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자를 보면서 하루 종일 심심하길래 손자가 보는 책을 읽어 보았다.
Why? 라는 책인데 만화책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의외로 어른들이 읽으면 쉽게 재미있게 세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심심하니까 그냥 읽어봐.
미국
초기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2만 5천년전 쯤이다.
시베리아 지방에 살던 몽골 계 아시아인들이 당시 육지로 연결돼 있던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아메리카로 들어와 남아메리카 남단 까지 내려갔다.
그러다가 원주민들이 지금의 멕시코만 근처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근처에 나라를 세웠는 데 바로 마야, 아스텍, 잉카 제국이다.
그에 비해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나라를 세우지 않고 각자 영토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
15세기 유럽인들이 처 들어 오기 전까지 원주민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이 무렵 유럽인들은 동방과의 무역을 통해 동방의 향료를 가져와 유럽에 팔기 위해 바닷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개척한 나라가 포르투칼이었다.
1488년 바크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 봉에 도착했다.
이때 이탈리아 탐험가 콜 롬 버스가 에스파냐 후원을 받아 동방으로 가는 서쪽 바닷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콜 롬 버스는 인도를 찾기 위해 대서양을 서쪽으로 향해 하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콜롬버스는 1492년 바 하마 군도의 한 섬에 도착을 했다.
콜롬버스는 자기가 도착한 곳이 아메리카가 아닌 인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원주민들한테 인도 사람이네 인디언이라고 불러야지 그래서 인디언이라 불렀다.
이곳이 인도가 아닌 새로운 대륙이라는 걸 알아낸 사람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탐험가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 불렀다.
그 후 아메리카에 유럽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에스파냐 정복자들에게 아스팍, 잉카 제국 등 이 무너져 갔다.
잉카 제국은 1533년에 무너졌다.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은 16세기 중반까지 멕시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때 중남미 원주민의 문화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기록 상으로 유럽인들이 들어 온 것은 1584~1589년 경이다.
영국의 월터롤리가 식민지 건설을 추진했다.
월터롤리는 남 로스키롤라이나에 있는 로어노크섬 근처에 식민지 건설을 추진했다.
(본인은 그 땅을 밟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이주를 했지만 영국 전쟁 때문에 보급품을 늦게 보내주는 바람에 1590년 경
이주한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식민지 건설 실패다)
그 후 1607년 영국의 귀족, 지방 지주, 상인들은 유한 회사를 세우고 식민지 건설 자금을 모아
버지니아주에 1차 원정 단을 보냈다.
영국의 제임스 1세 이름을 따서 "제임스 타운"이라고 했다.
그러나 1차 원정 단 역시 험난한 자연과 굶주림으로 모두 죽고 말았다.
이 후 1609년 다시 2차 원정 단이 갔는 데 포카혼타스라는 원주민 여자의 도움으로 담배 농사 법을 배워
영국에 담배를 팔아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주민들은 담배가 잘 팔리자 흑인 노예를 데려와 더 많은 담배를 재배했다.
(1619년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잡아왔다)
제임스 타운이 세워진 지 13년 후 영국인들은 또 식민지를 세웠다.
이번에는 1620년 필 그림 마더스란 청교도 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케이프 코드(지금의 매사추세츠 지역)에 도착했다.
새로운 땅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 보자....
이곳을 우리가 떠나온 항구 이름을 따서 "플리머스" 로 고하자..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등 농작물 재배 법을 배웠다.
그 덕에 필그림 파더스는 첫 수확을 올리고 추수감사절을 지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땅으로 몰려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8세기 초까지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에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지금의 미국 땅인 뉴욕, 뉴 햄푸셔. 매사추세츠, 로드 아일랜드, 코네티켓. 뉴저지. 델리웨어. 펜실바니아. 메릴래드,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등 13개다.
( 미국 국기에 옆으로 13개의 빨간 줄 무늬 가 이 13개 주라 한다.)
