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은, 심지어 말마저 잘 통하지 않는 한 독일 여성이 미국의 허름한 카페 ‘바그다드’에 오면서 그곳의 모든 것이 바뀐다. 지저분하고 정신없던 카페와 모텔은 새집처럼 되고, 무능한 남편과 속 썩이는 자식들 때문에 불행했던 카페 여주인 브렌다는 낯선 방문객인 야스민 때문에 삶의 활기를 되찾게 된다. 그리고 정처없이 유랑하던 콕스 또한 그녀 때문에 예술적 열정이 되살아나 그녀를 모델로 다시 그림을 그린다. 브렌다의 아들과 딸도 그녀 때문에 각기 행복하게 피아노를 치거나 마음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된다. 야스민 자신 또한 남편과 헤어졌을 때의 그녀가 더이상 아니다. 이처럼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다. 야스민은 물처럼 상처를 치유하고, 바람처럼 지친 영혼을 살려낸다. 그녀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는다. 싸우지 않고도 이긴다면 그것 자체가 마술이다. 그래서 마술을 원하는 우리 또한 주제가 〈Calling You〉에 맞춰서 그녀를 애타게 부르게 된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이 말한 “예술은 강간이 아니라 유혹이다”라는 말과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여성의 힘은 유혹의 힘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영화가 바로 〈바그다드 카페〉이다.
그러나 서구가 아닌 한국에서 살면서 영화를 보지 않고 문학작품을 읽을 때면 유혹당하면 부족한 것 같아 불안하고, 강간당하면 넘치는 것 같아 불쾌해지는 것은 왜일까. 특히 여성문학을 접할 때 강화되는 이런 딜레마와 자기 검열의 기나긴 역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성문학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보아야 한다. 유혹과 강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여성들의 의식은 그 자체로 생물학적, 자연적인 성(sex)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성(gender)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런 젠더의 산물이 바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젠더가 사회적인 규범에 의한 성의 이원론적 분할과 관계 있다면, 그런 젠더의 양상을 가장 치열하게 보여주는 것이 여성문학을 바라보는 남성 평론가들의 시각일 것이다. 한국문학사에서는 남성 작가들이 여성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경우가 드물고, 여성 작가들이 남성 문제를 작품화한 경우도 전무한 형편이며, 여성 평론가에 의한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논의도 최근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현실적이고도 상대적으로 젠더의 충돌 양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여성 작가나 작품에 대한 남성 평론가들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은 앨리스가 되어 여성문학에 대한 남성 평론가들의 글이라는 ‘거울’을 통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 거울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re-vision)’ 그 동안 잘못 알려졌던 자신의 모습을 ‘교정(revision)’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작업을 위한 시도로서 이 글에서는 거의 30년을 단위로 지속과 변화의 양 측면을 모두 보여주는 여성문학사를 세 시기로 나누어 각 시기의 젠더적 특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즉 제1기(1920~30년대), 제2기(1950~60년대), 제3기(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남성 평론가들에게 가장 많이 논의되었거나 논쟁적이었던 여성 작가나 여성 소설을 통해 20세기 한국문학 속의 젠더를 재고해보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아직도 여성문학은 ‘차이’가 아닌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 때문에 진정한 여성문학은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Godot)와 같다는 것, 그 동안 여성문학에서 이룬 것은 엄청난 승리를 유예시키는 하찮은 승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 여전히 여성은 아버지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갑옷을 입고 태어난 아테나이거나 아폴론에게 순종치 않은 죄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벌을 받은 카산드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여성의 운명은 율리시스를 기다리며 낮에 짠 옷을 밤에 다시 풀어야 하는 페넬로페와 닮아 있다는 것, 이처럼 여성들은 아직도 해피 엔딩의 영화가 아니라 비극적인 신화 속에 더 많이 산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행복이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는 것 등. 이런 사실을 확인해가는 작업은 20세기의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여성들의 좌절과 절망을 곡비(哭婢)처럼 대신 울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2. 노라, 인형의 집을 나오다
1917년 김명순이 「의심의 소녀」를 발표한 후 시작된 여성문학은 김일엽과 나혜석이 가세하면서 3인 중심으로 제1기를 맞게 된다. 그들은 한국의 노라로서 기존의 봉건적 인습과 가부장적 질서에 대해 과격한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물론 입센은 자신이 여성해방론자로 취급받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의 작품 「인형의 집」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노라들은 나혜석의 입을 빌려 “남편과 자식에 대한/의무같이/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나를 사람으로 만드는/사명의 길을 밟고서/사람이 되고져”(「인형의 집」)라거나 “나는 사람이라네/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자녀의 어미 되기 전에/첫째로 사람이라네”(「노라」)라고 외 친다.
