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봄을 재촉 하는 비가 촉촉하게 메마른 대지를 적셔 주고 있습니다.
겨우내 얼어 붙었던 땅을 봄비가 촉촉하게 깨우고, 산하 대지에 나는 봄나물은 잃었던 입맛과 함께 새로운 활기를 약속 합니다.
태국의 사람들은 이러한 봄맛의 상큼함을 알지들을 못할것입니다.
한국의 겨울에 내리는 눈 을 한번 보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언제나 사계절이 두렷한 이곳 한국의 계절에 제철 음식들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태국이 음식의 천국이라고는 하지만, 손맛과 양념맛은 우리나라를 따를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이제 태국에서의 4일째 아침 참선을 하였습니다.
이 몸은 본래 나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지난 전생의 숙연으로 이 생을 허용 받았습니다.
똑 같은 지구상안의 공간안에서, 한국이라는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일생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믿으며, 그 가르침을 본받아 언제나 제 스스로에게 생기는 집착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그 속안에존재 하면서도, 진실한 가르침을 거울삼아 집착 하지 않으려 애쓰고, 욕심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언제나 결국에는 이 몸뚱아리를 떠나는 그 순간이 반드시 있음을 잊지 않고, 이 몸뚱아리로 만든 그 모든 인연들과 이루어지는 현상들을 무상하고 덧없게 느끼고 알려고 애씁니다.
결국에는 사라질 이 몸뚱아리가 이루어져 있는 동안에 일어나는 그리고 만나는 그 모든것들은 결국에는 무상하고 덧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또 확인 합니다.
진정으로 영원한것은 불생불멸의 진공묘유 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 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그 누구도 늙지 않을수 없으며, 변하지 않을수 없고, 어느 순간 건강을 잃고, 병들며, 마침내는 죽음으로 떠남을 항시 잊지 않고자 하는것이 올곧은 참선의 가장 큰 화두이며, 자신도 모르게 길들고, 물들은 빛과 소리, 냄새, 맛, 감각, 의식, 얻어들은 지식, 알음알이, 경험으로 알게된 그 모든것들은 결국에는 허무하고 허망하게 사라짐을 뼈저리게 되새기는 작업이 참선입니다.
어느 순간 결국에는 남은자들에게 아쉬움을 주고, 안타가움을 주며,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는 자연의 그 모진 현상...
다시는 존재 하지 않아야 그 아픔과 서러움과 슬픔을 만들지 않을것입니다.
존재 하는 순간에 언제나 바라게 되며, 모든 모자람을 채우려고, 몸이던, 마음이던, 만족하지 않는 그것들을 채우려 애쓰다가 결국에는 허망하게 사라지며, 결코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모순의 존재가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그 모순의 존재를 당연하게 싫어하여야 하며, 결국에는 다시는 존재하는 물질의 존재가 아닌 진공묘유로서만이 완벽하게 진실로 자유스러워지며, 그것만이 진리임을 확신하는 작업인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모순의 존재를 또 다시 이어 받을수 밖에 없는 원인인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욕망에 들끓으며, 미련스런 미련인 욕심만을 더 챙겨 만들기 때문에, 태어날 원인을 만들고, 그것이 식물이던 동물이던, 물고기이던, 날짐승이던, 바위나 흙 같은 광물질이던, 아니면 원소 로서 반드시 또 다시 존재하고, 그 존재의 것에 이끌려 들어가며, 헤어나지 못한채, 윤회라는 사슬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이 반복적인 존재의 허물을 벗지를 못합니다.
부처님은 다시 태어나지 않을 방법을 찾았으며, 그 길을 사람들에게 끓임없이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이들은 차츰 차츰 서서히 그 원인을 만들지 않고, 집착을 끓으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결국에는 중도의 진공묘유를 깨닫게 되며, 다시 태어나지 않는 절대 자유롭고, 영원의 길을 찾아 갑니다.
그러나 그 선연이 모자란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신 이유도 알지도 못하며, 그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설혹 그 가르침이 있는것을 안다손 치더라도, 제 나름대로의 수준이 되지 못하면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제 나름대로 판단하고, 무조건적으로 부처님께 발복을 기원하며, 기복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사주 팔자, 운명 타령이나 하며, 한때 잘먹고 잘살려는 욕심과 번뇌에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수행자라 하더라도, 그러할진데.... 하물며 일반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것입니다.
