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
감독 : 한재림
출연 : 송강호, 오달수, 박지영, 김소은, 최일화, 윤제문 등
'우아한 세계', 한국 영화에 정말 대단한 작품이 나온 것처럼 광고를 하는 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영화관을 찾았다.
실제로 송강호라는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들을 보면서 실망한 적이 없었기에 배우를 보고서 영화를 본다고 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으리라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영화였다. 나는 배우 송강호를 캐릭터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매우 철저하게 분석을 한 뒤 자신의 스타일대로 녹여 자신에 맞는 캐릭터로 창출해낼 줄 아는 배우라고 본다. 사실 송강호의 어투는 매우 독특한 것이어서 평범한 역에는 잘 안 어울릴 것이라 생각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는 배역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자신만의 캐릭터 만들기를 통해서 극 중 상황에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인물을 만들어 내니 참으로 훌륭한 배우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배우 송강호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 이 영화가 내가 보기에는 '송강호의,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송강호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연출을 맡은 한재림 감독 역시 무난했다. 하지만 연출에서는 장면 전환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고, 다른 배우들 역시 노회장 역을 맡은 최일화와 그의 동생 역을 맡았던 윤제문를 제외하고는 캐릭터의 맛을 느끼게 하는 배우들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오달수, 박지영 등의 연기는 좋았지만 그들만의 캐릭터가 살아나기에는 주인공인 송강호가 맡았던 '강인구' 역의 무게감이 너무나 컸다고 보여진다.) 장면 전환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한재림 감독의 전작인 '연애의 목적'에서도 그랬었는데,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구성미를 헤쳐 가면서까지 이미지를 살려야 하는 장면이 있었나 싶어서 무척이나 아쉬운 요소였다.
사실 영화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가장 중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딸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인데, 아무리 짧은 영화 속에 그 관계를 적절하게 묘사하는 게 힘들다고 할지라도 '아버지'라는 주제를 가진 영화에서 억지스러운 상황(특히 딸이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는 듯한 제스쳐가 보이는 장면은 그 계기가 되는 복선이 너무나 약했다고는 볼 수밖에 없다.)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락성과 감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는 감독의 의도였을지는 몰라도 차라리 딸을 좀 더 독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한다면 이야기의 전체적인 짜임새는 더욱 강해지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우스꽝스럽지만 비극적인 현실감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를 짧게 정리해서 말해 보자면, '생활 느와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가면서까지 의욕을 보인 것과는 달리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만(과연 혼자만 두각을 나타나게 한 연기가 잘 한 연기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버려두자.) 보이는, 그럭저럭 무난하고 재밌게 만든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