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드라마는 아무리 첫 회가 재미있어도 그것으로 끝이다. 딱히 이유는 없다. 다만 매주 날짜와 시간을 기억해야하고 기다림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시간들이 삶을 소모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 이맘때 3월 아버님 제사를 이틀 앞두고 시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왜 아버님 제사에 오지 않냐 는 뜬금없는 말씀과 분노에 차인 당신의 목소리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허둥지둥 당일 찾아 뵌 어머니는 낯선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당신인데 당신이 아닌 모습. 알츠하이머 치매였다.
그렇게 집에서 당신과 짧디 짧은 두 달의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에 의하면 벽에 똥칠을 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식사를 하시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해변으로 외출 한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 뒤처리 실수로 하얀 모시옷을 노랗게 물들인 당신의 손을 8월 햇살보다 더 뜨거운 타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와야 했고 매 끼니마다 당신에게만 보이는 낯선 세분의 밥상까지 차려야 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처음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당신의 당당한 첫 고백이었다. 그나마 약한 몸 때문이었다고 하셨으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깊은 잠을 주무시지 않는 거였다. 24시간 중 3~4시간을 주무셨을까? 시간 시간마다 당신은 잠깐의 쪽잠을 주무셨고 평소에는 장군처럼 묵직한 성격의 당신이 당신 눈에만 보이는 지인들과 밤새 수다를 떠셨다. 그렇게 잠까지 줄여가며 매일 밤 당신은 행복해 하셨고 만족해하셨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나였다. 24시간을 함께하다보니 매일 설 잠에 살이 내리기 시작했고 내게는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지인 세분 때문에 무섬증으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아프신 당신을 위해서가 아닌 건강한 나 때문에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병문안을 가면 기억의 편린을 붙잡은 날의 당신은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철저히 나를 외면하셨다. 당신을 병원에 버렸다고 생각하셨으니 가끔은 서늘한 당신의 시선에 찌를 듯이 아픈 나는 당신의 기억이 하루라도 빨리 지워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억을 잊어가는 당신을 떠올리며 상처받을 바에는 차라리 기억을 전부 잊어버리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짧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치매에 걸린 당신이 더 좋았다. 끔찍이도 아끼던 소중한 아들은 잊어버렸지만 마지막까지 내 이름을 부르며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미소를 짓는 당신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71살 4월의 따스한 봄에 발병했던 병은 서서히 당신을 잠식했고 꼭 6년의 세월이 흐른 76세 8월, 기상관측 이래 사상 최고의 폭염을 기록하던 날 당신은 더위를 피하듯 서둘러 훠이훠이 떠나셨다. 처음엔 당신을 떠나보내고 미뤘던 숙제를 다 한 듯 홀가분했다. 그러나 홀가분함도 잠시 서서히 무기력증을 앓기 시작했다. 지난 6년간 매주 나들이 가듯 다녔던 병원으로 갈 곳이 없어졌으며 혼자 수다를 떨며 당신 몸을 닦이던 일도 강제로 뺏긴 기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모시지 않고 병원에 모셨던 나 자신의 이기심에 대한 변명거리가 없어진 거였지만 말이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눈이 부시게 드라마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한지민이 하룻밤 새 노인의 모습인 김혜자로 변해버린다는 황당한 드라마였다. 설정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흔히 말하는 출생의 비밀도 없을뿐더러 흔해빠진 삼각관계도 아니고 허무맹랑한 신데렐라 이야기도 없이 시작은 오빠 손호준과 티격태격 거리는 모습으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가족 코믹드라마였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경쾌함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한편으로는 SF 같기도 했고 요즘 유행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드라마 같기도 해서 호기심으로 보기 시작한 것을 몰아보기로 눈물 콧물을 빼가며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줄거리는 타임 슬립이 가능한 시계를 주운 주인공이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아버지를 구하지만 되돌린 시간만큼 자신의 미래 시간이 잠식되어 하루아침에 노인으로 변하고 언젠가는 젊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믿고 살아가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는 죽은 남편의 손목시계가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중심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오버랩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충격적인 압권은 시계를 발견했던 바닷가에서 늙은 혜자(김혜자)가 젊은 혜자(한지민)을 무심히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혜자는 타임 슬립 시계를 가진 사람이 아닌 내 어머님처럼 시간을 혼돈한 치매환자였던 것이다. 놀라운 반전이었다.
당신이 떠나신 후 유품을 정리하면서 주일마다 다니셨던 성당 가방 안에 당신의 손때가 묻은 낡은 성경책과 함께 곱게 접힌 휴지 속에 며느리라고 쓰여 진 전화번호 쪽지 한 장과 쓰다 남은 공중전화 카드가 들어 있었다. 철저히 벽을 보며 외면하셨지만 당신이 믿고 의지했던 사람은 정작 며느리인 나였던 것이다. 그 뒤 더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 후회와 죄책감은 간병 때 보다 더 힘들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며느리가 당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셨으니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웠을까 드라마에서는 김혜자가 시계를 중심으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지탱하고 살았다면 당신은 공중전화기를 통해 내게 미래를 맡기고 의지하고 싶었다고 말씀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문학은 삶이라고 한다. 삶이라는 글자를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람이라는 글자가 있다. 결국 문학도 삶도 사람이야기 인 것이다. 고로 삶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도 문학이다. 부끄럽지만 늦게 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글 때문이었다. 20년 전 한국 수필가 협회 부회장이셨던 서 정범 교수님의 추천으로 등단했지만 매번 학력과 경력에 좌절했었다. 단단해지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지만 특히 학력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마다 내 삶을 일으켜 세운 수보자(修補子)는 늦어도 좋으니 꼭 대학을 다니라는 교수님의 말 한마디였다. 그리고 뒤늦게 용기를 냈다.
내겐 두 분의 어머님이 계셨다. 두 분이 건강하실 때 항상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었다. 두 분을 같이 모셔야 하니 요양원이나 차려야겠다고. 비록 지금 한분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내겐 늙은 아이 친정어머님이 계신다. 어머니를 위해서 2년 전에는 장애인 활동보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작년에는 노인 요양 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지금은 작가로써 졸업장을 얻기 위해 진학한 학교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 내게 드라마 제목처럼 눈이 부신 꿈이 생겼다.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드라마를 보며 어머니 당신의 치매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결코 꿈꿀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끝내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이제는 당신이 나를 용서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늦은 나의 선택으로 돌고 돌아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이유를 당신은 멀리서 말없이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는다. 6년간 아프게 당신을 지켜보면서, 우연히 눈이 부시게 드라마를 통해서 조금 더 큰 세상을 바라보고 아픈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며 무엇보다 치매 환자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람을 배려하며 삶을 나누는 문학을 눈이 부시게 이어가라고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꿈꾸었던 요양원을 만들고 그 속에서 따스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가슴 따뜻한 글을 쓰며 조용히 늙어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혜자 님이 혼자 읊조리던 마지막 대사를 그대로 옮겨둔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팽팽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에 부는 달콤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도 눈이 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고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 예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