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킹을 하려고 버스를 탔다. 만석이다. 다음 정류장에서 자리가 비었고, 안쪽엔 지정 좌석인양 여기는 할매가 앉아있다. 관심없이 가방을 멘채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앉고보니 앞쪽에 초등 저학년 또래의 여자 아이와 30대쯤의 엄마가 서있다. 늙은 내가 서는게 마음 편할거 같아 자리를 권했다. 그러나 괜찮다며 둘다 사양을 했다.
몇정거장을 가다 아이가 힘들어 보여 또 다시 권했다. "조금있다 내려요. 감사합니다." 애 엄마의 말이다. 그런데 곁의 의자에 앉은 남자가 그들더러 말을 건넨다.
뭐지? 가만히 보니 가족인듯 했다. 소위 다문화가정, 남자는 50대로 보였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아이에게 자리를 내주든지, 아니면 무릎에 앉히지 않고서 그럼 나는 도대체 뭐야?
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보았다. 지나 나나 이마에 땟국흘릴 처지에 꼴에 자존심 가부장적 행동을 하는 것인가...
가끔 고부간의 갈등을 풀려고 외국서 시집온 며느리의 친정방문하는 티비 프로그램이 있었다. 며느리들은 그곳에서 갖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심지어 대학을 다니다 우리나라 남자들과 결혼을 했다.
문제는 남자들의 생활이 너넉하지 못하여 자신의 집에서도 일하지않고 곱게 자란 그녀들을 데려다 농사일을 시키거나 직장에 내보낸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사랑이라고? 웃기는 소리다. 외국여자 데려다 호강을 못시킬망정 고생만 시키는게 사랑이겠나?
어떤경우 장애인인 남편을 돌보는 여자들이 있더라만, 그녀의 마음속엔 동정심이 깔렸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화가 났다. 자신의 결혼 못한 외로움, 부족한 노동 일손을 채우기 위해, 물질적 풍족함도 채워주기 못하고, 넘치는 사랑을 주지도 못하며 왜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하는가?
동남아 국가중 필리핀, 태국은 6.25 참전국이고, 베트남은 전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다. 가해국 일본에겐 죽창가를 부르면서 그들에겐 무슨 자격으로 괴롭히는가?
그 잘난 한국인이란 허울때문에?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게 가학성(加虐性 : 남을 학대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병적인 특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말귀 못알아 듣고, 일 서툰 그녀들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서러움을 전가시키고 쾌감을 맛보는...
10경 집에서 갑자기 도시락 싸서 나온길, 산으로 향하려다 신발 때문에 강가를 걸었다.
이마와 등에 흐른 땀을 식혀주려는 듯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 살아갈 앞날 만큼이나 미세먼지로 시야는 밝지 않다.
그래도 땀흘리며 걷는 길가, 갈대는 바람을 목마태우고, 메타스콰이어는 열지어 달리는 자전거를 배웅하며, 팽나무는 자신의 그늘로 사람들은 불러 앉힌다.
질주하는 자전거, 파크골프장의 중늙은이들, 그리고 하염없이 걷는 나...자전거는 그렇다치고 중늙은이들의 땀흘림은 주토의 길이 단조로움 때문일까
살아가며 때론 낯선 곳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구태어 꽃길 아니어도 행복하고, 풍요롭지 않아도 배부르다.
낯섬은 관심두려 얼굴을 붉히기 보다는 '니 나를 언제봤다고? 언제 또 나를 언제보랴?' 하는 편안함이 있어 좋다. 그냥 그렇게 살고싶다. 미련남기지 말고...