제1기에는 이런 입센의 영향과 더불어 엘렌 케이의 모성론, 베벨의 부인론, 콜론타이의 사회해방론이 소개되었다. 그 영향으로 신여성들 사이에서는 당시에 유행했던 소설 「적련(赤戀)」의 여주인공처럼 여러 남성과 거침없이 결합하고 헤어지는 새로운 연애관이나 방종한 성도덕이 문제시되었다. 김명순이나 김일엽, 나혜석 등도 소설이나 수필을 통해 성의 해방이나 자유연애, 신도덕이나 신정조관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작품보다는 사생활로, 관심과 기대보다는 편견과 멸시로 평가된, ‘저주받은’ 선각자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김동인은 김명순을 모델로 한 「김연실전」에서 “작품 없는 문학생활”을 한다고 이들을 비판했다. 그리고 김일엽이 최명애로, 나혜석이 송안나로 등장해 “여류 문사”라는 허울 아래 성적인 방종을 일삼는 인물들로 비하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했으므로 김명순이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생명의 과실』(1925)이라는 창작집을 냈다거나, 김일엽이 「자각」 「사랑」 「희생」 등의 소설을, 나혜석이 「경희」나 「원한」 등의 여성 소설을 창작했다는 사실은 가려진다. 물론 그들의 작품 수준이 고르지 못하거나, 그들이 논설이나 수필을 더 많이 창작했다는 것, 사생활이 순탄치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김기진이 김명순을 논하면서 “그는 평안도 사람의 기질인 굳고도 자가방호(自家防護)하는 성질이 많은 천성에 여성 통유(通有)의 애상주의를 가미해서 그 위에다 연애문학서류의 펭키칠을 더덕더덕 붙여놓고 의붓자식이라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조금은 꾸부정하게 휘어가지고 처녀 때에 강제로 남성에게 정벌을 받았다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 한층 히스테리가 되어가지고 문학 중독으로 말미암아 방분(放奔)하여졌다”(「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 『신여성』, 1924. 11)라고 평한 것은 다분히 인신공격적이고 문학 외적 요소로 문학을 평가한 측면이 강하다.
이처럼 동경 유학 체험이 있는 중산층 여성들의 서구 중심적,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여성해방론에 입각한 1920년대 선배 여성 작가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1930년대의 후배 여성 작가들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이전 시대의 여성 작가들이 발표한 글들을 보면 자신들의 무지 함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최정희, 「1933년도 여류문단총평」, 『신가정』, 1933. 12) 때문에 1930년대에는 작품으로 대접받으려는 여성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작품활동을 많이 하려 했기에 홍구(洪九)는 오히려 “여류 작가 범람 시대” “다량 생산 시대”이자 “기근 시대” “폭락 시대의 전조”(「여류작가의 군상」, 『삼천리』, 1933. 1)라는 우려까지 한다.
1930년대 여성 작가들 중에서 남성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인정받은 작가는 박화성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박화성의 문학은 선이 굵다, 주제의식이 강하다, 논리적이다, 구성력이 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 등으로 평가되었다. 「하수도공사」나 「홍수전후」 「두 승객과 가방」 「한귀」 「춘소」 등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면모가 그런 평가들을 확인시켜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특성 자체가 박화성 문학의 장점으로 호평을 받게 하는가 하면 단점으로 혹평을 받게도 한다. 남성 평론가들은 박화성이 여성 특유의 감상성이나 소재의 한계성을 벗어난 ‘남성적 작가’이기에 그녀를 여성 작가가 아닌 작가라고 옹호하는가 하면, 다른 입장에 선 남성들은 그녀가 여성이면서도 여성다운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박화성이 남성적인 작가이기 때문에 높이 평가한 남성들로는 이광수, 김기진, 백철, 양주동 등이 있다. 박화성을 문단에 추천한 이광수는 “우리는 우리 누이들 중에서 이렇게 정성 있고 힘 있는 이를 만나는 것을 심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조선문단』, 1924. 12)라고 극찬했으며, 김기진 또한 “저널리즘적 명성보다도 그들의 작품이 꾸미는 역량에 있어서 출중하다”(「구각(舊殼)에서의 탈출」, 『신가정』, 1935. 1)면서 박화성과 강경애를 여성 작가 중에서 최고로 평가한다. 백철도 동반자 작가적인 박화성에 주목하면서 그런 특성에 의해 문학사의 주류에 편입시키고 있으며(『조선 신문학사조사』, 백양당, 1949), 양주동 또한 “그의 소설은 선이 굵고 테마가 뚜렷하다. 더구나 사회 현실에 대한 관찰과 해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점은 확실히 여류 문단의 한 이채다”(「여류문인 편감촌평」, 『신가정』, 1934. 2)라고 극찬한다.
이런 찬사에 반대하는 글이 김문집의 「여류 작가의 성적 귀환론―화성을 논평하면서」(『비평문학』, 청색지사, 1938)이다. 김문집은 “여류 문단의 맏딸”로서의 박화성의 위치를 인정하면서도 박화성에게 “여성성 소실” 혹은 “여성성 기피”에서 벗어나 여성으로 “귀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남성으로선 취급치 못할 면을 남성으로선 향유치 못한 센스로써 표현한 여성의 작품”에 정복당하는 것이 남자라는 것이다. “여성적인 너무나 여성적인” 작품을 위해 “여성 호르몬의 개성적 발로”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안회남 또한 「박화성론」(『여성』, 1938. 2)에서 박화성이 “아들” 같은 작품을 선호하는 남성적 작가이기에 오히려 여성을 모멸하는 작가라고 비판한다. 그런 후 “이쁘고 싸근싸근하고 고요하고 깨끗한 모든 여성의 좋은 점을 소설에서 좀더 잘 표현하고 보다 옳게 탐구해나가는 것이 오늘날 여류 작가들의 의무요 또한 권리”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박화성을 비판할 때 김문집이나 안회남 모두 프로이트의 학설을 그 근거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성적인 표현의 양식이고, 영원히 여성은 남성이 될 수 없기에 각자의 특성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이 주목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번째는 그의 생물학적 결정론의 입장이다. 남근 선망이나 거세 콤플렉스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의한 것인데도 프로이트는 이 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의 남성 우월적 입장이다. 그의 이론은 여성을 ‘불완전한 남성’으로 간주하는 여성 혐오적인 서구 철학의 전통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분석이다. 프로이트가 여성성을 수동적이고 피학적이며 자아도취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데서 이 사실은 증명된다. 이에 입각해볼 때 김문집이나 안회남의 여성성 옹호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 고유의 독자성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남성의 특권을 침해받고 싶지 않다거나 남녀 차등적 위계질서를 옹호하려는 남성 심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박화성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1930년대의 여성문학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측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의 저널리즘에 의해 발표 지면이 확보됨으로써 작품 수의 증가나 질적 변화를 이루었지만, 그런 긍정적인 측면 자체가 기득권자들의 선심쓰기용 배려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남천이 지적했듯이 여성 문학은 오히려 그 희소가치로 인해 “지나친 귀여움”을 받은 측면도 있다. 그래서 수준이 낮아지고 안주했던 까닭에 “좀처럼 자라질 않는” “백 년이 일 년과 같은” 문학이 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을 받아야만 했다.(김남천, 「여류문학 저조의 문제」, 『여성』, 1939. 