체제 내의 법질서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정전체제는 분단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분, 자기 체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적 행동을 허용한다”면서, “정전체제를 정당화하는 법과 제도, 문화와 관행이 사회 곳곳에 깊숙이 자리 잡아, 전쟁은 끝났지만 정치외교적, 사회경제적 체제 경쟁으로 한반도는 또 다른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정전체제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가운데, 지난 30년간 국제 환경의 변화는 또한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는 모순 또는 공존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인적, 물적 교류 증대로 구조화된 정전체제가 흔들리고, 적대와 평화, 갈등과 통합이라는 모순도 뚜렷해졌다. 김 교수는 “정전체제 자체가 정전을 유지하려는 속성과 평화 구조로 전환하려는 속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며, “평화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과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행위 사이에는 애초부터 긴장과 모호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화문화는 바로 정전체제와 교류협력체제 사이에 있는 이러한 긴장과 갈등을 평화 구축 동력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가치와 담론”이라며, 평화문화를 조성하려면 평화를 깊이 있게 사유해야 하지만, 현재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각은 단선적이고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북한관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진보, 보수 간 심각한 갈등을 평화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우선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회복적 정의 이론'을 제시하고,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절대적 목표를 잃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목표를 실현한다는 입장에서, 가치 융합적으로 북한국제화라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그는 정전체제를 둘러싼 남북의 현재 갈등도 심각하지만, 과거부터 쌓인 감정 문제는 더 심각하다며, 북한에 의한 남한의 살상과 마찬가지로 남한에 의한 북한의 살상 역시 사실이고, 이는 남북 모두가 피해자이며, 같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쟁의 화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이 서로 분단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피해자 관점에서 서로 사과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면서, “어느 일방의 선제적 양보와 수용 없이는 적대 관계 해소가 불가능하다. 또 당위성 공감을 넘어 폭력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기존 관행을 타파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역량 증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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