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물론 해외에 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스타의 죽음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팬들을 중심으로 ‘베르테르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자살하면서 베르테르 증후군이 확산되고 있다 ⓒ 연합뉴스
‘베르테르 증후군(Werther Syndrome)’이란 유명 연예인이나 평소 선망하던 인물이 자살했을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도 똑같이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최근 이 아이돌 그룹의 팬을 자처하던 인도네시아의 한 여성이 스스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져 우려를 낳고 있다.
언론 보도의 횟수가 늘수록 베르테르 증후군도 확산
베르테르 증후군이란 이름은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가 지난 1774년에 간행한 소설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깊은 실의에 빠진 채 고민하다가 결국 권총 자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소설이 발간됐던 당시만 하더라도 문단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청년들 사이에 주인공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소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소설에 묘사된 베르테르의 옷차림을 따라했고, 베르테르의 고뇌에 공감하면서 자신이 마치 베르테르인양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심지어는 베르테르를 모방한 자살 시도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사회적 문제로 까지 대두되었다.
베르테르 증후군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이 자살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 wikipedia
훗날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ips) 박사는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 일반인의 자살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는 현상을 발견했고, 이런 현상에 대해 ‘베르테르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립스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베르테르 증후군의 실체는 일종의 ‘모방 자살(copycat suicide) 현상’ 또는 ‘자살 전염(suicide contagion) 현상’이다. 유명인의 죽음을 모방하여 똑 같은 방법으로 죽으려 하거나, 그런 사람을 보며 자신도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필립스 박사의 조사 결과가 매스미디어의 해악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립스 박사는 “자살을 따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이 죽어서 따라 죽는다기보다는 언론매체를 통해 자살 기사가 끊임없이 보도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어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필립스 박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 사건에 대한 기사 내용이 죽은 유명인을 감상적으로 미화한다거나,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에 일반인의 자살률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동이 멈추지 않는다면 주변과 전문가 도움 받아야
필립스 박사의 조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바로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여 베르테르 증후군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자살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추모 방송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것도 이 같은 베르테르 증후군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일련의 조치라는 것이 방송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당초 추모방송을 기획했던 방송사의 관계자도 “전문가들과 논의한 결과 고인의 육성이 다시 전파를 타는 것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방송을 취소하기로 어렵게 결정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심리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파파게노 증후군(Papageno Syndrome)’의 일환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스미디어가 자살을 전염시키는 베르테르 증후군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반대로 이런 현상을 저지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파파게노 증후군의 핵심 내용이다.
파파게노란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사냥꾼의 이름으로서, 사랑하는 연인이 사라지자 괴로움 속에 자살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자살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소년이 들려주는 노래에 감동하여 죽음이 아닌 희망을 떠 올린다.
파파게노 증후군이 탄생한 연극 마술피리의 한 장면 ⓒ BerkshireReview
베르테르 증후군이 유럽 전역을 휩쓸며 아까운 젊은 생명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유럽 국가들은 파파게노 효과를 전면에 내세우며 자살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한 보도를 할 것을 언론사에 당부하면서 상당한 자살 예방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렇다면 파파게노 증후군처럼 매스미디어를 통해 베르테르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외에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건강한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심리 전문가들은 △유명인과 자신을 분리할 것 △충동을 지연시킬 것 △주변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 등 총 세 가지를 주문하고 있다.
유명인과 자신을 분리하려면 우선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이 있기 마련인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스타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을 때 스타와 자신을 동일 시 하는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방법인 충동 지연은 극단적인 생각을 자꾸 미루는 것을 말한다. 자살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한번만 더 생각해 보고 내일 실행하자’라는 식으로 미루다보면 시간이 흐른 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자살에 대한 충동이 멈추지 않는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인 만큼 주변에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도움을 받는 방법이다. 특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현재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