6 참조) 물론 이런 김남천의 의견에는 여성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의도적인 폄훼 혹은 여성 작가들의 무시할 수 없는 성장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이 아닌가라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애완물로 취급되는 여성 작가뿐만 아니라 우선권이나 특권을 바라는 여성문학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구석이 있다. 사실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등이 남성들의 비난 속에서 힘들게 혼자 싸웠던 것에 비해 1930년대의 여성 작가들은 남성들의 비호 속에서 활동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여성문학에 대한 관심과 자성의 태도를 뚜렷이 한 독보적 존재가 바로 최초의 여성 평론가 임순득이다. 늦은 등단과 6·25 전쟁 후 북한문학사에 편입됨으로써 많은 글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임순득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로 여성문학을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 있는 여성 평론가이다. 특히 그녀는 1940년을 전후로 한 전반적인 문학 침체의 영향을 받아 여성문학 또한 하향세를 보이자, 이 시기를 역설적으로 “불효기(拂曉期)”로 명명하면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여성문학의 미래를 위해 고언(苦言)을 하고 있다. 이미 「여류작가의 지위」(조선일보, 1937. 6. 30~7. 7)에서 “진정한 인간의 해방은 부인이 해방되는 것, 부인이 인간으로 복귀하는 것으로써 완성된다”고 주장했던 임순득은 「불효기에 처한 조선 여류작가론」(『여성』, 1941. 9)에서 더욱 비판적으로 여성문학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녀는 우선 기존의 여성문학에 대한 논의가 문학이 우선이고 나중에 여성인 것이 아니라 여성이 우선이고 나중에 문학인 것에 대해 반대한다. 그리고 난 후 “이 땅에 있어서의 부인문학이란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전망 속에 모셔놓은 우리의 끊임없는 이상에 불과했고 그 명목에 상응할 부인문학의 근거는 최초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가?”라고 도전적으로 묻는다. 여성 작가들이 먼저 “시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안고 차 먹는 데를 출입하는 것으로써 진실로 문화적 분위기를 향수하는 양” 잘못 아는 천박한 허영심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임순득은 이런 여성 작가 내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문화 현상의 파행성에서도 여성문학 저조의 원인을 찾고 있다. 여성 작가들에게 베푸는 남성들의 친절한 태도 자체가 “특별히 시설한 자선석(慈善席)”에만 여성 작가들을 우대하는 “왜곡된 페미니즘”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제1기의 여성문학은 여성 작가나 그들의 작품이 문학사에 편입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답다’라는 것이 남성성의 결핍으로 비난받기도 하고, ‘남성답다’라는 것이 여성성의 왜곡으로 비난받았던, 그래서 여성다울 수도 없고 남성다울 수도 없었던 혼돈의 시기이기도 했다. 여성다워야 한다는 말이나 남성과 구별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여성 억압의 기제라는 측면에서 동일하게 사용되었던 시기인 것이다. 또한 이 시기의 남성 평론가들은 여성의식과 사회의식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했으며, 여성적 문체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한 예로 강경애를 평가하면서 그녀의 소설이 하층민의 궁핍을 그린 것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하층민이 대부분 여성 인물들이라는 것은 간과했으며, 또 그녀의 문체가 감상적이고 기교적인 여성적 문체가 아니라 직선적인 남성적 문체라고 높이 평가했다. 때문에 막 형성되어 흔들리고 있던 여성적 주체는 1940년 신문이나 잡지의 폐간, 친일문학의 득세, 태평양 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 등 발발로 인한 외풍에 의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게 된다. 채만식이 「인형의 집을 나와서」를 쓰면서 의도했듯이 인형의 집을 나온 노라들이 맞닥뜨린 것은 어둠과 좌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자유부인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나지 않는다
1950년대에 등장하여 주로 1960~70년대에 활동한 제2기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타자이고 주변인이며, 고독한 소외인이었던 총체적 비극의 시대였다. 때문에 여성문학사에서도 이 시기는 침체기나 소강기로 간주된다. 위기 상황에서는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 현실임을 감안할 때 제2기의 여성문학은 제1기 때보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여성들을 더욱 억압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여성 단체의 교육활동이나 가족법 개정 등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었으나 직접적으로 여성해방의 이념을 표출한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점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1950년대는 신세대 소설이나 실존주의에 대한 논쟁이, 1960년대에는 최인훈 분단 이데올로기 소설이나 김승옥의 새로운 감수성에 의한 도시 소설에 대한 논의가 문단의 중심에 자리잡았었다. 당연하게도 그에 필적할 작품을 생산하지 못한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그늘에 가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허무적, 소극적, 수동적 태도로 여성 문제나 사회 현실에 대응하는가 하면, 체념적인 운명론이나 낭만적 사랑으로 도피하는 경향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배경하에서 1920년대에 이어 제2의 정조론이나 자유연애론이 다시 유행함으로써 ‘자유부인형’ 여성이 등장하게 된다. 여성의 성 해방이 왜곡된 형태로 폭발된 것이 자유부인형 성 풍조이다. 물론 이런 성 문제에 대한 의식이 그 동안 무시되거나 숨겨졌던 여성의 성적 욕망을 예각화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부인이었다면 전통적인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가정 내에서 ‘집안의 천사’로 안주하는 여성상에 대한 도전이나 전망 없는 미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부인은 너무 낭만적이거나 나약했고, 가부장제는 너무 폭력적이고 강했다. 오히려 1950~60년대는 사회 속의 남성과 가정 안의 여성, 집 밖의 창녀와 집 안의 천사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가장 첨예하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결혼을 통해 가정에 안주하려는 여성들이 여성다움을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제2기에 속하는 여성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가장 여성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작가가 한무숙, 한말숙 등이고, 가장 남성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작가가 송원희이다. 그 사이에 있는 작가들이 박경리, 손소희, 강신재 등이다. 그중에서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당대에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서 문제시되었던 작가가 바로 강신재이다. 특이하게도 박화성이 남성적 작가이기 때문에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모두 받았다면, 강신재는 여성적 작가이기 때문에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모두 받았다. 최초로 대표작 전집(전8권, 1974)을 출간했던 여성 작가인 강신재의 소설들을 여성문학으로 간주할 때는 대개 두 가지 이유에 근거했다.