지금 미국의 동부 지역이다.
처음에는 인디언들과 이주민들 사이에는 관계가 좋았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생겨났다.
영국 계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는 필립 왕 전쟁(1675~1676년) 이라한다.
초반에는 원주민이 유리했으나 곧 굶주림에 시달렸고 원주민 추장 필립이 사망한 후에 전쟁은 끝났다.
이후로는 이주민이 마음 데로 뉴잉글랜드의 남부 지역을 넘어 원주민의 옛 영토로 진출했다.
이 전쟁으로 원주민들은 숫자가 10분의 1로 줄어 들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원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그동안 영국 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한 네델란드, 프랑스와 전쟁 하느라 바빴다.
영국은 아메리카 시장 주도 권을 놓고 네델란드와 전쟁을 했는 데 네델란드가 패하여 물러났다.
프랑스와는 몬트리올. 퀘벡 등지에서 전쟁을 했는 데
이 전쟁은 1756년 영국과 프랑스 본국으로 옮겨가 7년 만인 1763년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두 나라는 파리 조약을 맺고 아메리카는 확실히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편 영국은 전쟁 때문에 1억 3천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그래서 이주민들에게 영국 군대 유지비를 내라고 했다.
이주민들이 반발을 심하게 하자 설탕, 술, 커피를 수입할 때 세금을 내라고 했다.
이주민들의 반발이 더 심해지자 영국 의회는 한 술 더 떠서 1765년 식민지의 모든 인쇄물에 인지를 붙이고
인지 대금은 영국에서 가져가는 인지 세법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새로운 세법을 계속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차 세법이다.
차 세법은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상인을 거치지 않고 식민지에 직접 차를 팔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이에 화가 난 상인들은 1773년 원주민 분장을 하고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동인도 회사의 차를
바다에 집어던졌다.
이를 보스턴 차 사건 이라 한다.
보스턴 차 사건이 터지자 영국에서는 식민지 탄압 법을 만들었다.
차를 물어내지 않으면 보스턴 항을 막아 버리겠다.
또한 식민지 주둔 영국 관리와 군인의 재판은 영국에서 직접 하며, 영국 군인은 식민지 건물과 식량을
마음껏 써도 된다
화가 난 이주민들은 1774년 필라델피아에서 제 1차 대륙 회의를 열었다.
이를 본 영국은 더 많은 군대를 식민지에 보냈다.
그러다 1775년 영국 군과 매사추세츠 민병대는 렉싱턴과 콩고드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로써 이주민들과 영국 군과의 독립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독립 전쟁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군은 초반에 영국 군에게 밀리다가 1776년 트랜턴 프린스턴 전투에서 승리 한데 이어
1777년 제 2차 새러토가 전투에서는 승리 했다.
이로써 독립군 승리에 감동 받은 프랑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776년에 이주민은 드디어 정식으로 미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힘을 입어 승승장구하던 독립군이 결국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영국군의 항복을 받아 냄으로써
전쟁은 끝이 났다.
미국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미국의 독립선언
이주민은 토머스페인의 '우리는 신세계에 또 하나의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영국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주장으로 독립을 결심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을 대표로 독립 선언서를 작성, 1776년 6월 28일 의회에 제출한 후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7월 4일 공식화 했다.
전쟁이 끝난 후, 1783년 영국과 미국이 맺은 파리 조약에서 미국의 무조건 독립이 승인되었다.
당시 미국의 영토는 캐나다 국경에서 남쪽으로는 플로리다를 제외한 북위 31도 이북 지역, 서쪽으로는
미시시피 강을 경계선으로 인정 받았다.
조지 워싱턴--미국 초대 대통령 , 독립 혁명군 총사령관으로 독립전쟁을 성공시켰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미국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썼다.
미국 지도
미국 서부쪽에 워싱턴 주가 따로 있는 데 미국 수도 워싱턴 D.C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으니
잊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