수행자의 모습을 갗추기란 쉽습니다.
수행자인체 하고 살아가는 방법도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깨달음 없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야망과 자신의 치부만을 위한 거짓된 삶을 살아가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공갈치고, 협박하며, 마치 그 자신에게 다가 오지 않으면 마치 복을 받을수 없는것처럼, 아니면 자신이 이끄는 방법에 의한 기도와 발복을 기원함으로서 인하여 복을 받을수 있다고 터무니 없이 이끄는 잘못들을 범하는 이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또한 어리석은 인연으로 끼리끼리 만나는 동업중생의 인연으로 제 나름대로 살아 가기도 합니다.
수준이란 어떻게 해 줄수 없는 스스로의 노력이고, 선택입니다.
소귀에 경읽기란 아무리 불법을 찬양하고 선양 하여도, 이미 귀가 닫힌 고집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비를 베풀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스스로의 인내와 참음과 믿음이 솟아나지 않는한 제버릇 고치기 힘듭니다.
나는 다행하게도 이 생을 통하여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그 가르침의 핵심을 깨닫는 영광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세상사에 물들지 않으려 애쓰고, 길들지 않으려 스스로 지켜 나갑니다.
그러면서 남들에게 진실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 하여 줍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던, 받아들이지 않던, 그것은 그 사람들의 몫입니다.
나의 마음에는 분별심을 키우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훈련으로 실상은 언제나 담담합니다.
온다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간다고 섭섭허거나 슬퍼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언제나 그러한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축복과 축원을 하여 줍니다.
언제인가는 반드시 진실한 부처님을 바라 볼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언제인가는 반드시 진실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게끔 되어라 하고 말입니다.
언제인가는 반드시 그 모든 허망에서 벗어나 무상하고 덧없음을 깨닫고,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그리 될것입니다.
나의 마음에는 언제나 자비심으로 가득 하고, 광명으로 가득 합니다.
참선을 끝내고 후덥덥한 바깥으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호텔 앞의 사면불로 조성된 부처님께 아침 인사를 올립니다.
태국의 좋은 점 한가지는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을 불상을 , 절들을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것도 하나의 기쁨인셈입니다.
나의 동행자는 너무나 달게 늦잠을 푹 잡니다.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입맛 까다로움으로 제 딴에는 고생 합니다.
냄새도 한국과는 달라서 애를 먹습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가 봅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 합니다.
아침을 먹고 우리들은 서둘러, 바로 곁에 있는 MRT 매표소로 들어 갑니다.
어제 보지 못하였던 중국인 거리에 있는 금 불상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그 불상은 미얀마와의 침략 전쟁때, 금 불상을 보전 하려 바깥에 다른 흙과 시멘트로 덮어 두었던 것을 어느순간, 인부의 실수로 그 바깥을 둘러 싸고 있던 흙 을 깨 뜨리고 서야 알게된 귀한 불상 입니다.
태국의 모든 기차의 발착지이며, 종점인 휠람퐁 역 까지 가면 됩니다.
순식간에 지하철은 우리들을 그 목적지인 휠람퐁 역에 데려다 줍니다.
바깥으로 나온 우리들은 반대편 길을 물어 물어....마침내 그 절에 도달 하였습니다.
세계 어딜 가나 중국인들은 화교의 거리를 세웁니다.
그들의 단결력은 그리고 새로운 그들의 사람들에게 개방되고, 보호하며, 상권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경이적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그것이 참으로 어려운가 봅니다.
처음 정착 하려 들어온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주는 이들도 같은 한국인들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아니 화교들은 처음 정착하는 살함이 잘 정착 할수 잇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다고들 합니다.
몇몇의 어슬픈 한국 가게들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나에게는 그것이 피부로 와 닿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도 반갑지도 않습니다.
나의 편견없는 눈에도 그들은 나를 경계하고, 또 나도 저절로 움추러 들게 만드는 그누엇인가각 있습니다.
태국이 자랑하는 그 금불상이 이러한 화교의 절에 모셔져 있다는 것도 경이롭습니다,.