첫째는 그녀의 소설에서 여성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남성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타나더라도 여성의 눈을 통하여 남성 인물이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연현은 강신재를 “가장 여류 작가적인 여류 작가”(「강신재 단상」, 『현대문학』, 1960. 2)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정규웅에 의해 제시된다. 스스로 여류 작가라는 한정사를 거부하는 강신재답게 그녀의 소설 속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인간상”이 등장하며, “주인공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작가가 근본적인 인간 문제에 어프로치했을 때 문제가 되지 않는”(「내밀한 조화의 세계」, 『문학사상』, 1975. 1)다는 것이다. 정규웅이 보기에 강신재는 “유능한 요리사처럼 어떤 제재에서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작품마다 그 주제의 방향이 아주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강신재 문학의 다양성은 조연현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반면 평론가 아닌 시인이지만 고은은 「실내작가론」(『월간문학』, 1969. 11)에서 시종일관 여성문학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강신재 소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고은이 강신재의 소설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녀의 여성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활기피증, 남성기피증, 희망기피증 때문이다. 생활기피증은 강신재가 지식 계급에 속하는 여성들을 주로 등장시켜 세속성 핍하나 현실과의 유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남성기피증은 “강신재에게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만남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파괴의 여신 시바를 수반하고 있고, 사신 데몬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남성은 단절되어야 할 외부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희망기피증은 강신재 소설 속의 여성들은 어떤 구원도 기대하지 않기에 해결책을 도모하지도 않으면서 패배주의에 빠져버린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런 고은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이 마련될 수 있다. 첫번째로 강신재의 소설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며, 특히 「관용」과 「해결책」 「해방촌 가는 길」처럼 양공주가 등장하는 소설에서는 생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두번째 그 누구보다도 사랑의 가치와 그 치유성을 믿고 있는 작가가 강신재이다. 강신재는 「정순이」 「봄의 노래」 「여정」 「젊은 느티나무」 등에서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강물이 있는 풍경」이나 「이브변신」처럼 사랑의 실패나 부정적인 측면을 이야기할 때도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사랑에 대한 추구와 열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남성에 대한 증오와 의존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강신재가 여성이 아닌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거나 여성 자체의 자의식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본다면 여성의 자아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세번째로는 염무웅(「팬터마임의 미학」, 『현대한국문학전집』, 신구문화사, 1967)이 유형화했듯이 강신재의 여성 인물들은 체념, 탈출, 잠정적 타협 등의 세 가지로 반응하기에 소극적인 맹종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강신재 소설의 여성 인물들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도해도 실패하거나 잘못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이런 사실 자체가 당시 사회 상황의 반영으로 읽힐 수 있다.
강신재의 소설에서 여성문학적 특성으로 간주되는 두번째 요소는 그녀의 여성적 문체이다. 제1기에서 최정희가 「곡상」 「흉가」 「인맥」 「지맥」 「천맥」 등의 작품을 통해 고백체라는 ‘여류다운 문체’를 확립시켰다고 평가받듯이 강신재 또한 감각적이고 세련된 여성적 문체로 높이 평가되는 작가이다. 때문에 수십 편의 장편소설이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은 『파도』이지만,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감각적 문장으로 시작되는 「젊은 느티나무」로 기억되는 작가가 바로 강신재이다.
이런 강신재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문체가 대상에 대한 일정한 거리 유지에서 가능하다는 데에는 염무웅, 김주연 모두 일치하고 있다. 염무웅은 강신재가 말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을 토대로 대상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투명한 이미지의 조형”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리고 색채, 냄새, 명암 등에 대한 날카로운 촉수로 풍경과 감정 상태를 상호침투시킴으로써 감각적인 문장을 구사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주연 또한 이런 거리 감각을 “감성의 객관화”(「여성성의 발견과 그 현실파탄」, 『문학비평론』, 열화당, 1986)로 칭하면서 이것이 강신재를 “가장 여성다운 작가”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수법을 통해 가냘프고 아름다운 감성을 내보이면서도 대상에 깊이 매몰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고은에게서 “감정의 냉장고”나 “박제된 여성”이라고 비난받았던 강신재의 감정과 대상과의 거리 유지가 염무웅이나 김주연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염무웅은 그로 인한 문체적 특성이 강신재의 문학을 더욱 여성다운 문학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고, 김주연은 이런 감성의 객관화가 “이 ‘작가를 가장 여성답게 하면서 동시에 ‘여류’라는 한정된 테두리 속에 작가를 유폐시켜버리지 못하게 하는 관건”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런 이중적 평가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는 것은 여성 작가들의 문체적 특성이란 감정에 토대를 둔 감각적, 주관적, 묘사적인 것이기에 이성에 토대를 둔 논리적, 객관적, 서술적인 남성적 문체와 차이가 난다는 남성적 사고이다.
