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봉계곡~포대능선~신선대~도봉계곡
어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덕분인가,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색은 방금욕실을
나서는 맨얼굴의 촉촉한 아름다운 미인의 얼굴을 닮았다. 너무 유혹적이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옥상을 오르락내리락 출산(出山)준비를 재촉한다.
지난주 사패산 산행이 너무 늦은 시간에 시작된 것을 감안하여 오늘은 그보다 이른시간에
출발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하늘은 그지없이 높고 말들이 살이 찌는 계절, 비단 살이 찌는 것이 말뿐이겠는가,
들판의 벼이삭도 과수밭의 온갖열매도 알차게 영그는 풍요의 계절이니 인간뿐 아니라
뭇짐승들까지도 동절기를 대비한 비육기에 적합한 계절인 것이다.
그러나 실은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유래된 중국사람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 되면 북쪽에서 흉노들이 또 쳐들어와 삶의 터전의 훼손을 걱정하고
근심을 해야 하는 계절인 것이다. 한곳에 정착하여 생활하여가는 중남부 지방의
농경민족은 철따라 이동하며 생활해야하는 북방의 유목민들은 두렵기만한 민족인
것이다. 추운계절이 일찍닥치는 북방민족들은 추위를 피하여 남으로 남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곳에 정착하지않고 계절따라 이동해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그대로 유랑걸식이라면 양반이고, 거의가 탈취가 주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동수단이 거지반 말에 의존하던 기마민족인 중국북방족들은
겨울철이 다가오면 거느리던 양떼나 가축을 이끌고 먹이가 풍족한 남쪽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 지역적 불가피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강폭이 넓은 황하강도 겨울이 다가와 결빙이 되면 경계수역의 역활이 무색하게 되니
그들에게 동절기가 다가오는 가을은 불안이 시작되는 계절이 되는 셈이다.
풍요와 낭만이 맴도는 사색의 계절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쌓고 쌓고 또 쌓고, 대대로 미련 할 정도로 이어진 축성이 지금 남아있는 만리장성
이지만 그렇게 미련스러울 정도로 축성에 매달린 결과는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중국을 유지하게 한 버팀목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때만되면 따뜻한 남쪽지방을 유린하곤했던 당시의 유목민
흉노족은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가,
그들은 요즘 외신기사를 통한 뉴스를 보면 위그르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서 중국의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다.어제의 침입자가 지금은 식민지배하에 남게 된 것이다.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저항이 도하 세계뉴스의 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의 사실은 아니지만 현재 상황은 그들이 독립을 이루기란
지난해 보이기만 하다.
어쨋던 우리에게 가을은 높고 푸른 하늘만큼이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기분좋은
계절임이 틀림없다.
꾸역꾸역 전철역을 썰물처럼 빠져나오는 인파들 거지반은 거뭇한 행색에 배낭을
질머진 것을 보면 등산에 나선 분들일게다. 주말에는 사람사태가 날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지만 평일이라서 다행히 사태날 정도는 아니지 싶다.
줄지어 들어찬 식당가, 그 사이사이 각종브랜드를 앞세운 등산용품점이 빼곡하다.
점심손님을 대비하는 모양이다. 밀가루 반죽으로 수타면을 뽑아내려는 주방장의
팔놀림에 신기가 들린 듯하다. 고소한 기름냄새를 뒤로하면 이윽고 길은 그늘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늘산길은 지난주 사패산 산행을 잇는 느낌으로 출발하려한다.
그래서 광륜사를 시작으로 은석암을 경유하여 다락능선을 타고 도봉의 주능선에
오른 후 도봉계곡으로 하산을 할 예정이다.
지난주 까지도 그렇게 극성을 피우던 매미들의 노랫소리도 어지간이 사그러 들었고
귀뜨라미소리가 새롭게 그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아간다. 노란 고추잠자리들도
하나하나 사라져가고 개체수도 많이 성글어졌다. 널찍하게 시작되던 산길은
강폭이 줄어들면 물살이 거세지듯 서서히 각을 높여나가기 시작한다.
바위와 소나무가 주로 메뉴를 이루는 북한산국립공원의 식솔들은 수도서울의
진산인 동시에 전국의 명산중의 첫손을 꼽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뛰어난 등반성, 화려한 능선과 일망무제의 조망을 자랑하는 등산의 삼박자중에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다만 수도권의 대도시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수많은 인파에 시달려 훼손이 염려되는 안타까움이 있다.점점 오염되어가고있는
계곡수, 무분별한 식물들의 채취로 개체수가 줄어들어가는 동식물들 그리고
넓고 깊게 파여만 가는 등산로의 황폐화가 안쓰러움을 더해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산길이 바위나 돌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시름 놓을 뿐이다. 바윗길이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숲을 열고 조망이 터진다.
도봉구와 노원구의 시가지 그리고 허여멀건한 아파트숲과 건너편의 수락산과
불암산의 기골이 튼실하다.널찍한 너럭바위능선에서 땀을 식히고 오름을 이어간다.
울창한 숲에 가려있는 은석암을 지나면 산길은 다락능선을 치닫는다.
지난주는 포대능선을 오르고 포대봉 직전에서 원도봉계곡으로 하산을 했으니
그 일정을 이으려면 오늘 포대능선을 오른 후 산길을 이을 일이다.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여늬때처럼 산상 식도락을 즐긴후 포대봉을 향한다.