아침 일찍인데도 참으로 많은 서양 관광객들이 절 안팍을 넘쳐 납니다.
불상은 참으로 당당하고, 멋있습니다.
한국의 절에 계시는 부처님 불상 같은 장엄하고 엄숙하며, 신비로운 기운은 없습니다.
다만 관광 상품으로 또 다른 현지인들의 기복의 대상으로만 존재 합니다,.
불교는 불상으로 대변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불상에 존재 하지 않음을 사람들은 잘 모를것입니다.
형상 없는 진리를 설파하신 부처님의 깊은뜻을 어슬픈 관광객들이 어찌 알수가 있을것이며,
기복으로 중무장된 세뇌된 대중들이 어찌 알수가 있을것입니까?
다만 그곳에 존재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들을 오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관광지의 절들이 다 그렇듯이, 아니면 뛰어난 상술 때문인지, 절 안팍에서 꽃과 공양물과 향들과 과일들과 어슬픈 기념품들과, 조악한 관광 상품들이 늘어 서 있습니다.
제가 조악 하다고 하는 이유는 어디 가나 비슷비슷한 한눈에 보아도 그리 상품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방콕 안에서의 중요 관광지는 나나름대로 다 둘러 보았습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갑니다.
아침에 비행기 티켓과 호텔 바우처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경빅 6,000 바트 든다고 합니다.
한국돈 18만원입니다.
어쨋던 다행입니다.
그 같은 적은 금액으로 비행기로 1000킬로 이상을 날아가고, 겨우 한시간 후에는 도착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텡을 픽업? 가지 해주고는 4박 조식포함의 경비입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적은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 태국 여행사의 직원 말대로라면 태국에서는 엄청난 돈입니다.
치앙마이로 가는 방법은 몇가지로 압축 됩니다.
하나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리무진 버스로 가는 방법입니다.
약 10시간 내지는 12시간 걸립니다.
로컬버스..리무진도 비슷한 시간과 경비가 듭니다.
기차가 있는데,. 침대칸을 타고 12-14시간 갑니다.
경비는 일인당 약 18000원정도, 태국돈으로 600바트 정도 듭니다.
저는 기차를 선호 하였으나, 동반자는 고생은 싫다고 우깁니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빠르고 간편한 비행기를 타자고 우겼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저의 여행이기도 하지만 그 동안 오랜시간, 고생한 동반자를 위한 여행 이기도 합니다.
존중하고, 이해 하는 마음으로 양보 하였습니다.
호텔에 도착한뒤에 돈을 지불하고, 우리가 갈 호텔의 그림도 보고, 이것저것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체크 아웃을 언제 할것인가 하고 막연하게 기다립니다.
공항까지 픽업 하여 준다고 하였으니,이리저리 시간과 경비가 절약 됩니다.
그 여행사 직원은 이 호텔에서 한국인들을 만나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일본 관광객들이며, 일본인들은 의외로 겁이 많고, 개인적으로 돌아 다니지를 않으며, 항상 픽업을 요구하고, 조용하며, 단체로 움직인다고들 합니다.
서양인들도 그룹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며, 혼자 오시는 나이드신 서양 외국인들은 꼭 짝을 구해 둘이 다니기 때문에 우리처럼 마구 짤짤 거리며 다니고, 직접 몸으로 부딫치는 여행객은 처음이라 한편으로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좋아 보이며, 부럽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찍 공항으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비행기는 오후 3시 출발 타이항공 국내선이며, 4시에 도착 합니다.
공항에서 식사를 하고 구경 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빈둥빈둥 호텔에 있기는 갑갑합니다.
이 호텔에서의 런더리(세탁서비스)는 아주 좋았습니다.
말끔하게 다림질 과 방향제를 사용하여 아주 좋았습니다.
3일 동안의 빨래 값이 550바티입니다...한국돈 15,500 원입니다.
물론 호텔이라 시중 가격의 2배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시선으로는 쌉니다.
너무 힘들지 않게, 편하게, 그러나 볼것은 다 보되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원들을 찬찬히 다 잘 살피자...
피곤하지 않게, 즐겁게 여행하자....바쁘지 않게...자유스럽게...
이것이 이번 여행의 콘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