강신재 소설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을 볼 때 제2기 여성 작가들이 호평받는 것은 문체요 혹평받는 것은 사회의식의 부재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호평과 혹평에는 정반대의 뜻이 숨어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 작가들의 문체를 연구한 구인환은 여성적 문체의 특징으로 “즉물적, 상태적 표현인 체언형”이나 “감각적인 문체인상”(「한국 여류소설의 기법」, 『아세아여성연구』, 11집, 1972)을 들면서 여성 작가들은 소설 속에서 색채어나 명암의 표현, 직유법 등을 많이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런 지적 자체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뛰어난 관찰력이나 예민한 감수성, 탁월한 심리 묘사 등을 인정해주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장점이 ‘기교’나 ‘기법’의 차원에서 논의됨으로써 내용과 분리된 형식의 문제로 한정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대개 여성 작가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비난이 가해질 때 더욱 심각해진다. 홍사중이 박경리를 평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그처럼 한정된 것이고 생활 자체가 현실성을 상실해가며 있을 때에는 다시금 ‘여류 작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한정된 현실의 비극」, 『현대한국문학전집』, 신구문화사, 1968)고 말했을 때나, 고은이 강신재의 소설이 “타이트 스커트 안에서만 두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현실”에 관심을 갖는다고 비판할 때 이런 남성적 무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한 지원 사격으로 구인환도 “이젠 여류 작가라고 해서 안이하게 서정의 감미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고, 휴머니티가 절규되는 현대의 광장에 나아가, 역사의식을 가지고, 좀더 좁은 여류의 윤리에서 벗어나 작품을 써야 할 때다”(「한국 현대 여류작가의 기법」, 『아세아여성연구』, 9집, 1970)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당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여성 평론가인 강인숙은 티보데의 이론을 빌려 소설의 여성적 양식은 편력, 모험, 행동을 추구하는 남성적 양식에 비하여 정착의 문학이며 내면적 심리 갈등을 추구하는 문학이라고 구별한다. 이처럼 여성문학적 주제를 나눌 때 중요한 것은 이런 차이가 수준이나 질의 차이로 환원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남성 평론가들은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나 구체적인 생활 감정, 불행한 운명 등을 다루면 그것이 신변잡기적인 경향으로 흘렀다거나 깊이가 없다고 낮게 평가한다. 역사나 사회에 대해 논하지 않으면 주제가 약한 것이라는 편견은 여성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이나 배경을 문학적 소재로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여성들은 역사나 사회 문제를 잘 다룰 수 없기에 한계가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때문에 제2기에서도 남성들의 편견이 굳건히 지속되고 있음을 다음의 글에서 확인하게 된다. “여성 작가는 작가인 동시에 철두철미 여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여자가 남자 이상으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자보다는 좀 순결하다고 할 때 여류 작가의 작품을 읽을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육욕(肉慾)도 좋고 무슨 장면이라도 좋으니 청결하고 위생적인 미학에 의해서 묘사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몇몇 비평가들의 의견이다. 나도 그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정창범, 「여류작가의 경우」, 『현대문학』, 1969. 5) 여성은 남성일 수 없으므로 여성다워야 한다는 이 말은 그 이전의 김문집이나 안회남의 말과 다를 바 없다.
여성 작가들의 위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술맛도 모르고 글을 쓰다니”라고 깔보는 남성들에 대해 “미역국 맛도 모르시구 어떻게 글을 쓰세요”라고 응수할 수밖에 없었던 한무숙(「책머리에」, 『축제와 운명의 장소』, 미문출판사, 1963)의 분노가 바로 당시 여성들이 처한 위치를 알려준다. 이어령이 1960년대의 문학을 향해 이전의 전통을 버리고 잿더미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화전민 의식’을 강조했을 때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화전민 의식을 체감한 존재들이 바로 여성 작가들이었을 것이다.