가파른 암릉을 올려치니 천상을 넘나드는 문지방인가, 두팔을 벌려야 간신히 손이
닿을 듯한 바위통문을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바윗길은 수직의 철제계단으로
미로처럼 이어진다. 계단난간을 잡아야 뒤로 자빠지지 않을 정도의 수직 철계단을
올라서니 도봉의 수문장 선인봉,만장봉 그리고 자운봉이 범강장달 골리앗처럼
위압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범속의 시가지는 꽤나 작아보이는데,
이속(離俗)의 세장수들의 위세는 천하를 누를 듯 기골이 장대하다.
군 방위상 포대를 설치했던 곳이라서 포대능선으로 불린 능선의 지휘봉
포대봉에 오른다. 봉우리 방카 모습이 묘하게도 마징가 z 얼굴을 닮았다.
포대봉을 내려서면 숨돌릴 틈없이 자운봉오름길 암반길이 앞을 가로 막는다.
주말이면 감히(?) 오를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등반객들로 법석이는 곳, 오르고
내려오는 길의 2차선(?)의 암반길이 山客을 기다린다. 엉거주춤거리면서 겁을
잔뜩 머금으며 내려서는 하산객들을 보고 지레짐작 겁을 먹은 식구를 살살 구슬려
함께 신선대 정수리에 오른다. 평일이라해도 신선대의 넓지않은 장소에는
등산객들이 가득하다. 사진촬영을 핑게로 정수리에서 하산을 떠밀다시피 끝내고
우리도 서둘러 기념사진을 마치고 정수리를 내려선다. 파랗디 파란 창공을 향해
솟구쳐있는 장대하고 기골찬 암봉이 등산객들을 정수리에서 머뭇거리게 하지만
꾸준하게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위해서 자리를 내줘야 할 필요가 다분하다.
다행히 평일인 관계로 이나마 정수리에서의 머무는 호사를 즐긴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가파르게 산길이 시작되는 도봉계곡으로의 하산길,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곤두박질을 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위험도가 높은 이유는 능선산행을 마치고 이제는 하산을 서두를 시간이니
그동안 소비된 체력이 고갈이 예상되니 하체는 힘이 빠졌을 테고,
요철 심하고 위험스러운 구간을 안전하게 빠져나온 뒤의 방심이 또한 호시탐탐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헛점을 노리는 사고에 힘없이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안전사고 예방에 마지막 공력을 집중해야 할 일이다. 가파른 구간을 빠져나오니
널따란 너럭바위가 비스듬이 하산길에 펼쳐져있다.
그 유명한 마당바위다. 옛날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좀전에는 이곳에서
잔치국수도 말아 팔고, 잔 막걸리도 마실 수 있는 이동식당(?)이
있었는데 공단에서 철수 시킨 모양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배낭안에 마시다 만 막걸리에 귀가 번쩍뜨인다.
흔들어보니 두어잔은 실히 되보인다.
갈증도 드는 김에 냅다 남은 막걸리를 털어 마신다.
천축사 방향으로 산길을 잡는다. 천축사 입구에 웬 현수막이 너저분 한지 모르겠다.
살펴보니 정부의 시책에 불만이 가득한 내용들이 있는가하면, 백중날(百中)이
사흘앞으로 다가왔으니 그날 거행할 의식을 알리는 현수막등으로 도배가 되었다.
일년 열두달 모든절기의 중심인 칠월보름 백중은, 명절의 하나로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스님들이 대중앞에서 자기의 허물을 말하여 참회를 구하며 절에서 재(齋)를
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음력7월6일 저녁부터 백중일 이튿 날 칠월기망인
7월16일까지 이어지는 칠월명절은 농번기에 일만하던 머슴들이 농사일을 끝내고
휴식과 여가의 시간을 보내는 절기인 것이다. 이기간중에 농사꾼의 대표주자로
소를 몰고 논밭을 갈며 농사일을 하던 농촌총각 견우(牽牛)와 옷감을 짜던 시골처녀
직녀(織女)가 모처럼 남몰래 만나 사랑을 키워나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사랑방정식은 아니었겠나. 공연한 질투와 짖궂은 장난으로 그 만남을 훼방하려는
지배계층을 대리한 우사(雨師)님의 방해공작도, 당시 봉건제도하의 노동력이
상민들의 몫이었기에 당연시 여겼던 것은 아닌 지 모른다.
좌우지간 칠월명절 기간은 상류층인 지배계급이 즐겼던 명절은 아닌 것 같고
대체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하층민을 위한 명절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고즈넉히 이어지던 산길은 고도를 낮추어 가면서 시나브로
널찍한 도봉계곡 산길로 자세를 낮춘다. 시설지구내의 식당이며 요리집에서
기름지고 구수한 냄새가 발길을 잡는다. 먹음직한 파전에 막걸리나 한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식구는 산행 시작무렵 보았던 수타짜장면 맛을 보고싶은 모양이다.
식성좋은 사람보다 입성까다로운 사람 입맛에 맞춰야지 세상이 따뜻해지고
화평해 지는 법, 보기에 안됐던 모양이다. 가게를 한번 휘 둘러보더니 이곳에도
고량주와 소주뿐 아니라 막걸리도 판다고 술꾼보다 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