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봄 문학기행의 辯
피곤하시지요???
그래도 어제 하루는 행복하셨지 않았나요?
봄살이 화사하게 퍼지는
고창읍성이며, 신재효 소리관으로 하여 메기탕과 새우탕으로 질펀한 전라도 음식으로 즐긴 점심하며...
이어 들린 선운사에서 초경빛 같은 동백꽃이 아직은 흐트러지게 피지 않았지만
푸른 이파리 속에서 한 둘 드러나는 꽃송이가 어쩜 그리도 새침스러운지
18세 순이 같고...
실바람 소리에도 까르르 넘어가는 울 국문과 요조숙녀들 같기도 하고...
미당의 '선운사 동구' 주막 여인 같기도 하여
머문 발길을 차마 떼지 못하는 아, 목마른 문학도여... (어라, 이상해져 뿌렸네)
500년의 세월을 단숨에 건너 뛴 비록 시멘트로 수리(?)된 늙은 몸이지만
올해도 백동안 뭇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배롱나무(목백일홍)가
대웅전 양끝에 턱하니 자리 잡고설랑 비로자나 부처님과 정담을 나누는 오후
햇살은 찬란히도 눈부시고
우리는 그 오르는 계단에서 옹기종기 모여 단체 사진을 일촬하였겠다.
그리고 들린 성보박물관 안에는
백파를 흠양하여 추사가 죽기 1년전에 써서 보낸 '백파비문'이 있었는데
본래는 매표소 조금 위 오른쪽에 있는 부도탑 가운데 있었던 것을 옮겼다 한다.
후면 비문에 대한 설명(撰幷書, 崇禎을 쓰는 이유, 추사 대신 阮堂으로 호를 사용 등)을 하면서도
이 좁은 공간에 인위적으로 갇힌
백파나 추사가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니
이런 몹쓸 짓거리를 한 자들의 역사 의식에 대침을 놓을까, 양심을 보리 밟듯 꼭꼭 밟아줄까... 엥
미당은 선운사 배롱나무 못지 않는 문학계의 거목(巨木)이라
그 거목은 줄포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컸음을(詩 자화상) 스스로 자랑스레 떠벌리며 다녔더라나...
그 미당이 소시적 다녔던 초등학교는 어느 때 폐교가 되었고
그 폐교로 하여금 미당문학관으로 탈바꿈하여 순진한 우리 국문학도를 유혹하였겠다.
짧은 시간과 실내로 한정된 참관으로 미당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었지만
관리인의 껄죽한 전라도 목소리로 듣는 미당의 시 낭송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미당이 왜 그의 호를 미당(未堂-덜 된 집)이라고 했을까요?"
"아, 녜. 그 호는 미당 자신이 지은 게 아니라 그의 친구인 미사(裵相基, 중앙고보 선배. 미당보다 5세 연배)가 지어준 것이라우..."
"언제요?"
"젊은 시절이랑게유"
'완성되지 않은 집이라?
그래도 말당(末堂-맨 꼬랑지 집)보다는 괜찮아 보이네 ㅎㅎㅎ'
(*未와 末을 잘 구별하여 보시라)
이러면서 미당이 걸었을 그 길을 따라 가 생가를 둘러보고...
사색에도 빠져보고...
미당처럼 고개도 약간 제껴보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랑에 핀 노오란 장다리 꽃을 한 컷 콕 박기도 하였다. (휴대폰이지만)
이어 마지막으로 들린 청보리밭은 아직 땅에 붙은 보리로 하여금
30만평의 청푸른 물결은 아니 못하고
저물어 가는 저녁 해만 보았더라.
너무 늦게 도착(마산)하면 안되는 데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 본다.
시계는 이미 6시를 넘고 있었다.
이후,
우리는 남강휴게소부터 밀리는 차와
잘못된 코스의 선택으로
본의 아니게 한밤중 질주하는 드라이버를 즐기게 되었으니...
더러는 불평을 하고,
더러는 심퉁하고,
더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만 맬뚱맬뚱하고
나는 11시 이후 집에 들어가면 괜히 사족이 떨리는 떨림증이 실실 발동하기 시작하는 데. (???!!!)
어쩌나...
동창원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창원역, 마산역으로 해서
거금(?)을 드려
집에 도착하니 11시하고도 30분.
"고속도로에 차가 너무 밀려서... 그리고 참 이상한 기사 땜에 진영을 삐잉 둘러 오느라 늦었어."
처는 무신 소리인지 어리둥절하고...
TV에서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트 재방이 한창이었지.
쇼트는 보았으니 됐고 프리스케이트를 보려고
종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이리 치켜 뜨고 저리 치켜 떠 보았지만
내리 깔리는 무게를 어찌 못하고
배게를 들고 집사람 옆에 누으니
세상살이가 이처럼 편안할까.
머리가 배게에 닿자말자 바로 골아 떨어졌으니...ㅎㅎㅎ
한국방송대 마창국문과 2년 승만석
첫댓글 한국 시사에서 미당을 빼고나면 시문학 이야기기 안 될 정도로 시골 순이조차 국화옆에서 를 외우던 시절이 있었지요. 정말 좋은 문학기행 잘 다녀왔네요. 미당의 기를 훔뻑 받았으니 열공도 열공이지만 시가 되었든, 수필, 소설 어느 분야든 건필하시기를. 작가가 될 수 있는 방법에 연연하지 마시고 되느냐에 생각을 두고 열심히 오랜 세월 문학과 동행하다 보면 그 것이 곧 등단이상이고 자연스럽게 등단하는 겁니다. 윤동주 처럼 말입니다. 비록 등단은 안했지만 그는 꾸준한 습작이 후세에 전해져 그가 시인으로 추대 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잘 읽고 갑니다. 감사!
늘 주시는 따스한 마음... 감사합니다...^** 연연하지 않는 자세로...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