4. 서 있는 여자는 꿈을 꾸지 않는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겸손하고, 남자 기고만장할 땐 애교부리고 응석부려 그 기분을 고조시켜주고, 남자가 의기소침했을 때는 지혜로운 격려와 꽁꽁 뭉쳐놓은 비상금으로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남자가 집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철저하게 왕이나 승리자의 환상을 가질 수 있도록 시녀나 패자의 연기에도 능한 여자, 음식 잘하는 여자, 섹시한 여자, 돈 적게 들이고 옷 잘입는 여자 등등…….” IMF 사태를 맞아 남편 기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거나 실직 가장 돕기 캠페인을 벌이는 주부들의 슬로건이 아니다. 15년쯤 전에 지금의 중년 남성들이 “여자다운 여자”라고 열거했던 사항들이다. 그중에서 어느 하나도 현재의 시점에 걸맞지 않다거나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만큼 여성 문제에 관한 한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용한 앞의 예문은 잿더미에 숨겨져 있던 여성문학의 불씨를 다시 피운 박완서의 『서 있는 여자』(1985)의 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과한 90년대는 과연 어떤 시대인가. 혹시 여성들만 90년대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사실 박완서는 제2기 여성 작가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제3기 여성 작가이다. 박완서가 『나목』(1970)으로 등단한 후 본격적인 여성 소설인 『살아 있는 날의 시작』(1980)을 쓰기 전까지 10년 동안 그녀는 전쟁과 산업화를 화두로 삼아 6·25의 상처나 중산층의 속물주의에 대해 문학적으로 반응했고, 이런 주제들은 정확히 제2기 여성 작가들이 몰두했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박완서는 이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끊임없이 눈 주면서 당대성과 시의성 있는 문제를 문학화하는 현역 작가이다. 때문에 그런 박완서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불거져나온 여성 문제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을 여성적 시각에서 쓰면서 “앞으로 집요하게 되풀이 시도해볼 만한” 주제라고 말한 것을 실천하듯이 박완서는 『서 있는 여자』(1985)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를 쓴다. 그 이후 ‘박완서 신드롬’이나 ‘박완서 현상’을 만들어낼 만큼 그녀의 여성 소설들은 문단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여성문학에 대한 논의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런데 이런 박완서 문학에 대한 문학비평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조혜정이 「박완서 문학에 있어 비평은 무엇인가」(『박완서론』, 삼인행, 1991)에서 자세하고 치밀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박완서와 그의 문학에 관한 담론을 통해 “작게는 한 여성 작가에게 행해지는 의식적, 무의식적 거부와 횡포를, 크게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문학비평계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제가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조혜정의 논의는 여성 비평가 부분을 제외하고는 여성문학적 시각으로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는 작품과 비평마저 논의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반드시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성 문제를 다룬 작품만이 여성문학인 것은 아니지만, 중심적인 주제나 작가 자신의 의견, 독자들의 반응을 고려할 때 박완서 문학에 있어서의 여성 문학적 논의는 80년대 이후의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이나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으로 모아져야 무리가 없다. 하지만 조혜정이 논의하는 평론들은 여성문학적 시각에서 씌어진 평론들도 아니고, 그런 작품을 대상으로 한 평론들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성문학적 시각에서 부족하거나 부적절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스스로도 경계했듯이 평론가가 쓰지 않은 것으로 평론가를 공격하는 ‘죽임’의 비평일 수 있다. 한 예로 대중문학적 입장에서 박완서 문학에 접근하고 있는 오생근, 이동하, 성민엽 등의 글들이 여성문학적 시각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박완서 문학을 둘러싼 남성 비평가들의 편견은 박완서 문학에 대해 남성 평론가들이 잘못 접근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남성 평론가들은 분단이나 중산층 문제를 다룬 1970년대의 소설이나 『미망』(1990)에 대해서는 주목을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는 여성 소설들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박완서의 여성 소설에 접근하는 평론들의 첫번째 특징이다. 매우 드물지만 여성문학적인 시각에서 박완서를 논한 남성 평론가로는 홍정선과 김치수가 있고, 남성 작가로 유순하가 있다. 이 때문에 박완서의 여성문학은 자연스럽게 ‘여성사연구회(한국여성연구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김경연, 전승희, 김영혜, 정영훈 등과 ‘또 하나의 문화’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혜정 사이의 대립으로 축약된다. 남성과 남성의 대립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치러지는 ‘여성들만의 리그’가 최초로 등장했다는 것이 박완서의 여성문학을 둘러싼 논의의 두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 양상들을 살펴보면, 먼저 홍정선의 글 「한 여자 작가의 자기 사랑」(『박완서론』)은 조혜정의 지적대로 작품보다 작가의 사생활에 더 관심을 가진 남근 중심적 글에 해당한다. 홍정선이 박완서를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 이기주의자”라고 혹평하는 근거는 박완서가 소설 속에서 남편들을 왜소하고 무미건조하게 그리기 때문이다. 아내들이 인간의 처지가 아니라 여성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생애를 지나치게 귀중하게 여기기에 남편들을 그처럼 극단적으로 왜곡시켜 그린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홍정선이 『나목』 「맏사위」 「닮은 방들」 등 여성 소설이 본격적으로 씌어지기 이전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후 박완서 소설을 여성문학적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다루는 의견들과 비슷한 것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놀라운 데가 있다. 이런 홍정선의 논의와 유사한 유순하를 논의할 때 남성 인물의 형상화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홍정선의 비문학적이고 객관성을 상실한 입장과는 달리 김치수의 「함께 사는 꿈을 위하여」(『박완서론』)는 원래 작품 해설로 씌어졌기도 했지만 『서 있는 여자』에 대한 바람직한 비평이 이루어지고 있는 글에 해당한다. 특히 같은 남성의 입장이면서도 철민의 남성 우월적 태도에 대해서 작가의 의도대로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여주인공의 진취적인 태도나 기존의 도덕 관념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가지고 있는 모순의 비극성”을 다루고 있기에 감동적이라고 평가한다.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문제로 읽힐 수 있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치수는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혼자 서는’ 연지의 모습이 “낭만적인 감동이거나 헛된 꿈의 감동”에 지나지 않거나 현실이 아닌 당위의 세계로 오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완서도 연지의 ‘서 있음’이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싸움의 시작임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결정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김치수도 지적했듯이 연지는 쉽게 이혼을 결정하지 않았으며, 동등한 ‘둘’로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 우선 ‘혼자’ 서려는 것이다.
다음으로 여성 중심적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여성들 내부에도 존재하는 시각차를 보여줌으로써 분리주의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김경연, 전승희, 김영혜, 정영훈 등의 「여성해방의 시각에서 본 박완서의 작품세계」(『여성』, 2호, 1988)와, 조혜정의 「박완서 문학에 있어 비평은 무엇인가」이다. 두 글 모두 표면적이고 이론적으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을 거부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보았을 때 김경연 등은 계급적 불평등과 기층 여성 중심적 시각을 보이고, 조혜정은 가부장 제도와 중산층 여성 중심적 시각을 보인다. 이런 시각 차이가 박완서의 문학을 해석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구체적인 예가 『살아 있는 날의 시작』에서의 여주인공 청희의 인물 설정 문제이다. 김경연 등은 청희가 전업주부가 아니라 경제적 능력이 상당한 직업여성이므로 중산층 주부의 이혼 문제를 다루기에 부적합하다고 본다. 이런 지적에 대해 조혜정은 리얼리즘적 측면에서 볼 때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1977년에 이혼을 할 수 있는 여성은 전업주부가 아닌 직업여성이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또한 김경연 등은 박완서가 중산층 여성의 성적 갈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남성가해자, 여성피해자’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 대해 조혜정은 그들이 기층 여성의 입장을 드러내거나 여성 문제와 민중, 민족 문제가 결합된 특정 소재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오독과 오해에서 기인한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여성 문제에 대한 시각 자체가 대립되는 이들에 대해 각각 ‘여성의 계급차는 남성들 간의 계급차보다 크지 않다’라는 사실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반대 논리를 들어 양비론(兩非論)을 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대립을 통해 여성문학이 처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입장이나 이론을 중심으로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하나의 규범을 만들려 한다. 여성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다양성과 평등성이기에 그들의 입장 차이는 비판되거나 적대시될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들이다. 그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유순하로부터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또한 그들의 논의 자체가 관념적이고 이론적인 문제제기에 그쳤기에 정작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여성문학이 생산된 1990년대 이후에 오히려 그 목소리가 작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자발적인 입장 정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90년대적인 시대 상황 자체가 그들의 대립을 무화시킨 것이다.
이런 ‘여성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 남성 작가 유순하이다. 그는 『한 몽상가의 여자론』(문예출판사, 1994)에서 그때까지 논의된 여성문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스스로도 고백하고 있듯이 그의 글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론(論)’이라기보다는 몽상가의 꿈 이야기에 가깝다. 유순하는 그 어느 남성보다도 솔직하게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나는 스스로 밥통이나 멍텅구리가 되는, 빤히 손해보는 장삿길에 나서는 데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잠자코 있어 본전이나 챙기고 있는 쪽이 나에게는 훨씬 더 마음 편한 일 같아 보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순하처럼 여성에 대한 말을 직접적이고 공식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는 존경받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다.
유순하는 여성해방주의적 입장에서 씌어진 박완서의 작품들이 여성해방문학으로서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이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를 통해서 인물 형상화의 상투성, 즉 여주인공은 가련화, 성화, 영웅화되는데 비해 남주인공이나 다른 인물들은 철저히 비속화된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그는 박완서 이외의 다른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데서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이경자의 『절반의 실패』는 남성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것, 김향숙의 『떠나가는 노래』는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남성을 그린 것,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병적인 이상 심리의 여성 인물을 부각시킨 것 등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비판에 대해 다음처럼 대답해보자. 박완서가 그려내는 남성 인물들의 성격은 주제와의 상관관계에서 평가해야 한다. 최소한 다른 문제가 아닌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면 그런 별볼일 없는 남성을 설정해야 여성의식을 문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여성 소설의 딜레마이다. 실제로 아내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슬픔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멋진 남편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남성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은 미래 지향적이고 바람직한 남녀관계를 그리는 소설이다. 현재의 여성이 겪고 있는 억압을 문제시하는 비판적 소설을 쓸 때에는 멋있는 남성을 등장시킬 수는 없다. 괜찮은 남성에게서 문제를 느끼는 여성이야말로 진짜 비정상적이고 남성을 무조건 적으로 아는 여성일 것이다. 때문에 문제는 단순히 바보 같은 남성을 그렸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그런 남성을 그렸으며, 그런 남성적 특성이 개연성을 확보하면서 작품의 주제 구현에 적절한 효과를 거두었는가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모든 문학에서의 사랑은 비극 아니면 불륜이기 쉽듯이 여성 소설에서의 남성은 얼마간 문제 있는 남성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좀더 발전적인 논의를 한다면, 박완서 소설의 문제점은 남성의 비속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물들의 극단적인 단순화에 있다. 즉 한 인물을 그려냄에 있어 어떤 전형을 그리겠다는 의욕이 앞서서 상투성을 가진 인물로 단순화시킬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박완서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내 문학의 나무에 돋은 한 작은 가장귀」, 『사상문예운동』, 1991년, 여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 차문경의 대조역으로 나오는 정애숙의 경우, 남편이나 시댁이 원하는 모양에 자신을 꿰맞추는 여성의 모습을 나타내려다가 지나치게 평면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김혁주의 경우도 못난 성격을 그린 것 자체가 아니라 그런 인물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여성관계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관계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복합적인 비인간성이 확보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결국 남성이 비속하게 그려진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주제와 연관되어 설득력 있게 비속화되지 못한 경우에 비판을 받아야 한다.1)
다른 쪽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해보자. 박완서의 소설에서 모든 여성 인물들이 무조건 미화되거나 성화되지는 않았다. 왜 저자는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는 인용하지 않는 것일까? 박완서는 그 작품에서 결혼을 수단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허영심에 찬 두 세대의 여성(민여사, 초희)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때문에 심지어는 “여성학대 소설가”(정영자)라는 평까지 듣는다. 이 외에도 중산층의 속물성을 다룬 「조그만 체험기」 「닮은 방들」 「지렁이 울음소리」 「주말농장」 「도둑맞은 가난」 등의 작품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혹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신랄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러면 또 유순하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소설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씌어진 작품이 아니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작품을 쓸 때는 상대적으로 다른 시각에서 씌어지는 작품보다 남성의 부정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앞의 해명은 더욱 공고해진다.
5.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
20세기를 통과하면서 여성은 여성이면서도 여성이기를 ‘거부’해야 했고(제1기의 박화성), 그 다음에는 여성이기를 ‘주저’해야 했으며(제2기의 강신재) 또 그 이후에는 여성이기를 ‘주장’해야 했다.(제3기의 박완서) 때문에 한국문학사에서 여성문학에 대한 시각은 여성문학의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학(남성문학)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에 따라 그 질이 평가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렇게 볼 때 20세기에 들어와 식민지적 억압이나 반공 이데올로기, 자본주의나 민주화 등의 문제에 항상 우선권을 빼앗겼던 여성 문제는 쥐나 바퀴벌레처럼 인간이 멸망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최후의 식민지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박화성강신재박완서 이후 오정희, 이경자, 양귀자, 김향숙, 김채원 등의 작업이 김형경, 공지영, 신경숙, 이혜경, 김인숙, 최윤, 공선옥, 차현숙, 은희경, 전경린 등으로 이어지면서 여성문학의 커다란 조류를 형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90년대 문학을 정리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여성문학이다. 여기에 합리적 이성과 거대 이론에 대한 거부 및 탈위계적 성격을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없음주변부타자’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준 측면도 작용한다. 억압되었던 것이나 주변적인 것의 복귀라는 포스트모던적 감각과 가부장적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이라는 페미니즘적 인식 사이에 교차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90년대의 탈이념, 일상성, 내면성의 추구가 여성성과 자연스럽게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삐딱하게’ 본다면 여성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여성 작가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위기의 여자들’이 신종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데서 오는 상업적 배려일 수 있다. 그리고 문학의 여성화를 우려할 정도로 여성 작가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이런 현상 자체도 문학의 주변화에 따라 남성 작가들의 수가 감소한 데서 그 반대급부로 이루어진 것이지 여성문학 자체에 파격적인 변화가 있거나 여성문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90년대는 문학의 열악한 상황이 여성의 열악한 조건과 가장 화해롭게 조우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교 불가능성, 다양성, 비결정성이 페미니즘을 무분별한 상대주의나 무비판적인 다원주의에 빠지게 함으로써 여성들의 유대감을 감소시키거나 여성문학을 무장해제시킨 역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지적이 지나친 의구심이나 회의일 수 있는 근거도 있다. 한강, 배수아, 김이태, 송경아, 조경란, 하성란, 김연경 등으로 구성된 젊은 여성 작가들은 그 이전의 여성 작가들과 차이를 보이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로부터, 보다 정확하게는 그런 사실로 인한 상처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글쓰기를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들은 어머니로서의 희생이나 의무보다는 딸로서의 특권이나 권리에 익숙한 첫 세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여성 작가들은 이전의 여성 작가들처럼 여성적인 주제를 남성적으로 쓰거나 여성적으로 쓰지 않고, 인간적인 주제를 여성적으로 쓰거나 인간적으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변화가 여성들만 사는 레스보스 섬에서 한시적으로 벌어지는 잔치에서만 가능하므로 여성 작가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욱 나빠졌을 수도 있다. 가장 가혹하고 무서운 것은 정해진 한도 내에서만 허용되는 자유이다. 실제 우리들의 삶에서는 잔치는 잔치이고, 일상은 일상이다. 그래서 잔치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론 잔치조차 없는 삶보다야 그런 잔치라도 있는 삶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잔치 자체가 온갖 불만과 저항을 잠재우는 안전핀이기에 교묘하게 위장된 통치 수단이라면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잔치를 즐기려면 뇌관이 제거된 폭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대로 된 잔치도 아니고 잔치 흉내만 낸 잔치 때문에 설거지만 해야 한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혹시 우리는 작가보다 여성을, 여성문학 자체가 아니라 여성문학이라는 환상을 더 좋아하며 잔치를 벌였던 것은 아닐까. 때문에 우리는 다음처럼 물어야 할 것이다. ‘여성문학은 어떻게 변했는가’가 아니라 ‘여성문학은 얼마나 변하지 않았는가’라고.
이제 더이상 이론이 아닌 작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외국 이론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이론이나 문학 전통을 세워야 한다, 여성문학은 ‘여성’문학이지만 여성‘문학’이기에 내용과 형식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2) 여성과 남성을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파악하지 말아야 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그 주체만 바뀐 전복된 성차별주의를 경계하자, 기존의 ‘피해자 페미니즘(Victim Feminism)’에서 벗어나 여성의 힘과 다름을 강조하는 ‘파워 페미니즘(Power Feminism)’으로 나아가자, 여성 내에서도 존재하는 지역, 계급, 인종, 나이 등의 차이에 대해 주목하자 등등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말자. 허기 후에 폭식을 하면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다. 이렇게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알고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사람들이 여성 작가들일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딴지’를 거는 이유가 밝혀진다. 현재의 여성문학은 자신에게 걸려 있는 마술을 풀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대포장된 거품을 빼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어떤 특수한 영역을 여성들만의 영역으로 절대화시키면서 더욱 그 활동 공간을 좁게 만들거나 여성문학에 대한 주목을 통해 더욱 효과적인 여성 배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모두 잔치인, 아니 잔치 자체가 필요없는 날들을 위해서는 새로운 천년이 필요한 것일까.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지점이 바로 그 경계이다. 이 글은 그 경계에 뿌리를 내리고서 이전 여성문학의 수고로움을 거름으로 삼아 힘들게 커가고 있는 감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서 더 큰 감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한 이기주의자에 의해 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